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6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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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증민은 아까처럼 장군님의 팔을 다가꼈다.

김일성동지, 나는 진정으로 조선혁명가들의 재난을 가슴아파합니다. 그러나 나의 할바는 재난을 겪는 동지들에 대한 동정에 앞서 이 동만땅의 사태를 직시하는것입니다. 내가 조급히 손을 뻗쳐 도와드리지 못하는것을 리해해주시오.》

장군님께서는 문득 터져오르는 기침때문에 손으로 가슴언저리를 누르시였다. 그바람에 위증민은 장군님의 팔을 놓아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혹한에 허약해지신 장군님의 몸은 차거운 밤공기에 시달리자 즉시에 반응을 일으켰다. 금시에 호흡이 빨라지고 가슴이 뻐근해지시였다.

《그만 숙소로 들어가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위증민은 사뭇 불안한 마음으로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괜찮습니다. 그 험한 사지판도 뚫고나왔을라니 유격구땅에서 쓰러지기야 하겠습니까. 하던 말을 계속하십시오.》

《그렇다면 김일성동지, 좀더 솔직한 말을 해도 괜찮겠지요. 회의에서도 이야기되는것처럼 지금 많은 간부들속에서는 조선혁명가들이 중국땅에서 살면서 조선혁명에 대한 구호를 웨치고있다고 합니다. 여기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계십니까?》

지금까지 말없이 장군님의 뒤를 따르던 고윤일이 불쑥 한마디 끼여들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든 민족해방의 구호가 〈민생단〉이 떠드는 〈조선인에 의한 간도자치〉와 무엇이 다른가고 하면서 조선혁명가들이 민족주의길로 나가고있다고 규탄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나는 며칠째 계속된 회의에서 여러분들의 견해도 별반 다를바 없으리라는것을 느꼈기때문에 허심하게 묻는겁니다. 고윤일동무.》

김일성동지, 저는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터져오르는 기침을 누르려고 또다시 한손으로 가슴언저리를 짚으시였다. 차츰 빨라지시는 숨결소리가 위증민의 귀에까지 확연히 들려왔다. 위증민은 그이를 만류하여 숙소에 모시려고 작정하였다. 그러나 한발먼저 장군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일단 말씀을 시작하시자 터져오르던 기침도 가쁜 숨결소리도 씻은듯 사라졌다. 장군님께서는 사뭇 열기띤 목소리로 이어나가시였다.

《위증민동지,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언제한번 조선혁명과 중국혁명을 떼여놓고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조중인민들은 공동의 원쑤인 일본제국주의와 싸우고있습니다. 우리는 조선혁명을 잘하는것이 중국혁명을 도와주는 길이며 중국혁명을 성원하는것이 조선혁명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북만땅에는 조선사람이 얼마 안됩니다. 중국의 혁명가인 주보중동지는 북만혁명을 도와달라고 몇번이나 나에게 사람을 보내였습니다. 동만지구의 많은 간부들도 북만의 중국동지들을 도와줄데 대한 요청을 나에게 해왔습니다. 나는 조선혁명가입니다. 일제에게 짓밟힌 조국을 해방해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는 조선혁명가란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조선혁명가들을 데리고 두만강연안이 아니라 로야령을 넘어 북만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중국혁명을 도와주는것이 조선혁명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북만원정을 떠나간것입니다. 나는 조선의 귀중한 혁명동지들을 북만땅에 묻고왔습니다. 일부 동지들은 땅에 묻지도 못하고 나무가지로 가리워준채 싸움의 길을 이어나갔습니다. 열네살 어린 나팔수도 목릉원시림속에 묻었으며 부상당한 한 녀대원은 남호두등판에 홀로 떨어졌습니다.

