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 회)

제 10 장

2

(1)

 

회색외투를 어깨우에 기다랗게 걸치고 팔짱을 낀 한사람이 눈덮인 가야하기슭을 거닐고있었다. 그는 위중민이였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하관이 좁으며 눈섭이 진한 그는 인테리풍의 수그러운 외양을 갖추고있었는데 얼굴에는 병색이 돌았다.

위중민은 거죽이 얼어붙은 눈을 뿌적뿌적 밟아대면서 가야하의 상류로 거슬러오르고있었는데 골바람이 불어내릴 때마다 바람을 피해 얼굴을 돌리고 가쁜숨을 쉬였다.

밤새 사람들속에서 시달리고난 머리를 쉬우려고 산책을 나온것인데 계절이 계절인것만큼 새벽의 소풍이란 연연약질의 위중민에게는 자못 오한을 느끼게 하였다.

낮에 얼음을 까고 아낙네들이 둘러앉아 빨래망치를 두드리던 물구멍은 밤새 얼어붙어 흰눈속에 둥그런 얼음강판이 거울처럼 번들거리고 언손을 녹이느라 지폈던 모닥불두리에는 굶주린 승냥이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빨래터에서 조금 떨어진 강바닥에서는 한 녀인이 도끼로 얼음을 까고있었다. 녀인이 도끼로 얼음판을 내리찍을 때마다 얼음쪼각들이 부서져 위중민이 걷고있는 강기슭에까지 우수수 날아와 떨어졌다.

위중민은 녀인이 까제낀 얼음구멍을 호기심에 넘쳐 바라보았다. 그것은 빨래를 두드리는 작은 구멍이 아니라 사방 대여섯자정도의 큰 물구멍이였다. 녀인은 물우에 떠오른 얼음쪼각을 도끼등으로 밀어제끼고 물속을 들여다보면서 이쪽저쪽으로 구멍을 넓혀나가는것이였다.

위중민이 얼음구멍옆으로 다가갔을 때에는 녀인은 벌써 신발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고있었다. 위중민은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끼쳐 부르르 오한을 떨었다. 그는 녀인이 하는양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물은 깊지 않아 치마자락을 걷어올린 무릎마디까지 차올랐다. 녀인은 물속에 손을 넣어 휘젓더니 시누런 놋양푼 하나를 들어올렸다.

그다음 놋주발, 놋제기, 놋초대를 차례로 들어내고 다시금 발끝으로 바닥을 더듬어나갔다.

위중민은 하도 신기한 일이여서 녀인더러 이게 무슨 그릇들인데 강물속에서 건져내느냐고 물었다. 녀인은 힐끗 고개를 돌려 위중민을 쳐다보았다.

녀인의 눈에는 한순간 당황함이 어리더니 차츰 랭철하게 경계하는 빛이 떠올랐다. 녀인의 눈은 위중민의 회색빛 외투며 범가죽털모자를 더듬고나서 호기심이 어린 그의 얼굴에 활촉같이 날아와 박혔다.

녀인은 입술을 감쳐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위중민은 뿌옇게 얼음이 앉기 시작하는 놋그릇들을 만져보면서 슬밋슬밋 녀인을 살펴보았다. 신기한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녀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떡떡 이를 맞쫏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중민은 녀인이 물속에서 나오면 몸이라도 녹일수 있게 모닥불을 피워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강기슭을 뛰여다니며 눈속에 박힌 썩정가지들을 주어모아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모닥불연기를 보자 녀인의 눈은 저으기 부드러워졌다. 녀인은 새파랗게 언 입술을 간신히 놀려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다.

《어서 물속에서 나와 몸을 쪼이시오. 어서요.》

위중민은 녀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으려나 하여 겁질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녀인은 간신히 입을 놀리면서 위중민이 내여민 손을 잡고 물속에서 나왔다. 위중민은 오금이 얼어들어 겨우 발을 옮기는 녀인을 부축하여 불무지앞에 앉혔다. 젖은 치마로 다리를 가리우고 불무지에 마주앉은 녀인은 온몸을 화들화들 떨면서 불무지에 온몸을 내던지듯 상반신을 기울였다.

위중민은 불무지를 더 크게 살리려고 분주히 뛰여다니며 썩정가지를 주어모았다. 얼마나 바삐 몸을 놀렸는지 귀밑으로 땀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녀인은 감사에 넘친 존경의 눈으로 위중민을 지켜보고있었다. 이 녀인은 다름아닌 송혜정의 어머니였다. 혜정의 어머니는 처음에 회색외투를 걸치고 선 이 신사풍의 사나이가 숙반에서 나온 사람이 아닌가 하여 독을 품고 경계하였는데 수고스레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여주는것을 보니 해를 입힐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크게 불무지를 일구어놓은 위중민은 범가죽털모자를 벗고 땀을 훔치면서 다가오더니 눈우에 외투를 깔고 앉았다.

