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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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께서 북만으로 떠나실 때는 외양간벽에 피들이 새빨간 노루가죽 한장이 걸려있었는데 지금은 가죽에 박아놓았던 기름묻은 못대가리만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그토록 탐탁하고 기름이 돌던 집안팎이 일조에 폭풍을 만난 집같이 어수선해졌다.

장군님께서는 마냥 쓰려오는 가슴을 누를길 없으시여 재간모퉁이를 그냥 왔다갔다하시였다.

김택근소대장이 뛰여나와 뜰안의 여기저기를 살피며 돌아갔다.

장군님, 땀난 몸에 찬바람을 맞지 마시구 방안으로 들어가십시다. 방안이 막 후끈후끈합니다.》

《김택근동무, 이 뜰안의 어수선한 광경을 바라보고있으려니 추운줄도 모르겠소. 이 엄동설한에 빈몸으로 내쫓긴 리호검로인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지는것 같소. 하루이틀내로 로인이 돌아오지 않으면 요영구밖에도 사람을 띄우고 북만에도 우리 동무들을 보내야겠소. 혹시 나를 찾아 녕안으로 떠나갔는지 모르겠소.》

《알겠습니다. 장군님 말씀대로 사람들을 띄워 꼭 찾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삽짝을 젖히고 한흥권중대장이 헐떡거리며 뛰여들어왔다.

장군님께서는 한흥권을 향해 마당으로 바삐 걸어나오시였다.

장군님, 백두산쪽에 나갔던 송명준동무가 근거지에 들어왔습니다.》

《송명준동무가?… 잘됐소. 마침 통신원을 띄워서라도 새 과업을 주려던 참인데 본인이 나타났으니 아주 잘된셈이요. 그런대 왜 송명준동무는 오지 않고 동무만 나타났소?》

《송명준동무는 대북구와 소북구사이의 방어전연까지 들어오고는 그이상 더 오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건 왜 무슨 일이 생겼소?》

《아마 방어전연에 나갔던 백하일동무와 현당서기 강시중동무를 만난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통해서 송혜정동무와 리유천동무들의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이 송명준동무를 향해 말하기를 지금 유격대가 근거지보위를 똑똑하게 할 생각을 않고 자꾸 근거지밖으로 나가 적을 치자는 구호를 들고돌아가는데 이것은 사실상 유격구를 줴버리고 백두산쪽에 나가 조선혁명이나 하려는 민족주의라고 하면서 이런 문제때문에 조선혁명가들을 검토하고있는데 송명준도 검토받을 준비를 하라고 을러멨다고 합니다. 그래서 송명준동무는 자기가 근거지에 들어오면 우리에게 불리한 일이 있을것 같아 망설이고있다고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한숨을 내쉬시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 사람들이 그러고 돌아간단말이지. 송명준동무더러 즉시 나한테 오라고 하오. 내가 밤을 밝혀 기다린다고 일러주오.》

한흥권을 보내고난 장군님께서는 대원들이 지어올리는 저녁진지도 드시지 않으시고 송명준을 기다리고계시였다.

자정이 훨씬 지난 깊은 밤중에야 송명준이 한흥권이와 함께 장군님앞에 나타났다. 보통 산판벌목군의 차림새와 같이 토스레바지저고리에 역시 토스레로 지은 긴 덧저고리를 허벅다리아래로 드리우게 입고 다리에 행전을 둘러친 송명준은 스물다섯살의 팔팔한 젊은이였지만 얼핏 보면 중년기에 이른 사람과도 같이 숙성하게 느껴졌다.

장군님께서는 송명준의 손을 뜨겁게 잡아 더운 아래목에 앉히시였다.

《그새 몸들은 어떻소? 앓는 동무들은 없었소?》

《모두들 건강하게 잘 싸우고있습니다.》

《다행이요. 나는 북만원정기간에도 동무들때문에 늘 걱정을 놓지 못했더랬소. 그새 내내 지형료해를 했었소?》

《예, 국경연안으로는 무송현과 장백현일대의 산발들을 밟아보고 국경너머에서는 소백산일대의 원시림속을 누비고 다녔댔습니다. 그곳 지방조직동무들의 방조가 컸습니다.》

《사업료해는 차차 하기로 합시다. 그런데는 왜 근거지에 왔으면 곧장 나를 찾아올것이지 중도에서 물러앉아 망설이는거요?》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나무람을 하시면서 자못 섭섭해하시였다.

