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2

(1)

 

승우도 자기 성격을 누르고 대세의 흐름에 따르자고 했다. 그러나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어느날 한낮 승우가 집을 나서는데 모퉁이길에 함지며 버치 같은것을 한임씩 머리에 인 녀인들이 나타났다. 무슨 일때문인지 머리에 한껏 임을 인 그들도 참을수 없어 저마다 입을 싸쥐고 웃고있었다.

그속에서 승우는 자기 딸 미영도 보았다. 그만은 별로 크게 웃지 않다가 승우를 보자 곧바로 다가왔다.

《아버지, 벌써 화약을 만들어냈어요. 인차 그것을 시험해본다고 하면서 그 사람들이 이만큼 쌓아놓고 터쳤는데 갑자기 쾅 하는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그래서 저렇게들 웃는답니다.》

《머리에 인건 뭐냐?》

《망초예요. 화약을 만드는데 쓰는건데 온 읍거리 녀자들이 떨쳐나섰어요.》

《네가 여기 와서두 그 일을 맡아하냐?》

《그 사람들이 여전히 그 일을 하고있지 않아요?》

《네가 말하는 〈그 사람〉이란 누구냐? 선봉장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네, 맞아요. 모두 그이를 용타고 칭찬해요.》

《너 그걸 갖다두고 내 방으로 와라, 이제 곧.》

승우가 말하고 돌아섰다.

그가 말하는 《내 방》이란 그가 필희와 함께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정상적으로 되자면 외지에 나온 아버지와 딸이 함께 있어야 하겠으나 그렇지 못하다. 미영이 노상 선봉대의 취사장에 나가있는것이다.

마침내 미영이 왔다. 그는 방안에 들어서도록 아무 말이 없다가 겨우 웃목에 쪼그리고앉았다.

《아버지, 왔어요.》

한다는 소리가 그게 다다. 괘씸한 년, 내가 선봉장이라면 그렇게 했을터인가.

《됐다. 내가 하자는 말은 다른게 아니구 네가 이제부터 집에 가서 가사를 돌보라는것이다. 어미없는 집에 응당히 누구든 주인이 있어야지?》

승우가 눈을 부릅뜨며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미영은 우습다는듯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버지, 집엔 벌써 갔댔어요. 딴 걱정 말아요.》

《집에서 기별이 왔다. 벌써 봄이야. 좀 있으면 밭도 갈고 씨도 뿌려야 해. 일이 좀 많으냐?》

《글쎄 걱정말라니까요. 제가 다 말해보냈어요. 다신 그런 기별 말라구요.》

《기별을 말라구? 그래 말을 않으면 종것들이 일을 제대로 할것 같으냐?》

《언제는 종들이 일했지 우리가 했어요? 다 제대로 할거예요.》

《안돼. 이제 집에 돌아가거라, 당장!》

했건만 미영은 아까처럼 또 입에 손을 가져갔다.

《됐어요. 아버지, 더 하실 말씀이 없어요?》

천만뜻밖에도 그냥 일어설 자세다. 그것이 승우를 더 격분케 했다.

《어딜 가려구, 또 선봉대냐?》

《아버지, 그렇게 격하지 마세요. 그이한텐 녀자의 방조가 필요해요.》

《필요하면 필요했지 하필 네가 필요할건 뭐냐. 제천고을에 너밖에는 다른 녀자가 없다더냐?》

불시에 미영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때까지는 노상 웃으며 리해하려고 애쓴 그 얼굴에 참을수 없는 노기가 어리였다.

《아버지, 빙빙 에두르지 마시고 곧바로 말씀하세요. 아버지가 낳은 이 딸이 무엇이라고 자꾸 에두르십니까?》

《나는 네가 그 상놈과 가깝게 지내는것을 참을수 없다. 빙빙 에두른다구? 에두르기는 왜 에둘러. 그래 네가 그 녀석과 친해서 나중에 얻을것이 무엇이냐. 대대로 우리 안씨가문은 크게 명문가는 아니였어도 천하지는 않았다. 력대로 유생량반의 체면은 지켜왔어. 그런데 네가 그를 우리 집안에 끌어들인다면 이 집은 상놈의 집이 되고 너도나도 상놈이 되고말것이다. 나는 일찌기 죽어 없어지면 또 별일이지만 네가 낳은 자식들도 다 상놈이 되고말것이다. 나는 나의 대에 와서 너에게 상놈의 피줄을 이어줄수가 없다. 나도 길거리에서 빌어먹을지언정 상놈의 집에 얹혀사는 장인노릇은 할수 없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너무 과하게 높이 세우지 마십시오. 사실 아버지에게 량반이라는 허울과 몇십년 더 오래 산 나이를 떼여놓으면 무엇을 볼것이 있습니까. 한평생 익히신 학문이니 례의니 도덕이니 하는 자질구레한 범절로 얻은것은 무엇이며 해놓은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으로 남들보다 총탄을 먼저 만들어냈습니까, 각처로 쓸어드는 외적들을 막기나 했습니까.》

《나는 제천에서 누구보다 먼저 의병을 일으켰고 사람들에게 호소도 했다. 제천반일의병대란 이름이 날리게 된것도 바로 그때문이야!》

《잘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은 량반유생이라는 체면때문이 아닙니까. 지금 싸움은 누가 합니까. 아버지는 비록 의병을 일으켰고 그 대장의 한사람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싸우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봉건도덕이라고 하는 가혹한 례의범절과 구속으로 싸울수 있는 사람도 싸우지 못하게 하고 도와줄 사람도 도와주지 못하게 하면서 스스로 싸움을 실패에로 몰아가고있습니다.》