나는 북만땅에 묻고온 동지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들과 안해들을 이 유격구땅에서 만났습니다. 북만에 함께 갔던 한 녀대원도 이 유격구땅에서 만났는데 전사한 그의 애인의 소식을 들려주자니 가슴이 아파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몇날 몇밤을 지나서야 그 쓰리고 아픈 귀중한 사람들의 비보를 전할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앉아도 서도 그 동무들의 생각뿐입니다. 밥술을 들다가도 잠자리에 들다가도 희생된 동지들의 생각에 눈물이 쏟아져 밥상을 물리고 잠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이 과연 조선혁명만을 부르짖는 민족주의자들의 행동이란말입니까? 조선혁명가들은 북만의 혁명가들을 도와주다가 북만땅에 묻혔습니다. 그들이 제 나라 제 땅에 묻혔어도 이 슬픔이 이다지 아프게 가슴을 허비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조선의 혁명가들이 어찌하여 〈민생단〉이 떠드는 〈조선인에 의한 간도자치〉와 동일시하는 일제의 앞잡이로까지 규탄되여야 한단말입니까? 우리는 한번도 조선혁명과 중국혁명을 떼여놓고 생각해본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숨이 가빠 말씀을 멈추시였다. 위증민은 한동안 아무 응대가 없었다. 그러더니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길가에서 불망치를 든 사람이 이쪽으로 지척지척 걸어오고있었다.

장군님, 장군님이 아니십니까?》

다홍왜에 와서 장군님을 보살펴드리고있는 김진세로인이 그이를 기다리다 못해 찾아떠났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을 향해 바삐 다가가시였다.

아버님, 이렇게 추운 날씨에 왜 찾아떠나셨습니까?》

장군님, 제발 몸조심하십시오. 이 유격구의 숱한 인총이 장군님의 손에 명줄을 맡기고있습니다. 모자도 없이 어쩌자고 몸을 이리도 허술히 거둔단말입니까. 늙은이의 땀이 배인 털모자라도 쓰십시오.》

김진세로인은 억지로 장군님께 털모자를 씌워드리고 뒤따라온 한사람을 가리켜드렸다.

장군님, 요영구에서 송혜정의 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장군님께 곡진히 아뢰일 이야기가 있다면서 내인의 몸으로 밤길을 다그쳐왔습니다.》

《아니, 송혜정동무 어머님이 찾아오시다니요?》

장군님께서는 저윽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고 김진세로인이 내여드리는 불망치를 받아드시였다.

송혜정의 어머니는 두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장군님앞에 주저앉았다.

《장군님!》

녀인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신히 이 한마디를 남기고 어깨를 떨었다.

어머님, 무슨 일로 이 밤길을 오셨습니까? 부락에 무슨 별고라도 생긴게 아닙니까?》

장군님께서는 사뭇 불안에 잠긴 음성으로 다그쳐물으시였다.

녀인은 허리를 펴고 지척지척 일어섰다. 장군님을 지켜보는 녀인의 눈망울은 타는 불빛을 받아 이글이글 타올랐다.

장군님, 저는 우리 집 젊은이들때문에 이렇게 정신없는 걸음을 다그쳐왔습니다. 그래서 장군님께…

《무슨 말씀입니까? 집의 젊은이들이 어찌됐단말입니까? 혹시 송혜정동무에게서 무슨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직도 감감무소식입니다. 가야하기슭에 숯구이막이 몇개나 되겠습니까? 찾아떠난 사람들로부터는 아직 혜정이 있는곳을 찾지 못했다는 말뿐입니다.》

《그렇다면 더 찾아보아야지요. 어머님, 걱정을 놓으십시오. 최춘국동무를 다시 띄워서라도 더 찾아보게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장군님. 그게 아닙니다!》

송혜정의 어머니는 정신없이 두손으로 앞을 막으며 황망히 뒤말을 이었다.

《부락에서는 벌써 심상치 않는 말들이 떠돌고있습니다. 지금까지 혜정이가 나타나지 않는걸 보니 분명 놈들에게 귀순한게 틀림없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런 험한 소리를 누가 퍼뜨리고있습니까. 예? 어머님!》

장군님의 목소리는 불현듯 격해지시고 불망치를 잡으신 손은 우드드 떨리시였다.