송명준은 한번 고개를 들고 장군님을 쳐다보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사실 근거지에 들어오자마자 저의 누이동생에 대한 험한 소리가 떠도는데다 매부될 사람은 숙반감옥에 잡혔다가 적에게 도주했다는 소리가 있어 눈앞이 캄캄했더랬습니다. 이런 가위에 강시중이와 백하일이가…》

《송명준동무, 세상사람이 다 무어라 하던 자기 누이동생에 대해서야 누구보다 동무가 굳게 믿어야 할 사람이 아닌가? 리유천동무에 대해서도 그렇지. 그를 반혁명분자로 락인하고드는것은 죄악이요. 나는 송혜정동무나 리유천동무들에 대해 믿고 또 믿는다고 한두번만 말한게 아니요.》

송명준은 깊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아무 말도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사뭇 부산해지는 마음을 달래시듯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동무를 향해 유격대가 유격구보위를 중시하지 않구 적구로 나가겠다는것은 결국 근거지를 내던지구 백두산쪽에 나가 조선혁명이나 하자는 민족주의라구 했다는데 그걸 왜 불이 번쩍나게 답새기지 않고 듣고만 있었소.

내가 오늘 위중민동지를 보고도 나의 견해를 명백히 말했지만 고정된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로 나가 혁명운동을 앙양시켜나가는것은 미룰수 없는 시대적요구요. 우리는 누가 뭐라든 유격구를 터치고 넓은 지역에 나가야 하며 장차로는 백두산쪽에 나가 조선혁명을 해야 하오. 그래 이게 어쨌단말이요. 지금 숙반에서는 유격대병실에 써붙인 〈조선혁명승리 만세!〉 구호도 민족주의구호라고 모조리 돌아가며 떼버렸는데 내가 그걸 다시 찾아다 걸라고 일렀소. 이것이 도대체 민족주의로 되는 근거가 무언가? 이게 어째서 민족주의표방으로 되는가말이요?》

장군님, 저는 그 사람들이 위중민이라는 바로 그 중국인 간부가 나와서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을 주장하고있는데 대해 문제를 세워 따질것이라고 하기에 복잡한 생각을 가졌더랬습니다.》

《물론 동만의 사태가 하도 복잡하기때문에 위중민이 근거지에 와서 〈반민생단〉투쟁실태를 료해하고있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립장과 우리의 주장에는 달라질것이라고 아무것도 없소. 우리가 조선혁명을 안하고 조선을 잊어버리고 살바에야 무엇때문에 수년세월을 만주의 광야에서 이 고생을 하겠는가. 우리는 일제침략자들의 발굽밑에 신음하고있는 2천만겨레의 슬픔을 가시고저 손에 총을 들고 일어선 조선의 혁명가들이요. 지금 공산주의대렬속에 끼여든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주의자들이 조선혁명가들의 신성한 자주적권리를 짓밟으며 박해하려들지만 어림도 없소. 매개 나라 공산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자기 나라 혁명을 잘해야 하오. 자기 나라 혁명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은 세계혁명에도 충실할수 없으며 진정한 국제주의자로 될수 없는거요.

나는 장차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국경지대에 진출시키는것과 관련하여 백두산쪽에 나가있는 송명준동무에게 소부대들을 계속 파견할 결심을 가지고있소.

우리는 백두산일대에 근거지를 꾸리고 이 근거지에 의거하여 국경일대와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비롯한 전반적인 조선혁명을 줄기차게 앙양시켜나가야 하오. 그러자면 국경연안에서 놈들의 세력을 제압하고 인민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키기 위한 무장소조활동을 벌려야 하오. 송명준동무는 이번에 소부대를 데리고나가 무송과 장백일대에서 새로운 밀영형태의 근거지를 창설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잘해나가야겠소.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래일로 미룹시다. 이제는 밤이 퍽 깊었지. 아마 새날이 오래지 않을거요. 동무들이 오면 같이 들자고 저녁밥을 먹지 않았소. 같이 듭시다. 큰상을 펴놓고 다들 둘러앉읍시다.》

그때까지 장군님의 저녁진지를 가마안에 앉혀놓고 군불질을 하고있던 김택근은 재빠르게 상을 차렸다.

장군님을 모시고 한흥권, 송명준, 김택근, 조왈남이 둘러앉아 숟갈을 들었다. 송명준이도 장군님께서 들려주시는 숟갈을 받아들었으나 끝없이 솟구쳐오르는 가슴속의 흥분을 누를길이 없어 소리없이 두눈만 슴벅거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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