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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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사이 적들은 바득바득 다가왔다. 관군의 뒤를 보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왜병들이 바싹 따르고있었다. 마침내 적들과의 사이가 몇십보로 줄어들었다. 그때까지 온몸에 진땀을 빼며 지켜보던 몇몇 의병들이 더는 참지 못하고 몸을 벌떡벌떡 일으켰다.

나중엔 전구간의 의병들이 모두 일떠섰다. 순간에 량켠이 만단의 싸움준비를 갖추고 접전에 들어갈 초긴장상태가 조성되였다.

바로 그때 총검들이 마주서 숲을 이룬 속으로 누군가 한사람이 서슴없이 뛰여들었다. 그가 누군지, 왜 그러는지 처음에는 아무도 영문을 몰랐다. 그런데 그가 대치한 량켠가운데 두두룩 솟은 바위우에 우뚝 올라서서 흰 도포깃을 바람에 날리며 팔을 펴자 량쪽군사들이 거대한 힘에 떠밀리우듯 우르르 물러났다.

류린석이였다. 그가 당장 싸움이 터질듯 긴장한 일촉즉발의 시각에 한몸을 내대고 량쪽군사들의 한가운데로 뛰여든것이였다.

《관군용사들, 의병여러분, 형제들!

제가 제천반일의병대장 류린석입니다. 비록 이름도 없고 사람은 용렬하나 오늘의 이 위급함을 보고있을수만 없어 이렇듯 나섰습니다.》

량쪽군사들이 숨을 죽이고 그를 지켜보았다. 흰 도포에 흰 창옷을 입고 흰 갖신에 흰 수염을 날리며 바위우에 우뚝 선 모습이 갑자기 신령이라도 나타난듯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보다싶이 저는 늙고 체소한데다가 병약한 몸입니다. 그럼에도 이 한몸을 일으켜 의병에 나선것은 오직 왜놈들을 내쫓고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내 나라를 구원하자고 하는 일념에서입니다.

저 왜라고 하는것은 바다구석에 처박힌 섬나라로서 수백년전부터 우리 나라를 상국으로 섬기며 조공까지 해오던 보잘것 없는 족속들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로략질과 싸움으로 남보다 좀 개명한것을 턱대고 오만방자해져서 우리의 왕궁을 습격하고 국모까지 살해한 살인강도이며 야수입니다.

이런 오랑캐족속을 그냥 놔두어야 하겠는가. 옛사람들도 용서 안한 저 금수와 같은 놈들을 우리 대에 와서 살려두어 이 땅을 오랑캐의 땅으로 만들고 우리모두가 오랑캐족으로 화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한겨레이고 한피줄일진대 무엇때문에 섬나라오랑캐들이 쥐여주는 총을 잡고 제사람들을 죽이겠는가. 그렇게 하여 동족상잔을 몰아오면 손해를 보는것은 우리뿐이며 덕을 볼것은 왜놈들뿐입니다.

우리의 적, 공동의 적은 왜놈입니다. 그가 누구이건 조선사람이라면 모두 왜놈을 반대하는데로 총부리를 돌려야 합니다.》

갑자기 총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린석이 올라선 바위에 총탄이 떨어지며 하얀 돌가루가 퍼져나갔다. 뒤이은 총탄들이 주변의 나무숲과 바위틈들을 두들겨댔다. 모두가 무슨 영문인가 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격한 웨침소리가 들렸다.

《우리 사람이 죽었다. 왜놈들이 조선사람을 쐈다.》

그제서야 모두 정신을 차리고 돌아섰다. 바라보니 왜놈기관총수가 린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있었다. 그통에 그를 막고있던 관군이 무리로 쓰러진것이다.

《왜놈이 우리 사람을 죽였다. 저놈을 복수하자!》

《우리의 적은 왜놈들이다. 총부리를 왜놈에게로 돌리자!》

군중속에서 이런 소리가 터지며 일시에 돌아섰다. 거기에 의병들까지 합세하여 와와 소리치며 돌진해갔다. 저들의 무기가 위력한것만 믿고 뒤에서 방심하고있던 놈들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공격의 파도에 와뜰 놀라 꽁무니를 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불과 몇걸음을 사이에 두고 뒤따르던 놈들이라 미처 몸을 뺄수가 없었다. 무자비하게 내려치는 창과 칼에 얻어맞고 총탄에 맞구멍이 났다. 나머지 놈들은 덮어놓고 뛰여야 산다는 생각으로 저들이 떠났던 산고지로 도망쳐올라갔다.

