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5

(1)

 

리씨는 진하게 달인 십전대보고를 약단지에 담았다. 방에는 그가 매일처럼 끓이고 졸인 약냄새로 차고넘쳤다.

《이 령감이 왜 안 돌아오누, 약이 떨어진지 오랠텐데…》

부엌에서 미영이 불을 때다가 리씨를 보며 방긋 웃었다.

《큰어머닌 꽤나 걱정두 많네. 오실 때가 되면 오시지 않으리요?》

《오실 때가 뭐니? 열흘이면 오마했는데 벌써 스무날이 다 돼온다. 내가 그만큼 약을 더 가져가라고 했는데 인차 오마하며 안 가져가더니…》

《오째아저씨가 따라가지 않았어요. 그 사람이 얼마나 깐깐하고 세심한지 몰라요. 그렇잖아도 제가 다 말해줬어요.》

《말이야 낸들 안했겠니. 하지만 남자들이란 데퉁스러워서 곁에 꼭 녀자가 있어야만 한단다. 녀자없는 남자는 한지에 앉은 애기와 같애, 에그야…》

리씨가 한숨을 쉬며 단지를 옮겨놓았다. 그렇게 달여놓은 약이 벌써 서너단지나 되였다.

부엌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영이 손을 입에 가져가며 소리없이 웃었다. 남자들이 그렇다면 녀자들은 다 저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나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그의 생각은 백산에게 가있었다. 그가 충주에 간다고 갔는데 사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마음이 자꾸만 거기로 쏠리고있는것이다.

《큰어머니, 약도 약이지만 기본은 무사히 돌아오는거예요. 남자들은 무엇을 해도 무서운걸 모르고 막 덤비니 그게 야단이지요.》

《됐다, 늙은이야 잘못되면 뭐라니. 너희들 젊은것들이 야단이지. 넌 선봉장이 걱정되지 않느냐?》

리씨가 말해서 생각은 아예 거기로 돌아가고말았다.

《걱정을 하면 뭘해요. 그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걸?》

《생각을 않다니. 네가 남자의 마음을 다 아니?》

《제가 다 말하지 않았어요, 그때 있었던 일을… 나같은건 돌아다보지도 않아요.》

《됐다, 그게 진짜사내다. 어떤 녀석들처럼 녀자라면 오금을 못쓰고 달려드는 그따위들은 해서 뭘하니. 선봉장이야말로 인물 잘나고 생각깊고 아는것도 많은 진짜배기사내다. 이제 령감이 돌아오면 너희들일에 더 성수가 나서 돌봐줄게다. 이제 두고보아라.》

미영은 한숨을 내쉬였다. 백산에 대한 말이 잦을수록 마음 한쪽구석에서는 근심이 더 커가는때문이였다. 이를테면 아버지가 더 극성스레 나서 반대를 하는것이였다. 큰아버지도 큰어머니도 좋다고 하는것을 아버지만은 여전히 반대하고있다. 비록 백산이 지금은 평민이요, 보통의병장이지만 이제 나라가 안정되면 린석이 나서 그를 장군, 대장군, 상장군으로 되도록 이끌어주겠다고 설복을 해도 아버지는 믿지 않았다. 그 믿지 않는데는 아버지대로의 론거가 있다. 나라는 설사 안정된다쳐도 그때에 가서 린석이 얼마만 한 일을 할수 있겠는지는 두고보아야 한다는것이다. 바로 그러한 생각들이 지금도 미영을 마음놓지 못하게 하며 깊은 한숨속에 잠기게 하는것이다.

미영이 바로 그런 시름에 잠겨있을 때 제천읍으로 난데없는 말달구지 세채가 들이닥쳤다. 매 달구지마다에는 쌀섬들이 그득그득 쌓여있는데 우여우여 소리치며 말을 몰아대는 주인들의 기세가 또한 볼만 하였다. 길가던 사람들은 물론 멀리 골목길에서 어물거리던 사람들까지 달려나와 웬일인가 구경삼아 모여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말들은 구경군들을 헤치며 곧바로 동헌으로 달려들었다. 말들이 멈춰서자 거기에서 김백산과 홍정식을 비롯한 선봉대원들이 내렸다.

떠드는 소리를 듣고 안승우가 달려나왔다. 뜻밖에 나타난 말과 그우에 가득가득 실린 쌀섬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게 어디서 난것들인가. 다 우리것인가?》

《로획했습니다. 가흥에서 충주로 실어가던것들인데 매복을 했다가 호송병들까지 다 죽이고 빼앗았습니다.…》

승우가 묻는 말에 백산이 대답했다.

