(제 97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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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닷새째 계속되고있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일찍 회의에 나오시였다. 장군님을 따라 위증민이도 회의장에 나타났다. 그는 지난밤을 뜬눈으로 밝혔다. 농가의 함실아궁앞에서 장작을 지피시며 밤을 지새우시는 장군님을 멀지 않은 둔덕우의 농가마당에서 내려다보면서 그도 방안에 들어가 포근한 잠자리에 들 생각을 못했던것이다.

장군님께서 하시던 그 솔직하고 정당한 말씀과 온 민족이 들쓰고있는 비운을 그처럼 가슴아파하시며 몸둘바를 몰라하시던 장군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무어라 말 못할 쩌릿한 아픔이 가슴을 허비였다.

더구나 요영구에서 밤길 수십리를 달려 다홍왜로 장군님을 찾아왔던 《민생단》혐의자의 어머니, 사람들은 자식을 잃고도 살고 부모를 여의고도 살지만 장군님 없이는 한순간도 못산다는 녀인의 호소는 그대로 김일성동지를 조선혁명의 수위에 그렇듯 높이 받들어모시고있는 2천만 조선인민의 숫눈처럼 깨끗한 심정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리고 그 녀인을 변함없는 믿음과 사랑으로 품어주시던 김일성동지의 그 품은 얼마나 자애롭고 뜨거운것이였는가?

한밤을 농가의 함실아궁앞에서 장작을 지피시며 밤을 밝히신 장군님의 마음속에 얼마나 처절하고 의분에 찬 생각이 소용돌이를 일으키고있을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면서 위증민은 한지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장군님과 같이 한밤을 지새웠고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장군님을 지켜보고있었다.

위증민은 이날따라 장군님께서 여느때없이 일찍 나오셨고 여느때 앉으시던 통나무평상앞에 자리를 잡으시고 조그마한 수첩에다 무엇을 천천히 적어나가시는 모습을 범상치 않은 마음으로 지키고있었다.

지금까지 장군님께서는 회의에서 발언이라고는 크게 한것이 없으시였다. 아무리 과격하고 리치에 덧나는 말이 튀여나올 때에도 크게 개의치 않고 너그럽게 들어주시였으며 꼭 필요한 몇마디씩을 간단하게 중점적으로 하시였을뿐이였다.

그렇다고 오늘도 김일성동지께서 이러하실것인가?… 아니다. 그럴수 없다. 이제는 김일성동지께서도 말씀하실 때가 되였으며 따지고 분석하고 분노도 터뜨리고 민족의 목소리로 규탄도 하시며 단호하고 준엄한 어떤 결심까지도 피력하실지 모른다고 위증민은 생각하였다. 그래 어쩔수없이 일은 그렇게 될것이라고 위증민은 믿었다. 그토록 지금까지의 회의분위기는 긴장했고 치렬했으며 엄엄하기조차 했었다.

위증민은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조였다. 오늘회의에서만이라도 사람들이 분별을 가지고 리성적으로 처신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반드시 그래주어야 한다고 위증민은 다시다시 생각하였다.

회의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연길, 왕청, 훈춘, 화룡 등지에서 온 당 및 공청간부들이였다. 위증민은 장군님으로부터 빈통나무의자를 사이두고 자리를 잡았다. 해빛이 잘 드는 창문가에는 순시원 종치훈이와 조범이도 앉아있었다. 강시중은 장군님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지 않는 구석쪽 안침진곳에 한자리를 잡았다.

위증민은 오늘회의의 첫 토론을 훈춘현 당일군인 고윤일이 해주었으면 하는 은근한 기대를 품었다. 고윤일은 강시중이보다는 분별있고 침착한 사람이였다. 게다가 그사람은 어제밤 장군님의 이야기를 들었고 위증민이처럼 복잡한 생각에 잠겨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였다.

《고윤일동무.》

위증민은 조용히 고윤일의 무릎을 흔들었다. 조는듯이 아래로 눈을 내리깔았던 고윤일이 무겁게 고개를 들고 위증민을 지켜보았다.

《첫 발언을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내가요?》

그는 놀란듯이 눈두덩을 꿈틀거렸다.

《첫 발언을 하십시오. 지금까지 고윤일동지는 자신의 견해라고 로출시켜 제기한것이 없습니다. 대체로는 다른 동지들의 발언에 공감하는 립장을 갖추고…》

《그랬던가요?… 그렇지만 오늘회의에서는 김일성동지께서 첫 발언을 하실겁니다.》

고윤일은 확신있게 한마디 하고나서 침착하게 기다릴양으로 아까처럼 눈을 내리깔았다.

위증민은 입을 다물었다. 고윤일의 말을 듣고나니 정말 오늘회의의 첫 발언을 장군님께서 하시리라는 생각이 너무도 분명해졌다.

강시중이 자리잡은 구석쪽에서 조급히 책장을 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위증민은 별로 그것에 개의치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 첫 발언을 하시리라는 고윤일의 말에 너무도 깊이 공감하였으므로 장군님만을 긴장하게 살피게 되였다.

