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5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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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홍왜는 험준한 로야령산줄기의 서남쪽 막바지에 자리잡고있는 왕청유격구역의 제3구 소재지였다.
큰길과 철길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마을 북쪽으로는 가야하의 지류가 흐르고있었다.
한때 다홍왜는 현당과 인민혁명정부, 현공청이 들어와있었다. 그무렵에는 왕청 1중대와 3중대도 주둔하고있어 지도에도 없는 이 자그마한 심산궁곡이 군사정치적으로 매우 번창한 요충지의 하나로 되였다.
지금은 현의 기관들도 다른 고장으로 옮겨가고 유격대원들의 수효도 줄어들어 그처럼 활기롭고 번잡하던 마을이 흡사 구읍과도 같이 한산한 인상을 주었다.
그 어느 문명세계에 명함장도 드리지 못하고 세월의 바람받이에서 가대기를 붙안고 돌아가는 이 궁벽한 산촌마을에서 후날 력사가들이 다홍왜회의라고 이름지은 그 유명한 당 및 공청간부들의 회의가 엄숙하게 막을 올렸다.
회의에서는 동만유격구의 전역에서 벌어지고있는 반《민생단》투쟁문제와 간부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론전이 벌어지고있었다.
회의 첫날부터 순시원 종치훈과 강시중을 비롯한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주의자들은 동만땅에 살고있는 조선사람들의 80~90프로가 《민생단》이라고 규정하면서 조선공산주의자들과 혁명적인민들을 모욕하였으며 조선사람간부들을 중국사람으로 교체하고 조선사람들을 다 숙청하자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들고나섰다.
북만원정길에서 촉한을 만나신
왕청3중대 정치지도원이 이따금 장작을 안아다 피워올리는 화독의 열보다 심각한 정치론전에 더 몸을 달구고있는 사람들의 열로 하여 삼복더위마냥 찌물쿼대는 방안에서 중구난방 웨쳐대는 그들의 말소리를 들으시노라면 이마에는 척척히 땀이 배이고 어깨며 잔등에도 땀발이 솟아났다.
북만땅의 혹한이 바늘끝처럼 파고든 한기를 뽑아내느라고 조택주로인이 20일 가까이 봉양해드렸지만 허약할대로 허약해지신
요영구에서는 김진세로인과 최춘국정치지도원이 다홍왜로 들어와
그렇지만
그럴뿐만아니라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부르시여 좀더 허심한 이야기를 나누시는 사업도 늦춤없이 계속하시였다.
회의에서 그처럼 기염을 토하던 사람들도 일단
회의가 나흘째 진행되던 날 밤 위증민과 화룡현당일군인 고윤일은 앞서 몇사람이 그랬던것처럼
위증민일행이
그들은 죄없이 끌려온 자기들의 억울한 처사를 하소연하면서
위증민은
강시중은 위증민의 등뒤에서 바람을 막아주며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위증민의 눈치를 살피다가
밤날씨는 여간만 차지 않았다. 건강이 좋지 못한 위증민으로서는 찬바람이 불어내리는 행길에서 서성거린다는것이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 그는 외투깃을 올리고 털모자의 귀덮개를 내리였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그는 목을 빼들고 귀틀집을 건너다보았다. 말소리, 울음소리, 통나무를 마구 두드려대는 거친 소음들이 감옥의 들창으로 새여나왔다.
《이 세채의 감옥에 갇힌 수감자들이 몇명이나 됩니까?》
위증민은 다홍왜숙반책임자에게 물었다.
《모두 서른두명입니다.》
《서른두명…》
위증민은 조용히 입속으로 뇌이며 숙반감옥의 컴컴한 처마밑을 살펴보았다. 그 처마밑으로 조용히 문이 열리며
하늘에는 만월에 가까운 둥근달이 떠있었다.
《
《아, 위증민동지군요. 모자는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사람이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때는 모자가 아니라 홑적삼바람으로도 다닐수 있는겁니다.》
위증민은 소리없이
그는
《나는 지금까지 동만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조선인민의 혁명성과 그 견인불발성에 늘 감탄해왔습니다. 여기서는 환갑이 넘은
로인으로부터 아동단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영웅이고 모두가 혁명가가 아닙니까. 나는 얼마전에 〈구국신보〉지상에 실린 나어린 한 아동단원의
투쟁실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실기를 보면 조선민족의 기개와 영웅성, 혁명성을 잘 알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조선민족에 대하여 친근감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국제당에 그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결심하게 된 기저에는 바로 그런 친근감이
깔려있습니다. 나는 조선민족을 금강석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민족의 부대가 80~90프로의 변질을 가져왔다니 믿기가
어렵습니다.
