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 회)

제 3 장

초목도 분노한다

1

 

제천은 그들에게서 낯선 고장이 아니며 처음 차지한 땅도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들은 첫 반일의병대의 발족을 선포하였고 그 고고성도 터치였다. 그리하여 부대의 이름도 제천반일의병대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린석에게는 그 모든것이 못마땅하였다. 힘껏 나래를 펴고 충주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좁은 제천으로 되돌아왔다는 자체가 그로 하여금 답답하고 불안한감을 자아내게 했던것이다.

아니,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제 의병싸움을 어떻게 더 전개하겠는가 하는 의혹이 지꿎게 그의 몸과 마음을 조이고있는것이다. 나라에서는 이미 의병싸움을 금지시킨데다 제천이란 좁은 골안에 들이박혔으니 이제 더 날개를 펼칠데가 어디인가. 역시 만사가 생각과는 같지 않은것이다.

하여 그는 동헌의 대뜰우를 성난 범처럼 왔다갔다 하였다. 이 역시 저 충주감영의 대뜰보다 좁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어떻게 하면 싸움을 더 크게 벌릴수 있을가. 어떻게 해야 저 왜놈들에게 더 섬멸적인 타격을 안겨줄수 있을가.

이것은 그가 천만번 곱씹은 끝에 해낸 생각이다. 왕이 저 혼자 피난을 가건말건, 나라에서 싸움을 금하라 하건말건 왜적이야 왜적이 아닌가. 그놈들이 내 나라, 내 땅에 와서 살인과 략탈, 도살을 비롯한 갖은 악행을 다하고있는데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가만히 있어야 옳은가.

그것은 또한 모든 의병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그들이 누가 오라고 해서 왔고 싸우라고 해서 싸웠던가. 오히려 저 군수니 감사니 하는것들이 그토록 막아나서는것도 기어코 나서 저만큼 의기를 떨치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들은 기세를 늦추지 않고 계속 싸울것을 요구하고있다.

다만 형세가 달라진 조건에서 이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싸우겠는가 하는것이 문제이다.

《대장님,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는데 대해서는 저도 반대없습니다. 그러나 형세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여기 제천은 시골로서도 한쪽 구석이고 지역도 협착하여 대부대가 한곳에 오래 머물러있을 곳이 못됩니다. 따라서 각 부대들은 처음 조직되였던 본지역으로 돌아가 그곳을 차지하고 싸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승우가 머리를 수굿하고앉아 마루우를 왔다갔다 하는 린석을 쳐다보지 않은채 말하였다.

그 첫마디가 중요하였다. 그는 중군장이면서 동시에 이곳 제천에서 첫 의병을 일으켰던 당자이다.

그만큼 여러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이 큰것이다.

《저의 생각도 그와 같습니다. 이곳 형편이 오래 있을수 없는데다 바야흐로 농사철이 시작됩니다. 아무래도 본고장으로 돌아가 농사도 하면서 싸움에 대비해야 할것 같습니다.》

다른 의병장이 또 한마디 하였다.

린석은 걸음을 멈추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뜻밖에 튀여나온 말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사람,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 등 각이한 모양새로 자기를 주시하고있다.

그것은 린석이 예견치 않던 일이였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의병들은 충주에서 있었던 가지가지의 무훈담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그곳을 차지했던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싸울수 있다는 신심에 넘쳐있었다. 바로 거기에 신심을 가지고 린석도 이 자리를 마련했다. 의병장들과 함께 앞으로의 싸움방도를 더 깊이있게 토론하자는것이였다.

그런데 중군장 안승우가 이렇게 나올것은 무엇인가. 그의 한마디가 전군에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고나 한 말인가.

그때 그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튀여나왔다. 바로 자기를 대신하듯 김백산이 하는 말이였다.

《중군장님, 이제 부대들을 돌려보내는것은 의병대자체를 해산하는것과 같습니다. 제천을 고수해야 합니다.》

《나도 그쯤은 알고있소. 제천은 내가 고수하겠소. 그러나 전부대가 오래동안 제천바닥에만 늘어붙어있으면 망하는 수요. 먹을것, 입을것도 없는데다 놈들의 공격목표로 될수 있소. 따라서 각 의병대가 넓은 지역으로 나간다면 그만큼 활동에도 유리하고 놈들의 집중공격목표에서도 벗어날수 있소. 이것은 선봉장이 주장했던바도 아니요?》

