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2 장

불타는 성

12

(2)

 

해지는 저녁 린석은 홀로 성을 거닐었다. 힘겨운 하루싸움을 겪고 난 저녁이면 낮에는 몰랐던 온갖 상념들이 되살아나는것이다.

이대로 성을 며칠이나 더 견디여낼것인가. 최익현대감은 성을 견디여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무엇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이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거니는데 누가 찾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인가 돌아보는데 한사람이 말에서 곤두박히듯 땅에 떨어지며 곧바로 린석의 앞에 엎드렸다.

《최익현대감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편지입니다.》

그가 품에서 봉서 하나를 꺼내여 내밀었다.

《최대감께서? 무슨 일로…》

《읽어보십시오. 다 씌여있을것입니다.》

봉투를 뜯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이 흐려지고 턱수염이 푸들푸들 떨렸다. 통털어서 몇자도 안되는 글이였다.

《대군이 간다. 성을 내주고 속히 철수하라. 왕이 〈애통소〉를 취소하고 일체 의병을 해산하며 듣지 않으면 각처의 군대들로 하여금 그대들을 공격케 하였다. 나도 더는 도울 힘이 없음을 알린다.》

밑도 끝도 과정도 없이 결과만 완벽한 편지였다. 이것이 무엇인가. 그래도 엊그제까지는 싸움을 계속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푸른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인듯 영문을 알수 없었다.

의병장들이 모여왔다. 모두가 분개했다. 《애통소》를 내려보낸지가 아직 두달도 못되였는데 그것을 취소하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왜병들이 아직 사처에 널려있고 공세는 더 강화되는데 그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이 의병들만 해산하라고 하니 그놈들은 어떻게 하며 의병들은 또 어떻게 하라는것인가.

린석은 드디여 서울길을 결심했다.

…왜놈들이 한사코 이 성과 해보는데는 창의대장님을 노린데도 있다. 그런데도 당자가 나선다는거야 섶을 쥐고 불속에 뛰여드는게 아닌가. 설혹 일이 되여 빠져나간대도 무사히 다시 들어올수 있는가. 이런 때 의병장이 성을 뜨는건 싸움도 싸움이지만 의병대의 생사와 관련한 중대사다. 모두가 결단코 막았으나 린석은 끝내 몇몇의 호위속에 성을 빠져나갔다.

죽기내기로 달려 서울에 당도하니 최익현이 외딴 사랑방에 누워있다가 방에 들어서는 린석을 멍청히 바라보는데 그것은 전에 없던 일이였다.

린석이 역시 문앞에서 잠간 읍만 하고 여전히 누워있는 익현의 옆에 앉았는데 맞고 맞이하는 모습이 잠간 소풍하러 갔다 들어오는 광경이였다.

《자네가 어째 왔나?》

익현이 여전히 누운 자세로 물었다. 린석도 무릎을 꿇기는 하였으나 하는 대답이 천연스러웠다.

《잠간 물어볼 일이 있어 왔소이다. 먼길에 소인인들 일이 없어 왔겠소이까?》

《내가 도울 길이 없다고 편지에 쓰지 않았나. 그런데두 막 올라와?》

《대신이 돕지 않으면 누가 돕겠소이까. 우리의 명줄은 애오라지 대감어른께 달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는 익현이 늙은이답지 않게 벌떡 일어나앉으며 팔을 홰홰 내둘렀다.

《이놈 봐라, 내가 당장 죽게 되였는데 자네의 명줄이 내게 달려?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덤비는것을 보니 분명 설긴 설었구나.》 하고는 무엇이 없나 방안을 둘러보다가 서안우에 놓인 종이장을 그에게 홱 밀어던졌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읽어보라고 하지 않나.》

익현이 꽥 소리치다가 생각난듯 한손을 들었다.