《위증민동지, 〈민생단〉이라는것은 세상에 나와 얼마 지탱하지 못하고 자기의 존재를 끝마쳤습니다. 그런데 다 죽었던 조직이 오늘 무슨 힘으로 이렇게 창궐하여 전 동만땅을 휩쓸수 있게 되였습니까? 이것은 진정한 사고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실로 리해할수 없는 의혹을 안겨주고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만땅의 현실에 생소한 나에게는 더구나 의혹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자리에 있는 강시중동무의 견해는 그렇지 않습니다. 혁명정세는 실로 난감하게 되였다고 우려하고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반혁명분자들을 단호하게 제거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이것은 아직 나의 견해가 아나라 이곳 동지들의 견해일뿐입니다.》
《단호하게 제거해야 한다는말이지요. 단호하게…》
수감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다시금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소음은 차츰차츰 더 커졌다.
《위증민동지, 이 다홍왜에는 한때 현당이 있었고 현정부가 있었으며 혁명적군중이 집결되여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근거지에 사람이 없는것은 아닙니다. 산 생명이 있고 산 활동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묵묵히, 조용히, 우울하게 움직이고있을뿐입니다. 누가 혁명적열정이 넘치던 사람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았습니까? 광택이 없고 정열이 없고 활기가 없는 유격구, 북만참관단이 그렇게도 큰 부러움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이 유명한 동만근거지에서 무엇이 사람들의 웃음을 앗아갔습니까? 지난해의 동기방어전투에서 무비의 영웅성을 떨치고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한 혁명가들의 용맹과 충천하던 기세는 어디로 갔습니까? 적의 초토화작전으로서도 감히 헝클어놓을수 없었던 생활의 률조를 무엇이 깨뜨려놓았습니까?》
앞서 걸으시던
위증민은 황급히
《
《고맙습니다. 위증민동지.》
《위증민동지는 압박받고 업심을 당하는 중국인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적이 있습니까?》
위증민은 걸음을 다그쳐
《그럼요. 우리 중국인민은 가난의 호수에서 허덕이고있습니다. 중국사람의 옷, 중국사람의 음식, 중국사람의 가옥은 말할 형편이 못됩니다. 만주에 살고있는 우리 인민의 모습만이라도 살펴보십시오. 발밑에 깔린 흑토처럼 사람들의 얼굴도 그들의 옷도 그들의 잠자리도 모두 시커멓습니다. 이것은 세기적인 가난이 가져다준 후과입니다.
왜놈들은 중국사람을 〈쿠리〉라고 부르고있습니다. 이 얼마나 천대스런 표현입니까. 놈들은 신문에 쓰기를 중국의 어떤 벽촌에 가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중국사람은 옷을 비누물에 빨아입을줄 모르고 이를 잡아 피를 빨아먹고있다고 합니다. 중국의 녀성들은 일생에
두번밖에 목욕할줄 모르는데 세상에 태여날 때 산욕이라는것을 하고 죽은 다음에 수의를 입히면서 몸을 닦는 사욕이라는것을 한다고 합니다. 놈들은
중국녀성들이 심지어 결혼을 하는 날에도 목욕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위증민은 흥분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목소리는 사뭇 떨리기까지 하였다.
《나는 위증민동지가 그토록 자기 조국과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는 애국자이기에 조선혁명가들이 당하고있는 불행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리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조선사람들은 간도조선인의 80~90프로가 〈민생단〉이거나 그 련루자들이라는 규탄을 받고있습니다. 이것은 온 민족이 들쓰고있는 수치입니다. 그리하여 조선의 혁명가들과 인민들은 소위 혁명가의 이름을 지닌 사람들의 손에서 무참히 쓰러지고있으며 이른바 〈혁명감옥〉에서 피를 흘리고 신고를 겪고있는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민의 력사에 있어보지 못한 재난입니다. 통털어 한 민족이 당하는 이 재난을 위증민동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위증민은
《나는
《
위증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