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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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께서는 한동안 묵묵히 리유천의 아래우를 내려다보시였다.

북만으로 떠나실 때 새로 지어입혔던 군복은 갈기갈기 찢어져 겉으로 솜뭉치들이 데룽거리고 신발은 칡덩굴로 휘감아 겨우 발에 걸고있었으며 길게 자라난 머리카락은 귀뿌리를 덮고 훌쭉하게 꺼져내린 얼굴은 꺼칠한 수염속에 반나마 가리워있었다.

몇달전의 그 생기있고 의젓하던 리유천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사람이 이 모양이 되도록 혼자 적구에서 싸울 생각을 하다니…》

장군님,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어긴 전사는 이 세상에 살아있을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달리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진실을 고백하지 못하겠는가? 아무렇게나 주어섬긴다고 속아넘을줄 아는가?》

백하일이가 열에 들떠 강시중이 눈을 데룩거리고 앉아있는 책상을 탕탕 두드렸다. 그때마다 위증민은 가볍게 이마살을 찌프렸다.

장군님, 숙반에서는 제가 하는 말을 믿지 않을줄로 압니다. 그렇기때문에 제가 겪은 일들을 말하기가 두렵습니다.》

《숙반이 문제가 아니요. 중요한것은 자기의 혁명적량심을 들여다보면서 정신을 차리고 할 말을 해야 하는거요.》

《그렇다면 장군님! 저는 송혜정동무의 소식을 전할게 있습니다.》

《송혜정동무의 소식이라니?》

장군님께서는 물론이고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크게 놀라 술렁거렸다. 위증민은 짙은 눈섭을 꿈틀거리면서 병인답게 날카로와진 시선으로 리유천을 주시하였다. 강시중이도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서 말하오. 송혜정의 소식이라는게 뭐요. 그게 적에게 귀순한 녀잔데 귀순한 녀자의 소식을 어디서 들었소?》

강시중이가 백하일이 못지 않게 흥분하여 입술을 덜덜 떨었다.

백하일이 넌떡 받아챘다.

《그 소리라는게 별게 아니라 잠자리에서 꾸며낸것 같은 그런 얼토당토않은 수작이요. 글쎄 북만으로 가던 걸음을 돌려 적구로 들어가다가 밤중에 길을 헛갈려 가야하기슭에 이르렀는데 거기 어떤 숯구이막이 있어 들어가보니 혜정이라는 녀자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있더라는거요.

그래서 살펴보니 허벅다리와 어깨죽지에 총알을 맞고 낭떠러지에서 굴러나 온몸에 온통 짓물린 자리가 있더라는거요. 이게 저 사람이 숙반에서 한참 주어댄 소린데, 이보라구 동무, 이게 사실이라면 어째서 혜정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거기 있지 못하구 적구로 들어갔어. 엉? 제 애인이 다 죽어가는데 팽개치고 적구로 들어가다니. 뭐 번드르하게 명령관철을 하자니 그랬소 어쨌소 하구 대답을 잘 하는데 그게 말이 되는가? 말이 돼? 게다가 숯구이막위치가 어디냐, 가서 확인하겠다고 하고 따지고드니까 밤이여서 위치를 알지 못했다는거요. 한다는 소리가 이렇게 온통 동에 닿지 않는말이요. 아무리 진상을 꾸미려해도 진짜와 가짜는 이렇게 갈라지는거야. 진짜야 네가 적의 밀정이지 뭔가?》

백하일은 아까처럼 책상을 내려치려다가 그앞에 위증민이 서있다는것을 알자 얼핏 들어올렸던 손을 공중에 내던졌다.

《할 말이 있으면 어디 해보란말이야. 내가 한마디라도 보탰거나 뺀게 있는가?》

《대답해보오. 이제 저 말이 단가?》

장군님께서는 리유천의 말로 진상을 알아보고싶어 조용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장군님, 사실은 그렇습니다. 저는 밤중이여서 숯구이막위치도 모르겠고 혜정이 어떻게 되여 그 지경이 되였는지도 모르고있습니다. 다만 혜정이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숯구이막로인이 그의 생명을 구원하고있다는것과 혜정이가 적에게 귀순했다는것은 놈들이 꾸며낸 모략일뿐이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만 하면서 적구로 갔습니다. 저는 죽어도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관철해야 할 사람이였고 혜정이앞에서도 자기의 추한 몰골을 보일수 없는 죄지은 몸이였습니다.》

《알겠소. 알겠소.》

장군님께서는 자못 흥분하시여 김택근소대장을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하시였다.

