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6

(1)

 

가흥에서 전투는 벌써 며칠째 계속되고있었다. 김백산의 선봉대에 대한 와다나베수비대의 공격이 끊임없이 강화되고있는것이다.

그사이 선봉대는 가흥을 완전히 장악했다. 불의의 공격으로 가흥지구의 역참과 나루터, 창고와 수비대의 보루까지 일시에 점령하였던것이다. 그로 하여 역참과 수로를 통한 서울에로의 통행과 세미운반은 완전히 중지되고 충주에 있는 왜군들의 공급로도 끊어졌다. 반면에 의병대에서는 역참의 수십마리 말과 말파리를 리용한 식량운반이 줄기차게 진행되였다. 제천의 의병들과 주민들이 살수가 났다고 환성을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잠간, 충주로 쫓겨갔던 와다나베가 력량을 몇배로 증강하여가지고 와서 의병대가 차지한 진지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치렬한 공방전이 낮에 이어 밤에도 계속되였다. 그러는 과정에 의병대는 이미 차지했던 역참과 나루터를 하나하나 빼앗겼다. 그들만의 력량으로는 그 넓은 지역을 다 방어할수 없었던것이다.

이제 남은것은 창고와 놈들이 건설해놓은 보루였다. 그것만 차지해도 사실 가흥의 멱통을 쥐고있다고 할만큼 지위는 확고했다. 놈들이 발을 붙일만 한 곳이 다시 없었던것이다. 그래서 와다나베도 멀리 산굽이에 천막을 치고 밤낮없이 공격을 들이대고있는것이다.

백산은 제천에 거듭 련락을 보내여 원군을 요구하였다. 역참이 무너졌다, 나루를 내주었다 하는 애타는 목소리가 거듭거듭 제천에 가닿았다. 그때마다 안승우는 보낸다, 보낸다 하면서 거의나 보내지 않았다. 싸움이 인 날부터 불과 몇십명을 보낸것이 전부였다.

그로서는 그럴만한 구실이 있었다. 충주에 틀고앉은 이다찌가 짜낸 궁리에 넘어간것이였다. 즉 제천에서 원군을 떼내지 못하도록 거듭 공격기도를 내비쳤던것이다.

사실 그것은 공격이 아니였다. 몇문의 보총과 때로는 기관총 한두문을 가지고 학고개와 구학산밑을 오가며 소리나 몇번 냈을뿐 대부분력량은 가흥에 가있었다. 백산이 그것을 알고 계속 원군을 요청했으나 승우는 이다찌의 전술에 놀라 절대로 기본력량을 헝클어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제천을 위하여 가흥을 절대로 내놓지 말아야 한다는 지시만을 거듭 강조하여 보냈다.

그것이 문제로 되여 일부 의병장들과 의병들속에서 쉬쉬하는 소문이 돌았다. 지금처럼 중요한 때에 가흥에 빨리 원군을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것이였다.

바로 그러한 때 미영이 아버지를 찾아 동헌으로 올라갔다.

《아버지, 가흥에 왜 원군을 보내지 않습니까?》

그가 마루우에 앉아 조심스럽게 무릎을 감싸안으며 물었다. 그 첫마디에 벌써 승우가 못마땅히 눈살을 찌프리며 딸을 쳐다보았다.

《그건 왜 묻냐, 네가 웬 참견이야?》

《사람들이 말합니다, 빨리 원군을 보내여 가흥을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반대하신다니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든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계집애가 왜 그따위 소문은 들고다녀?》

《아버지는 왜 그리도 속을 쓰지 못합니까. 의병을 일으킨것이 왜놈들과 싸우자는것이지 제천이나 틀고앉자는것입니까. 왜 전장에서 피흘리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놈들을 더 크게 이길 생각을 못하는가 말입니다.》

《네가 무엇을 안다고 그따위 소리냐. 지금 제천은 남북으로 포위되여있다. 병력을 딴데로 돌렸다가 아차하는 순간에 먹히울수 있단 말이야. 그때의 막강한 책임을 내가 다 지란 말이냐?》

《아버지가 지금 중군의 중임을 지고있는것이 누구의 덕입니까. 선봉대가 없는 중군이나 제천을 생각이나 할수 있습니까. 이런 때 왜 그들을 도울 생각을 못합니까.》

《네가 그런 말을 안해도 생각이 거기에만 가있다는것을 내가 모르지 않는다. 네 눈에는 보이는게 선봉장밖에 없지. 네가 이곳 형편을 알기나 하느냐. 제천에서는 한명도 떼내지 못한다. 만약 그들이 진실로 의병대를 위한다고 할것 같으면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가흥을 고수하는것뿐이야. 가겠으면 너나 가거라.》

마침내 미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아버지의 본심이 뚜렷이 알렸기때문이였다.

