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 회)

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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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흥권중대장이 김로인과 함께 화등방을 리용해서 적들의 다리목초소를 빠져나갈 작정을 하고났을 때 말방울소리가 울려왔다. 문틈으로 내다보니 정오의 해볕이 눈부시게 비쳐드는 숲속길로 여라문대나 되는 발구행렬이 뻗어들어왔다.

사람이 하나씩 앉아있는 홀가분한 발구들을 끌고 눈덩이를 걷어차며 헐썩헐썩 다가오는 말들은 코구멍과 주둥이에서 허연 김들을 내뿜었다.

한흥권은 김로인의 안전을 위해 미리 약조가 된대로 로인을 대강 묶어놓고 바깥으로 나갔다. 어느새 통나무무지들과 길섶에 매복하고있던 원정대원들이 발구에서 내린 사람들을 한군데 모아놓고 목깃에 오소리털을 댄 까만외투에 수달피모자를 쓴 목재소주인놈을 붙들었다.

난데없이 총을 든 사람들이 우르르 쓸어나와 총부리를 들이대는바람에 깜짝 놀란 주인놈은 인부들과 함께 처음 한순간 어쩔바를 몰라 벌벌 떨더니 이어 제 지체를 생각했음인지 발구에서 잡아내리려는 두 대원을 뿌리치며 호통을 쳤다.

《나를 놓지 못해. 내가 누군줄 알고 덤벼대는게야?》

《이놈, 아가리를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네가 어떤놈인가는 알고도 남는다. 우리는 네놈을 붙잡자고 단단히 벼르고있던참이다.》

김택근소대장이 버둥거리는 그놈의 두팔을 바줄로 비틀어 묶고 한흥권중대장이 싸창을 뽑아들고 당장 갈겨버릴것처럼 으름장을 놓자 놈은 눈알이 휘뜩 뒤집어져서 끄는대로 설설 끌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몇시간이 지난 뒤, 원정대는 시패린즈의 목재소산판막을 떠났다. 숲머리에 달이 떠오르고 잠자던 바람이 일기 시작할무렵이였다.

뽀얗게 눈가루가 흩날리고 우중충한 숲속길로 말파리대렬은 말방울소리를 절렁거리며 기세차게 내달렸다. 선두에는 그 안면을 리용하기 위해 앞에 내세우지 않으면 안될 목재소 주인 화등방과 그놈을 감시 통제할 사명을 지닌 김택근소대장 그리고 날래고 기운이 센 또 한명의 대원이 탄 말파리가 섰다.

만일 화등방이 적의 초소에 접근했을 때 배신행위를 하거나 적들이 시끄럽게 달려들며 수색하려 할 때에는 그 두사람이 가차없이 그를 처단하고 적을 치면서 결사적으로 돌진하여 앞길을 열어 헤쳐나가기로 되여있었다.

두번째 달리는 말파리에는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춘 네명의 원정대원들이 올라타고있었다. 물론 그들은 산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하고있었다.

그들 역시 돌파의 결사대들이였다.

세번째로 달리는 말파리에는 장군님을 모시고 한흥권중대장과 원정대원들가운데서 제일 몸이 좋은 두명의 원정대원이 타고있었다. 이 말파리는 한흥권이 특별히 사면으로 굵은 통나무귀틀을 두층으로 물려 방탄벽을 쌓게 하였었다.

네번째로 달리는 말파리에는 김로인과 함께 조왈남을 비롯한 세명의 대원들이 타고있었다. 산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하고있는 그들은 장군님을 엄호할 사명을 띠고있었다.

다섯번째의 마지막 말파리에는 추격해오는 적을 견제하면서 다른데로 유인해갈 임무를 받은 나머지 세명의 유인대원들이 타고있었다.

눈덮인 길바닥에 깔려있는 컴컴한 나무그림자들과 새하얀 달빛 얼룩점들이 눈앞에서 얼룩거렸다. 길옆에 줄줄이 늘어선 아름드리거목들이 뒤쪽으로 달음쳐 지나가고 푸르딩딩하게 언 달이 나무숲사이로 나타났다 숨었다 하면서 말파리들과 함께 달음박질쳤다. 바람에 휘말려오른 눈가루가 때때로 길도 나무도 죄다 보이지 않게 회색장막으로 가리워버리군했다. 허공중에서 채찍이 휘파람소리를 내며 말궁둥이를 척척 갈겨댈적마다 말들은 발통으로 길바닥의 눈을 찍어뿌리며 네굽을 안고 달렸다.

선두말의 방울은 야단스럽게 절렁거렸다. 곤두세운 외투깃속에 수달피모자를 쓴 머리를 깊숙이 틀어박고 량손을 외투소매속에 엇가로 질러넣은채 말없이 앉아오던 목재소주인놈이 나지막한 둔덕에 들어서자 불쑥 김택근에게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뭐라구 했소?》

김택근은 온 신경이 다리목에 가있는데다가 소란한 말방울소리와 세찬 바람때문에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선생님들은 어디까지 가시려는겁니까?》

목재소 주인놈은 더 큰소리로 되뇌였다.

《당신이 가는데까지 가겠소.》

《아니 그럼 녕안진시가지까지 가신단말입니까?》

《그쯤 알고있으면 되오. 정확한 지점은 우리 대장만이 알고있소. 그러니 당신은 잠자코 있소.》

김택근은 그놈이 다른 질문을 못하게 오금을 박아놓았다.

약간 숙어들었던 바람은 둔덕우에 올라서자 다시 세차졌다. 말발통에 찍혀 뿌리운 눈덩이들이 이따금 얼굴을 후려갈겼다.

