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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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중은 부엌문 뙤창 할것없이 흰김이 뭉실뭉실 솟아나오는 한 귀틀막안으로 위중민을 안내하였다.
부엌에서는 백하일이가 위중민을 반가이 맞아들였다.
《오늘아침엔 저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시다. 유격구가 한창 궁한 때여서 무얼 대접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나때문에는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위중민은 조용히 손을 흔들어보였다.
부엌에서는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산뜻하게 차려입고 시원하게 머리를 틀어올린 멀쑥하게 생긴 녀자가 분주히 돌아가고있었다. 그는 현정부에서 식량관계 사무를 보다가 강시중이 현당서기로 올라오면서 현당으로 옮겨앉아 그의 시중을 들고있는 녀자였다.
부엌에서는 숙반대원들이 잡아온 노루를 통채로 껍질을 벗겨놓고 가슴팍의 살을 도려내여 불고기를 만드느라 연기를 피우면서 야단이였다.
이 집은 강시중의 집인데 그는 자기 안해와 아이들을 건넌집에 내쫓고 트레머리녀자를 불러들여 진수성찬을 차리고있었다.
음식이 준비될 동안 위중민은 흙두구리앞에서 몸을 쪼이면서 《구국신보》를 읽고있었다.
곧 음식상이 차려졌다.
위중민의 식성을 고려하여 그들은 모두 중국료리를 만들었다. 트레머리녀자가 상을 차리고 잔에 술을 부어놓았다. 《구국신보》를 접어놓고 상에 마주앉은 위중민은 사뭇 당황한 기색을 띠우고 백하일이와 강시중을 둘러보았다.
《나를 위해 이런 진수성찬을 마련했습니까. 수고한 동무들이 많이 드십시오.
나는 요즘 위탈이 생겨 이런 고기붙이들을 먹지 못합니다. 수고스러운대로 죽 한그릇 만들어줄수 없습니까?》
《아니, 죽을 드시다니요?》
강시중이가 넋없이 위중민을 지켜보았다.
《지금은 죽밖에 먹지 못합니다.》
《그게 진실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저희들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조금…》
강시중은 할수없이 상을 치우고 트레머리녀자에게 죽을 끓이게 하였다.
트레머리녀자는 좁쌀죽에다 산청을 타서 놋대접에 담아가지고 올라왔다. 위중민은 죽대접을 받았다.
《동무들이 나때문에 수고가 이만저만 아니군요. 앞으로는 절대로 이러지 마시오.》
위중민은 숟갈에 죽을 조금 떠서 맛을 보더니 트레머리녀자를 향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였다. 그는 세사람이 둘러앉아 지켜보는 가운데서 천천히 숟갈을 놀려 죽을 떴다.
《나는 반〈만생단〉투쟁과 관련하여 벌어지고있는 동만땅의 사태가 아주 복잡하고 심각한만큼 동만의 조선간부들인 당신들을 불러 의향을 들어보려던 참이였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동만에 있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80~90프로가 〈민생단〉에 가담하였거나 그 련루자들이라고 하는데 동무들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강시중은 그 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까치다리 선반에 올려놓은 배가 부른 가죽가방을 열고 커다란 서류뭉테기를 끄집어내였다.
《이건 뭡니까?》
위중민은 강시중이 내여미는 서류뭉테기를 받아 뒤적거렀다.
《〈민생단〉관계자들의 죄행을 적은 〈진술서〉, 〈조사서〉, 〈증거문건〉들입니다.》
《이 문건들은 차차 들추어보겠습니다. 그러니 먼저 동무들의 견해를 말해보시오. 어디까지나 대답은 신중하고 과학적이여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저희들은 책임적인 발언을 하고있습니다. 방금 위중민동지께서 말씀하신것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럼 백하일동무의 생각도 그렇습니까?》
위중민은 사뭇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강시중의 얼굴을 거쳐 백하일의 네모난 주걱턱을 지켜보았다.
《저라고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몇단계에 걸치는 자료확인사업과 간부들사이에서 복잡한 론의를 거쳐 얻어진 견해입니다.》
위중민은 다시한번 놀랐다. 이들은 자기들이 조선사람이라는 립장으로 봐서도 달리 말할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였다.
그들은 다르게 말하지 않았을뿐더러 한술 더 뜨려는 단호한 기상을 갖추고있었다. 정말 그렇단말인가? 그리고보면 사태는 여론그대로 험악한것이다.
위중민은 한손으로 턱을 고이고 손가락으로 책상모서리를 조용히 울리면서 깊이 숨을 몰아쉬였다. 동만에 조성된 정세가 진정으로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간도는
이때 밖에서 누군가 황급한 목소리로 백하일을 찾았다.
백하일은 뙤창을 열었다. 찾아온 사람은 숙반대원이였다. 뙤창밖에 상반신을 내밀고 숙반대원의 보고를 듣고있던 백하일은 창황히 신발을 주어신고 밖으로 뛰여나갔다.
백하일은 한동안이 지나서야 방으로 들어왔다.
《위중민동지, 큰일났습니다.》
《뭡니까?》
《
《그게 무슨 소립니까! 좀 차근차근 말해보시오.》
위중민은 이마살을 찌프리고 머리를 저었다.
《우리 숙반에서는말입니다. 요영구에서 야장일도 하고 사냥도 하는 리호검이라는 늙은이를 부락에서 내쫓았습니다. 그 원인은 뭣인가 하면 그
늙은이의 아들되는놈이 밀정질을 하다가 뒤가 드러나게 되니까
《아, 알만 합니다. 그 사람의 애인인가 하는 녀자가 지방공작을 나갔다가 적들에게 〈귀순〉했다지요?》
《위중민동지께서 어떻게 그걸 다 아십니까?》
백하일은 신기한듯 눈을 빛내이면서 뒤말을 이었다.
《바로 그 늙은이가
위중민의 눈에는 문득 가야하 얼음판을 까내고 물속에 수장했던 놋그릇들을 건져내던 녀인의 모습을 생각하였다. 살을 에이는것 같은 찬물에 성큼 들어가 놋그릇들을 주어내며 적의에 찬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던 녀인의 날카롭고도 의젓한 눈빛과 모닥불두리에 앉아 몸을 녹일 때의 그 숫부드러운 얼굴이 한데 겹싸여 똑똑히 바라보였다.
《그래 수술은 어떤 방법으로 하는것이 옳겠다고 생각합니까?》
《솔직히 말씀드려서
《알겠습니다. 동무들의 생각을 알만합니다. 그러나
나도 간고한 혁명투쟁을 거쳐 획득한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업에서는 한가지 큰 골치거리가 제기되고있습니다. 지금 근거지안에는 원정부대가 돌아오자
백하일이와 강시중은 위중민의 말에 고무를 받은듯이 아첨기를 보이며 기세를 돋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