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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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람들이 둘러섰다. 보니 모두 낯익고 가까운 사람들이다. 사석이, 정식이들을 비롯한 선봉대원들과 제천반일의병대원들이였다. 서상렬이 살아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만나게 되리라던것이 바로 이때를 내다보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자네들은 어떻게 여기 나타나게 되였나. 저 고을은 어떻게 차지하게 되였구?》

린석이 기쁨중에도 풀리지 않는 의혹을 터놓았다. 짐작은 하면서도 구체적인 내막은 알수 없었던것이다.

《대장님, 다른것은 없습니다. 저는 그때 부대를 떠나 곧장 서대장님한테 찾아갔습니다. 몸도 마음도 어디에든 의지할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서대장님은 쫓은 사람도 떠나온 사람도 다 잘못되였다고 하면서 어려운 때일수록 마음을 더욱 합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그때 선봉대에서와 사석의 부대까지 뒤따라 도착하자 서대장님은 이러다가는 제천의병대가 망할수 있다고 하면서 전부대를 이끌고 여기로 왔습니다.》

백산이 그사이 있은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역시 가슴이 뜨거운 이야기였다.

《그런데 제천은 언제 차지했나. 그간 종적도 보이지 않더니?》

《우린 이미전에 고을의 반대켠에 와서 대기하고있었습니다. 하다가 놈들이 전장으로 나갈 때 일시에 돌입하였습니다. 결국 제천고을도 대장님의 지략으로 찾은셈이지요.》

린석은 다시한번 백산을 그러안았다. 이렇게 만난것이 모두 신기한 꿈이라도 꾸는것 같았다.

그때였다. 언덕아래쪽에서 몇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나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대장님, 잡았습니다. 그놈… 큰놈을 잡았습니다.》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앞선 사람은 오째였다. 그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서는 방금 전령이나 받고 나갔던 사람처럼 린석을 향해 한번 꾸벅 인사를 해보이고는 다시 큰소리로 떠들었다.

《대장님, 잡았습니다. 이다찌놈입니다. 저기…》

《무엇이라구, 이다찌놈을… 그놈을 사로잡았단 말이냐?》

《세상 겁쟁이인걸요. 뭐가 무서운지 전장에는 나가지도 않고 숲속에 숨어서 형세만 관망하고있던걸요, 마차까지 대기시켜놓구서요. 그런걸 우리가 뒤에서부터 일시에 들이쳤지요.…》

이번에도 린석은 오째를 힘껏 그러안았다.

《그런즉 네가 또 뒤통수치기를 했구나. 잘했다. 그런데 목에 걸었던 부작은 어쨌니?》

《그 나무패쪽이요? 에이, 시끄러워서 집어던졌습니다. 그것때문에 불안하구 불편하구. 그때문에 죽지 않는다는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와 웃었다.

마침내 이다찌놈을 끌어왔다. 어깨와 가슴에 금빛 번쩍이는 띠를 두른 몸인데 의병들이 그우에다 소똥이 묻은 바줄로 꽁꽁 묶었었다.

그놈을 보는 순간 린석의 눈이 굳어졌다. 바로 그놈이였다. 총리의 방에까지 뛰여들어 권총을 휘두르던 오만하고 후안무치한 저 왜놈의 종자, 저 뿔처럼 불쑥 나온 광대뼈, 멍석처럼 툴툴 말린 입술, 바람에 날릴듯 꼬부라진 코수염… 오래동안 품고 벼려오던 분노가 불시에 자라올랐다.

《이다찌 이놈, 네가 나를 잡겠다고 쫓아다녔지. 나 역시 네놈을 기다렸다. 오늘 이렇게 만났으니 결산을 하자.》

린석이 이렇게 말하며 누구에게라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이다찌의 권총을 자기 손에 쥐여달라는것이였다.

마치 그러기를 기다리고나 있었던듯 오째가 허리주머니에서 로획한 이다찌의 권총을 서상렬에게 주었다. 상렬은 그것을 받아 장탄여부와 안전장치를 확인한 다음 방아쇠만 당기면 나갈수 있게 격발기를 당겨서 린석에게 넘겨주었다.

그것은 린석이 생전처음 손에 쥐여보는것이였다. 그러나 일단 두손에 받쳐들자 오래동안 몸에 배인듯 줌안에 꼭 들고 마음도 편안했다. 총구를 이다찌에게 돌렸을 때조차 단방에 그를 명중하리라는 자신심이 생겼다.

