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3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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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의 눈가에는 섬광과도 같은 날카로운 빛발이 번뜩이시였다.
《당신들은 그것이 무슨 소린지 알수가 없소. 그것은 아무나 생각하고 누구나 척척 지어낼수 있는 소리가 아니요. 이건 백지같이 순결한
혁명가의 량심을 지니지 않고는 말할수도 없고 생각할수도 없으며 거기에 담긴 뜻을 옳게 해석할수도 없는거요.
사령관이 준 명령을 집행하겠다고 적구에 부대를 데리고 들어간 지휘관을 함부로 잡아다 감옥에 가두고도 자기들이 어떤
착오를 범하고있는지 알지 못하는 당신들이 어찌 성실한 혁명가의 량심을 들여다볼수 있단말이요. 그러나 이자리에 모여있는 지휘관들은 리유천동무의
말을 리해하고도 남소. 동무들, 리유천동무가 사령관이 준 명령을 끝까지 관철하기 위해 단신으로 적구에 들어갔다는걸
믿는가?》
《믿습니다!》
지휘관들은 지붕을 떠날릴듯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리유천동무가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혜정동무를 두고 적구의 싸움의 길을 밟아나갔다는것도 믿는가?》
《믿습니다!》
《리유천동무는 돌아올 때도 유격구에 전할 귀중한 정보가 있기에 혜정동무를 찾아가지 못했소. 이것도 진실로 믿는가?》
《믿습니다!》
지휘관들의 목은 세마디의 대답소리에 한결같이 쉬여버렸으며 눈에는 격정의 눈물이 솟아올랐다.
《어떻소. 당신은 지휘관들의 힘찬 대답소리를 듣지 못하오? 우리 지휘관들은 자기의 혁명동지를 이렇게 알아보는 법이요. 이것은 진짜 혁명에
충실한 사람들의 심장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요. 어림도 없소. 당신들이 그동안 이 근거지땅에서 숱한 사람에게 〈민생단〉감투를 씌우고 나중에는
〈밀정〉이니 〈귀순〉이니 하는 말까지 함부로 돌리면서 진실한 혁명가들을 못살게 굴었지만 우리는 자기의 동지들을 정확히 식별하고 대담하게
믿을것이며 이 믿음을 가지고 혼란된 이 유격구의 사태도 수습할것이요.》
백하일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일어서고있었다.
그가 이 근거지땅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면서 지금같이 바쁘고 허둥거린 때는 일찌기 없었다. 이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포승으로 자기의
온몸을 칭칭 동이고 쇠메로 두드려패는듯 한 느낌이였다.
그는 위증민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어느새 의자에 앉아 이쪽의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있는 위증민은 자기의 바빠하는 거동을 눈치채고 처량한
생각을 금치 못해하는 눈치였다.
장군님께서는 한흥권을 향해 리유천에게 군복과 총을 주어 전투대오에 참가시키라고 말씀하시였다. 사람들의 환호와 격정은
한층 더 높이 끓어올랐다.
하루가 지나갔다.
장군님께서는 리유천이 가지고온 정보에 따라 천교령전투를 며칠 앞당겨 진행할것을 결심하시고 전투대오를 출발시키기로
작정하시였다.
이날은 다홍왜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장군님을 위시하여 위증민과 강시중 기타 현의 많은 일군들과 종치훈이
떠나고 천교령전투대오가 출발하게 되여있었다.
두줄로 기다랗게 늘어선 행군종대를 에워싸고 유격구인민들이 하얗게 쏟아져나왔다. 이 대오에는 새 군복을 입었을뿐만아니라 소대장으로서 2소대의
선두에 서있는 리유천의 모습이 유난히 두드러졌다.
회의에 가야 하실 장군님께서 말고삐를 잡은 전령병을 거느리시고 부대앞으로 나오시자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은 바다처럼
설레였다.
장군님께서는 전투대오앞으로 다가가시여 유격구내 일군들의 일치한 동의로 《민생단》감옥에서 풀려나온 대원들을
둘러보시였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한결같이 눈물이 쏟아지고있었으며 가슴은 누를수 없는 격동적인 흥분으르 오르내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찢어진 옷을 걸치고 감옥의 컴컴한 구석에 쭈그리고앉았던 그들이 떳떳이 군복을 입고 총을 멘 모습이
대견하신듯 일일이 손들을 잡아주고 어깨로 두드려주시며 대오의 한끝에서 다른 끝으로 걸어가시였다.
위증민은 장군님의 너무도 대담하고 확신있는 용단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장군님의 주견에
딴 견해가 명백히 있는것은 아니였으나 리유천의 신분을 좀더 확인하지 않고 전투대오에 참가시켰을뿐만아니라 그가 가지고온 정보에 기초하여
천교령전투를 조직하시는것만은 마음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미 군중앞에서 단행한 일을 막을수도 없었다. 리유천의 죄행이 명백치 않지만 그의
사령관인 김일성동지의 권한으로 얼마든지 전투대오에 참가시킬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위증민은 뒤일이 걱정되였다. 심각한 론전이 벌어질 다홍왜회의를 앞두고 리유천의 일이 회의에 어두운 그늘을 던지지는 않겠는지?
요영구에서 며칠 지내면서 장군님과 친분을 두텁게 한 그로서는 그이의 신변에 닥쳐올수 있는 일들이
은근히 걱정되였다.
그러나 전투대오를 바라보시는 장군님의 안색에는 조그마한 그늘도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다시한번 사랑에 넘친 친근한 눈매를 갖추시고 전투원들을 살펴보시였다. 한점 구김살없이 당당히 가슴을 펴고 서있는 유격대원들, 과연 이들의 밝은
얼굴에 그 어떤 회오리바람이 어둠을 실어다 덮씌울수 있단말인가? 장군님께서는 힘껏 고개를 흔드시며 그것을 부정하시였다.
한흥권이 장군님앞으로 힘차게 걸어나와 거수경례를 하였다.
《어서 떠나시오. 동무들, 잘 싸워주시오!》
장군님의 마지막명령이 떨어지자 한흥권의 우렁찬 출발구령이 산발을 흔들며 울려퍼졌다.
유격대원들은 발을 높이 쳐들고 목이 터지게 만세를 웨치며 장군님의 앞을 힘차게 지나갔다. 군중들이 좌우에서 와-
하고 몰리며 행길옆의 생눈을 걷어차고 중대를 따라갔다. 유격구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이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에 떠받들리워
싸움터로 가고있는것이다.
《위증민동지, 우리도 떠납시다.》
잠시 숨을 돌리며 흥분을 가라앉히신 장군님께서 등자에 발을 걸고 마상에 오르시였다. 위증민이도 말에 올랐다.
군중들이 좌우로 갈라져 넓게 틔워놓은 길로 장군님께서는 위증민이와 나란히 습보로 말을 몰아나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