《좋습니다. 아버지는 이 딸이 귀하고 딸을 위해 진심을 다 바쳤다고 말은 하면서도 언제한번 딸을 위해준적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이 딸은 딸대로 나가겠습니다. 그때에는 제가 무슨 일을 하든 탓하지 마십시오.》

《무엇이? 그게 아버지에 대고 하는 소리냐?》

승우가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그때 미영은 벌써 마루를 내려서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가고있었다. 승우는 따라가려다말고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때 미영이 삼문을 넘어서며 잠간 문턱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멀리에서 보기에도 그의 눈에 눈물이 어린듯 했다. 얼핏 떠오른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돌리니 그는 벌써 문밖을 나서고있었다. 눈에 띈것은 문턱을 스치는 치마자락과 얼핏 사라지는 저고리를 입은 뒤모습뿐이였다.

그것이 승우가 딸 미영을 본 마지막모습이였다. 물론 그때까지도 승우는 자기가 미영과 그렇게까지 갈라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밖에 나갔던 통인아이가 달려들어오며 밤새 미영이 없어졌다고 알려주었다.

불시에 어제 있었던 일들이 되살아나며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허둥지둥 그가 거처하던 방에 달려가니 모든것이 정상인데 다만 서안우에 벼루로 눌러놓은 종이장 하나가 유표하게 눈에 띄였다. 급히 집어들고 펼쳐보니 손이 떨리고 눈앞이 흐려져 앞을 볼수가 없었다. 그는 가까스로 눈을 부비며 한자한자 더듬어나갔다.

아버님이 이 글을 읽으실 때에는 제가 여기에 없을것입니다. 그때 놀라실 아버님을 생각하면 차마 떠날수 없고 글을 쓰는 이 손도 떨리고 눈물이 쏟아져 쓸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떠나지 않을수 없고 기어코 가야 할 몸이기에 몇자 적어놓습니다.

아버지, 저는 이제 가흥으로 갑니다. 가서 죽어도 좋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올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달라질 제 모습은 아닙니다.

돌이키면 저를 이렇게 떠나게 한것은 아버지자신입니다. 아버님은 일찌기 어머니를 여읜 저를 홀몸으로 키우셨지요. 그 애지중지하신 마음이 무엇이였던지 하는것이 나는 지금 리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때나 무조건 아버지를 위한것으로만 되여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저에게 가르치신것입니다.

아버지는 제자들과 저에게 늘쌍 천상천하에서 나라보다 귀한것이 없으며 나라가 없으면 제몸도 없다고 하셨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유생의 몸으로 단연 칼을 잡고 나선 아버님을 무한히 존경합니다. 하다면 이름도 지위도 없는 평민으로 단연 의군을 조직하고 전장에서 누구보다 용감히 싸우고있는 선봉장님에 대해선 뭐라고 할가요.

저는 몇해전 그이가 우리 향교마을에 찾아왔을 때부터 남다른 용맹과 대바른 행동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존경해왔고 흠모하여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줄곧 그를 천시하고 반대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선봉장님께 죄악으로 된다고 생각해왔고 아버님의 애국애족의 뜻에도 부합되지 않는것이라고 간주하였습니다.

제가 이제 떠나는것도 바로 그때문입니다. 어려운 때에 선봉장님과 같은 애국의 마음을 돕는것이 옳다고 여겼기때문입니다.

아버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녀자의 삼종지례와 녀필종부가 곧 부덕(녀자와 안해가 지켜야 할 도리)이라고 하였습니다.

거듭 말씀드리건대 선봉장님께 향한 저의 정은 폭포수처럼 내려쏟치여 굳고굳은 암반까지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이제 그 물을 다시 돌려세울수 있겠습니까.

그는 한평생을 떠돌아살며 부모의 사랑도 녀자의 정도 받아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제 저의 손길이 그에게 미치여 싸움에서 더욱 용맹하고 지혜를 발동하여 저 극흉극악한 왜놈들을 더 많이 무찌를수만 있다면 저는 백번이고 그 길을 택하겠습니다.

그래도 제 말이 리해되지 않는다면 저 고구려의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을 생각하십시오.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바보라고 하던 온달이 평강공주의 도움으로 어떻게 유명한 장수가 되였는가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지요. 저는 바로 오늘의 평강공주가 되고저 합니다.

