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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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의는 닷새째 계속되고있었다. 이날
더구나 요영구에서 밤길 수십리를 달려 다홍왜로
한밤을 농가의 함실아궁앞에서 장작을 지피시며 밤을 밝히신
위증민은 이날따라
지금까지
그렇다고 오늘도
위증민은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조였다. 오늘회의에서만이라도 사람들이 분별을 가지고 리성적으로 처신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반드시 그래주어야 한다고 위증민은 다시다시 생각하였다.
회의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연길, 왕청, 훈춘, 화룡 등지에서 온 당 및 공청간부들이였다. 위증민은
위증민은 오늘회의의 첫 토론을 훈춘현 당일군인 고윤일이 해주었으면 하는 은근한 기대를 품었다. 고윤일은 강시중이보다는 분별있고 침착한
사람이였다. 게다가 그사람은 어제밤
《고윤일동무.》
위증민은 조용히 고윤일의 무릎을 흔들었다. 조는듯이 아래로 눈을 내리깔았던 고윤일이 무겁게 고개를 들고 위증민을 지켜보았다.
《첫 발언을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내가요?》
그는 놀란듯이 눈두덩을 꿈틀거렸다.
《첫 발언을 하십시오. 지금까지 고윤일동지는
《그랬던가요?… 그렇지만 오늘회의에서는
고윤일은 확신있게 한마디 하고나서 침착하게 기다릴양으로 아까처럼 눈을 내리깔았다.
위증민은 입을 다물었다. 고윤일의 말을 듣고나니 정말 오늘회의의 첫 발언을
강시중이 자리잡은 구석쪽에서 조급히 책장을 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위증민은 별로 그것에 개의치 않았다.
다시금 구석쪽에서 성급히 책장을 번지는 소리가 일어났다. 몇마디 주고받는 말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위증민의 눈길은
알지 못할 흥분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가슴은 까닭모를 불안을 안고 투둑투둑 뛰였다.
고윤일이도 뜻밖인듯 눈을 크게 뜨고 강시중을 지켜보았다.
그의 입에서는 나지막한 한숨소리가 새여나왔다. 바로 그 순간에 강시중의 빠르고 성급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동지들, 나는 여러날에 진행된 회의에서 한두번만 강조하지 않았지만 동만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추켜들고있는 민족해방, 조국해방의 슬로간이 공산국제의 로선에 저항하는 행동이라는것을 다시한번 언급하는바입니다.
국제당이 이미 1국1당원칙을 제시하였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 원칙은 매개 나라에서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하나의 중앙,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통일적으로 투쟁해나갈수 있게 하는 정당한 원칙입니다. 그런것만큼 중국땅에 살고있는 조선인 공산주의자들도 이 원칙에 철저히 립각하여 통일적인 중앙의 의사에 따라 모든 활동을 해나가야 할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만의 조선동지들은 조국해방, 민족해방을 부르짖으면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와는 배치되게 협소하고 근시안적인 민족주의경향으로 나가고있습니다. 옳지 않단말입니다.》
강시중은 길다란 주걱턱을 앞으로 불쑥 내밀고 거만한 눈초리로 장내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그의 토론만을 놓고본다면 조선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구별조차 할수 없을 지경이였다.
조범과 종치훈을 비롯한 몇사람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군거렸다. 위증민은 조용히 더운 숨을 내쉬고 사람들을 살폈다.
강시중의 토론은 확실히 내용과 설득력이 부족한데다 그 행동거지가 온당치 못한것으로 하여 위증민의 마음에 불만스러웠으므로 이번에 또 누가 서뿔리 일어나 준비없는 빈약한 근거를 가지고 떠들어대지나 않을가 하여 조바심이 쳐졌다.
《강시중동지가 옳게 말했습니다.》
문득 종치훈이 머리칼을 짧게 깎아 희슥희슥 살이 들여다보이는 단단한 머리를 꼿꼿이 치켜들고 입을 열었다.
《조국해방구호나 민족해방의 강령은 〈민생단〉놈들이 고창하던 〈조선인에 의한 간도자치〉의 변종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간도땅에 앉아서 조선을 독립시키고 조선민족을 해방시킨다는게 과연 리치에 맞는 소립니까?
사실 그러한 주장은 중조 두 나라 혁명가들의 혈연적단결에 장애를 놉니다.》
방안에는 숨막힐것 같은 정적이 깃들었다. 독한 담배연기가 천정밑으로 뽀얗게 솟아오른 이 너렁청한 방안에 사람하나 있는것 같지 않게 그렇듯 무거운 정적이 사람들의 가슴을 압박하고있었다.
《종치훈동무, 강시중동무!》
《내 동무들에게 한가지 묻고싶은것이 있습니다. 레닌은 자기 생애의 많은 년대들을 외국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독일에도 있었고 영국에도 있었고 프랑스에도 있었고 핀란드나 스위스나 벨지끄와 같은 나라에 가서도 오래동안 망명생활을 하면서 혁명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의 최초의 전로씨야적 신문인 〈이스크라〉도 해외에서 발간되였고 맑스주의철학을 한걸음 발전시킨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이라든가 당창건의 사상적기초를 마련한 〈무엇을 할것인가?〉와 같은 로작들도 망명지에서 집필되여 로씨야에 배포되였습니다. 그래 외국에서의 레닌의 이 혁명활동은 짜리전제제도하에서의 로씨야인민의 해방을 위한것이 아니였습니까?》
방안의 모든 시선들은
강시중은 고개를 숙이고 종치훈은 고개를 들고있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