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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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님이 가시려고 합니까. 안됩니다. 차라리 선봉장을 보내십시오. 대장님이 여기를 떠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수 없습니다.》
안승우가 말했다. 린석은 입을 지그시 다물고 그가 하는 말을 듣고있었다.
그것은 승우가 만사를 제껴놓고 단둘이 마련한 자리다. 할말은 해야 하겠기에 기어코 마주앉았다.
《아니, 거기는 내가 가야 해. 내가 가야만 될수 있는 일이야.》
《하지만 대장님은 선봉장을 누구보다 믿지 않습니까. 대장님이 하는 일이면 그도 다 할수 있다고 보지요. 그런데 왜 안된다는것입니까?》
승우가 고집스레 되풀이했다.
린석은 속이 탔다. 당장 출발을 앞두고 이런 일이 제기될줄은 몰랐다. 그것은 생억지와도 같은것이였다.
지금 린석은 전라도와 경상도일대를 다녀오려 하고있다. 그곳에서 예상치 않던 일이 벌어졌던것이다.
먼저 리린영이 소식을 보내왔다. 그에 의하면 그렇지 않아도 소백산 깊은 골짜기로 밀려난 그들에 대고 선유사가 사람을 보내여 당장 의병을 해산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왔다. 리강년한테서는 자기가 병고로 오래동안 절에 들어가있는 동안 의병들이 봄철농사요, 집안사정이요 하면서 흩어져갈 생각을 하고있다고 했다. 안동에 나가있는 리범직과 리직신이들도 그와 비슷한 사정을 말하며 의병들을 해산할 의향을 보내왔다.
그것이 린석을 격분케 했다. 우리가 의병을 일으킨지가 언제인데 그때 피물인듯 뜨거운 술을 마시며 끝까지 싸우기로 맹세한 남아들이 그만한 일에 맥없이 손을 털고 물러난단 말인가.
그리하여 떠날 차비를 서둘렀다. 당장 행장을 갖추고 자기가 없는 사이에 해야 할 일들을 신칙하고있는데 승우가 문득 들고나온것이다.
《선봉장은 왜 걸고드나. 그가 내 일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대장님의 행차에 그가 필요할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미영이와의 관계도 그렇고… 차라리 이번 기회에 그들을 따로 갈라놓았으면 합니다.》
린석은 어이없이 승우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백산과 미영이 함께 절간에 갔다온데 대한 불만이였다. 사람들속에서 두 젊은 남녀가 인적없는 산중에서 함께 밤을 새웠다는데 대한 소문이 돌고있는것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둘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것은 누구나 다 알고있고 승우도 인정하는바였다. 반면에 그들의 수고로 다량의 화약원료가 생겨난데 대한 환성이 터졌다. 그들의 그만 한 대담성이 있었기에 큰일을 치게 되였다는 칭송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지금 승우는 그것을 걸고 린석의 발목을 붙잡는것이다.
《중군장, 그렇게 해서 왜놈을 더 많이 잡게 되였으면 좋지 뭐가 잘못된게 있나. 속통을 좀 크게 가지라구.》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또 떡은 떼고 말은 보탠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 애의 뒤에 흉흉한 소문이 따라다니는것을 참을수 없습니다.》
《승우, 정 이럴터인가?》
갑자기 린석이 그의 이름을 자로 부르며 주먹으로 서안을 탕 내리쳤다.
《우리의 주되는 적은 왜놈이야. 왜놈과 싸우자고 일어난 이상 모두가 힘을 합쳐 하나가 되여야지 저마다 제 리나는 일만 찾아할터인가. 내가 보건대 그들에게도 뜻이 있고 생각이 있는것이 분명하니 다시는 간참을 말고 걱정도 말며 가만히 내버려두게.》
소리를 지르고 쏘아보는 눈이 쇠꼬치처럼 날카로웠다. 그 위압에 눌리워 승우가 눈만 꺼벅이고있는 사이에 린석은 밖으로 나왔다. 벌써 떠날 차비를 끝낸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고있는것이였다.
그가 문을 나서니 바로 가까이에 미영이 서있었다. 금방 안에서 있었던 일을 다 알고있는듯 반짝이는 눈으로 고마움의 뜻을 표시했다. 그것이 격했던 그의 심정을 누그러들게 했다.
《미영아, 난 너의 립장을 지지한다. 큰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큰 마음이 필요한것이다. 네 생각대로 하여라.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너무 버릇없이 굴어선 안된다.》
《큰아버지, 빨리 오셔야 해요. 그리고 절대 몸이 성하셔야 합니다. 큰
린석은 그렇게 하고 미영과 헤여졌다. 그뿐만아니라 전부대 사람들이 떨쳐나와 그들을 바래주었다. 그 많은 사람들속에서 어째서인지 미영의 모습만은 유표하게 눈에 띄우며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린석이 스스로 택한 고행길이라고 할수 있었다. 선봉대에서 백명 기타 다른 부대들에서 선발된 도합 이백여명의 큰 부대가 백주에 대도로를 따라 고을과 고을, 도와 도의 지경을 넘어서며 도도히 행군해가는것이였다. 제천을 떠나 단양, 영주를 지나고 문경지경에 이를 때까지 별로 큰 접전이나 예상치 않던 긴박한 정황들이 조성되지는 않았다. 그들과 마주친 웬만한 고을의 군노 사령들은 물론 사또들까지 일체 접전을 피하고 물러갔다. 그러나 어쩌다 마주친 왜놈의 소부대나 관군부대와는 접전을 피할수 없었다. 그러다나니 어쩔수없이 전사자들과 부상자들이 나타나군 했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보다 더 어려운것은 불리한 일기조건이였다. 한창 시작된 눈석이로 하여 사방 어디나 물이 차고넘치는데다 날씨는 련일 찌뿌둥해있었다. 갈길은 수백리 먼데 땅은 끝없이 질적거리고 습한 안개가 산과 골짜기를 끊임없이 에돌고있었다. 그것이 가뜩이나 건강이 좋지 못한 린석을 극도로 쇠약하게 했다.