《지금 각 고을에는 의병대를 해산할데 대한 왕의 명령이 내려가있고 곧 선유사들까지 도착할것입니다. 그에 비하여 각 의병대들은 력량이 약하고 의병장들의 지휘능력도 높지 못합니다. 각개격파될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창의대장의 두리에 굳게 뭉치고 서로 의지하면서 력량을 확대해나가야 합니다.》

《그들을 무엇으로 먹여살리겠소? 좁은 골안에서 싸움은 누구와 하며 력량은 어떻게 확대한다는거요?》

《꼭 제천읍바닥만 생각할것이 아닙니다. 방어에 유리한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유격활동을 벌리면서 범위를 확대해나가면 될수 있습니다.…》

린석은 교의에 앉아 그들의 오가는 말을 유심히 듣고있었다. 얼핏보면 저마다 거기에 맞는 그럴듯한 타당성이 있는듯 하다. 그러나 량자간의 주장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안승우의 켠으로 볼 때 그것은 제천이나 고수하면서 자기에게 편리하게 하겠다는것으로서 본질적으로는 싸움을 포기하겠다는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자기이외의 다른 부대들은 다 무시해버리는때문이다. 전체를 버리고 유독 자기 혼자만 생각하는거나 다를바 없지 않은가.

반대로 백산이쪽에서 보면 그는 의병대 전반을 보고 달라진 형국을 충분히 참작한것으로서 끝까지 싸움을 계속할 립장을 표명한것이다.

그것이 린석에게 힘이 되였다. 누구에게 묻고 의지할데가 없어진 지금에는 의병대자체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수밖에 도리가 없다.

《다들 들으라. 형세가 어떻게 달라졌든 한번 마음먹고 빼들었던 칼을 걷어넣을수는 없다. 정의의 싸움을 계속 벌려나가는것은 이 땅 남아들의 변함없는 기상이다. 이것은 우리가 저기 뾰족봉에 올라 하늘에 대고 맹세도 한바이다. 이에 창의대장인 나는 제천반일의병대를 끝까지 고수하고 그 력량을 확대해나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결심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놈들의 공격으로부터 제천을 고수하는것이다. 이를 위하여 사석을 의병장으로 하는 의병대가 충주에서부터 오는 학고개를 맡을것이다. 전부대가 그곳에 나가 방어를 담당하면서 멀지 않은 목미고개에서 창칼과 철알을 비롯한 병기도 만들어낸다.

서북쪽으로 통하는 구학산고개는 군사장 리필희가 자기 의병대와 함께 현지에 나가 담당할것이다. 구학산고개는 서울에서부터 적들이 직접 들이닥칠수 있는 곳이므로 군사장에게 특별히 맡기는것이다.

김백산의 선봉부대는 제천읍에 본거지를 두고 화약을 만드는 한편 기본전투부대는 유격활동으로 부대에 필요한 식량을 보장할것이다. 특히는 전투준비가 완료되는데 따라 적들의 주요군사기지이고 병참기지인 가흥공격을 계획할것이다.…

이로써 전투분담이 끝났다. 이를테면 류린석의 결심이 그대로 내려진것이다.

그에 대하여 일부 반신반의하면서 부대가 흩어져갈것을 주장하던 사람들까지 모두 호응해나섰다.

안승우도 례외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모임이 끝났을 때 불쑥 그가 한마디 꺼냈다.

《홍정식이네를 서울로 보냈으면 합니다. 야마무라놈한테 돈을 찾아와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뜻밖이였다. 지금과 같이 형세가 변하고 자리도 잡히지 않은 복잡한 때에 그것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자금이 딸립니다. 식량을 비롯해서 제천바닥에서는 나올데가 없습니다. 그 돈을 꼭 찾아와야 합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린석이 백산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한것은 정식과 그의 패거리들이 지금 백산의 선봉부대에 들어있기때문이였다. 백산이 그렇게 요구를 했고 그들도 응하여 소속되게 된것이다.

《제 생각엔 지금 보내면 안될것 같습니다.》

《그건 왜?》

《위험합니다. 왜놈들이 정식이네들을 놓쳐버리고 야마무라에 대한 경비를 강화할수 있습니다. 복수가 두려워서 야마무라부터 가만있지 않을것입니다.》

린석은 대답을 안했다. 그럴만한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때 안승우가 찌르듯 백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선봉장은 어째서 내가 하자고 하는 일에 대해선 코코에 막아서는거요. 자네가 중군인가?》

백산은 입을 다물었다. 내가 언제 그랬던가 하는 의혹이 그를 잠시 얼떠름하게 했던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런것 같았다. 정식에 대한 말이 날 때마다 자기가 반대해나섰던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그렇게 되였다. 야마무라에게 돈을 주었다가 전량을 떼우지 않았던가. 결국은 오늘 일도 그 연장선우에서 보아야 한다. 교활한 저 야마무라에 비하여 정식이네들은 너무도 단순하다. 그만큼 단련도 적으니 경계해야 할것이 많은것이다.

