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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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침내 령마루를 넘어서자 말은 량쪽산을 끼고 가운데로 느릿느릿 굽이져내려간 길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내리받이여서 빨리 달릴수 없었던것이다.

한낮의 해볕이 내려쪼이는 골짜기는 끝없이 조용하고 한적했다. 전장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만큼 적막했다. 다만 어디서인가 비릿한 쇠내와 함께 화약내같은것이 풍겨왔다.

여기가 어딜가. 의병들이 피흘려싸운다는 곳은 어디쯤일가.

바로 그때 어디선가 땅 하는 총소리가 울리더니 뒤이어 총탄이 날아오는 왱 하는 소리가 귀바퀴를 울렸다. 미영은 깜짝 놀라 말머리를 돌렸다. 총탄은 거기로도 날아왔다. 삽시에 골짜기는 울부짖는 총탄소리로 가득찼다.

그때까지도 그것이 무엇때문인지 알지 못했던 미영은 무작정 이쪽저쪽으로 말을 때려몰며 맴돌이를 거듭했다. 그때마다 총탄들은 련속 그를 따르며 좌우에 떨어졌다. 숲들이 놀라서 진저리를 치고 바위들은 앙칼진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이제는 죽었다. 이제 몇발자국만 가면 탄알이 바로 나를 맞힐것이야. 나는 죽었어.…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며 눈앞이 새까매지고 숨이 끊어지는듯하였다. 말도 더는 오도가도 못하고 공중높이 앞발을 쳐들며 투레질만 해댔다. 바로 그때 숲속에서 누군가 번개같이 튀여나오더니 말우로 뛰여올랐다. 그다음 육중한 몸으로 그를 타고 누르더니 말을 때려몰았다. 순간에 말은 숲속을 파헤치며 뿌죽한 산모퉁이로 돌아섰다.

그와 함께 말은 곤두박질하며 나가넘어지고 그들은 굽이진 언덕을 따라 한참이나 딩굴었다.

그렇게 하고 눈을 떴을 때 미영은 시꺼먼 우멍진 눈이 자기를 쳐다보고있는것을 보았다. 순간 그는 활짝 웃음을 지으며 두손을 내밀었다. 백산인것이다. 끝내 찾아왔다. 이렇게 만났다. 어서 나를 일으켜주지 않고 저러고만 있을가.

드디여 나무등걸이같은 억세인 손이 두어깨를 꽉 그러잡았다.

《왜 왔소? 누가 오라고 했소?》

《왜 그러세요. 제가 온것이 그리도 미우세요?》

《누가 오라고 했는가. 내가 오지 말라고 했지?》

이글거리는 눈, 푸들푸들 떠는 팔다리, 거센 숨소리가 당장 그를 어디론가 날려보낼듯 했다.

그제서야 그의 진정한 분노가 무엇인가를 알아차린 미영은 와뜰 놀라며 몸을 옹송그렸다.

총탄이 비오듯 하던 죽음의 순간순간들, 숲속에서 번개같이 튀여나와 자기를 몸으로 덮으며 말을 때려몰던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불시에 되살아난것이다. 자기의 그 경망스러운 행동이 백산을 얼마나 놀라게 하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지 않을수 없게 하였던가.

그러나 사실 그때까지도 미영은 아무것도 모르고있었다. 그저 백산에게 빨리 가닿아야 한다는 일념에만 집착해있었던것이다. 그런데 그 길이 바로 의병들과 왜군이 대치하고있던 중간지점일줄이야. 그것도 방금전에 교전을 끝내고 잠간 휴전을 하는 짬사이로…

이러나저러나 미영의 출현은 의병들에게 생활의 랑만을 돋구어주는 향기로, 싸움에서는 용기를 돋구어주는 힘으로 되였다. 아침저녁으로 끓여주는 구수한 장국과 봄나물이 모두 미영의 덕으로 인정되였다. 저녁시간이면 의병들속에 불리워다니며 노래도 불렀는데 그것이 집과 부모처자들에 대한 그윽한 향수를 불러주어 더욱 좋아했다.

그러나 미영의 뜻밖의 출현이 백산에게는 결코 반갑다고만 할수 없는 근심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원군이 올수 없다는 소식이 그를 불안하게 하였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중군장에게서 직접 들은 말로서 더욱 확실한것으로 되였던것이다.

미영이자체도 문제다. 남자들만 있는 전장속에 녀자 하나를 따로 돌봐주기도 쉽지 않지만 보다는 그의 신변을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보장해주는것이 문제였다. 백산이 아무리 애쓴다 한댔자 싸움의 정황을 담보할수 있겠는가. 더구나 원군이 올수 없다는것이 확실해진 지금에…

지금 의병들은 골짜기에 난 저 작은 오솔길을 가운데 두고 왜병들과 극도로 긴장하게 대치되여있다. 창고와 보루를 빼앗긴 놈들이 그것을 되찾기 위한 맹공격을 들이대고있는것이다. 반대로 의병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결사전을 벌리고있다.

그런데 원군을 보내지 않고있다. 하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영, 이제라도 돌아가오. 꼭 가야만 하오.》

단둘이 마주섰을 때 백산이 말하였다. 여느때없이 긴장하고 침착한 모습이였다.

《왜 절더러만 가라는거예요. 싫어요, 안 갈터예요.》

《가야 하오. 여기서 미영이 할 일이 더는 없을거요.》

《왜 없다는거예요. 의병들이 모두 용감히 싸우고있잖아요.》

《싸우고있소. 그러나 원군이 오지 않는 한에는… 그렇다고 가흥을 내줄수야 없지 않소.》

《원군이 오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한다는거예요?》

백산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무언의 대답뒤에 보다 더 큰 대답이 있다는것을 미영은 대뜸 짐작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그가 했던 말이 있다. 자기가 더 용감히 싸워 보충하겠다는것이다. 하다면 그 용감성이란 무엇인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최후의 결사전이다. 죽음을 각오한 마지막싸움이다.