오늘의 이 맹세를 저는 며칠후 가흥싸움에서 이기고 선봉장님과 함께 돌아와 실천으로 보여드리자고 합니다. 그때에는 아버님이 그토록 고집하는 량반상놈이 따로 있고 상놈은 량반앞에 복종만 해야 한다는 불공평한 이 세상이 바로잡혀야 한다는것을 리해해주셔야 합니다. 왜적들과 혈전을 벌리며 국가의 운명을 바로잡아나가야 하는 이때에는 모든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말은 제가 타고갑니다. 며칠후 제가 다시 나타날 때에는 아버님이 부디 달려나와 축복해주리라는 기대를 안고 떠나갑니다.》

편지를 다 읽고난 승우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글줄을 따라가며 마디마디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그에 대한 뜨거운 애착과 긍정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 읽고나서는 미영을 떼우게 되였다는 허탈감과 그에 뒤따르는 애착감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미영은 태여난 신분적처지로 보나 갖추고있는 인지덕의 례의로 보나 분명 량반집귀부인이지 막농사나 지으며 소발구를 끌 서민집아낙네는 아니였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서 키운 딸이였다. 한것을 졸지에 농사군집아낙네로 만들겠는가. 자기가 그 집에 얹혀살수 없는것은 물론 어쩌다 딸네 집 문객노릇을 하재도 사람들이 흉보고 손가락질을 할것만 같아 견딜수 없었다.

바로 이렇듯 딸에 대한 눈먼 사랑과 자기식의 완고한 고집이 급기야 승우의 립장을 돌변시켰다. 가흥에 나가있는 선봉대를 전부 철수시키자는것이였다. 이제는 그쯤만 해도 선봉대가 큰일을 하지 않았는가. 그만한 력량으로 가흥을 수일간 점거하고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공이 될수 있다. 게다가 거기에서 끌어들인 식량은 또 얼마인가. 그것만 해도 봄철 올곡식이 날 때까지 군량은 문제없다.…

이렇게 생각한 승우는 미영이 떠나간 다음날로 선봉대에 철수명령을 내렸다. 물론 그것이 자기 딸에 대한 애착에서 취한 조치라고만 볼수 없다. 이를테면 가흥에 대한 포기와 제천에 대한 고수의 일념이 그런 결심을 내리게 한것이다. 총체적으로 볼 때 군사지식의 결여에서 오는 공포의식의 발현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에 첫 반기를 든 사람이 사석이였다. 그는 가흥의 고수가 곧 제천에 대한 방어로 된다고 하면서 자기 부대를 이끌고 가흥으로 가겠다고 들고나왔다. 그것이 제천고수를 주장하는 승우의 반발을 사서 론쟁이 점차 격렬해져갔다. 나중에는 백산이나 사석이 다 같은 평민출신으로 저들끼리 싸고돈다는 주장을 들고나옴으로써 론쟁은 량반상놈하는 신분적차이를 론하는데까지 승화되였다.

처음에 사석의 편에 서서 싸움을 주장하던 리필희가 신분문제가 상정되자 갑자기 입을 다물고말았다. 량반인 자기가 사석의 켠에 서서 승우를 욕할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대신 이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써서 급히 린석에게 사람을 띄워보냈다. 정확한 내용을 다 알릴수 없는 대신 빨리 돌아와달라는 요구만 거듭해보낸 서신이였다.

그것은 후에 있은 일이고 그날 아침 제천을 떠난 미영은 무작정 말을 때려몰아 가흥으로 달렸다. 기어코 자기 뜻대로 하고야말리라는 고집스러운 마음이 아버지에게 가슴아픈 서신 한장 남겨놓고 끝내 백산을 따르게 한것이다.

그렇게 제천에서 가흥까지 몇십리를 달리는 동안 가슴속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뒤섞인 모순된 감정으로 끊임없이 눈물이 솟아올랐다. 그러다가 마지막령마루를 넘어서 한강을 가까이하고 솟은 가흥창의 낟알더미들과 역참건물수비대의 우뚝우뚝한 보루들이 한눈에 안겨오자 생각이 달라졌다. 여기가 바로 전장이며 저기 어디에 백산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온몸이 바싹 긴장해졌던것이다.

이제 만나면 그이가 날보고 뭐라고 할가. 물론 욕을 할거야. 하지만 그이한테는 내가 필요해. 그가 뭐라고 하든 나는 그를 돌봐주어야 해. 우선 끼마다 따끈한 밥을 해주고 옷도 빨아주어 선봉장으로서의 체면을 세워주어야지. 그리고 의병들과는 춤노래도 함께 하고 같이 휩쓸리며 힘을 돋구어주어야 해.…

이렇게 생각을 하니 다시 마음이 즐거워지고 빨리 그들에게 가닿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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