린석도 바로 그 시점에서 생각을 굴렸다. 이제 그들을 서울로 보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알겠는가. 그때에는 다시 수습할수도 없다.

《안되겠네. 당분간은 보내지 말자구.》

린석이 말해서 일단락 결속이 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다 돌아갈 때까지 승우는 그 자리에 남았다.

《대장님은 왜 번마다 선봉장의 말만 듣고 제 말은 그르다고 합니까. 그렇게 하자고 저에게 중군의 임무를 맡겼습니까?》

그가 대번에 들이댔다. 언제인가도 그렇게 말한적이 있지만 이렇게까지는 단도직입이 아니였다.

이제는 린석도 에두를수 없었다.

《그야 선봉장이 옳으니 옳다는것이지.》

《무엇이 옳다는것입니까. 물론 선봉장의 켠에 서면 그 말이 옳을수도 있지요. 하지만 대장님은 제 립장에 한번이라도 서보았습니까.

나는 홍정식과 함께 야마무라한테 돈을 떼운 사람입니다. 물론 그때에는 잘못했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지금이야 그 돈을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생각을 하면 막 분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것 같아 앞에 나설수도 없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몇달을 먹고 쓰고살수 있는 돈을 떼웠는데 왜 말을 안하겠습니까. 대장님은 저의 이런 립장에 한번이나 서보았습니까?》

리해가 되였다. 그에 대하여 량심의 가책을 느끼는것도 응당하다. 그러나 그때문에 중군의 직무를 수행 못하거나 사람들앞에 나서기를 주저한다면 그것은 리해할수 없다.

《그게 전부인가?》

《아니, 또 있습니다. 물론 때에 따라 선봉장이 옳을수도 있습니다. 싸움도 잘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상민이지 량반이 아닙니다. 그가 아무리 선봉장이고 싸움을 잘한다 하여도 량반의 지위에는 올라설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대장님은 그 모든것을 무시하고 오직 전공이나 임무수행에 따라 사람을 평가함으로써 인륜도의를 페절시키고 조상전래의 절조를 깨뜨리고있습니다. 대장님은 일찌기 저희들에게 하늘이 높고 땅이 낮은것처럼 사람도 높고낮은 사람이 따로 있으며 그런 이상에는 〈상지하우불가이(웃사람이 현명하고 아래사람이 우둔한것은 움직일수 없는 법칙이다.)〉를 뼈에 절도록 가르쳤는데 이제 그것을 부정하는것입니까.

설사 선생님이 부정한다고 하여도 옛 성현들이 만들어놓은 대의명분은 누구도 깨뜨릴수 없고 다시 돌려세울수 없습니다.》

린석은 말없이 그앞을 거닐었다. 그의 말이 세차게 가슴을 때렸던것이다.

옳다. 지금까지 그는 그 모든것에 대하여 수많은 제자들에게 말을 했고 그렇게 가르쳤다. 그런데 이제와서는 그 절조를 깨뜨리며 하나하나 부정해나가고있다. 반상의 계률뿐아니라 왕에 대해서도 그렇다. 왕도 나라와 백성을 위하지 않는 한에야 무엇에 필요한가.

놀라운것은 린석이 한생을 익혀온 모든것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하고 돌아섰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의 머리속에는 반상이나 상하의 등급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공이나 업적에 의하여 사람들을 갈라보는것이 버릇처럼 굳어져가고있다.

하다면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 내가 변했다는것이 아닌가.

(아니, 나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것은 내가 아니라 세상이다. 세상이 그것을 요구하고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밖에서 혼자 자유로울수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미영과 김백산이 가까워지는것을 바랄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대장님도 동조하지 말며 이 아버지의 심중에 맡겨두어야 합니다. 대장님이 과연 이것을 모른단 말입니까?》

린석은 여전히 자기 세계에 잠겨있었다.

《내버려두라구. 그들도 저들이 그렇게 하자고 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시켜서 하는노릇이야. 세상이 달라져가고있단 말이야.》

그렇게 그루에 못을 박듯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대고는 훌쩍 그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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