그렇듯 긴장하고 첨예한 속에 하루이틀 날이 지나갔다. 그때 제천에서 또다시 소식이 왔다. 가흥을 내주고 즉시 철수하라는 중군의 지시였다. 미영을 무조건 즉시 돌려보내라는 그의 개별적인 부탁도 함께 보내여왔다.

이 뜻하지 않은 소식이 또다시 백산의 심정을 복잡하게 하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흥을 내놓아서는 안된다는것이였다. 가흥이 지금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고 힘들게 차지한 곳이기에 쉽게 내놓는단 말인가.

백산은 그것을 손금보듯 환히 알고있다. 가흥이야말로 적아가 다같이 노리는 전략적요충지인것이다. 그만큼 적들은 여기에 모든 력량을 집중하고있으며 제천에 대한 공격은 꿈에도 꾸지 않고있다. 그가 알아본데 의하면 지금 제천은 말탄 기군들 몇이 학고개와 구학산밑에 이따금 나타나 파수군에게 총 몇방 쏘고 달아나군 하는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그것에 놀라 중군장은 퇴군을 명령했다. 이것을 단지 군사적무능에서만이라고 보겠는가.

다른 원인이 있을수도 있다. 필경은 미영이 빨리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일것이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해당될것이다. 얼마나 가슴아프게 헤여진 미영인가.

물론 미영은 보낼것이다. 백산이자신부터 결사를 각오한 산고지에 그를 붙들어두는것을 원치 않는것이다. 그러나 미영은 여전히 고집했다. 가흥싸움을 기어코 이기고 백산과 함께 말을 타고가겠다는것이였다.

그러는 사이 선봉대에는 점점 더 불리한 정황이 조성되였다. 적들이 그들에 대한 완전포위를 형성했던것이다. 반면에 의병대에는 화약과 화살, 철알까지 다 떨어져갔다. 이제 하루이틀사이에 원군이 오지 않으면 가흥이 무너질수 있다. 만약 원군이 올수 없으면 무기라도 보내달라, 우리는 끝까지 버티여낼것이다, 그는 이렇게 호소하고싶었다. 아니, 그렇게 해서라도 가흥은 고수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와서는 그것도 마음대로 할수 없게 되였다. 부대가 완전히 적들의 포위속에 든것이다.

어떻게 할것인가.

백산이 이렇듯 고심하고있던 때 미영이 그앞에 나타났다.

《저를 제천에 보내주십시오. 원군을 데려오겠습니다.》

백산이 어둑컴컴해진 얼굴을 들고 놀랍게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죽어도 의병대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던 그였다.

《가오, 보내주겠소. 그러나 여기로 다시 올 생각은 마오. 혹시 원군이 올수 있다면 몰라도…》

《그에 대해선 걱정 안해도 돼요. 지금 그 일을 맡아할 사람은 저 하나뿐이예요.》

《그렇게 알고있다니 고맙소. 하지만 우린 놈들의 완전포위에 들었소. 그냥은 빠져나가지 못하오.》

미영은 그러는 백산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선봉장님, 저의 아버지를 원망하시지요?》

《왜 갑자기 그런걸 묻는거요?》

백산이 정녕 의아한 빛으로 되물었다.

《저도 그것을 인정해요. 그때문에 이제는 저와 아버지의 사이도… 원군을 끝까지 보내지 않는 한에는… 절대 전처럼 가까울수가 없어요.》

《미영씨, 그건 아버지의 잘못만이 아니요. 아버진 다만 이다찌놈에게 속고있을뿐이요. 그놈이 제천을 당장 들이칠것처럼 잔꾀를 부리는데… 만약 미영이 자신있다면 아버지에게 절대 속지 말라고 설복해보오. 그렇게 해서 원군을 데려올수 있다면 따로 전투를 조직해서라도 미영을 빼내보내겠소.…》

그러나 미영은 그럴 짬을 주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아직 새까만 미명속의 어둠을 헤치고 말 한마리가 요란한 발굽소리를 내며 골짜기로 치달아올랐다. 얼마전 미영을 그렇게도 놀라게 했던 그 골짜기이다.

오늘 또 그 말에 미영이 올랐다. 원군을 보내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그로 하여금 이밤을 잠들지 못하고 모대기다가 새벽의 야음을 리용케 한것이였다. 아버지를 기어코 설복하여 꼭 원군을 달고 올 결심이 온몸에 불길처럼 타오르고있었다.

예견했던것처럼 여기저기서 총탄들이 쏟아져나왔다. 왜병들이 길목에다 불무지를 지펴놓고 꾸무적거리다가 황급히 총들을 주어잡고 일어섰다. 미영이 그 한복판으로 뛰여들었다. 불무지를 걷어차며 막아서는 놈들을 들이받으며 순식간에 놈들의 포위를 헤쳐나갔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놈들의 시야에서도 벗어날것이다. 어둠속에 들리는것은 어방대고 쏘아대는 총소리와 여기저기로 포물선을 그으며 멀리 앞으로 날아가는 총탄들뿐이다. 잠시후에는 그것도 뜸해졌다. 이제는 되였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몸을 펴는 순간 무엇인가 갑자기 허리를 툭 하고 때렸다.

이것이 무엇일가, 누가 날 때리는가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 그는 갑자기 하늘땅이 빙그르 도는것을 느끼며 말우에서 떨어졌다. 오흐응- 하며 우는 말의 투레질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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