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 회)

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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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파리는 높이 쳐들린 차단봉밑을 지나 다시금 경쾌하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호박빛의 불빛이 어린 가설 병영귀틀집 뙤창문들이 뒤로 물러났다. 김택근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말파리들이 차단봉밑을 지나왔다. 그는 긴숨을 후유 내뿜고 그때까지 화등방의 옆구리에 대고있던 권총에 안전장치를 하여 품속에 질러넣었다. 세찬 강물소리가 언 대기를 부시며 들려왔다.

두번째 초소에서는 아래우의 량쪽 초소를 믿고 해이되여서인지 혹은 게으름뱅이 초소가 섰기때문인지 별로 묻는말도 없이 통과시켜버렸다. 그러나 마지막 초소에서는 예상외의 위험이 덮쳐들었다. 금시 말을 찌를듯이 총창을 비껴들고 량쪽에서 길을 막아나선 초소놈들이 급한 병자를 후송해간다는 목재소주인 화등방의 말을 들은둥만둥하고 전지불을 켜들면서 좀 봐야겠다고 고집해나선것이다.

《전염병환자인데 보긴 뭘봐. 생명이 위태롭다. 어서 내몰라.》

또 한번 김택근의 권총에 옆구리를 찔리운 화등방은 제법 틀스럽게 호령질을 하였다. 채찍이 허공을 가르며 말엉뎅이에 부딪치고 놀란 말이 앞발을 건뜩 들어올리며 요란한 방울소리와 함께 사나운 울부짖음소리를 뽑더니 발통으로 길바닥을 기운차게 걷어찼다. 말파리는 황황히 뒤걸음치는 놈들을 금시 깔아뭉갤듯 질풍같이 내달리며 눈덩이들과 눈가루들을 놈들에게 들씌웠다. 뒤를 이어 넉대의 말파리가 연방 내달리며 눈바람을 일으켰다.

《저…저…저…》

여지없이 무시당한 놈들은 모멸감을 못이겨 쩍 벌어진 입에 눈가루를 한아가리씩 받아물며 발길에 걷어채운 강아지새끼같은 괴상한 신음소리를 냈다. 발구행렬은 숲굽이를 돌아 달빛이 흐르는 내리막길로 쏜살같이 미끄러져내렸다.

《젊은이, 이젠 됐소. 장군님을 무사히 모셔가게 됐소. 여기서부터는 근 백여리 무인지경이요.》

지금까지 한마디 말이 없이 엄한 눈으로 주위를 날카롭게 살피고있던 김로인이 목메여오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이 은혜를…》

조왈남은 스스로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쏟아져 말을 번질수가 없었다.

《젊은이, 이건 사람의 뜻으로 할수 없는 일이요. 이 늙은이의 힘이 컸다고는 아예 생각지 마오. 하늘이 도와 우리 장군님을 구해내신거요. 내 살아생전에 장군님을 한번 만나뵈옵는것이 소원이여서 아침저녁으로 마음속에 장군님을 우러르고 장군님의 안녕만을 길이 축수하였더니 하늘이 이 늙은이의 지성을 알아채고 장군님을 구하는 일에 이 몸을 인도해주신가보오. 내 아니래도 하늘은 다른 사람들을 시켜 장군님을 구하게 이끌었을거요. 아, 저 별무리 청청한 하늘이 이밤에 잠들지 못하고 우리 장군님 가시는 길을 열어주고있소.》

김로인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허연 수염이 금시 탄성을 내지를듯 벌려진 입언저리에서 나붓기고 눈에서는 눈물이 번쩍거리고있었다. 조왈남이도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장엄하고 신비하여 숭엄하고 거룩한 그 무엇이 별이 총총한 아득한 그 세계로부터 자기의 가슴속에 스며드는것 같은 엄숙한 순간을 체험하였다.

아버님, 우리 장군님은 틀림없이 하늘이 내신분입니다.》

《그래 그래 그래!》

김로인은 숙연히 고개방아를 찧으며 몇번이고 그 말을 되풀이하였다.

말발구들은 어느덧 잠풍해진 심산속의 맑은 대기를 가르며 방울소리도 유난하게 질풍같이 내달렸다.

《젊은이, 이제 내 말을 명심해 듣소. 여기서 얼마쯤 더 가다가 주인놈이 탄 말파리만 녕안전시가까지 가게 하고 장군님을 모신 말파리는 도중에서 슬쩍 떨어져야 하오. 그러니 주인놈과 같이 가는 발구에 탄 사람들은 시가지 근처까지 갔다가 약조한 지점으로 되돌아오게 해야 하오. 나는 주인놈과 함께 녕안진시가지까지 가야겠으니 도중에서 사람들을 바꿔태우는척 하면서 주인놈의 뒤말파리에 나를 타게 하오.

그러면 가다가 장군님 모신 말파리가 떨어질 맞춤한곳을 대주겠소.

젊은이, 여기서 헤여지면 쉬이 만나지 못할게요. 장군님을 무사히 모시고 동만땅으로 나가주오. 내 어디에서든 유격대가 왜놈들을 크게 족쳤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장군님께서 무사히 동만땅으로 나가신줄 알겠소. 여기 북만땅 인민들이 장군님의 안녕을 아침저녁으로 빌고있다는걸 부디 잊지 말아주오.》

조왈남은 김로인의 손을 억세게 틀어잡고 울먹거리는 소리로 외웠다.

