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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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고보면 그 딸년이 오늘을 내다보기라도 한것 같습니다. 고것이 기어코 선봉장을 끄당겨 제사람이 되게 하자고 했던것인데… 그래서 이 아비에게도 마지막원망을 남기게 된것이였지요.》
《중군장, 때를 놓친 다음에는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네. 이제라도 정신을 바싹 차리고 살아야 돼. 어떻게든 원쑤갚을 생각을 해야지. 그게 미영의 마지막부탁이야.》
이렇게 소리를 쳤지만 방도가 없다. 또다시 놈들의 추격이 시작된것이다.
그들은 높은 산등성이에 올랐다. 다음은 넓은 개활지대이다. 피할데가 없다.
모두 결사의 각오를 하고 싸움준비에 달라붙었다. 얼마 남지 않은 화약과 화살들을 장비하며 놈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총탄이 날아왔다. 귀청을 째며 나무가지를 후려갈기고 바위들을 앙칼지게 물어뜯었다. 골짜기를 들부셨다. 그래도 대답이 없는 의병들을 향하여 놈들이 기여들었다. 숲속에서 벌레의 무리처럼 우글거리며 한치한치 다가들었다.
땅- 마침내 린석이 첫 화승총알을 날렸다. 몇놈이 쓰러졌다. 또 몇방의 총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연약하고 외로운 소리였다. 놈들은 여전히 기여든다. 아득바득 다가든다.
모두 손에 창칼을 쥐였다. 최후의 결사전이다. 그렇게 오래동안 벼르며 기다려온 마지막시각이 다가온것이다.
바로 그때 저 산릉선 어디선가 난데없는 총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와와 만세를 웨치며 달려오는 함성도 들렸다.
그러자 놈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빼들었던 총창도 거두고 저마다 돌아서 아래로 내빼기에 바빴다. 그뒤를 의병들이 따랐다. 창칼을 비껴들고 달려가며 닥치는대로 후려갈겼다. 그리하여 넓은 골짜기에 한놈의 적들도 남지 않았을 때 그들은 마주달려온 사람들을 보았다.
의병들이였다. 자기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무기를 든 의병부대였다. 그중 한사람이 린석의 앞으로 달려와 인사를 했다.
《창의대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령남의병장 서상렬 인사를 드립니다.》
린석은 깜짝 놀랐다. 서상렬이라니, 이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여기에 나타났단 말인가.
《맞구만, 분명히 서대장이야. 자네가 분명…》
꽉 붙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너무도 꿈만 같고 신기했다. 어쩌면 지금같이 위급한 때에 마치 알고나 그랬던것처럼 불시에 나타날수 있단 말인가.
《대장님을 찾아 제천으로 가던 길입니다. 그런데 도중에 총소리가 나기에 달려왔는데 이렇게 때맞춤이였군요.…》
인사가 끝나자 상렬이 대답했다. 그것이 린석의 의혹을 더 자아냈다.
《제천에는 어떻게? 자네야 서울공격을 목표로 하고있지 않았나.…》
《그럴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공격은…》
상렬이 설명했다. 그것은 이미 기정사실로 되여있었다. 그런데 그때 선유사란 사람이 내려와 의병투쟁을 그만둘데 대하여 설유를 하였다. 거기에 대장 박준영이 공감함으로써 내부분렬이 조성되였다. 참모 서상렬이 완강히 반대하였던것이다. 그를 이길수 없었던 박준영은 한밤중에 성문을 열어놓아 관군이 무난히 입성하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하여 오래동안 준비해오던 서울공격기도는 파탄되고 상렬은 싸움을 주장하는 의병들과 함께 성을 빠져나왔다. 그때 마침 제천반일의병대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여 그리로 가던 길이라는것이였다.
《결국 서울공격이라는 거사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 내부의 알륵으로 파탄되고말았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또 한번 커다란 교훈으로 되였습니다. 우리가 왜놈과 싸우자면 무엇보다 마음부터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것입니다.》
《잘 알았네. 나도 지금 우리가 겪고있는 쓰라린 실패와 가슴아픈 희생을 놓고 생각이 많았네.…》
린석이 이야기하였다. 백산을 떠나보내놓고난 이후의 괴로움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였다.
