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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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은 오해했소.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무작정 량반의 켠을 들어 선봉장을 나가라고 했고 그렇게 되면 뭔가 무사하리라 생각한것이 어리석었소. 그리구두 대장이라구?
이제는 우리가 가겠소. 김백산의병장을 따라 우리도 가겠단 말이요. 이름있는 량반님네들끼리 잘 싸워보시오.》
오째가 말하였다. 그러자 군중속에서 힘찬 웨침소리가 그에 호응하였다.
《우리도 가자. 김백산대장을 따라가자!》
《가자, 우리는 이제 더는 제천반일의병대가 아니다. 김백산대장을 찾아 모두 앞으로!》
수많은 창과 칼, 기발이 하늘로 치솟아오르며 군중이 설레이였다.
순간 린석은 갑자기 몸이 떨리고 맥이 쑥 빠지는것을 느꼈다. 너무도 뜻밖에 급진적으로 일어난 일이여서 사태를 짐작도 수습할 사이도 없었다. 아니, 하자고 한들 그들이 이제 걸음을 멈추고 돌아설것인가. 이미 등지고 돌아선 자기를 바라고 다시 모여들겠는가.
그들은 당당히 떠나간다. 자기의 실수로, 한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빚어진 후과를 참을수 없어 떠나간다. 하다면 이제 그것을 순간의 실수라고만 할수 있겠는가.
린석은 자기가 늘 창칼을 잡은 의병들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또 그들을 위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의병장들에게 가있었고 그들에 의하여 싸움의 승패도 결정된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만큼 그의 대부분 격문이나 호소들이 다분히 궁중의 고위관리들, 지방의 장관들이나 토호아전들을 대상하고있었다. 이것은 태반의 의병을 이루는 농민이나 그 계층의 평민들, 하층 빈민들은 제외되여있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그는 백산이 부대를 떠나가겠다는 의견을 제기할 때 그의 뒤에 서있는 의병들을 생각지 않았다. 무엇보다 백산이자체를 깊이 생각지 않았다. 그는 량반이 아닌 평민출신 의병장이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을 론하기 전에 량반 대 평민이라는 견해부터 앞에 서게 한다. 이때 창의대장의 립장이 어떤가. 누구를 지지해줄것인가?
바로 이러한 때 린석은 량반의 립장에 섰다. 그것이 비록 백산의 의견을 듣고 처리한 일이라 해도 결과는 같다. 백산은 오직 부대의 안녕을 위하여 부대를 떠나가겠다고 했을뿐이지 잘못은 없다. 한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훌쩍 그 의견에 동의함으로써 은연중 백산을 버리고 승우를 지지한것으로 되여버렸던것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았던가.
명백히 그렇다. 일이 터진 다음부터 그는 시종 승우를 옹호하는 립장에서 그가 범한 오유와 실책에 대하여서는 한마디도 따지지 않았다. 물론 거기에는 딸을 잃은 승우에 대한 동정도 없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량반의병장이라는 옹호와 지지가 시종 지배하고있었다. 바로 그것이 백산의 제의를 선뜻 받아물게 하였던것이다.
잠간 생각을 하는 사이에 그 많던 의병들이 간곳없이 사라졌다. 남은것은 자기와 안승우, 리필희 그리고 여기저기 드문히 서있는 몇사람뿐이다.
문득 그들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홍정식이네 서울패들이였다.
《대장님, 저도 가겠습니다. 백산형님은 저의 생명의 은인이고 싸움을 배워준 선생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를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도 영원히 외토리로 남게 될것입니다. 이제는 확실히 량반상놈만 따지며 살 세월이 아닌것 같습니다.》 하고는 꾸벅 인사를 한채 종적없이 사라졌다.
후에 알고보니 사석의 부대도 떠나갔다. 필희의 부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소식을 들은 린석은 무릎을 때리며 꺼이꺼이 눈물을 흘렸다. 자기가 그렇게도 값없고 무기력한 존재인줄을 몰랐다. 의병들에게 그렇듯 신용없이 한순간에 배척당할줄 미처 몰랐다.
자기로서는 있는 힘껏 왜놈들을 미워했고 끝까지 싸움도 하자고 했건만 왜 자기를 버리고 달아났는가. 그들도 결국 왜놈과 싸우자고 모여왔었고 지금도 싸우자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순간에 마음들을 돌려 사라지고마는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그럴수록 백산과 같은 평민출신의 의병장, 의병의 절대다수를 이루고있는 평민들에 대하여
그도 역시 량반이라고…
그러나 그때 린석은 그것을 다 알지 못했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의 불찰과 아차하는 실수로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괴로움에 모대길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