《나는 네가 그를 내 집에 끌어들이는것을 반대하지 싸우는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거듭 말하지만 그에겐 녀자의 방조가 필요합니다. 그는 한생 부모가 없이 자랐고 녀자의 도움은 더구나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를 도와주는것이 싸움을 잘하게 하는것입니다.》

《녀자는 너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당장 관계를 끊어라.》

《아버지, 도와주는것 하고 가까이하는것 하고는 같지 않습니다. 그 이상은 론하지 마십시오.》

《남녀가 필요이상 가깝게 지내는것은 결국 한길로 가는것이다. 남녀7세부동석이란 말이 괜히 생겼는줄 아느냐?》

《하지만 저는 그를 돕지 않을수 없습니다.》

《녀자의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녀자의 몸은 일체 부모의 승인하에서만 움직일수 있다.)라고 했다. 그만큼 네 몸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나의 허가 없이는 누구도 다치지 못한다.》

그러나 미영은 그 마지막말을 듣지 못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으로 튀여나갔던것이다.

그것이 승우를 더 격하게 하였다. 이미 그의 마음이 백산에게 빠져버렸다는것을 깨달았던것이다.

그것이 생각을 백산에게로 돌아가게 하였다. 녀자들의 마음이 동하고 동하지 않는것은 전적으로 남자에게 달린 일이다. 그만큼 남자를 신칙하던가 다른 곳으로 옮겨서라도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데 동헌으로 나오라는 기별이 왔다. 가보니 린석이 심중한 낯으로 봉서 한장을 내놓았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물으니 대답대신 앞에 앉은 사람을 가리켰다. 서울에서 내려온 경차관이라는것이였다.

이번에 선유사로 임명된 정1품의 장기렴이란 대감이 써준것인데 그 대감이 지금 충주까지 내려와있다고 했다.

승우는 다급히 글줄을 더듬어내려갔다.

《고시문》

겉봉에 이렇게 쓰고 안에 장문의 내용이 전개되여있었다.

《금 2월 18일 본관은 임금의 명령으로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일대에서 의병대를 해산시킬데 대한 중임을 맡았다. 지난해 12월 임금께서 비밀한 지시를 내려 의병을 장려했던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나라의 실권을 쥐고있는자들에게서 협박의 구실이 되고 그때문에 임금이 더더욱 문책을 당할뿐아니라 환궁의 날을 기약할수 없게 되였다.

당신들이 의병을 일으킨것은 국왕이 권력을 되찾고 임금의 치욕을 씻으며 왜를 토벌하여 원쑤를 갚자고 하는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결과는 지금 임금이 외따로 떨어져 정사를 바로 볼수 없고 호령이 통하지 못하여 그 뜻을 펼수 없게 되였으니 한심한 일이다. 그런즉 임금의 뜻을 받들어 무기를 놓고 집으로 돌아가는것이 그네들의 충성을 다하는것이 되지 않겠는가. 만약 그렇지 않으면 지금 편성중인 서울친위대와 강화친위대를 파견하여 기필코 그대들을 토벌하게 될것이니 깊이 생각하고 속히 대책하도록 할것이다.…》

《장기렴대감께서는 조속한 시일내에 실무적대책을 취하겠다는 긍정적인 대답이 있기를 기대하고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예까지 와서 대장에게 문책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승우가 다 읽기를 기다렸다가 과연 서울사람답게 말쑥하게 차려입은 경차관이란 사람이 말했다.

그것이 방금 편지를 읽고난 승우를 긴장하게 했다.

《상감의 심중이 리해됩니다. 남의 나라 공사관에 가서 국사를 돌보려니 상하에 간극이 막히여 뜻이 통하지 않을것이고 마음대로 산책을 할것인가 조석끼니인들 입맛 당기는대로 할것인가.…》

《애로가 한두가지가 아니지요. 지금 임금의 통제에서 벗어난 신하들이 제멋대로 나라재산을 훔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가 하면 저마다 양국놈들과 붙어돌아가며 리속차릴 내기를 합니다. 말그대로 아비어미없는 집에 도적까지 뛰여든셈이지요.》

《그참, 야단은 야단이군. 그런 때일수록 신하들이 마음을 합쳐 임금을 따라야 할터인데…》

승우가 다음말을 받아넘기려고 하는데 갑자기 탕 소리가 나며 서안이 우들쩍 떨렸다. 린석이 손으로 그것을 내리쳤던것이다.

《중군, 무슨 말을 하는거요?》

그가 소리를 치며 승우를 쏘아보고는 맞은쪽 사람에게 돌아섰다.

《경차관, 가서 장대감에게 그대로 전하시오. 우리는 절대로 의병투쟁을 중단하지 않을것이라고 말이요.》

경차관이란 사람이 승우와 같이 놀랐다가 곧 얼굴에 웃음을 짓고 린석을 향했다.

《의암선생, 이렇게 되면 참 곤난합니다. 우선 그자체가 임금의 명에 대한 거역이고 그렇게 되면 장기렴대감께서도 그대로 물러서지 않을것입니다. 후사를 생각하셔야지요.》

《생각하고있소. 오직 왜놈과 싸우는것뿐이요.》

린석이 단도직입으로 잘라맸다. 아마 그에 대해서는 승우가 오기 전에도 말이 있은듯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경차관이란 사람도 그냥 돌아가고말았다. 그가 떠나갈 때 학고개에서부터 배행하고 왔던 사석에게 린석이 말했다.

《이제 장기렴이란 사람이 찾아올수 있소. 그때에는 절대로 우리 경내에 들여놓지 말고 기다리게 한 다음 나에게 알리시오. 내가 마주 나가겠소.》

사석이 알았다고 대답하고 경차관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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