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8

(1)

 

오째를 선두로 한 원군부대는 급보로 달렸다. 빨리 가흥에 도착하여 백산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먼 원정길에서 입은 피로도 잊고 또다시 전장으로 향하게 한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로정의 절반도 가지 못해서 멈춰서고말았다. 선봉대가 가흥을 내놓고 철수해오고있었던것이다. 그것도 례사행진대오가 아니라 무슨 상여대렬을 짓고 힘겹게 마주오고있었다.

맨앞에는 시체를 실은 령구가 서고 뒤에는 복새통에 적당히 만든 몇개의 만장이 따른다. 다음에는 각색 기발과 고취악대 그리고 의병들…

몇개 안되는 만장가운데 맨앞에 선 자그마한것이 유표하다. 《T》로 된 장대기의 량끝에 녀자의 흰 옷고름이 매달려 팔랑팔랑 나붓기는것이다. 거기에 쓴 글발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원쑤를 갚아주세요!》

《아버지에게…》

순간이 지나서 모든것을 짐작한 원군부대도 말없이 대오를 따라섰다. 고인앞에서 누구인들 순종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소문은 언제나 걸음보다 빨라서 상여대렬이 들어서기 전에 벌써 읍거리에는 사람들로 붐비였다.

귀신중에도 처녀죽인 귀신이 제일 무섭다고 한다. 누가 그를 죽였는가, 왜 죽였는가.

애타게 대답을 기다리듯 세악수들이 상사곡을 소리높이 부르고있다. 불고 때리고 뜯으며 피나게 청을 돋구고있다. 하면서 대답이 없는 구경군들을 지나 유유히 동헌마당으로 들어섰다.

대오가 멈춰서자 앞장에 섰던 김백산이 동헌으로 뛰여들었다. 곧바로 마당을 가로질러 성큼 대뜰우로 뛰여올랐다.

그우에서 서안을 마주하고있던 안승우가 놀라 머리를 들었다. 불이 일듯 이글거리는 눈이 자기를 향하고있다.

《왜 원군을 보내지 않았는가, 왜?》

당장 물어뜯을듯 성난 기상으로 다가든다.

《왜 보내지 않았는가, 왜? 왜? 왜…》

거듭 따져묻고는 그래도 대답이 없자 옆에 찬 칼을 빼들었다. 그 번쩍이는 칼을 동헌마루가 훤해지도록 공중에서 휘둘러대고는 그대로 아래로 내리쳤다. 순간에 서안이 두쪽으로 갈라지고 종이장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안승우가 기급하여 뒤로 물러섰다가 정신을 차렸다. 이것이 웬일인가.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는것이 아닌가. 이상하고 불안한 생각에 밖으로 튀여나갔다.

사람들이 모여있다. 온 동헌마당이 가득차도록 하얗게 운집해있다. 첫눈을 끄는것은 앞에 선 만장과 령구, 세악수들의 힘찬 상사곡이다. 애타게 가슴을 쥐여뜯으며 청을 돋구는 저 상사곡소리…

그는 만장을 더듬어보았다.

《미영씨, 그대는 의병대의 꽃이였다.》

《그대 불사신의 몸으로 적정을 알려주어 우리는 이겼다.》

《월궁에 올라 약절구를 찧는 옥토끼의 모습으로 영생하라!》

그때까지도 믿지 않았다. 차마 이것이 우리 미영의것이겠는가.

그런데 가느다란 장대끝에 매달린 옷고름이 유표하다. 거기에 씌여진 글발이 가물가물 안겨들었다.

《원쑤를 갚아주세요!》

《아버지에게…》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옷고름도 필적도 미영의것이 분명하다.

저 피로 쓴 글,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것인가.