그러나 거기서도 또 다른 사태가 벌어지고있었다. 제천고을쪽에서부터 한무리의 의병들이 놈들을 향해 달려올라오고있었던것이다.

순간에 놈들은 수많은 의병들이 둘러싼 포위속에 들었다. 그때로부터 싸움은 이미 교전이 아니라 일방적인 공격전으로 통쾌하게 진행되였다. 의병이고 관군이고 할것없이 모두 왜놈을 향하여 창칼을 휘둘렀고 탄환을 날렸다.

바로 그때에 린석도 고지를 향하여 달리고있었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그 위급했던 순간에 량쪽군사들가운데 뛰여들었던지 알수 없었다. 다만 평시에 절대로 우리 사람들끼리 싸워서는 안된다는 뼈에 절도록 사무친 교훈이 그를 충동하였으리라는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바로 그것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던가.

이런 생각을 하며 고지에 올라섰을 때 싸움은 이미 끝나가고있었다. 먼저 도착한 상렬이 그를 맞이하였다.

《대장님, 전과가 실로 대단합니다. 유생력량의 대부분을 소멸하고 많은 무기와 탄약을 로획하였습니다. 제천읍도 도로 찾았습니다.》

《제천읍을? 언제, 누가… 찾았단 말인가?》

《다 대장님의 공적입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무슨 소릴? 그야 다 서대장이 싸움지휘를 잘한 덕분이지. 자네가 실로 큰 공을 세웠네.》 하는데 상렬은 정색해서 머리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대장님의 공적입니다. 왜군을 금곡산 밑으로 끌어낸것도, 일신의 위험도 무릅쓰고 량군의 사이에 뛰여들어 관군이 총부리를 돌리게 한것도 다 대장님이 아닙니까. 이것은 실로 대장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할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아니, 그게 무슨…》 하는데 둘러섰던 의병들이 일시에 화답을 했다.

《옳습니다, 대장님만이 할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긴것은 전적으로 대장님덕분입니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과연 그것이 나의 공적이였던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수 있었을가 하는 이미 잊혀진지 까마득히 오래된 아이적때의 즐거움과 긍지감이 가득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도포소매로 눈굽을 찍고 바라보니 앞에 제천고을이 펼쳐졌다. 불탄 흔적은 있으나 여전히 제 모습으로 서있는 고을이다.

《고을은 우리가 차지했다구? 언제, 누가…》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기다리고있습니다.》

서상렬이 대답하며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둘러섰던 수백명 의병대가 대쪽처럼 갈라지며 앞이 환하게 열리였다.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앞에 자기도 모를 또 한 대오의 의병들이 정렬해있었던것이다.

(저게 누구들인가. 어디서 온 의병들인가.)

반갑기도 하고 의문스럽기도 한 가운데 천천히 다가갔다. 하다가 갑자기 놀라 그 자리에 멈춰섰다. 앞에 섰던 사람도 그를 향해 마주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눈에 익고 몸에 배여있었기때문이였다. 선봉장 김백산이였다. 백산이…

《창의대장님, 그새 귀체건강…》 하면서 무릎을 꿇는데 린석은 그럴 틈을 주지 않고 달려가 무작정 그를 그러안았다.

《백산이 이 사람, 자네가 살아돌아왔구만. 죽었던 사람이 환생했다한들 이보다 더 반갑겠나?》

말을 하는데 목이 꽉 막히여 더 할수가 없었다. 대신 내심으로는 너무도 많은 말마디를 나누고있었다. 그를 붙잡아두지 못했던 막급한 후회와 떠나보내고난 뒤의 혼란, 잠시도 잊을수 없었던 그에 대한 그리움…

백산은 그사이 좀더 커지고 듬직한 사람이 된듯 했다. 여전히 군말이 없고 마디마디가 맵짰으며 알속이 배겨있었다.

《대장님이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찾아왔습니다.》

《고맙네, 고마워. 그래서 김백산이구 선봉장이지.》

련속 등을 두드리며 뜨거운 격정을 표시했다.

안승우가 다가왔다. 그러자 백산은 그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중군장님, 용서하십시오, 철없고 버릇없는 저를… 제가 아버님의 아픈 심정을 너무도 몰라주었습니다.》

《내가 무슨 아버지이겠나, 구실도 못하는것이… 자네야말로 시대의 남아이고 나라의 영웅이야. 이제라도 미영이 있었더면 내 기어코 일을 성사시키련만…》

《아버지, 뜻이 같고 마음만 변치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 살게 될것입니다. 저부터 이렇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고마우이, 내 이제 미영을 다시 보는듯 한 기분이네.》 하는데 과연 승우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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