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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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리씨가 그를 방에 들여보내고 자기는 잠간 어디에 갔다온다며 자리를 떴다. 아무도 없는 방에 육초가락 한대가 외로이 서서 방을 비치고있었다.

백산은 선채로 기다렸다. 누구일가. 왜 이런 곳에서 나를 만나자고 할가. 혹시 창의대장님이…

하는데 잠시후 문이 열리였다. 먼저 눈에 띄는것은 사람에 앞서 들어서는 밥상이다. 그 한끝을 잡은 하얀 손이 먼저 들어서고 뒤따라 사람이 들어섰다. 미영이다.

《이건 뭐요? 기다린다고 하는 사람은?》

미영이 상을 놓고 다소곳이 머리를 수그린채 귀밑머리를 쓸어올렸다.

《저예요, 제가 기다렸어요.》

《미영이? 그런데 대장님 부인은…》

《이제 올거예요. 어서 앉으세요. 그동안 먼저 이것을 드세요.》

미영이 그래도 서있는 백산의 한팔을 잡아 조심히 끄당기며 말하였다.

상우에는 흰쌀밥과 몇가지 반찬외에 커다란 통닭이 한마리 놓여있었다. 금방 단지에서 꺼낸듯 김이 문문 나는 닭곰이였다. 거기에 또 언제 준비했는지 아래목에서 호로병을 하나 꺼내여 번들거리는 놋잔에 술을 한가득 쏟아부었다.

《미영씨, 이건… 왜 이렇게 하는거요?》

《그동안 고생이 많았어요, 몸도 축가고… 어서 드세요.》

《아니, 난 들지 않겠소. 내가 뭐라고 이런 대접을 받는단 말이요?》

《래일 전장으로 떠난다지요. 그래서 큰어머니랑 다 생각해서 하는 일이예요.》

《큰어머니? 대장님 부인이 내가 어쨌다고 이런걸 다 차려준다는거요.》

《맹세를 치세요, 더이상 묻지 않겠다고요.》

《대답을 하오. 난 내가 모르는 일을 해본적 없고 영문도 모르는 대접을 받아본적 없소.》

백산의 목소리는 거의나 거칠게 울렸다. 그러자 미영의 목소리도 어느덧 갈리였다.

《달라고 해도 고운놈 있고 주겠다 해도 미운놈 있다지요. 이제 와서 주겠다고 하는 내가 밉다면 할수 없지요. 그럼 소녀는 물러가겠습니다.》 하며 새침해서 돌아앉는데 고름을 고쳐매고 얼굴매무시도 다시 하는것이 당장 일어날 자세다.

백산이 급기야 그의 팔을 잡았다.

《말하오, 그냥은 안 보내겠소. 못 가오.》

《놓으라요. 난 그렇게 꼴짝한 사람하구는 말을 못해요, 안하겠어요.》

《꼴짝하다구? 내가 말이요?》

《음식을 놓구는 성을 내도 안되고 더럽다 해도 안된댔어요. 고만한것도 몰라서 요것조것 따지며 화를 돋구어요?》 하고는 맵짠 눈으로 백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때 백산은 그의 얼굴에서 자기를 떠보는 장난어린 미소를 보았으며 설사 아무리 성을 내더라도 참을수 있다는 아량도 엿보았다. 이어서 손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눈으로는 쏘아보고 입으로는 웃고있다는것도 가려보았다.

미영이 더 청하기 전에 상우의 잔을 닁큼 들어마셨다. 거기에 미영이 다가앉으며 닭의 다리를 쭉 찢어 갈라놓았다. 마침내 눈이 마주친 두사람의 얼굴에 웃음이 활짝 피여났다.

《제가 욕 좀 한마디 하라요? 웃으며 하는 욕은 욕이 아니예요.》

백산이 어지간히 취한것을 보자 미영이 말했다. 부지런히 입을 놀리던 백산이 무슨 담벽이나 무너지는것을 막듯 두손을 쳐들었다.

《안돼, 방금전에 음식을 놓고는 성을 내면 안된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무슨 욕이요?》

《욕도 달게 받으면 명약이래요. 들어보라요.》

백산은 어느새 그에게 녹아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그는 자기가 그 무엇에 녹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는 미영의 말을 무조건 긍정하고 그가 끄는대로 끌려가고있다는것을 알았다. 그래 끌려가고있다. 이제 나는 모든것을 그가 하자는대로 하고야말것이다. 하고싶은대로 해보라지. 그때에는 또 그대로 응하고 말것이다.

《선봉장님은 사나이답지 못해요. 꽁하고 할 말도 못하고… 좀 대담하라요.》

백산은 잔을 들다말고 그를 쳐다보았다. 방금 욕을 하겠다던 말이 그저 해보는 말이려니 했더니 그런것이 아니였다. 그러니 혹시 속에 품었던 생각이라도 있었다는것이 아닌가.

《그건 무엇을 보고 하는 말이요?》

백산이 놀랍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야말로 그에게는 뜻밖이였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자기를 그렇게 보지 않았고 말한 사람도 없었다. 방금전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끌려갈것이라던 의식이 순간에 뒤집혀졌다.