말을 듣고나자 상렬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대장님, 복수를 합시다. 이제 당장 그 싸움을 조직합시다. 제천을 탈환하고 이다찌도 잡읍시다.》
그가 확신에 넘쳐 말하였다. 아닌게아니라 당장 일을 칠듯 한 기상이였다. 그것이 서상렬에 대한 믿음과 고마움으로 차넘치게 했다. 그의 크고 꽛꽛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피줄인양 몸에 흘러들며 자기이상 높이 우러러보이기도 했다.
《고맙네, 진정… 이제부터는 자네가 부대의 일을 맡아주게. 당장 싸움도 그렇고… 나는 더이상 부대를 이끌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대장님은 무슨 말씀을 하는것입니까. 지금은 모든 힘을 다하여 왜놈과 싸울 때입니다.》
상렬이 놀라서 반문하였다. 그러나 린석은 이미 빠진 좌절감에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나는 대장감이 못되는 사람이야. 아까운 사람들을 잃고 제천까지 빼앗기고… 김백산이만 곁에 있었어도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걸세. 한것을 떠밀듯 부대를 떠나라고 했거던. 거기에 다른 사람들까지 따라설줄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나.…》
《대장님, 뜻만 변하지 않는다면 산사람은 언제든지 다시 만납니다. 그런 걱정은 마십시오.》
《그가 떠날적에 나를 얼마나 원망했겠나. 저는 잘못한것도 없이 오직 부대를 온건히 보존하자고, 자기때문에 내부싸움이 일지 않게 하겠다고 조용히 떠나갔거던. 한것을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따라갔지.… 확실히 나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대장님은 아직도 그 말씀입니까. 그것이 복수를 다지는 이 시각에 채택하신 결심입니까.
자격이 없다구요? 하다면 선생님이 전국에 거듭하여 날린 격문과 호소, 시문들은 어떻게 리해해야 할가요. 그리하여 전국이 떠들썩하게 들고일어난 의병들에 대해서는 관계가 없다는것입니까. 그리고 제천에 이어 충주와 가흥까지 타고앉았던 공적은 누구에 의한것이였습니까?》
《하지만 이제 와선 그 모든것들을 다 내놓지 않았나. 어쩔수 없이… 그게 바로 나란 사람이야.》
그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지금까지 마음속으로만 후회되던 그 모든것들이 상렬을 만나자부터 터져나왔다.
그러나 실상 그때 린석이 후회할것은 그것뿐이 아니였다. 사실 당시의 린석은 많은것을 모르고있었다. 의병투쟁에 대한 자기식의 뚜렷한 일가견이 없었던 사실이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그가 일단 싸움에 나서자고 전국에 격문을 보내고 호소를 했으면 응당 전국적인 투쟁을 조직지휘했어야 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도처에서 일어난 의병들을 지켜만 볼뿐 서로 련계를 맺고 공동의 투쟁목표와 전략전술을 제시하지 못하였으며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가 이렇게 싸우고있으니 너희들도 같이 일어나 싸우라는 식의 단순하고 추상적인 호소에만 매달렸을뿐이다. 이 커다란 실책의 뒤에는 임금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와 굴종, 온 나라의 투쟁을 지휘하기 위한 정신적지주의 결여, 군사지휘능력의 부족, 낡은 봉건적신분제도에 의한 구태의연한 예속, 일제와 친일주구들의 무자비한 탄압 등 허다한 조건들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린석은 그것을 알지 못했고 알수도 없었다.
서상렬도 알지 못했다. 그가 안것은 린석이보다 앞선 군사지식과 이미 실패한 경험에서 찾은 교훈뿐이다. 하기에 그는 말했다.
《대장님, 사람은 먼길을 에돈 다음에야 비로소 바른 길을 찾는다고 했지요. 이것은 실패가 없이 성공하기 어렵다는것을 말해주는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어려운 고비를 넘겼습니다. 이제부터는 이길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떠나간 사람들의 원한이야 어떻게 하겠나. 많은 사람들이 땅속에 묻히기도 하고 나를 버리고 떠나기도 하였거던.》
《세상 떠난 사람들은 어쩔수 없지만 산 사람들은 꼭 만나게 됩니다. 두고보십시오. 이제 그들이 다시 찾아와 대장님을 떠받들 때가 꼭 있을것입니다. 그때가 언제냐 하면 우리가 싸움에서 이기는 때입니다.》
상렬이 마치 그때를 눈에 보기나 하는듯 신심에 넘쳐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