부대의 군사적책임은 백산이 선발해준 오째가 맡았다. 그가 린석의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말을 갈아대고 사람들도 붙여주었으나 크게 효과가 없었다. 전반적으로 태백산줄기의 험한 산속길에 말을 얼마 탈수도 없는데다 사람들이 부축을 해준다 해도 워낙 진창길이여서 아래도리는 노상 젖어있어야 했다. 그것이 가뜩이나 각기병으로 신고하는 린석의 팔다리를 더욱 못쓰게 만들었다.
이렇게 간난신고를 하여 리린영을 찾아냈을 때 그는 소문처럼 문경고개를 내놓고 소백산속의 어느 한 골짜기에 숨어서 린석에게서 소식이 오기만 기다리고있었다.
그것이 린석을 참을수 없게 하였다. 이렇게 하는것이 왜적과 싸우자고 맹세를 다졌던 우리의 자세였던가. 사나이 한번 맹세를 다졌으면 죽기로 싸워야지 이게 무슨 꼴인가.
불호령을 내리고는 다음날로 전부대를 이끌고나가 문경고을을 들이치고 리화령을 다시 차지했다. 거기에 얼마간의 병력을 떼주고 이번에는 례천에 있다는 리강년을 찾아갔다. 그런데 누구에게 물어도 리강년이란 사람은 알아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의병을 일으켜 례천고을을 차지해본적이 없다는것이였다.
가까스로 어느 절간에서 병중인 그를 찾아냈다. 그사이 몸은 많이 호전되였다고 한다. 놀라운것은 그의 유격부대라고 하는것이 겨우 몇십명밖에 안되는 기마대가 전부인것이였다. 알고보니 그의 유격싸움이라는것이 도처로 말을 타고다니며 적의 기지를 들이치고는 번개같이 사라지는것이 전부였다. 이를테면 일정한 지역을 차지하고 싸움으로 그 영향을 넓혀나갈데 대한 애초의 의논대로 하지 않고있는것이였다.
거기에 또 화가 치민 린석은 다시 전부대를 이끌고 전투를 조직하여 례천고을을 차지했다. 거기에 또 얼마간의 사람들을 떼여주고 이번에는 리범직이 차지하고있던 안동고을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안동고을이 눈에 보이지 않는것이였다. 분명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것이다.
고을이 모조리 불에 탔다. 읍거리에 즐비하던 동헌이나 객사, 다락과 정자들, 창고들은 말할것 없고 수백호 민가가 모조리 불에 타서 재더미가 되고만것이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였다. 린석이 알기에는 범직이 도착하는 길로 곧안동읍을 차지하고 싸움은 물론 정사도 괜찮게 펴고있다는것으로 알고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찾아보았으나 리범직도 간 곳이 없었고 그의 의병부대도 행적이 없었다.
원인은 얼마후 주변사람들을 만나보아서야 알수 있었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리범직이 싸움을 잘한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런데 얼마전에 선유사라는 사람이 내려와 왕의 어지라고 하면서 의병투쟁을 그만둘것을 설유하였다. 그때에 안동에는 범직과 함께 리직신이도 와있었고 다른 주변에서도 모여와있어 의병수만 해도 4만이 넘었다. 그런데 범직이 왕의 어지라는 말 한마디에 넘어가 투쟁을 포기하고 의병들을 전부 해산해버리고말았다.
그런데 그것이 그토록 치명적인 혹심한 후과를 초래하게 될줄이야. 의병들이 흩어지자마자 쫓겨났던 수많은 왜놈 순검들과 병졸들이 다시 들어와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잡아가고 온 읍거리를 초토화해버렸다. 놈들의 보복에 걸리여 순간에 고을을 날려버리고 사람들까지 잃어버렸던것이다. 그통에 리범직이와 리직신이도 놈들에게 붙잡힌 몸이 되고말았다.
아아,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범직이, 직신이, 너희들이 놈들의 본심을 몰라서 읍을 내놓고 의병들까지 해산한단 말이냐. 죽더라도 왜놈들과 끝까지 싸우자고 맹세를 다진 우리가 아니였더냐. 아, 내가 조금만 더 일찌기 왔더라도 이런 참극이 빚어지지 않았을것을…
복수의 피가 끓었다. 어떻게 하면 이 원한을 다 풀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때에 이르러 그 원한마저도 풀길이 없게 되였다. 제천에서 리필희에게서 소식이 왔던것이다. 만사를 제쳐놓고서라도 빨리 돌아오라는것이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그것이 또한 린석을 불안하게 하였다. 게다가 몸은 더 병약해져서 이제는 혼자 운신할수도 없게 되였다. 다음부터 모든 일은 오째에게 맡긴채 제천을 향하여 귀환길에 오르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