그것은 뜻밖의 횡재였다. 그러나 그저 횡재라고 하기보다는 더 큰 전망이 앞에 놓여있었다.…

원래부터 가흥은 의병대가 노리고있던 공격목표였다. 하다가 이번에 충주로 렴탐을 나갔던 그들은 뜻밖에도 대위 와다나베가 수비대장으로 가흥에 나갔다는것을 알고 그리로 걸음을 돌렸다. 가뜩이나 가흥에 눈독을 들이고있던지라 그냥 돌아설수가 없었던것이다. 도중에 마차행렬을 만났다. 불시에 들이쳐 호위병들까지 체포하고나니 또 한가지 놀라운 소식이 알려졌다. 이 쌀인즉 가흥창의 나라곡식인데 와다나베란 놈이 빼내여다가 충주에 팔아넘기는것이라는것이였다. 바로 그 일을 중간에서 조종하고 거간하는 놈이 바로 왜놈장사군 야마무라놈이였다. 그놈이 마차를 대고 쌀을 인계받아서는 충주의 장사군들에게 넘겨주는것이였다.

《가흥을 쳐야겠네. 야마무라란 놈이 바로 거기에 있단 말이지?》

말을 듣고나서 안승우가 흥분해서 말하였다. 야마무라인즉 승우가 용서할수 없는 적이였다.

《와다나베란 놈도 있습니다. 그놈이 수비대장인데 역시 가만히 놓아둘수 없는 놈입니다.》

백산이 역시 흥분했다. 그것이 가흥공격이라는데로 두사람을 몰아갔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류린석대장도 말한바가 있었던것을 여직 준비가 잘 안되여 실행하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창의대장님이 도착하기 전에라도 우리끼리 해치우세. 그렇게 할수 있겠나?》

《할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상태로는 병력이 좀 딸릴것 같습니다.》

《내가 한초(구식군대의 구분단위. 백명이 한초이며 그 책임자를 초관이라고 한다.)의 병력을 떼여주지. 그만하면 되겠나?》

그것은 지금 백산의 부대에서 떼내간 인원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이였다. 말하자면 백산의 부대에 본래의 수자를 채워주겠다는것이다.

백산은 동의했다. 물론 그것은 가흥에 대한 렴탐을 구체적으로 해보고 그때에 가서 의논할 문제였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리하여 그는 다음날로 다시 떠나 가흥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알아가지고 돌아왔다. 역시 해볼만 한 일이였다.

가흥은 충주에서 30리, 제천에서 40여리 상거한 곳으로서 한강을 끼고 서울까지 260리 물길이 시작되는 첫 나루터가 있는 곳이다. 그만큼 여기에는 충청도의 전지역과 경상도의 십여개 고을의 식량이 모여드는 십수만석능력의 창고, 곧 가흥창이 있으며 또 륙로로 서울까지 이어지는 역참이 있다. 바로 이런 중요한 위치에 있는것으로 하여 왜놈들은 가흥에 수비대를 배치하고 창고와 나루, 역참을 밤낮으로 지키고있는것이다. 역참에만 해도 20여마리의 말과 마차가 서울로 통하고있으니 그럴만도 한것이다.

이것을 반대로 의병들의 켠에서 분석해보면 우선 십수만석에 달하는 창고를 손에 넣을수 있고 서울로 통하는 보급로를 끊을수 있으며 충주에 대한 포위환을 형성할수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놈들의 제천에 대한 포위를 역포위로 바꾸어 충주성의 뒤덜미를 쥘수 있다는것이다.

문제는 놈들도 그만큼 가흥의 중요성을 알기때문에 수비력량이 간단치 않다는것이다. 백산이 타산하건대 적어도 지금 력량의 곱은 되여야 가능할것 같았다. 그래서 승우에게 말을 비쳤더니 그는 처음과는 달리 어딘가 좀 소극적인 자세로 나왔다.

《선봉장, 가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제천을 위해서 필요한것이 아니겠나. 정 요구되면 내가 다시 생각은 해보겠네만 우선 지금 력량으로 공격해보게. 이건 내가 자네의 지략도 믿고 하는 말이니 가능한껏 노력을 해야지…》

하는수없었다. 있는 력량을 가지고 최대한 힘을 짜내는 수였다.

훈련을 강화하였다. 원래의 자기 부대 성원들만이래도 웬만할수 있었다. 그런데 본래의 근 3분의 1에 해당한 인원이 새로 들어오다나니 작전과 지휘가 곱절로 힘들었다. 밤에 낮을 이어 맹훈련을 거듭하고 가흥에 대한 정찰도 다시 조직하였다. 가흥공격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백산의 마음은 더욱 복잡하고 심란해졌다. 이렇게 해서 반드시 필승을 가할수 있을것인지.…

공격을 래일로 앞둔 날 그는 홀로 강변에 나갔다.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 그것이 무엇때문인지 딱히 찍어서 말을 할수 없었다. 하면 죄가 되고 가흥작전자체가 무산되고말것이기때문이였다. 그리고 백산이 자신도 너절한 인간으로 락인되고말것이다.

