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 회)
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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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야령산줄기가 들쑹날쑹한 병풍처럼 막아선 다왜즈골안 막바지, 대낮에도 해빛이 새여들지 않는 깊은 수림속에 숨어있는 이 외딴집은 함경북도 무산군 삼장면 삼화동에서 떠들어온 조로인일가의 3대여덟식솔이 함께 살고있는 대가정이였다. 예순여섯의 나이에 이른 조택주로인과 환갑나이를 맞은 로댁, 마흔나이들이 지난 맏아들 조우와 맏며느리 최일화 그리고 예닐곱에서 스물전까지의 너덧살 터울의 두 손자와 두 손녀가 명색이 두칸이라지만(아래웃간이라는것이 구들복판에 가름대 하나를 문턱삼아 걸쳐놓아 구별한것이였다) 실상은 단간짜리 통방귀틀집에서 살고있는것이다. 시패린즈 산판막 김로인이 말해준대로 작은 실개울건너의 북쪽산등성이밑에 또 하나의 귀틀집이 송림속에 숨어있는데 거기서는 조로인네 둘째아들네가 살고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 외진고장의 은둔동포가정내막도 한흥권이네가 들어선 그 당장에는 알아보고 인사차릴만 한 경황이 없었다. 그 집에 들어섰을 때의
《이 대소한 추위때에 한지에서 병드신분을 이렇게 얼궈드리다니? 어서 가마목에 모셔드려라.》
하얀 상투머리에 하얀 채수염의 주인집로인은
《어떻게 생긴 병환이시오?》
조로인은 손수
《찬바람을 맞으시구 처음엔 오한이 나하시더니 열이 심해졌습니다. 감기인줄 알았는데 기침은 별로 없이 스무날째 계속 심한 열에 시달려오면서 전혀 잡숫지 못하시고 불기운도 못쐬고 찬데서 지내오는동안 자꾸만 정신을 잃군하더니 그렇게 중태에 빠지셨습니다.》
한흥권의 대답이였다.
《병은 쇨대로 쇤 병이요. 그래 무슨 약같은걸 쓰기나 했소?》
《어쩌다 어느 목재소에서 좀 얻은 호주에다 조탕을 타서 마시게 한것밖에는 없습니다. 땀이라도 내게 해드리고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찬데서 고생하며 다니다가 생긴 병이니 이건 필시 촉한이 틀림없소. 촉한엔 땀을 뽑게 해드려야 병이 숙어들겠는데 스무날나마 엄동추위에 찬바람을 맞히며 한지에서만 지냈다니 어찌 병을 덧히지 않겠소. 형편이 이 지경에 이르렀은즉 귀신같은 명의가 있단들 이제 무슨 수로 병세를 돌릴수 있을테요? 우둔하기들도 허지.》
조로인은 혀를 끌끌 차고나서 늙은 마누라와 열대엿쯤 되였음직한 맏손녀더러 덮개를 있는대로 다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며느리에게는 얼른 끓는물 한사발에 산에서 털어온 산청을 한종발가량 풀어가져오라고 일렀다. 한흥권이네는 모두 얼굴들이 시꺼매서 어디 앉을념을 못하고 지켜선채 마음들이 뒤숭숭해 어찌할줄을 몰랐다.
며느리가 더운물에 꿀을 타가지고 오자 조로인은 숟가락으로 더운 꿀물을 한숟갈씩 떠서
《이제는 땀이 나올 때까지 있는 힘껏 손발과 팔다리를 주무르고 비벼드려라.》
로인은
《손님네들은 저 건너 우리 둘째아들집에들 가서 쉬도록 하지. 그렇게 지켜서있다고 못나을병이 낫고 나을병이 못나을것도 없으니 괜히들 중환에 부산하게 서성대지들 말고 물러가도록 하는게 어떻겠소.》
한흥권은 로인의 권대로 김택근소대장을 시켜 대원들을 모두 건너집에 데려가게 하였다. 이 집에는 주인집사람들과 한흥권이, 조왈남이만 남았다.