무작정 령구로 다가갔다. 우에 씌운 백포를 걷고 뚜껑을 잡아제꼈다. 과연 미영이 누워있다. 곧바로 머리를 우로 쳐들고 아버지 자기는 쳐다보지도 않으며 멍청히 뜬 초점없는 눈으로 높은 하늘을 우러르고있다. 피기없는 하얀 얼굴도 까딱 움직이지 않는데 기슭으로 밀려난 몇오리 머리칼만 바람에 하느적이고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갑자기 사지가 꽛꽛해지며 몸이 뒤틀리워졌다. 자기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나며 눈앞이 새까매졌다. 사람들이 달려와 그를 붙들었다.…

린석이 의식을 차린것은 바로 그때였다. 가흥을 고수하라는 명령과 함께 원군까지 떠나보내고 다시 깜박이는 의식속에 잠들었던 그는 밖에서 떠드는 소리에 눈을 떴다. 드르릉 분합을 열었다.

마루에 백산이 서있었다. 여섯척(1. 8메터) 일장검을 한손에 거머쥐고 둥근 기둥에 몸을 기대여섰다. 문이 열리는것도 알지 못했다.

《선봉장, 자네가 어떻게 된 일인가. 언제… 가흥에서 돌아왔나?》

문득 들리는 소리에 백산은 고개를 돌렸다. 마루에는 아무도 없는데 동헌안방에서 류린석대장이 보료우에 상반신을 일으켜세우고 자기를 지켜보고있다.

순간 그는 반갑고 분하고 죄스러운 감이 한꺼번에 치솟아올라 털썩 무릎을 꿇고앉았다. 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꺼이꺼이 설분이 솟구쳐올랐다.

《대장님, 저를 죽여주십시오.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린석에게 천만뜻밖이였다. 싸움에서는 용맹하고 일에서는 불요불굴하며 생활에서는 비관이란 모르던 선봉장에게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자네가 웬일인가. 가흥을 내놓고 왔는가?》

《저를 죽여주십시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아무 설명도 구실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린석은 참을수 없었다. 더는 그대로 누워있을수 없었다.

《너 이게 무슨 짓이냐. 네가 이 모양을 해놓았느냐?》

그제서야 토막난 서안을 보고 린석이 다시한번 놀라 물었다. 그러나 백산은 그에 대한 대답을 않고 당장 목쳐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말을 해, 네가 가흥을 지키라고 한 내 명령을 받았느냐?》

《무슨 명인지 알수 없으나 가흥은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키지 못했습니다. 가흥뿐아니라…》 하고는 또 목이 메여 꺼이꺼이 흐느꼈다.

린석은 더 참을수 없었다. 급히 사람을 불러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거기서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웬 령구를 하나 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섰는데 녀인들의 애절한 통곡소리가 마당을 울리고있었다. 목갈린 상사곡소리도 청을 돋구고있었다.

그가운데 문득 안승우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그앞으로 다가왔다.

《아이고, 내 딸이 죽었소. 미영이… 나에게 다시 없는 일점혈육이였던 그가 날 버리고 저 혼자 갔소.…》

아이고데이고 웨치는 소리가 그대로 살을 벗기고 뼈를 부시는듯 했다. 미영이 죽었다는 말자체가 린석에게 천만뜻밖이였고 그만큼 믿어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였다. 그렇게도 귀엽게 따르며 의병이 되기를 희망하던 그가 싸늘하게 식은 몸이 되여 자기를 외면하고 누웠다. 불러도 흔들어깨워도 대답이 없는 미영이다.

《그놈이 내 딸을 죽이였소. 선봉장 그 상놈이 그 애를 꼬여 전장에까지 끌고가서는… 끝내 죽게 했단 말이요.…》

안승우가 여전히 정신나간 사람처럼 넉두리를 엮어댔다. 그것이 더더욱 린석의 가슴을 찢는듯 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아프고 후회막급하다 하여도 어쩌는 수가 없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인것이다.

미영을 땅에 묻고 제사를 지냈다. 원래 부모보다 앞서간 자식은 봉분조차 세우지 않는다 했지만 그에게만은 모든 절차를 다 지켜 성의껏 장례를 치르게 했다.

