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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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승우의 마음을 돌려세울수도 없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설음을 어느 누가 알수 있으며 대신해줄수 있단 말인가. 그만큼 그를 나무람할수도 없다. 하기만 하면 그는 제가 청했던것처럼 기필코 죽자고 할것이다. 그의 곡한 성미에 그렇게 하고야말것이다. 좋게 보아서 부대를 떠나자고 할것인데 그때에도 문제의 심각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태반의 유생의병장들이 그의 뜻을 따른것이기때문이다. 즉 창의대장이 궁극적인 시기에 자기네 유생량반의 켠을 들지 않고 상놈의 켠을 들어주었다며 등을 돌려댈것이다.

그것은 곧 의병대의 분렬을 의미한다. 다음부터 자기의 의사를 따르지 않을것이기때문이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생각을 굴리던 밤이다.

뜻밖에도 백산이 찾아왔다. 허리에 호로병까지 하나 차고 와서 잔에 술을 따랐다.

《창의대장님의 심중을 리해합니다. 아울러 대장님이 언제나 저를 믿어주었고 매번 저의 켠을 들어주었다는것도 잘 알고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도 저의 청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청인가. 선봉장을 위한 일이라면 쾌히 응하겠네.》

《마시십시오. 그다음에 말하겠습니다.》

《말을 하게, 들어줄만 하면 마시겠네.》

백산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먼저 제앞의 잔을 들어 꿀꺽꿀꺽 마시였다.

《저를 부대에서 떠나게 해주십시오. 지금 제천반일의병대를 구원할수 있는 길은 그 하나뿐입니다.》

순간 린석의 눈살이 꼿꼿해졌다. 그때까지 손에 쥐고있던 잔을 와락 백산의 앞으로 밀어던졌다.

《내가 그럴줄 알고 잔을 들지 않았다. 당장 가지고가라. 그따위 수작이나 하자고 술병을 들고다녀?》

그러나 백산은 태연히 떨어진 잔을 들어다 다시 술을 따랐다.

《들지 않을수 없습니다. 지금 대장님앞에는 중군장이냐 선봉장이냐 하는 둘중의 하나를 택해야 할 중임이 나서고있습니다. 대장님은 절대 그 둘을 다 한품에 끼고있을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둘을 다 죽일수도 없을것입니다. 저도 비록 청하기는 했지만 죽이지 않을것입니다. 그만큼 방도는 명백합니다. 제가 부대를 떠나는것입니다.》

《가긴 어디로 가? 자네의 선봉대가 없는 제천반일의병대를 생각이나 할수 있는가. 이건 내가 아니라 제천반일의병대전체가 반대하는것이야.》

《대장님, 저는 제가 떠나겠다고 했지 선봉대가 떠난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이건 저 하나에 한한 문제입니다.》

린석의 눈살이 다시 굳어졌다. 그의 말이 이제야 리해되였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았다. 과연 그가 자기 부대를 버리고 어디로 떠날수 있단 말인가.

《괜한 소리, 자네가 부대에 들인 피와 땀이 얼마이구 정인들 얼마나 깊이 스며있기에 훌쩍 버린단 말인가. 내가 하라고 해도 자네가 하지 못할걸.》

《저도 그때문에 고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의병대를 위해서, 왜놈과 싸움을 위해서는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나 하나의 고통이나 괴로움을 견디면서 의병대를 건재하게 할수 있다면 그것은 백번이라도 그렇게 하는수입니다.》

마침내 린석은 잔을 들어 단번에 쭉 들이켰다. 그리고 와락 백산을 그러당겨 품에 안았다.

《이 사람, 자넨 어쩌면 그리도 사려가 깊은가. 고맙네, 내가 그 말을 따르지. 하지만 이것은 내가 어쩔수없이… 정황이 그런만큼 당분간 응할뿐이네. 부대의 운명을 위해서… 그러나 조만간 다시 나를 찾아오겠다는 약속만은 해야 해.》

《저 역시 대장님을 잊을수 없습니다. 때로는 대장님을 저의 친부모처럼 가깝게 의지하고싶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결심도 하게 된것입니다.》

그것이 두사람으로 하여금 앞으로 다시 만날 결심도 더 굳게 다지게 하였다.

이렇게 백산의 결심은 그대로 실행되였다. 자기의 선봉대를 버리고 떠난다는것이 죽기보다 괴로운 일이였지만 의병대가 처한 운명과 류린석창의대장의 처지를 보아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하여 그는 아직 미명인 어뜩새벽에 누구도 몰래 병영을 빠져나와 종적을 감추었다. 그때까지는 자신도 어디로 갈지 알지 못했고 그만큼 누구에게 행적을 밝힐수도 없었다.