《동무가 이제 사람들을 몇명 데리고 나가 가야하기슭을 훑어보오. 거기 숯구이막이 몇개나 되겠는가? 리유천동무, 혜정이 누워있는 위치를 대강이라도 모르겠소?》

《묘령에서 한 오륙십리 되는것 같습니다.》

《방향이 그쯤되면 찾는게 어렵지 않소. 떠나오.》

백하일이 김택근의 팔을 넌떡 붙잡았다.

김일성동지, 그럴거 없습니다. 숙반에서 벌써 사람이 떠났습니다. 숯구이막이 진짜로 있고 혜정이가 거기서 병치료를 한다면 숙반이 가만히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튼 그 녀자는 적에게 〈귀순〉한 녀자니까 숙반에서 검속을 하고 따질건 따져보아야 하는겁니다.》

《이것 보시오. 따질게 뭐가 있소. 혜정동무가 적의 총알을 받고 의식을 잃었다면 공작중에 적의 추격을 받아 그렇게 된것이지 놈들에게 〈귀순〉한 녀자겠는가? 숙반에서는 그에게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오. 그의 운명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지오. 김택근동무 알았소? 그에게 불손하게 손을 대는 현상이 있거든 용서치 마오!》

장군님의 목소리는 격하게 울렸다.

《사령관동지, 명령대로 집행하겠습니다.》

김택근은 목메인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을 올리고 한손으로 싸창갑을 누르며 뛰여나갔다.

방안의 공기는 자못 긴장해졌다. 백하일의 시커먼 눈언저리는 격노한듯 푸들푸들 떨리고 강시중은 난처하여 장군님과 위증민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나머지 유격대지휘관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느라 거친 숨소리를 톺고있었다.

《리유천동무, 동무가 혜정이를 찾은 때로부터 한달가까운 시일이 지났는데 이번에 오는 걸음에 들려 데려오지 못하고 어째서 혼자 나타났소. 혜정동무를 목마르게 기다리고있는 동지들의 심정을 모르지 않는 사람이… 더구나 그는 놈들에게 〈귀순〉했다는 허물을 쓰고있는 녀성이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가슴속으로 저저이 파고드는 아픔을 누를길이 없으신듯 통나무의자에 앉으시였다.

《저는 그럴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어제밤에 천교령수비대 장교침실에 뛰여들었다가 거기 와있는 대두천 〈토벌대〉대장놈한테서 관동군사령부참모 한놈이 내려와 요영구유격구를 공격하기 위한 큰 작전을 벌리고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통나무의자를 밀어놓고 일어서시였다.

《요영구유격구를 공격하기 위해 관동군사령부에서 참모가 내려와 있단말이요?》

《그렇습니다. 핫또리대좌라고 하는데 주변의 〈토벌〉무력을 집결시키고있다고 합니다. 지금 읍거리의 소학교와 산림보호구, 영림시에 어디서 밀려든 놈들인지 우글우글 돌아가고있습니다.》

《핫또리, 핫또리… 관동군사령부에 그런 놈이 있소. 동만땅에 그놈이 한번씩 나타나면 유격구에 대한 〈토벌〉이 감행되군했었소. 그런데 그놈이 요영구를 노리고 천교령에 와있다니…》

《공격은 다음달 10일이내에 한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없기에 헐레벌떡 달려오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리유천을 통해 저들의 비밀내막이 죄다 드러나는것에 겁을 집어먹고 가슴을 조이고있던 백하일이가 그만 더이상 참아내지 못하고 구두발로 방바닥을 구르며 소리쳤다.

《그따위 망발을 말라. 네가 유격대를 유인해다 놈들의 아가리에 밀어넣으려고 잔꾀를 부리는줄 모르는것 같은가? 이자리에는 네가 지껄이는 말을 보증해줄 사람이 누구도 없단말이야.》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홱 돌리시였다.

《백하일동무, 어째서 보증할 사람이 없다는거요. 내가 당당히 보증하겠소.》

백하일은 깜짝 놀라 눈을 디룩거렸다.

김일성동지, 저놈이 말로는 북만에 간다하고 적구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무슨 도까비장난을 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째서 모른단말이요. 당신도 이자리에서 방금 듣지 않았는가? 리유천동무는 사령관이 준 명령을 관철하기 위해 단신으로라도 적구에 들어갔단말이요.》

《그거야 저 사람이 하는 소리고 진짜 속심이야 알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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