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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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께서는 그의 결심이 반갑고 미더우신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그렇게 하십시오. 우리는 구당비서동무를 믿겠습니다. 혁명을 사수하는 문제는 어제만이 아니라 오늘도 래일도 계속됩니다. 사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앞에 있다고도 말할수 있습니다. 상처 입고 주접이 든 우리 혁명을 받들어세우자면 아직도 얼마나 많은 곡절과 역경을 헤쳐나가야 할지 알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항상 명심해야 할것은 각자가 혁명의 원칙을 양보하지 않고 혁명가의 량심을 고수해나가는것입니다. 최춘국동무?》

장군님께서는 최춘국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최춘국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두손을 허벅다리에 꽉 다가붙였다.

《동무야 내내 근거지땅에서 싸운 사람이니 남들보다 더 명백한 자기의 견해가 있을게 아니요. 어디 말해보오. 〈민생단〉관계자들을 전투대오에 참가시키는 문제에 의견을 달리하는 까닭은 무엇이요?》

사령관동지, 물론 저는 사령관동지앞에서 우리 동무들을 목숨걸고 보증할수 있습니다.

혁명에 충실하고 언제나 일에 열성이던 동무들이 죄없이 숙반의 감옥에 들어차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혁명의 생사를 론의해야 할 중대한 사변이 앞에 있는것만큼 그 일이나 치르고나서 수감자들의 문제를 처리했으면 어떨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때에는 아무것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여기 최춘국동무와 의견을 같이하는 동무들은 몇명이나 되오?》

한사람 두사람 일어서기 시작하더니 잠간사이에 방안의 거의 모든 사람이 일어섰다.

한흥권중대장이 장군님앞으로 한발 걸어나왔다.

사령관동지께서 전투에 참가시키시려는 수감자중에서 한사람이라도 겁을 먹고 전투장에서 헛총질하면 〈민생단〉을 두둔해나섰다고 걸고들것입니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쉽사리 허물을 보이겠습니까? 우리는 그것이 가슴아파 괴로운대로 이번 일을 뒤로 미루는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제나름의 생각들을 가지고있습니다.》

일제히 장군님을 향해 쏠리는 사람들의 눈길에는 바로 한흥권의 가슴에서 터져나온것 같은 그런 안타까운 호소가 어려 번들거리고있었다.

단순히 후에 돌아올 책임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혁명의 생사를 판가리할 심각한 론전을 앞두고 수감자들의 일로 하여 장군님께 그늘을 지을가봐 걱정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그이께서는 뜨겁게 들여다보시였다. 장군님께 혁명의 생사를 맡기고있는 그들, 장군님 한분만을 바라고 이 근거지땅에 빚어진 수난의 바다를 지켜보는 그 사람들, 장군님께 비록 힘을 보태드리지는 못할망정 짐을 안겨드리지 말아야겠다고 모대기는 그들의 눈물겨운 심정을 그이께서는 모르지 않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손을 흔드시며 모두들 앉으라고 권고하시였다. 그러나 쉽사리 누구도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장군님을 우러르는 사람들의 눈언저리는 붉어지고 숨소리들은 높아갔다.

《동무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말꼭지를 떼시였다.

《나는 방금전에 구당비서동무에게 유격구를 지켜낸다는것이 결코 하나의 땅덩어리를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을 지키는 문제로 된다는것을 말하였는데 바로 그것처럼 우리가 앞으로 심각하게 론의를 벌리게 될 혁명의 생사에 관한 문제도 혁명하는 사람들의 운명문제와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어째서 우리가 숙반에 갇힌 사람들의 그토록 절박한 운명문제를 뒤로 미루고 그 어떤 혁명의 생사를 론의해야 한단말입니까? 사람들의 운명문제와 동떨어진 혁명의 중대사가 과연 있을수 있으며 심중한 론점들이 있을수 있습니까?》

점차 흥분으로 높아가는 장군님의 열기띤 목소리가 사람들의 머리우로 날아갔다. 사람들은 숨을 삼키고 눈을 슴벅거리며 그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파괴된 유격구의 혁명을 바로잡는다는것은 결국 수난당한 혁명동지들의 운명을 건져내는 일과 떼여놓을수 없습니다. 그럴뿐더러 일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혁명의 중대사를 해결한다고 해서 비극에 떨어진 동무들을 구원할 생각을 뒤로 미룬다면 결국 혁명가들의 존엄을 짓밟고 그들의 목숨까지 흥정하는 결과를 빚어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수난에 처한 동지들을 구원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근거지의 혼란을 바로잡고 혁명의 원칙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장군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전에 출입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백하일이 급히 뛰여들었다.