(과연 이래야만 하는가. 눈에 보이는 잘못을 두고도 말없이 참아야만 하는가.)

그는 하늘을 우러르며 생각하였다. 거기에 쪼각달이 떴다. 초저녁에 잠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상현달이다. 그 이지러진 달이 희미한 운무속에 겨우 자기를 드러내고 강변의 무성한 숲과 둥근 바위의 형체를 거무슥하게 그려주고있다.

발밑에서는 바위사이를 에돌며 흐르는 물이 쪼각달을 싣고 흥떡이며 무슨 타령을 부르고있다. 아무의 권한에도 속하지 않고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으며 제 마음대로 부르고 굴리는 저 흥타령…

그러나 지금 백산은 승우의 지위에 눌리워 할 말을 못하고있다. 단지 지위라고만 하겠는지. 백산의 우려에는 아랑곳없이 그저 공격을 해보라는 외마디만 따라외울뿐이다. 방금전에도 그랬다. 하다가 실패하면 해당한 대책을 세우겠다는것이다. 그런데 그 대책이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하면서도 공격을 하라는것은 백산을 되도록 먼곳으로 떠나보내자는것이다. 미영과 하루라도 가까이 있는것이 싫다는것이다. 바로 그런 목적도 있었기에 승우는 처음부터 백산의 가흥공격을 지지했고 부추기기도 했던것이 아닌지.

적어도 백산에게는 그렇게 생각된다. 그것이 여러 면에서 유리하고 조건에도 타당하기때문일것이다.

그렇지만 백산은 그 말을 할수가 없다. 말을 한댔자 오히려 그가 졸렬하고 치졸한 놈으로 몰릴수 있기때문이다.

생각이 이쯤되면 앞일은 뻔하다. 두가지 길이 있을수 있는데 하나는 죽기로 싸우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싸움을 포기하는것이다. 그러나 공격은 이미 단행된것이나 다름없다. 결심이 섰고 그에 따른 작전도 다 세워진것이다. 그렇게 싸우다 죽은들 무슨 한이 있겠는가.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자기 생각에 깊이 빠져들었던 백산은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는 놀랐다. 바로 뒤, 그와 아주 가까운 곳에 사람이 서있었던것이다.

《누구요?》 하는데 그가 더 바투 다가왔다.

《선봉장이 여기 있었구만. 왜 혼자 그러구 섰나?》

뜻밖에도 류린석대장의 부인이였다. 반가움과 함께 의혹이 뒤따랐다.

《대장님의 부인이 어떻게 여길 다 나오십니까?》

《자네 무슨 고민을 하고있는게구만. 속타는 일이라도 있는게지?》

《고민이라니요. 래일 싸움떠날 생각밖에 더 할게 있습니까.》

《그렇다고 혼자 외딴 곳에 나와있을 필요가 있나. 사람들과 휩쓸려야지.》

무엇인가 정답고 친절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하면서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왜 여기로 나왔는지 알수 없어 주밋주밋했다. 서로 알고는 있으면서도 이렇게 가까이 대하기는 이것이 처음인것이다.

《어서 들어가자구. 원, 사내꼽재기라는게 할 말이 있으면 앞에서 씨원히 할게지 외딴데 나와서 혼자 속을 썩이다니, 쯔쯧…》

《부인님, 제가 무슨… 속을 썩이다니요.》

《자기가 옳고 지당하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하는게 사내야. 대장부라는게 달래서 대장분가.》

여전히 영문을 알수 없었다. 그러는데 리씨가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가자구, 기다리는 사람이 있네.》

《기다린다구요, 누가 절…》

《하긴 누구나 다 젊었을 땐 그런 법이지, 할 말도 제대로 못하구 속으로 열병을 앓으면서. 지금말로 뭐라고 하더라. 그렇지, 사랑이라고 하지. 한창때는 누구나 다 그놈의 열병을 앓고야만다네. 그래야 사람이 돼.》

《부인님, 그건 무슨 말인가요. 제가 무슨… 어디로 간다는겁니까.》

《가세, 덩지 아깝게 놀지 말구.》

백산이 주저했으나 리씨는 기어코 그를 잡아끌었다.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리씨가 거처하는 객사였다. 곧 류린석대장의 부부가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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