《몸이 좀 녹았습니까. 이 추운날에 강물속에 들어가다니요!》

위중민은 아직도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있는 녀인을 굽어보면서 무랍없이 말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이제는 종다리가 좀 훈훈해지는것 같아요. 좋은 선생님을 만나 생각지 않던 덕을 입는군요.》

《덕이랄게 없지요. 나는 산책을 나왔다가 얼음구멍을 까고 물속에 들어가는 아주머니를 보고 저윽 놀랐는데 물속에서 놋그릇들을 들어올리는걸 보자 한결 더 놀랐더랬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거든요. 강물속에서 놋그릇들을 집어내다니.》

위중민의 눈에는 다시금 끌수 없는 호기심이 떠올랐다.

《참 뭐라고 말해야 할는지…》

녀인은 숫부드러운 눈에 생각에 잠긴 은근한 미소를 그리며 위중민을 마주보았다.

장군님께서 북만원정을 떠나신 후에 우리는 숙반사람들한테서 모질게도 들볶였댔어요. 우리 딸애는 지방공작을 나가 그새 잘 싸웠더랬는데 무슨 감투끈인지 그 애가 놈들에게 〈귀순〉했다고 하면서 〈귀순〉자의 에미라고 마구 학대하지 않겠나요.》

위중민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인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게다가 장군님을 찾아 북만에 간 우리 사위더러는 도주자라고 하지 않나, 막내딸은 헌병대와 내통이 있는 밀정이니, 도주자의 방조자니 하면서 숙반감옥에 잡아가두고 집안팎을 발칵 뒤지며 가택수색을 하는판이여요. 이 놋그릇들을 보고는 또 이것이 밀정질을 한 공로로 놈들에게서 받은 상이라고 강박을 들이대는 형편이예요. 우리는 생각다 못해 이 놋그릇때문에도 큰 화단이 생길것 같아 물속에 던져버리고말았습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숙반의 학대가 좀 풀렸습니까?》

위중민은 타고있는 불가지를 녀인앞에 밀어놓으며 한발가까이 다가앉았다.

《풀리기야 뭐가 풀렸겠어요.》

《그런데는 왜 갑자기 얼음을 까고 놋그릇들을 끄집어내는겁니까? 그러다가 숙반의 눈에 덧나기라도 하면 어찌겠습니까?》

《이제는 걱정이 없어요. 김일성장군님께서 근거지로 오시지 않았나요. 징군님께서 계시지 않으니까 우리가 학대를 받았지 이제는 함부로 어쩌지 못해요. 게다가 우리도 예전처럼 죽어살지는 않을테니까요. 꺾는대로 호락호락 잡아꺾이우지는 않는단말이지요. 못그래요.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못다쳐요!》

녀인의 얼굴에는 단호한 결기가 어려 잔주름이 얽힌 눈가장이 불깃불깃해졌다.

행길로 한사람이 달려왔다. 그는 이쪽을 줄곧 지켜보더니 《거기 계신분이 위중민동지가 아니십니까?》 하고 소리쳤다.

그는 현당서기 강시중이였다.

위중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튼 별고가 없기를 바랍니다. 몸을 훈훈히 녹이십시오.》

위중민은 행길을 향해 걸어나갔다. 강시중은 모자를 벗고 정중히 허리를 굽힌다.

《밤새 안녕하십니까?》

《예, 현당서기동무는 밤새 무고하셨습니까?》

위중민은 깍듯이 고개를 숙여 례의를 차리고 행길우에 올라서서 발에 묻은 눈을 털었다.

《저기 앉아있는 녀인이 뭘하고있습니까?》

강시중은 목을 빼들고 강기슭을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기웃거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곳 요영구에서 지방공작을 나갔다가 적들에게 〈귀순〉했다는 녀자가 있습니까?》

《예, 송혜정이라고… 한때는 김일성동지의 신임까지 받던 녀자인데 놈들에게 〈귀순〉해갔습니다.》

《무슨 똑똑한 자료라도 있습니까?》

《놈들의 신문에 〈귀순〉자의 사진과 함께 그의 경력이 실렸더랬습니다. 아마 백하일동지에게 신문이 보관되여있을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김일성동지를 찾아 북만으로 간다고 하면서 부락에서 없어진 사람이 있습니까?》

《있지요. 그게 유천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자가 송혜정의 남편될놈입니다. 말로야 김일성동지를 찾아 북만으로 간다고 했지만 실은 꼬리가 들장나니까 도망을 뺀겁니다. 그자는 식량수송대책임을 지고나갔다가 놈들에게 길목을 대주어 식량전부를 빼앗기고 인명피해까지 보게 했습니다. 그놈은 이미전에 체포했어야 하는건데 최춘국동무가 저애를 놀아서 시간을 끌다나니 눈치채고 도망을 쳤습니다.》

위중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뿐 별반향이 없이 강시중의 말을 듣기만하였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