《아니, 영문을 알긴 알아야겠군. 그게 임금께 올리는 내 상소문인데 벌써 올라갔어. 일인즉 나를 포함한 1, 2품 관리들을 의병투쟁을 그만두도록 설복하기 위한 선유사로 파견하는것을 반대하여 올리는것이야.》

그제서야 익현이 어느 정도 진정을 하고 본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린석이 꿈에도 하지 못했고 할수도 없었던 전혀 생뚱같은 이야기였다.…

로씨야공사관으로 《파천》을 한 왕은 그로써 신변의 안전과 왕실의 안녕이 담보되였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리고 로씨야의 세력에 의지하여 이제부터라도 외교적방법으로 일제놈들의 조선침략기도를 저지파탄시킬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면 문제시되는것이 첫째로 의병이였다. 외교적교섭을 하자면 먼저 그들에게 총칼을 들이대고있는 의병들부터 돌려세워야 했던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불과 두달전에 내려보냈던 《애통소》를 취소한다는것과 함께 일체 의병대를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려보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새로 조직된 정부의 외부대신 리완용의 훈시와 전국 각지에 선유사를 파견할데 대한 지시를 내려보낸것이다.

선유사들가운데서도 왕이 제일선참으로 꼽은 사람이 최익현이다. 그가 궁중에서 영향력도 있는데다 의병투쟁을 제일선참으로 강력하게 주장했기때문이였다.

바로 그것이 최익현의 불만을 샀다. 정책에서 아무런 주견도 없고 이랬다저랬다 하기를 잘하는 저 사람이 과연 우리 임금이였던가 하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상소문을 썼다. 지금 린석이 읽고있는것이 그 초안이다. 거기에서 익현은 먼저 왕의 우유부단성에 대하여 심각하게 비판하고 자기는 선유사의 직무를 맡아할수 없다는 립장을 단호히 밝혔다.

그 첫째 리유가 임금의 지시문에 역적들은 이미 처단되였다고 하였는데 어떤 역적들이 처단되였단 말인가, 지금 의병들은 왜적을 치자고 일어났는데 역적이란 말이 여기에 어떻게 해당되는가, 우선 말의 리치에서 그들과 맞지 않으니 임금의 뜻을 잘 받들어 집행할수 없다.

둘째 리유는 지금은 만국이 서로 화친하고 믿음과 의리를 같이 할 때라고 한다, 그런데 저 왜적들은 정의를 생각지 않고 음모하고 공모하면서 여러해동안 이 나라에서 변고만 일으키고있다, 신이 듣건대 각국이 화친을 맺는데는 이른바 공정한 법이 있다고 하는데 그 법에 과연 남의 나라 임금을 위협하고 국모를 살해해도 된다는 조문이 있는가.

지금 여러 고을들에서 의병들이 일어나 왜적을 치지 않으면 원쑤를 갚을수 없다고 하는것이 바로 그때문이다. 바로 이렇듯 정정당당한 리유를 가지고 론증을 한다면 신이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한단 말인가.…

최익현은 바로 이러한 론거를 가지고 자기는 선유사노릇을 할수 없다는 상소문을 올렸다.

벌써 세번째 상소문이다. 한번은 저 대원군의 서원탄압때, 한번은 《강화도조약》체결때. 그때마다 그는 상소문때문에 귀양을 가야 하는 쓰디쓴 맛을 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또 썼다. 어떻게 의병투쟁만이라도 살려 왜놈들의 침입을 막아보자는것이였다.…

전후사를 다 듣고난 린석은 그만에야 익현의 앞에 넙적 엎드려 절을 하였다.

《대감어른, 잘못했소이다. 제가 그런줄도 모르고 예까지 올라와 화풀이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익현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려치며 버럭 화를 냈다.

《그게 어쨌다는겐가. 상소를 하든 진언을 하든 집행될것은 하나도 없는데야. 이 몸은 물고를 당하든 귀양을 가든 하겠지만 장차 나라의 존망은 어찌한단 말이냐.》

저녁에 주안상이 들어와서는 그 이야기가 더 심화되여 전개되였다. 주되는 내용이 왕의 《아관파천》과 그를 둘러싼 형국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 급한것은 빨리 왕이 환궁을 하여 신하들을 만나고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는것이다. 그리하여 사처에서 인민들과 관리들이 왕의 환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발치듯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왕은 《경운궁과 경복궁의 수리》와 《며칠내로 돌아가겠다.》는 식의 구구한 변명만 대고있다. 거기에 조선왕을 끼고 급격히 남하작전을 벌리는 짜리로씨야와 그에 대비한 일본의 본격적인 전쟁준비…

듣고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만간에 이 나라가 또 대국들의 전쟁판으로 되고말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것은 세치아이도 짐작할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왕이란 사람은 남의 나라 공사관에 깊숙이 숨어들어 돌아올 념을 않고 그 어떤 외교적방법만을 운운하고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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