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3

(1)

 

리씨가 약탕관을 준비하고있는 앞에 미영이 마주앉았다.

《큰어머니, 남자들은 다 그런가요. 왜 그리 뚝해요. 꼭 성난 사람처럼…》

리씨는 일을 하다말고 미영을 마주보았다.

《내니 아니. 나두 한평생 한 남자밖에 섬겨보지 못했으니 알수가 있어야지.》

《아니, 다 그런것 같지는 않아요. 큰아버지만 해도 그 사람하고는 같지 않지 않아요.》

《그 사람이란 누구? 선봉장 말이냐?》

《선봉장인지 망두석인지 그 뚝쟁이 있지 않아요. 음, 어쩌면 그리두 속이 빼빼 말랐을가.》

《왜, 널 보구 좋아하지 않던?》

《좋아는커녕 한번 웃기라도 했으면. 노상있지요 이렇게 하고 눈만 희뜩희뜩 좌우를 둘러보며 다니거던요. 원, 어디서…》

미영이 고개를 숙이고 좌우로 큰 눈을 굴리며 살피는 모양을 흉내내며 소리내여 웃었다. 그 모양이 하도 신통하여 리씨도 따라웃었다.

《그 사람이 너를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사내들은 제가 마음에 있어하는 녀자앞에서는 우정 말도 안하고 희뜩이며 잘난척 한다더라.》

《잘난척이요? 아이구, 제가 뭐가 잘난게 있다구. 꼴두 보기 싫은데.》

《네가 그 총각한테 아예 반했구나. 하긴 그런 남자면 반할만도 하지. 나같애두 한창나이라면 꼬리를 붙들고 따라다니겠다.》

《큰어머니적에도 그랬나요? 녀자가 먼저 남자를 따라다녀도 돼요?》

《에구, 무슨 소릴. 우리적에야 머릴 들구 남자얼굴을 쳐다나 봤니? 문밖에 한발자국을 나가재두 장옷을 쓰구 땅이나 겨우 보이게 눈을 내놓고 살얼음장 건느듯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하긴 지금도 그래요. 녀자들이 말이나 마음대로 할수 있어요? 더구나 량반집 딸년들은… 난 왜 량반집 규수로 태여났는지 몰라요.》

《왜 량반집 딸이 어쨌니?》

《량반집에서는 그것이 더하거던요. 우리 집만 보아도 아버진 저를 옴짝 못하게 하잖아요.》

《미영아, 너 선봉장이 마음에 있어 그러지?》

문득 리씨가 물었다. 제 생각에만 옴했던 미영은 대답대신 큰 눈만 껌벅이였다.

《나두 그걸 안다. 큰아버지두 알고있구. 하면서도 그걸 풀지 못해 근심이구나. 우리끼리 말을 하고 네 아버지에게 의논을 건네보아두 어디 뜻대로 되냐?》

그때에도 미영은 대답을 안했다. 역시 알고있고 그 이상도 짐작하고있는 미영이였던것이다.

하다가 문득 리씨에게 물었다.

《큰어머니, 한집안의 일이 되고 안되는것이 누구에게 달렸나요. 남자인가요, 녀자인가요?》

《그건 왜? 거야 사람마다 다르고 집집마다 다른데 한마디로 말할수 있겠니.》

《그래두 때에 따라 녀자들에게 달렸다 해도 틀리진 않지요?》

《녀자? 글쎄 모르겠다. 난 평생 한 남자의 뒤바라지나 해주다 말았으니…》

《그게 녀자들의 의무이고 직분이 아닌가요. 그래서 큰아버님이 유생의 거두가 되고 의병장이 된것이죠. 말하자면 큰어머님의 공로로 큰아버지도 큰 인물이 된거예요.》

《그럴가? 글쎄 그렇게 보면 그런것 같기도 하구.》

《큰어머닌 자신을 장히 여기세요. 이제 큰아버지가 더 큰 인물이 되면 큰어머님을 막 업고다닐거예요.》

미영이 이렇게 말해서 방안에는 활짝 웃음이 피여났다. 평생 남편에게 짓눌리워 살면서 그저 못난이라고만 생각했던 자기가 갑자기 큰 사람이나 된듯 눈물이 찔끔 솟아올라왔다.

《큰어머니, 저의 이 말은 절대 뜬소리가 아니예요. 옛날 고구려때 있은 평강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알지요. 그 공주는 왕의 딸이였어요. 그런데 스스로 집을 뛰쳐나가 거지총각한테 시집을 갔어요. 지금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니예요. 그런데 그가 거지요 바보요 하던 남편 온달을 유명한 장수로 만들었거던요.