그것은 린석에게 말할수 없는 실책이였다. 그 운명적인 시각에 부대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알수 없는 그의 능력의 한계이기도 하였다.

선봉장이 없어졌다, 우리 대장이 보이지 않는다, 왜 보이지 않느냐, 간곳이 어디냐? … 그 어뜩새벽에 벅적 소동이 일었다. 의병들이 저마다 뛰여다니며 있을만 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어디에도 없었다. 나중에는 미영의 무덤에까지 가보았다.

뜻밖에도 거기에서 백산의 행적을 짐작케 하는 흔적을 찾아냈다. 미영의 유서가 적힌 옷고름이 있었던것이다.

《원쑤를 갚아주세요!》

《아버지에게…》

그 옷고름이 그날 만장의 앞장에 세워졌던 모습그대로 미영의 무덤앞에 꽂혀있었다. 백산이 남모르게 건사했다가 작별인사로 거기에 꽂아놓고 간것이다.

하다면 그가 간 곳이 어디겠는가. 구태여 미영의 피묻은 글발을 여기에 세워두고간것은 무엇때문이겠는가.

말을 하지 않았어도 모두가 짐작했다. 백산이 더는 부대에 있을 몸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몸을 피한것이다. 하면서도 미영에 대한 정을 잊을수 없어 그가 품었던 원쑤 왜놈에 대한 분노와 아울러 아버지에게 다하지 못한 마지막말마디를 풀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발을 여기에 세워놓았을것이다.

그것을 안 그들은 다시 동헌으로 향했다. 오째, 정식이들이 글발을 앞에 들고 뒤에는 선봉대원들이 따랐다.

그때까지도 린석은 그것을 몰랐다. 알지 못하고 아픈 몸을 이겨내며 동헌으로 나왔다. 어쨌든 대장으로서의 기강을 세우고 필요한만큼 위의는 갖추어야 했다. 동헌에 틀고앉아야 했다.

안승우도 나왔다. 역시 그가 끌어냈던것이다.

그런데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났다.

《대장과 중군은 나오라. 담판할것이 있다!》

《대답을 똑바로 안하면 동헌을 들부시겠다!》

듣기부터 오싹 소름이 끼쳤다. 가슴이 철렁했다.

사람을 시켜 그들을 들어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대답조차 여느때와 다르다.

《우리는 더는 량반의 노복이 아니다. 뜰아래에 굽혀서서 머리를 숙일수 없으니 밖에 나와서 동등하게 마주서자.》

하는수없이 나갔다. 선봉대를 비롯한 의병대원들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있었다. 그 맨앞에 오째와 정식이들이 서있었다.

《우리 대장이 어디 갔는가, 어떻게 했는가 말해주시오.》

오째가 말했다. 수많은 눈총들이 린석을 향해 대답을 기다리고있었다. 이제 그들은 벌써 상하나 반상의 차이를 초월한 대등한 립장들이였다.

《그는 떠나갔소. 자기가 부대에 있으면 기필코 싸움이 난다며… 처음에는 자기가 죽을것을 바랐지만 그것은 더 큰 환난을 초래한다며 떠나갔소.》

《당신이 그에게 명령했지, 부대를 떠나라고?》

《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갔을거요. 그만큼 그는 가흥싸움과 미영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크게 느끼고있었소.》

《가흥싸움이라구요, 미영의 죽음?…》

문득 옆에 서있던 홍정식이 나섰다.

《대장님, 중군장님, 이 글을 보십시오. 이것은 미영씨가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쓴 글입니다. 여기에는 왜놈에 대한 증오와 함께 아버지에 대한 피의 절규가 담겨져있습니다.… 선봉장이 책임을 느꼈다구요? 물론 책임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흥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미영까지 죽게 한 책임은 전적으로 중군장에게 있습니다. 원쑤들의 자그마한 간계도 알아보지 못하고 딸의 운명에 대해서만 전전긍긍하며 끝내 원군을 보내지 않은 그 비렬한 행동이 가흥도 딸도 다 잃게 했단 말입니다.》

승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제서야 처음 보는듯 옷고름에 눈을 주었다. 물론 처음이 아니였다. 몇번이나 본듯 했다. 하면서도 관심하지 않았다. 한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관심할 겨를이 없었다. 한것을 이제 처음인듯 다시 보니 너무도 격하고 억이 막혔다. 그것을 덥석 안고 품에 가져갔다. 딸의 피줄인듯 자기에 대한 원망인듯 가슴이 터지도록 요동을 했다. 그가 살아일어나 《아버지-》 하고 부르며 잘못을 따지는듯 했다. 그것이 더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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