《내가 꽁하다… 대담하라구?》

《그렇지 않구요. 왜 아버지한테 할 말을 못해요. 다른건 몰라도 군사야 거기서 더 잘 알지 않나요. 이제 그러다 작은 감정때문에 큰것을 잃게 돼요.》

백산은 다시 미영에게 똑바로 눈을 주었다. 항용 웃으려고 하던 그 영채도는 눈에 지금 수심이 어려있다. 진실로 백산을 위하려고 하는 순진하고 솔직한 심정이 슴배인 수심이다.

이번에는 백산이 이기지 못하고 먼저 눈을 내리깔았다. 리해가 갔던것이다.

《알만 하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오. 만약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대로 말을 하게 되면 아버지와 다투게 되고 항용 그렇게 다투게 되면 의병대는 망하게 되오.》

《하지만 이번만은 다르잖아요. 사람만 더 보태면 크게 이길수 있는것을 왜 말 안해요. 그러다 패하면 어쩔려구요?》

《아니, 이길거요. 내가 좀더 피를 흘리면 되오.》

《또 자기만 희생하겠다는거예요. 제 몸을 너무 학대하지 마세요.》

《그건 어쩔수 없소. 바랄것을 바라야 하는거요.》

《정 그러면 제가 아버지에게 이야기하겠어요. 저는 아버지를 누구보다 잘 알아요.》

《아니, 안되오. 절대로… 이건 미영을 위해서도 해서는 안될것이요.》

불시에 백산이 미영의 손을 잡았다, 금방 방에서 튀여나가는 그를 붙잡듯…

미영은 그것을 못 본듯 여전히 백산을 향했다.

《저를 위한다는건 무슨 말이예요?》

《미영이 언제인가 말했지, 미영과 아버지의 사이를 누구도 갈라놓지 못한다구. 나는 나때문에 미영과 아버지의 사이가 틀려지는것을 바라지 않소.》

《그러니 그때문에…》 미영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내리깔았다.

《한생 자기를 희생하며… 한몸 바치겠다는것인가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고민이 있는거요. 부모가 부모로 되는것은 자식에 대한 남다른 사랑때문이 아니겠소. 세상에 혈육처럼 가까운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내가 거기에 끼여들수는 없는거요.》

미영은 다시 눈을 들었다. 이 순간 그에게는 백산이 하늘처럼 높이 우러러보였다. 아니, 저 바다처럼 넓고 깊고 시원해보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그는 푸르러 설레이는 바다에 뛰여들어 마음껏 물장난을 치고 응석을 부리며 뛰놀고싶다. 또는 산악처럼 높고 바위처럼 억센 거기에 몸을 의지하고 마음껏 소리치고싶다.

정아, 이 가슴에 차고넘치는 정아, 네 갈곳이 어디냐. 매양 이 가슴에 고이고 쌓여 갈데를 몰라 일렁이며 뜨겁게 열병을 일으키던 그리운 정아, 이제 너는 진정 쏟칠 곳을 찾았다. 소리치며 흘러가 부딪치고 솟구치며 안겨들 그 품을 찾았다. 지금껏 마음속으로만 그리고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만 보던 그 품에 한껏 안겨들 때가 이제는 되지 않았느냐. 하면서도 그 모든것을 쏟칠수 없고 말로도 할수 없는것이 녀자다. 무엇으로 그것을 표현할수 있단 말인가.

그는 아직까지 자기를 놓지 않고있는 백산의 손우에 자기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거기에 방울진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선봉장님, 이번 싸움에 저를 데려가주어요.》

《미영씨가? 거긴 위험하오.》

《전장이야 늘 위험하지요. 하지만 우린 충주에서도 함께 싸우지 않았나요.》

《함께 싸웠지. 하지만 가흥은 충주와 다르오. 녀자들이 할 일은 없을거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인차 이어졌다. 진정을 바치는 마음에는 어디서건 할 일이 생기는 법이다.

《가흥을 차지하면 오래 있어야 한다지요. 그땐 제가 있어야 해요. 녀자들이 없으면 남자들은 인차 빈구석들을 드러내거던요. 그러면 싸움도 잘 안돼요.》

백산은 대답대신 미영을 잡은 손우에 또 자기 손을 올려놓았다. 미영이 그우에 얼굴을 묻었다. 뜨겁게 흐르는 눈물이 그의 손등을 적셨다. 그것이 흘러드는 피물인양 백산의 몸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제 그 피가 하나로 흐르면 어쩔수없이 한몸이 될것이다.

백산은 그것을 느꼈다. 마음은 이미 하나로 이어졌다. 이제 누가 그것을 갈라놓을수 있으랴. …

행복의 단맛은 불행의 쓴맛처럼 그렇게 강렬하지도 못하고 오래가지도 못한다. 백산은 지금 아직 이루지 못한 사랑의 구석에서 무엇인가 자기들을 지켜보는듯 한 불안을 느끼고있다. 이제 그 구석에서 무엇이 튀여나오겠는지 알겠는가. 옛말에 영화가 가득하면 편안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하면서도 그것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으로 맞잡은 손이 어쩌다 놓쳐질가 저저마다 꼭 그러쥐였다. 그우로 흘러내리는 눈물이 붉은 실띠마냥 그들의 손을 하나로 굳게 묶어놓고 풀어주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방에 들어섰다. 투박한 갖신, 휘늘어진 도포, 푸들푸들 떨리는 손…

《이년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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