큰어머니, 나도 평강공주와 같은 녀자가 될수 없을가요?》

미영의 이야기를 그저 재미나게 듣고만 있던 리씨가 그만 몸을 흠칫 떨었다. 그가 바로 자기에게 그렇게 들이대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던것이다.

《글쎄 너라고 왜 그만 한 녀자가 못되겠니. 그래서 남자마다 다 장수가 되고 영웅이 되면 좋은게지, 나라두 흥하구.…》

《고마워요, 큰어머니.》

미영이 리씨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말하였다.

《큰어머닌 언제나 내 편이지요?》

《녀자가 녀자편이지 달리 되겠니. 하지만 언제든 아버질 잊어선 안된다. 너에겐 아버지이상 가까운 피줄이 없다.》

《알아요. 피줄은 제가 마음에 드는대로 골라잡을수 없다는것도, 그리고 아버지가 불쌍도 해요. 제가 없으면 아버지가 무엇이 되겠나요.》

그들은 더 힘껏 그러안았다. 그러면서 이제 자기들앞에 무엇이 펼쳐질것인지를 상상해보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다는 알수 없어도 가슴울렁이는 기쁨과 환희에 찬것이기를 바라며.

 

3월에 들어서면서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졌다. 아직도 높은 산기슭과 골짜기들에는 흰눈이 듬성듬성한데 양지쪽 해바른데는 벌써 봄풀이 새파랗다. 길거리는 눈석이물로 어디 가나 질척거렸다.

바로 그런 날 김백산은 읍거리로 나섰다. 해야 할 많은 일감들이 그를 기다리고있는것이다.

요즘 의병들속에서는 류린석대장이 장기렴인가 하는 선유사를 만났던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그가 기렴이란 사람에게 호령하며 의병들의 위세를 돋구었다는 자체가 그들의 의기를 한껏 북돋아준것이였다. 이것은 그만큼 일거리가 많아졌다는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반드시 닥치게 될 싸움준비를 서둘러야 하는것이다. 하여 백산이 오금에서 비파소리가 나도록 뛰여다니지만 언제나 모자라는것이 식량과 무기이다. 그것만 있다면 언제까지도 싸울수 있다.

생각을 하며 걷는데 누군가 앞을 막아섰다. 좁은 외통길에 마른 땅을 짚고선 하얀 갖신이다. 그우로 역시 하얀 버선과 초록치마, 빨간 저고리고름…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는 자기를 향해 똑바로 마주선 미영을 보았다. 그가 길을 비켜줄 생각은 않고 두발을 딱 붙이고 서있는것이다.

《어쩌면 그리도 못 본체 하세요?》

《아니, 난 정말 못 보았소.》

백산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미영에게는 그것이 성난 사람의 대답처럼 들렸다.

《무슨 근심이 그리도 많아요. 제가 알아맞혀보라요?》

《근심? 무슨 근심 말이요?》

《난 다 알아요. 선봉장님이야 늘 싸움근심에 살잖아요. 싸우자니 화약이 있어야 하고 화약을 만들자니 염초를 만들 감사리가 있어야 하고…》

《신통하구만. 그걸 어떻게 다 알고있소?》

《점쟁이들이 어떻게 점을 치는지 알지요. 그걸 알면 제가 어떻게 알아맞혔는지도 알수 있어요.》

《미영이 점쟁이라면 그것도 어디 있는지 알아맞혀야지?》

《알고있어요. 대드릴가요?》

《정말이요? 그럼 내 미영을 업고 춤을 추지.》

《좋아요. 몇백년 묵은 절간, 수십년동안 비여있는거면 되지요?》

《정말이요. 그런게 어디 있소?》

《있어요. 가는 길도 알아요.》

《그럼 가야지, 이제 당장!》

의외에도 미영은 고개를 홱 돌리며 돌아섰다. 그렇게 쉽게 내놓을것이 아니라는것이다.

《하지만 전 지금 바빠요. 그리고 낮에는 사람들이 봐요. 혹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좀 오래전 일이 돼서 그래요.》

《저녁에는 갈수 있소? 내가 꼭 같이 가겠소.》

《정말이예요? 하지만 길이 멀다거나 험하다거나 무섭다거나 하면 안되여요.》

《그건 절대 념려마오. 길잡이만 바로 하면 말이요.》

저녁무렵이다. 일찍부터 동산에 달이 솟아올랐다.

그들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읍거리를 빠져나왔다. 미영은 늘 입고다니던 덧저고리에 남바위를 쓰고 손에는 자그마한 보자기를 들었다. 백산은 미영의 당부로 그 멋들어진 곰털저고리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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