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7

(1)

 

류린석이 필희의 기별을 받고 제천에 도착한것은 바로 그무렵이였다.

그러나 그때는 린석이 이미 운신을 못하고 의식조차 흐린 상태였다.

안승우와 리필희가 뛰쳐나가고 리씨가 눈물을 흘리며 맞아들였건만 린석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얼마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그는 즉시 필희를 불러 자기를 왜 오라고 했는가,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일일이 알아보았다. 문제가 가흥에 대한 공격과 제천고수로부터 시작되였다는것을 안 린석은 와뜰 놀라 몸을 일으켰다.

《가흥을 차지했다구? 하다면 끝까지 지켜야지 왜 내놓는다는것인가, 왜…》 하고는 격한 숨결로 쓰러졌다가 다시 머리를 들었다.

《나를 동헌으로 내놓아달라. 맥을 놓아선 안돼. 가흥을 고수해야 돼, 가흥을…》

사람들이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끝내 동헌의 아래방에 보료를 두툼히 깔고 거기에 누웠다.

안승우와 리필희들이 무릎을 꿇고 옆에 앉았다.

《가흥은 우리가 충주에서부터 노려오던 곳이야. 한것을 이제 차지했으면 끝까지 고수해야지 왜 내놓는단 말인가, 왜?》

그가 승우를 쏘아보며 물었다.

승우는 고개를 수굿하고 원군을 보낼수 없었던 이러저러한 사정들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린석은 다 듣지도 않고 거듭 격분만을 표시했다. 이제라도 빨리 원군을 보내여 가흥을 지키게 하라는것이였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의병들이 떨쳐나섰다. 우선 린석을 따라갔던 오째의 선봉부대가 앞장섰다. 뒤따라 사석의 부대에서도 나섰다. 이렇게 대오를 편성한 원군은 다음날 먼저 제1진이 가흥을 향하여 구보로 출발하였다. 뒤따라 떠나게 될 2진과 함께 적들을 역포위로 섬멸할 계획이였다.

그것을 알길 없는 백산은 초조히 미영의 소식만 기다렸다. 그것은 확실히 김백산, 자기의 불찰이였다. 미영이 혼자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를 하거나 따로 전투를 조직하여 무사히 나갈수 있게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채 그날 아침 뜻밖에 울리는 총성과 없어진 미영을 보고서야 그가 말을 타고 혼자 적진속으로 달려갔다는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백산은 적과 대치한 제일선에 나가 정황을 살폈다. 조용했다. 아침해발이 퍼지면 그때부터 탕탕 총소리를 울리며 공격을 하군 하던 적들이 죽은듯 잠잠하다.

무슨 일이 생겼는가. 이 고요와 정적은 무엇을 말하는가.… 백산은 진종일 자리를 뜨지 못하고 이런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길이 없었다.

그때 모든 의병대원들중 놈들의 기도를 알고있는 사람은 미영이 하나뿐이였다. 그가 적진에 붙들려온것이였다.

그는 군막을 나란히 쳐놓은 어느 한 마당구석에 쓰러져있었다. 심한 부상으로 정신을 잃은채 끌려왔던것이다. 그때까지도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하다가 그는 귀설게 들리는 왜말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첫 순간에 그는 자기가 왜놈의 포위를 뚫지 못했다는 분하고 괴로운 생각에 몸부림을 쳤다. 다음에는 어떻게 하나 여기를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으나 심한 출혈과 아픔으로 어쩔수 없었다. 게다가 파수군 한놈이 총을 메고 노상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 때 몇놈의 왜군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저들끼리 왜말로 쑹얼거리더니 문득 한놈이 그를 가리키며 물었다.

《와다나베대위, 저건 무슨 계집인가?》

그때까지도 미영은 그 왜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대답하는데 따라 인차 조선말로 주어대는 통역의 말을 듣고 알아차렸다.

《중좌님, 조선의병대계집인데 저희들이 체포했습니다. 저 선봉장의 애인이고 그때 무기거래를 했던 군수장의 딸입니다. 저년을 교환조건으로 리용하자고 합니다. 보루와 창고를 내놓는 대신으로 돌려주겠다.…》

순간 미영은 놀랐다. 자기를 저 보루와 바꾼다는것도 놀랍거니와 그 말을 하는자가 다름아닌 무기장사군 야마무라놈이였던것이다.

이다찌, 그놈도 미영이 자주 들어서 알고있던 놈이였다. 그옆에는 흰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조선사람 하나가 따라섰는데 야마무라는 바로 그를 향해 통역을 하고있었다.

《와다나베, 충주성의 교훈을 잊었는가. 조잡하게 놀지 말고 그따위 송장은 내다버려. 우린 래일 대포를 가져다 저 의병대를 박산내자고 한다. 그렇게 한 값으로 우린 저 창고의 낟알을 전부 넘겨받게 된다. 조선측에서는 의병들때문에 우리와 교섭이 안되는것을 속타하면서 그만한 값을 치르면서라도 저 폭도들을 진압해줄것을 요구하고있다. 선봉대만 없애면 가흥창이 다 우리거란 말이야.…》

와다나베가 허리를 굽혀 힘있게 대답하고 야마무라는 열성스레 통역을 해댔다. 그것이 고마운지 조선량반이란 사람도 갓양테를 붙잡고 몇번이나 굽신거리며 인사를 했다. 이다찌가 계속하였다.

《야마무라, 자네가 조선측과 교섭을 잘하라구. 일만 잘되면 이번에도 크게 횡재를 할수 있어.…》

그 말에 야마무라가 삽살개처럼 여기저기 붙어돌아가며 무엇인가 연신 씨벌여댔다.

이윽하여 놈들이 군막안으로 들어가자 미영은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것은 겨우 피줄이나 뛰는 정도의 미세한 격동이였으나 마음은 왜놈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분노와 의병대의 운명에 대한 근심으로 끓었다. 의병대에 빨리 소식을 알려주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다행히도 다음부터 그에게 관심하는 놈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움직일수 없었다. 그는 낮동안 모진 고통을 참아가면서 죽은듯 한곳에 누워있었다. 그러는 동안 날이 어둡자 이다찌는 돌아가고 병졸들은 술독에 빠졌다. 래일의 승리를 위해 야마무라가 한턱 낸다는것이였다.

그 틈을 리용하여 미영은 은밀히 숲속으로 숨어들었다. 일어서 걸을수 없는 대신 기여서 한치한치 숲속을 헤쳐갔다. 그렇게 얼마간 조심스럽게 가다가 언덕이 나지면 굴기도 했다. 빨리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모진 아픔도 고통도 이겨내며 앞으로 나가게 했다. 그렇게 하여 마침내 그가 두번씩이나 죽을번 했던 마지막계선, 그 자그마한 오솔길을 넘어섰을 때 더는 움직일수 없었다. 그는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반듯이 누웠다. 그러자 하얀 달이 눈에 마주쳐왔다. 언제인가도 자기를 자꾸 따라오며 앞길을 밝히던 저 달, 선봉장님은 나에게 저 달속의 월궁선녀가 되라고 했지. 영원히 변치 않는 옥토끼로 남아있으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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