《숙반에서… 숙반사람들이 그런가봅니다. 혜정이가 나타나지 않는걸 보니 틀림없이 놈들쪽으로 들어간게 분명하다고… 게다가 리유천이 그 사람까지 의심스럽다는 말을 내놓고 합니다. 그 사람이 분명 보고왔다는 혜정이가 어째 나타나지 않는가? 그러니 리유천은 믿을수 없는 사람이고 따라서 천교령전투의 승산도 믿기 어려우며 다홍왜에서 이 사람들을 두둔해나선 장군님께 무슨 화단이 미칠지 알수 없다고요. 장군님, 듣고보면 다 가슴이 떨리는 소리뿐입니다. 제발 우리 애들때문에 마음을 쓰시지 말아주십시오. 우리 애들 문제를 가지고는 정말이지 심뇌하시지 마십시오.》

녀인은 저고리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슬프게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저 한모양으로 고개를 숙이시고 불빛에 훤히 드러난 길우에 가까스로 버티고 서있는 녀인의 후들거리는 자태를 아프게 바라보시였다.

어머님, 진정을 말씀해보십시오. 귀한 자식을 키운 어머니로서 송혜정동무나 리유천동무에 대해 한번 의심이라도 품어본적이 있습니까?》

녀인은 간간히 흐느끼던 소리를 멈추고 손바닥으로 눈가장자리를 닦았다.

장군님, 어미의 마음은 그저 자식 귀한 생각뿐입니다. 제가 어찌 자식들을 두고 꿈엔들 험한 생각을 품을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하도 흉흉한 세상이고보니 그저 장군님 신상이 걱정됩니다.

우리는 자식을 잃고도 살고 부모를 여의고도 살지만 장군님 없이는 하루도 못삽니다.》

녀인은 또다시 저고리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녀인의 입에서 좀처럼 새여나오지 않던 울음소리는 아무리 억센 힘으로도 누를길이 없어 처음 한순간은 간간이 슴새여나오다가 점차로 목메이는 울음소리로 번져지기 시작하였다.

위증민은 장군님의 옆에서 뿌득뿌득 눈을 밟으며 간단없이 오락가락하였다. 고윤일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어뜨린채 그린듯이 서있었다. 강시중은 어디 갔는지 찾아볼수 없었다.

김진세로인은 장군님의 손에서 무겁게 수그러지고있는 불망치를 받아들었다.

불망치를 넘겨드리신 장군님께서는 모자를 벗어쥐시고 어깨아래로 맥없이 두손을 드리우시였다.

조용히 소리없는 눈물이 눈굽을 뜨겁게 적시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입술을 태울듯 뜨거운 한숨을 내쉬시며 하늘을 바라보시였다. 강마른 추위에 얼어붙은 아득한 창공우에서 헤일수 없이 많은 애기별들이 오돌오돌 떨고있었다. 등뒤에서는 아직도 숙반감옥의 낮은 천정밑으로 구원을 바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둠을 누비며 흘러오고있었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겨레, 한나라의 혁명이 송두리채 당하고있는 수난이 해일처럼 그이의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민족을 지켜 겨레를 지켜 혁명을 지켜 무서운 해일을 막아설 방파제는 장군님밖에 없으시였다.

장군님의 가슴은 어떠한 가혹한 표현으로도 그 현상이 세세한 의미를 감히 그려낼수 없는 처절한 아픔속에 가락가락 찢어지는것 같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발을 제대로 내딛지 못하는 녀인을 부축하시고 천천히 힘들게 걸음을 떼시며 숙소로 돌아오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박달나무처럼 꽁꽁 언 녀인을 방안으로 인도하고 함실아궁에 장작을 지피시며 하염없는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위증민과 고윤일은 장군님을 따라 숙소에까지 내려왔으나 더이상 그이께 말을 비치지 못하고 오래도록 마당가를 서성거리다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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