다시금 구석쪽에서 성급히 책장을 번지는 소리가 일어났다. 몇마디 주고받는 말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위증민의 눈길은 장군님만을 집요하게 주시하고있었다. 그러다가 강시중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지들!》하고 한마디를 하고난 뒤에야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알지 못할 흥분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가슴은 까닭모를 불안을 안고 투둑투둑 뛰였다.

고윤일이도 뜻밖인듯 눈을 크게 뜨고 강시중을 지켜보았다.

그의 입에서는 나지막한 한숨소리가 새여나왔다. 바로 그 순간에 강시중의 빠르고 성급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동지들, 나는 여러날에 진행된 회의에서 한두번만 강조하지 않았지만 동만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추켜들고있는 민족해방, 조국해방의 슬로간이 공산국제의 로선에 저항하는 행동이라는것을 다시한번 언급하는바입니다.

국제당이 이미 1국1당원칙을 제시하였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 원칙은 매개 나라에서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하나의 중앙,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통일적으로 투쟁해나갈수 있게 하는 정당한 원칙입니다. 그런것만큼 중국땅에 살고있는 조선인 공산주의자들도 이 원칙에 철저히 립각하여 통일적인 중앙의 의사에 따라 모든 활동을 해나가야 할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만의 조선동지들은 조국해방, 민족해방을 부르짖으면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와는 배치되게 협소하고 근시안적인 민족주의경향으로 나가고있습니다. 옳지 않단말입니다.》

강시중은 길다란 주걱턱을 앞으로 불쑥 내밀고 거만한 눈초리로 장내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그의 토론만을 놓고본다면 조선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구별조차 할수 없을 지경이였다.

조범과 종치훈을 비롯한 몇사람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군거렸다. 위증민은 조용히 더운 숨을 내쉬고 사람들을 살폈다.

강시중의 토론은 확실히 내용과 설득력이 부족한데다 그 행동거지가 온당치 못한것으로 하여 위증민의 마음에 불만스러웠으므로 이번에 또 누가 서뿔리 일어나 준비없는 빈약한 근거를 가지고 떠들어대지나 않을가 하여 조바심이 쳐졌다.

장군님께서는 통나무평상우에 두손을 놓으신채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화독우의 한점을 조용히 지키고계시였다. 그 모습은 강시중이 말하기 이전의 그이의 갖춤새였고 회의를 이어오는 여러날동안 자주 그런 몸가짐을 갖추고계셨으므로 강시중의 토론이 환기시킨 그이의 기분이나 감정같은것은 도무지 알아낼수 없었다. 그래서 위증민은 자못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강시중동지가 옳게 말했습니다.》

문득 종치훈이 머리칼을 짧게 깎아 희슥희슥 살이 들여다보이는 단단한 머리를 꼿꼿이 치켜들고 입을 열었다.

《조국해방구호나 민족해방의 강령은 〈민생단〉놈들이 고창하던 〈조선인에 의한 간도자치〉의 변종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간도땅에 앉아서 조선을 독립시키고 조선민족을 해방시킨다는게 과연 리치에 맞는 소립니까?

사실 그러한 주장은 중조 두 나라 혁명가들의 혈연적단결에 장애를 놉니다.》

장군님께서 고개를 번쩍 쳐드시였다. 그 순간 그이의 눈길에서 찌르는듯한 서느러운 광채가 쏟아져나왔다.

방안에는 숨막힐것 같은 정적이 깃들었다. 독한 담배연기가 천정밑으로 뽀얗게 솟아오른 이 너렁청한 방안에 사람하나 있는것 같지 않게 그렇듯 무거운 정적이 사람들의 가슴을 압박하고있었다.

《종치훈동무, 강시중동무!》

장군님께서는 높지 않은 목소리로 두사람의 이름을 부르시였다. 이름을 불리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얼굴을 힘있는 눈길로 한동안 응시하시였다.

《내 동무들에게 한가지 묻고싶은것이 있습니다. 레닌은 자기 생애의 많은 년대들을 외국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독일에도 있었고 영국에도 있었고 프랑스에도 있었고 핀란드나 스위스나 벨지끄와 같은 나라에 가서도 오래동안 망명생활을 하면서 혁명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의 최초의 전로씨야적 신문인 〈이스크라〉도 해외에서 발간되였고 맑스주의철학을 한걸음 발전시킨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이라든가 당창건의 사상적기초를 마련한 〈무엇을 할것인가?〉와 같은 로작들도 망명지에서 집필되여 로씨야에 배포되였습니다. 그래 외국에서의 레닌의 이 혁명활동은 짜리전제제도하에서의 로씨야인민의 해방을 위한것이 아니였습니까?》

방안의 모든 시선들은 장군님의 얼굴을 향하고 하나같이 굳어졌다. 장군님께서는 종치훈이와 강시중이를 향해 말씀하시였으나 그것은 이미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휘여잡고 무형의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강시중은 고개를 숙이고 종치훈은 고개를 들고있었으나 장군님의 말씀에 이외를 표할 아무런 용단도 갖추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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