백하일의 뒤로 머리가 헝클어져 삼거웃처럼 일어선 한사람이 숙반대원의 총구에 떠박질리워 문턱안으로 넘어섰다.

《가자.》

백하일은 사람들이 줄을 맞추어 앉아있는 중간통로로 머리를 깊이 떨어뜨려 아직 누군지 알수 없는 사람을 끌고 위증민의 앞에 헐떡거리며 걸어왔다.

《위증민동지, 이자가 바로 리유천이라는놈입니다. 앞에서는 조선혁명을 부르짖고 뒤에서는 밀정질을 한 리유천입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위증민은 깜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리유천의 얼굴이며 헝클어진 머리칼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하도 복잡한 론의의 중심인물이 나타났으므로 위증민에게는 놀랍기만 하였던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습니까?》

위증민은 여전히 놀라와하는 눈길로 리유천의 아래우를 깐깐히 훑어보면서 물었다.

《숙반대원들이 산속을 수색하다가 숲속에 엎드려 유격구마을을 감시하고있는걸 잡았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위증민은 분명 리유천을 향해 물은것이였으나 대답은 백하일이 하였다.

《사실입니다. 이놈을 체포한 숙반대원들이 그것을 확인하고있습니다.》

가슴앞으로 숙여진 리유천의 머리는 더욱더 깊이 굽어들었다.

백하일의 말은 사실로 인정될수밖에 없었다. 위증민은 참으로 난처한 기색을 띠우고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다가와 리유천의 어깨에 조용히 한손을 얹으시였다.

《리유천동무.》

리유천은 한모양으로 깊이 고개를 떨군채 아래다리를 후들후들 떨고있었다. 그는 머리를 들어 장군님을 뵈올 면목이 없었다.

《리유천동무.》

장군님께서는 다시한번 그를 부르시였다.

《동무는 자기의 사령관을 보고도 고개를 들고 인사할줄 모르는가? 어서 머리를 들고 앞을 보오.》

그순간 리유천은 풍덩 무릎을 꿇고 장군님의 발치아래 쓰러지며 어깨를 떨었다.

《저같은 인간이 무슨 낯으로 고개를 들고 장군님을 뵈옵는단말입니까. 저는 장군님께서 주신 적구투쟁임무를 망각하고 숙반감옥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최춘국동지가 소부대를 이끌고 적구에 들어가게 되였고 그 일로 하여 근거지가 적들의 기습을 받았습니다. 저는 혁명앞에서 결산을 받아야 할 처집니다.》

《리유천동무! 아무리 과오를 범한 사람이기로 이렇게 자신을 다잡지 못하고 허둥거려서야 되는가? 정신을 차리오.》

장군님께서는 두손을 뻗쳐 그의 어깨를 힘껏 다잡아주시며 격한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누구의 얼굴을 볼것 없이 자기의 신념으로 대답해보오. 동무가 숲속에 숨어 유격구마을을 감시하고있었다는게 사실이요?》

리유천은 금시 휘청거리던 몸을 가누며 눈에 힘을 모았다.

《아닙니다. 장군님,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제발로 내앞에 나타날것이지 숙반의 오라를 짊어지고 나타났는가?》

장군님, 저는 제발로 걸어오댔습니다. 이건 진정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숙반사람들이 나타나 무작정 저를 체포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한번 말해보오. 동무가 근거지에서 사라진 목적이 무엇이며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었소?》

《저는 숙반에 찾아가면 영낙없이 죽일것으로 생각하고 죄없이 죽는것이 억울하여 살아서 기어이 혁명을 하자고 장군님을 찾아가댔습니다. 그러다가 장군님께서 주신 적구투쟁임무를 관철하지 못하고 근거지에 수난을 들씌운 제가 어떻게 장군님앞에 나타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최춘국동지를 찾아 적구에 들어가 싸울 결심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소부대는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라도 장군님께서 주신 임무를 수행해야 하겠기에 지금까지…》

장군님의 눈가에는 문득 누를길 없는 아픈 표정이 어리시였다.

《그러니 한달동안을 적구에서 돌아가며 싸웠단말이지. 한달동안을…》

방안의 무거운 공기를 짓누르며 그이의 침중한 목소리가 울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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