그러나 승우의 슬픔은 조금도 가시여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정신나간 사람처럼 린석의 앞에서 넉두리를 계속해댔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미영이 없는 세상을 제가 살아서 무엇하며 살기는 어떻게 산단 말입니까.…

선봉장, 그가 내 딸을 죽였소. 비천한 그 상놈이 홀아비의 품에서 고이 자란 내 딸을 꾀여내다 죽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가까워지는것을 반대했고 전장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한것을 끝내 뿌리치고 달아났습니다. 그가 왜 갔는지 압니까. 가사나 돌보고 부모의 말이나 고분히 따라야 할 계집의 몸이…》

지금껏 저 혼자 중얼거리며 울분을 토하던 승우가 눈물을 거두고 갑자기 린석에게 돌아섰다.

《그것은 대장님때문입니다. 대장님을 믿고 오만해졌습니다. 계집들이란 믿을데만 생기면 인차 오만해서 못쓰게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대장님은 노상 그의 켠만 들어주며 둘이가 가까워지기를 바랐지요. 일에서나 둘사이문제에서나 대장님은 매번 선봉장만 옳다고 하면서 그만을 지지해주었습니다. 같은 량반이며 선비인 저를 무시하고…》

지금껏 그의 말을 묵묵히 들으며 같이 슬픔에 잠겼던 린석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승우,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자네를 무시하고 백산의 켠만 들다니?》

《그에 대해선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십시오. 이제부터는 저도 저대로 나가겠습니다. 저를 죽이든가 백산을 죽이든가 둘중의 하나만 택해달라는것입니다. 이제 나는 내 딸을 죽게 한 저놈과 한 의병대에 같이 있을수 없습니다. 만약 그를 죽일수 없다면 제가 의병대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죽든가 리린영이네들을 찾아가든가, 다음일은 저도 책임질수 없습니다.》

《승우, 우린 사사를 돌보지 말고 배반하지 말며 필사를 각오하고 왜놈과 싸우자고 하늘에 맹세를 다진 사람들이야. 그쯤한 일에…》

《그쯤한 일이라구요? 그가 나를 죽이려 하는데 대장님에게는 그쯤으로밖에 안 보입니까. 이제 또 상놈의 켠을 들어 나를 마저 죽이자 하는것입니까?》

린석은 입을 다물었다. 하자고 해도 억이 막혀 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전혀 당치도 않은 말이였다. 그럼에도 듣고보면 할 말이 없었다. 이제 다같이 싸우자고 할수도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이제 또 다투라는 말로밖에 될수 없기때문이였다.

끝내 할 말을 찾지 못한 린석은 그를 외면하고 백산을 불러대였다.

《말을 하게. 이제 어쨌으면 좋겠나?》

린석이 엄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대장님, 저는 이미 다 말했습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구실을 못한 놈입니다.》

순간 린석은 두손으로 백산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이 부대엔 몽땅 죽일 놈들뿐이냐? 왜 마음을 합쳐 함께 싸우겠다고 못하고 죽음만 청하는것이냐?》

《저는 한 녀자의 사랑도 받아줄수 없었고 생명도 지켜주지 못한 졸장부입니다. 죽어마땅합니다.》

《그게 너의 진심의 소리냐? 나는 너에게 죄가 없다는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네가 중군장앞에 사죄하기를 바란다. 어쨌든 그는 딸을 잃은 아버지가 아니냐?》

《아니, 저는 사죄할수 없습니다. 반대로 저를 그냥 놔준다면 다시 그를 향해 칼을 빼들것입니다. 원군을 보내지 않은 그 원한을 담아서… 그 참혈이 일기 전에 저를 죽여달라는것입니다.》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났다. 소문을 듣고 선봉대원들이 달려온것이였다.

《선봉장을 건드리지 말라. 그에겐 죄가 없다.》

《미영을 죽게 한것은 그 아버지다. 왜 원군을 보내지 않았는가?…》

파수군들이 막아섰으나 막지 못했다. 막 안으로 쓸어들려고 할 때 백산이 다가갔다.

《형제들, 이게 무슨 일인가. 이래선 안된다. 우린 왜놈과 싸우자는것이지 조선사람끼리 싸우자는것이 아니지 않는가. 나에 대해선 조금도 근심말라.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일단 물러갔다. 그러나 그것은 린석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백산을 절대 다쳐서는 안된다는것이였다.

그것은 린석이 이미부터 해온 생각이기도 하였다. 백산이 없는 의병대를 생각이나 할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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