그들은 주인집어른들과 함께
집안은 여전히 근심걱정으로 가득차고 바깥에는 눈보라가 울부짖었다. 한동안이 지나
《음, 땀이 좀 나기 시작한다.》
로인은 며느리에게 얼른 꿀물에 미음을 타가지고 오라고 일렀다. 며느리는 지체없이 부엌에 내려가 이미 밥가마에 쒀놨던 좁쌀미음을 채에 밭아서 한사발이나 되게 꿀물을 타가지고 올라왔다.
로인은 한흥권이더러
《이제는 그만들 주물러두 되겠다.》 마침내 조로인이
《됐다! 이제는 병은 놓인 병이다!》
수염발과 주름살로 뒤덮인 늙은이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네?! 병이 낫는다구요?》
《땀이 돋구 안색에 이렇게 피기가 어리면 낫는 촉한이요. 이제는 푹 주무시도록 안정시키기만 하면 되겠으니 그만 안심들하고 쉬여도 되겠소.》
과연
하지만 흥권이네와 온 집안식구들은 채 마음을 놓지 못하여
날이 밝기 시작할무렵에 마침내
한밤을 꼬박 뜬눈으로 밝히며
《
한흥권중대장과 조왈남은 바로 이 순간에
《할아버지,
한흥권중대장이 부엌아궁앞에 도끼모태를 깔고앉아 담배를 태우며 밤을 밝히고있는 조택주로인을 향해 기쁜소리를 웨쳤다.
《그래.》
로인이 황황히 구들로 뛰여올라오고 한흥권이와 조왈남이 일어나 서성거리는바람에 웃목에서 쪽잠에 들었던 일가식솔이 모두 깨여났다.
《가까이 오지 말고 앉은자리에서 보기나 해라.》
조택주로인이 손을 내저으며 식구들을 다가오지 못하게 하였다. 늙은 로댁이 령감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무릎걸음으로 몇발작 다가오고 며느리가 갑자기 무슨 시중이라도 들것이 없나 하여 금시라도 일어설수 있게 한쪽 무릎을 세우고 시아버지의 거동을 눈여겨 살폈다.
조택주로인은 무릎을 방정하게 꿇고앉아 엄하고 심중한 눈길로
《좁쌀미음에다 산청을 진하게 타서 한종발 마련해놓아라. 아궁에다는 불길이 일었다 잦았다 조화를 부리지 않게 시늠히 타는 드덜기를 한입 지폈으니 성급하겐 장작개비를 던져넣지 말아라.》
방금 일어설차비로 한쪽 무릎을 세우고있던 며느리 최일화가 냉큼 일어나 봉당으로 내려갔다. 이 집안의 재산이라고는 그것 하나밖에 없는 놋종발에다 흘거분히 쑤어놓은 좁쌀미음을 담고 산청 세숟갈을 타서 뜨끈뜨끈한 부뚜막에 올려놓았다.
조택주로인은 가마우로 긴팔을 뻗쳐 종발에다 손을 대여보고 숟가락을 넣어 미음을 저어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식지를 한장 씌우고 뚜껑을 덮어놓으라고 일렀다.
《모두들 소란을 떨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누구도 소란을 떠는 사람이 없었으나 로인은 엄하게 신칙하였다.
방안에는 엄숙한 정적이 깃들었다.
한흥권은 자기 심장의 박동소리까지도 너무 크게 고막을 자극하는듯싶어 숨을 멈추었다.
어느새
《여기가 어디요?》
의식을 회복하실 때마다 늘 묻군하시던 그 물음을 이번에도 반복하시였다.
한흥권은
《어떤분을 만나 구원을 받았는지 얼굴도 모른채 은혜부터 입었구만요.
할아버지, 할머니, 고맙습니다. 이런 좋은 집을 만나서 내가 살아났습니다.》
조택주로인은
《하늘이 심심산골에 숨어사는 우리 집에 영광을 베풀고자
한흥권중대장은 로인의 말에 눈물을 금치 못하며 부엌봉당으로 내려가
언제 담가에서 내려서시여 땅을 밟으실것 같지 못하시던
생각하면 이런 기쁨, 이런 환희의 순간이 어디 있을것인가?
지나온 가지가지 추억은 이미 아득한 과거로 물러났다.
원정대의 앞에 놓일 앞날도 이 신발을 신고 땅을 밟으시게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