아버님, 장군님을 모시고 무사히 동만땅에 나가 왜놈들을 크게 족치겠습니다. 소식을 기다려주십시오. 이것이 아버님께 부쳐드리는 우리의 회답인줄 아십시오.》

한흥권은 조왈남에게서 김로인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말파리들을 세웠다. 한흥권중대장은 여기서 말파리들을 좀 엇바꾸어 타야겠다고 선포하고 김로인앞으로 다가왔다.

눈물겨운 작별의 순간이 닥쳐왔다. 여기서 발구를 갈아타고 얼마쯤 달리다가 헤여지면 로인과 영영 갈리고말것이다.

고마운 정, 하고싶은 말, 얼싸안고 눈물을 뿌리며 작별을 고해야 할 간절한 심정이 어떠했으랴. 그러나 김로인의 안전을 위해 내놓고 그러지는 못한다.

한흥권은 그저 얼없이 김로인의 얼굴을 허둥거리는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김로인은 입을 하 벌리고 망연히 서있었다. 로인은 그렇게 크게 벌린 입으로 무엇인가 심장속에서 터져나오는 말을 끝없이 외우고있는것 같았다.

《발구를 갈아타야겠습니다.》

그것은 로인에게 드리는 감사의 인사였고 작별의 인사인 동시에 앞일도 편안하기를 바라는 충심으로부터의 기원이였다. 그리고나자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한흥권은 자신을 다잡을 양으로 황급히 옆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순간 눈물은 거침없이 저고리앞섶을 적시며 주르르 쏟아져내렸다.

 

×

 

《여기서 골짜기를 따라 삼사십리쯤 들어가면 다왜즈라는 작은 마을자리가 있소. 북만에 들어온 조선사람들이 개척한 로야령 산간화전마을인데 지난해초까지 거기에 조선사람들의 집 열아홉채와 중국사람들의 집이 일곱채가 있었소. 작년가을에 악착한 왜놈 〈토벌대〉가 들이닥쳐 마을에 불을 지르구 사람들을 쫓아버리는 바람에 마을은 불타 없어지구 거기 살던 사람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버렸는데 두집 사람들만 거기서 골안막바지로 더 깊숙이 자리를 옮겨앉아 숨어살고있소. 다왜즈마을에서 한 이삼십리쯤 더 들어가면 찾을수 있을거요. 그저 이 골안 끝까지 가서 령과 부딪치는 맨 막바지에 숨어있는 집이니 그리 알고 찾아가오.》

이것은 산판막 김로인이 원정대원들과 헤여질 때 알려준 말이였다. 원정대원들은 달이 질 때까지 내처 걷다가 으슥한 송림속에서 밤을 지냈다.

그러나 한흥권은 깊은 생각에 잠긴채 나무밑둥에 기대여있다가 주변의 숲속에서 삭정이 부러지는 심상치 않은 소리를 듣고 머리를 쳐들었다. 나무가지에 옷이 쓸리는 소리와 깊은 눈을 헤치면서 서둘러 다가오는 인기척소리도 났다.

누군가 그들을 부르며 강냉이밭을 와삭와삭 헤치며 그들이 있는 우등불쪽을 향해 다가왔다. 김택근의 목소리였다. 일순간에 마치 약속이나 한듯 모두가 일어섰다.

《어떻게 됐소?》

《찾았습니다! 집을 찾았습니다.》

《찾았소?!》

김택근이와 그를 뒤따라온 낯선 중년의 농민과 그의 젊은 아들이 우등불곁에 당도하였을 때 그들을 맞은 모든 원정대원들의 눈가에서는 이슬방울들이 반짝거렸다.

《종일 숱한 산을 헤발아다녔는데도 어떻게나 깊이 숨어있는지 집이 보여야말이지요. 어두워지기 시작한담에 혹시 불빛이라도 뵈는데가 있지 않을가 해서 헛일삼아 한 산등성이에 올라가 사방을 돌아봤더니 천만다행으로 한군데서 불빛이 새여나오더군요. 그걸 보니 우리도 눈물이 나옵디다.》

한흥권은 장군님께로 허리를 굽혔다.

사령관동지! 집을 찾았답니다. 주인들이 여기에 오셨습니다. 어서 집으로 갑시다.》

한흥권은 장군님을 조용히 흔들어 깨우며 말씀드렸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가 흔드는대로 흔들리기만 하실뿐 정신이 들지 못하시였다.

《숲이 너무 빽빽해서 담가로는 가지 못합니다. 업고가야겠습니다.》

김택근의 말을 듣고 원정대원들은 담가를 눈속에 파묻고 우등불에 눈을 끼얹어 꺼버렸다. 주인이 맨 앞에서 길잡이를 하고 그의 아들이 맨 뒤에서 나무가지를 끌고오면서 발자국을 지웠다. 원정대원들은 번갈아가며 장군님을 업고 걸었다.

후에 원정대원들은 불탄 한쪽벽만 남아있던 그 집터자리가 다왜즈골안 막바지에 숨어사는 동포일가가 내려와서 일시 머무르면서 농사를 짓군하는 농막자리였다는것을 알았다.

그 농막자리에서 집까지는 20여리가 잘되는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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