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 회)
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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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부대는 힘겨운 전투행군을 계속하고있는 가운데 1934년을 보내고 1935년 새해를 맞았다. 그것은 원정부대가 녕안현과 목릉현의 경계에 솟아있는 석두산을 야간행군으로 넘어서던 날 밤이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밤에 자기들이 1934년에서 1935년으로 넘어서고있으며 녕안땅에서 목릉땅으로 넘어서고있다는것을 몰랐다.
원정대원들에게는 시퍼렇게 언 창백하고 가냘픈 쪼각달이 눈보라속에서 허우적거리고있던 그밤이 사나운 바람성화에 못견디여 늙은 나무숲이 한숨소리를 그치지 못하고 메마른 앙상한 봇나무가지들이 아츠러운 비명을 연방 내지르는 그밤이 어제나그제나 다름없이 한초바삐 한발자국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생사를 좌우하는 밤, 생사를 좌우하는 순간일뿐이였다.
그들은 오로지 어떻게 하나 중태에 빠지신채 의식을 잃고 담가에 실리신
십여명 가까운 원정대원들이 그 매 전장의 눈을 붉게 물들이며 쓰러졌다. 그중의 적지 않은 전우들에게는 나무가지와 눈도 덮어주지 못한채 뒤에 남겨두고 왔다.
생사를 판가리하는 싸움이 밤과 낮을 이어 계속되였다. 그때마다 새로운 희생자가
이미 푸름푸름 새날이 밝아오고 원정대가 금방 건너선 개울가의 잣나무 원시림속에서 한숨 돌리며 이틀째나 비여있던 물통에 물도 채우고 다문
몇송이의 잣송이나마 얻으려고 잣송이를 찾고있을 때
그제야 한흥권은 넘어온 산과 건너온 개울을 새삼스레 둘러보고
《알겠소. 여기가 목릉땅의 첫 기슭이란말이지. 아직도 한 열흘쯤은 잘 걸려야 요영구에 가닿을수 있겠구만.》
《한흥권동무, 우리 동무들을 보고싶구만. 모두 담가곁으로 오라고 하오.》
《예, 알겠습니다.》
한흥권의 명령에 따라 대렬의 후위에 기관총수만 남고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
《용석이, 재신이, 성태, 광국이… 그동안 힘겨운 싸움을 벌리며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들을 했소. 좀더 가까이들 오라구. 한번 손이라두 잡아봅시다.》
대원들은 담가곁으로 와락 달려들어
《
《그래그래…》
《동무들의 얼굴을 보니 내게도 힘이 생기누만. 이대로 좀더 가면 동만으로 나갈수 있소. 며칠동안 힘을 가다듬구 행군을 이어댈수 있을가?》
《있습니다,
대원들은
《그렇다면 마음을 놓겠소. 그처럼 멀고 험한 북만원정길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승리의 행군을 이어온 동무들인데 동만경계가 지척인 이 목릉원시림속에서 주저앉고말수야 없지. 나는 동무들만 믿소. 한흥권동무, 이자리에 없는 동무들을 다 불러주오. 차일진동무랑 청해랑 어디 갔소?》
《
《그렇다면 자리바꿈을 해서라도 오라고 하오. 청해는 사령부나팔수인데 왜 후위에 세웠소. 어린 동무가 예까지 따라온것만도 용치.》
한흥권은 할수없이 김택근에게 눈짓을 해서라도 사람들을 데리러 가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김택근동무, 용석동무를 데리고 후위에 나가 차일진동무와 청해동무를 오라고 하오.》
《중대장동지, 명령대로 차일진동무와 김청해동무를 데려오겠습니다.》
김택근은 담가옆을 떠나자 바삐 걸음을 다그쳐 행군중대의 후위로 나갔다.
그러나 김택근에게서는 점도록 소식이 없었다.
《왜 지금까지 이 동무들이 나타나지 않소. 후위에서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닌가. 한흥권동무?》
《아닙니다,
《아무튼 우리 동무들이 다 몸성히 근거지로 돌아가야 하오. 차일진동무와 김청해동무는 다 젖먹이시절에 어머니를 여의고 동냥젖을 먹으며 자란
동무들이요. 그래서 그 동무들의 남달리 허약한 모양을 볼 때면 어릴 때의 영양이 부족해서 그러리라는 측은한 생각이 들군했댔소. 지금은 다 어른이
되고 당당한 유격대원으로 성장한 사람들이지만 차일진동무의 입에서는 자주 엄마 잃은 처량한 어린이의 심정을 노래한 동요가 울리군했었소. 그
차일진이가 중학시절에 어느 한 력사극에 출현해서 갑옷 입고 투구 쓰고 큰칼 찬 리순신
한흥권은 입귀를 실룩실룩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가버린 사람들에 대한 애절한 생각은 가슴에 매달리고 돌아오지 못할 동무들을 그냥 기다리시며
가슴저미는 추억을 더듬고계시는
《아무리 후위조가 멀리 나가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할 까닭이야 없지 않소? 한흥권동무,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요?》
《
《아니라니까. 동무가 자꾸 그러지 말고 알아보오. 내가 찾는다는 소리를 듣고는 이렇게 늑장을 부릴 동무들이 아니요. 나는 차일진동무가
읊조리는 리순신
《제가 뭘 감추겠습니까.》
한흥권은 말은 천연스레 하고있었으나 이제는 당황한 낯빛이며 떨리는 목소리며를 죄다 감춰낼 도리가 없었다.
《한흥권동무.》
한흥권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어서… 말을 하라구, 어서!》
힘들게 재촉하시는
《
그것이 닷새전의 일입니다. 귀중한 동무들을 석두산 저쪽에 두고 묻어주지도 못한채 부대는 떠나왔습니다.》
수림속엔 불시에 숙연한 침묵이 깃들었다. 대원들은 숨소리마저 삼키고 머리들을 깊이 떨어뜨리였다.
《내가 정신을 잃고있는사이에 귀중한 혁명동지들이 한사람 두사람 다 이렇게 가고있구만.》
한흥권의 눈에서는 소리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대원들앞에서 누르고 눌러온 괴로움을 더는 감출수도 극복할수도 없었다.
대원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