《나를 정말 어디로 끌고갈 작정입니까?》

잠시 입을 다물고있던 화등방은 불안을 누를길 없어 한마디 또 물었다.

《그건 이미 우리 대장이 당신께 말한대로요. 당신이 약속대로 우리를 통과시킨다면 집에 보내주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보내주겠소. 이제는 다리목에 거의 왔소. 당신자신이 운명을 결정할 때가 됐소.》

둔덕을 내려선 말파리는 다리로 뻗은 곧은길을 거침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물비린내가 풍기고 세찬 강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어 길 량옆의 나무숲사이로 시꺼먼 강물이 하얗게 눈덮인 강언덕 저편으로 내다보였다. 다리 우쪽수면의 들쑹날쑹하게 이지러진 달이 길다란 띠를 이룬채 드러누워 움지럭거렸다.

하지만 바싹 긴장해진 김택근은 컴컴한 강물도, 강물우에 드러누운 달빛따위도 안중에 없었다. 적들이 지켜서있을 다리와 다리끝에 가로질러있을 차단봉과 이쪽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있을 기관총 그리고 아차하는 순간에 모든것을 망치게 할수 있는 화등방의 동태에만 온 신경을 모두고있었다.

마침내 말파리는 외줄기통나무란간을 량쪽으로 늘여 세워놓은 다리에 들어섰다. 말발굽에 눈밑의 통나무다리판이 밟히는 웅근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김택근의 귀가에 자기들을 향해 발사한 적의 소구경대포 포성처럼 들리며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제 어떻게 될것인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이제 다리 저쪽끝에 닿았을 때 이 화등방놈이 눈통을 쳐갈기고 말파리에서 뛰여내리거나 자기에게 덤벼들면서 《노꼬우리다!》하고 한마디만 소리치는 때에는 만사는 뒤틀리고 승산없는 혈전을 치러야 한다. 혹은 놈들이 차단봉을 쳐들지 않은것을 좋은 기회로 삼아 이상한 눈짓만해도 기관총탄은 다리우에 주런이 서있는 말파리들에 불벼락을 들씌울것이다.

말고삐를 우리 동무에게 쥐우지 말고 이놈에게 쥐였어야 하지 않았을가? 이놈을 묶은대로 태워야 옳지 않았을가? 어째서 나는 이놈이 나 하나만 쳐갈기거나 덮치면 능히 적을 불러댈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가? 어째서 나는 이놈의 두발만이라도 묶고 태우지 않았을가?

다리를 넘어가는 그 짧은동안에 김택근은 오만가지 불안한 생각에 휩싸이며 후회를 했다. 그렇지만 이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벌써 길을 막은 거뭇한 차단봉이 보이고 이쪽을 향해 버티고서서 아가리를 벌린 경기관총이 달빛을 받아 차겁게 번뜩인다. 빠득빠득 눈밟는 군화소리와 절컥! 목에다 쇠고랑을 채우는것 같은 총알 재우는 소리가 머리칼을 쭈뼛하게 한다. 귀청을 찢는듯 한 호각소리가 아츠럽게 울렸다.

《서라! 누구냐?》

차단봉 한끝에서부터 이런 고함소리가 울리더니 차단봉가운데쪽으로 거뭇한 그림자가 걸어나왔다. 말파리는 차단봉앞에서 멈춰섰다.

그 순간 곤두세운 외투깃과 눈섭까지 가리우게 푹 눌러쓴 털모자의 이마털사이에서 화등방의 두눈동자가 음험하게 번뜩이면서 곁눈길로 김택근의 동정을 슬쩍 훔쳐보았다.

(이놈이 무슨 꿍꿍이를?)

김택근은 순간 머리털이 주뼛해지며 이마에 진땀이 돋는것을 느꼈다. 그는 덧저고리밑으로 감춰지고있던 권총부리로 화등방의 외투옆구리를 꾹 찔렀다. 화등방은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그랬건만 입이 얼어붙었는지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 짧은 한찰나가 김택근에게는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참으로 숨막히는 기다림이였다. 김택근은 즉시로 그놈을 갈겨버리고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있는 권총끝으로 한번 더 그놈의 옆구리를 꾹 찔러댔다.

《아》

다시금 움씰놀란 그놈의 입에서 짧은 외마디의 비명같은것이 가늘게 흘러나왔다.

《화등방이야.》

목재소주인놈은 급하게 갑자르면서 가까스로 웅얼거렸다.

《누구라구?》

앞에서 재차 더 큰소리가 되물었다.

《들리지 않소? 화등방어른이요.》

김택근은 얼른 화등방을 대신하여 큰소리로 대꾸했다.

《응-목재소주인이야? 야밤에 어딜가?》

《급한 환자가 생겨서 녕안진으로 병원엘 가는 길이야. 어서 길을 열어.》

이번에는 화등방놈이 대답했다.

《누가 앓습니까, 주인어른.》

보초놈은 화등방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한결 공손한 어조로 물었다.

《산판에서 일하는 우리 사람이야. 꾸물대지 말구 빨리 차단봉이나 들어올려.》

《주인님, 거기 산판에 비적들이 왔더란소리 없던가요?》

보초놈은 비끄러맨 차단봉의 바줄오리를 풀면서 또 씨벌여댔다.

《못들었다. 뭘 이리 오래냐?》

《다 됐습니다.》

앞길을 가로막았던 차단봉이 천천히 한쪽으로 쳐들렸다.

《유격대가 근처에 왔을것 같다는 말이 있던데 조심해 살펴가십시오.》

그놈이 제법 주의를 주며 인사를 차렸다.

《쩌-》

말을 몰아대는 외마디소리가 울리자 멎어있던 방울이 다시 절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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