《이다찌 이놈, 여길 똑똑히 보라. 네가 이 총으로 우리 김복한이를 쏘았고 숱한 조선사람을 죽게 했지. 네놈을 살려두면 또 우리 백성들을 죽이겠기에 용서할수 없다. 우리 제천반일의병대의 명의로 아니, 전체 백의동포의 명의로 네놈을 사형에 처한다.》

말을 마치며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이다찌가 그 엄한 호령에 놀라 짐승같이 소리를 지르다가 순간에 머리를 땅에 처박고 너부러졌다. 그때에도 린석은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총소리가 그치고 사위가 조용해지자 사람들이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김백산이, 서상렬이, 안승우, 사석, 리필희, 오째, 홍정식이…

《마침내 복수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누군가 말했다. 린석은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한껏 숨을 들이쉬였다. 지금까지 가슴을 조이며 순간도 안정을 몰랐던 가슴이 단꺼번에 거뜬해지며 하늘로라도 날아오를것 같았다. 그러자 봄날의 훈훈한 열기와 감미로운 향기에 몸까지 달아올랐다.

아니, 그것은 자연의 봄에 의한 향취만이 아니였다. 이들, 자기를 둘러싼 의병장들과 의병들모두가 이 봄과 함께 새로 태여났고 성장한 사람들처럼 신비롭게 안겨오는것이였다.

지금까지는 자기의 호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였다고만 여겨지던 그들이 이제부터는 자기가 의지하고 뿌리를 내리며 자양분을 섭취할 토양이였고 스승들이였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던 가슴이 한껏 열리며 새로운 기쁨이 그득하니 차올랐다.

린석이 이처럼 한창 희열에 떠있을 때 고을의 아래쪽길로 한무리의 의병들이 들어서는것이 보였다. 저게 누구들인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아래에서 사람이 뛰여올라와 보고했다. 리린영과 리강년의 부대들이 도착했다는것이였다.

《무엇이라구? 리린영과 리강년이들이…》

부지중 그 이름들을 외우고 아래로 달려내려갔다. 잠시라도 서서 기다릴수 없는 사람들이였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린석이 다가가자 그들이 정렬했던 의병들과 함께 마주달려왔다.

뜨거운 상봉이 벌어졌다. 모두가 제천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다급히 달려왔다는것이였다.

《우리야 제천반일의병대가 아닙니까. 제천을 내놓은 제천반일의병대가 무슨 명목으로 싸움을 하겠습니까.》

《대장님, 우린 저 뾰족봉에서 다진 맹세를 죽어도 잊지 않을것입니다. 〈왜놈과 끝까지 싸운다〉, 〈절대로 배반하지 않는다〉…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울것입니다.》

그들이 입을 모아 힘있게 말하였다.

린석도 하고싶은 말이 있었다. 그들의 결심이 또 한번 린석에게 힘이 되고 고무로 된것이다.

지금 동헌앞에 모인 수천의 의병들, 그것은 영원히 흩어지지 말아야 할 하나의 대오이며 하나의 마음이였다. 린석은 동헌앞의 우뚝한 층계우에 올라섰다.

《의군여러분, 여러 형제자매들, 용사들!

오늘 이렇게 다시 한자리에 모이고보니 기쁨과 감회를 이루 다 말할수 없다. 그사이 우리가 몇번씩 헤여지고 모이기도 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함께 있었다. 왜놈을 쳐야 한다는 그 하나의 마음이였다.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는 순간에 마음이 통하는것도 바로 그때문이다.

지난 을미년 그해 첫 봉화를 일으킨 때로부터 우리는 많은 일을 하였다. 가슴아픈 실패와 시련도 겪었다. 오해와 곡절도 있었다. 그러나 오직 나라를 위하고 왜적과 싸운다는 공통된 마음이 만사를 젖혀놓고 여기로 모이게 하였다.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이 길에서 생명도 운명도 같이할것이다. 그 길에서 우리모두가 죽을수도 있고 그보다 더한 참상도 당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존귀한 나라라는것이 있기에 모든것을 박차고 싸워야 하며 여기에 모든것을 바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먼저 간 선렬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그들을 길이 추모하게 된다. 그들은 한사람한사람 값비싼 죽음으로 우리들에게 귀중한 경험을 남겨주었고 교훈도 찾게 해주었다.

우리는 앞으로 여러분들과 같은 평범한 백성들과 손을 굳게 잡고 보다 더 광범한 인사들을 망라하는 싸움을 적극 벌려나갈것이다. 그리하여 철천의 원쑤 왜놈들을 이 땅에서 내쫓고 내 나라의 기강을 힘있게 떨치자!》

그가 손을 높이 쳐들자 수천명 의병들이 기발을 흔들고 기치창검을 번뜩이며 힘있게 호응했다.

《떨치자! 떨치자! 떨치자! ―》

그 힘찬 웨침소리는 오래동안 제천고을을 흔들고 산야를 울리며 멀리멀리 메아리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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