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회)

제 2 장

불타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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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번에도 그랬던것처럼 이번에도 왜군의 성에 대한 재공격은 포사격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그것은 이다찌가 성밖에서 한차례 얻어맞고 이어 달천에서 계속되는 타격을 받은데 대한 이른바 보복전이였다. 그만큼 포화력을 비롯한 공격력량이 강화된데다가 성가까이에 붙어서 직접조준사격을 가했다.

그 첫 대상이 성벽이였다. 갑자기 지심을 울리는 포성과 함께 시뻘건 불기둥이 여기저기 솟아올랐다. 시꺼먼 흙먼지와 함께 성벽을 이루고있던 거대한 바위들이 하늘높이 치솟아올랐다가 마른 벼락처럼 사방에서 후둑후둑 떨어졌다.

그래도 성은 한동안 그따위 포탄쯤은 문제가 없다는듯 끄떡없이 서있었다. 그때까지 남풍루에서 형세를 관망하던 린석과 몇몇 의병장들은 시작부터 다른 놈들의 잡도리에 불안을 느꼈다. 김백산은 그때에 벌써 놈들의 기도를 알아차리고 의병들을 모두 대피시켰다.

그사이 포탄들은 점점 목표를 이동하면서 남풍루가까이로 접근해왔다. 저 고구려의 국원성때부터 천수백년을 내려오며 여기 태백산, 소백산자드락에 터를 닦고 경기, 강원, 경상, 전라 등 여러 도들과 린접하면서 충청도의 위용을 자랑하던 성벽이 점차 벌레먹은 잎처럼 숭숭해지더니 몇군데가 뭉청 끊어져나갔다.

마침내 포탄이 남풍루에 닿았다. 몇개의 포탄이 거의 동시에 문루를 때렸다. 그래도 문루는 끄떡없이 서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포탄 하나가 문루의 배부른 기둥을 면바로 맞혔다. 그때에도 문루는 괜찮다는듯 그냥 서있었다. 그러나 잠시후 지붕이 움씰움씰하면서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지붕을 이루고있던 오색이 령롱한 선자추녀와 산미, 소로, 주두들이 우드득거리며 갈라지다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와 함께 용마루가 한순간 수평으로 납작해지더니 통채로 바닥에 내려앉았다. 기와장들이 와르르 쏟아지고 타래진 연기와 먼지가 성안팎으로 기염을 토하며 흩어졌다.

아래에서 문을 지키고있던 의병들이 가슴을 치며 밖으로 쓸어나왔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눈에 익고 몸에 버릇된 문루가 없어지자 성은 순간에 낡아빠진 려염집울바자처럼 초라해지고말았다. 아직은 그것도 약과였다. 남풍루가 없어지는데 재미를 느낀 놈들은 돌아가며 문루들부터 까부시기 시작하였다.

잠시후에는 동문과 북문의 문루들이 차례로 넘어지면서 불길에 휩싸이였다. 성의 위용을 자랑하던 문루들이 내려앉은 성은 갓을 벗기운듯 퍽 왜소해보였다.

그 모든것을 지켜보는 린석 이하 모든 의병장들과 의병들은 가슴에 피가 끓었다.

포사격이 멎자 의병들은 즉시 성보수에 달라붙었다. 포사격의 중지는 곧 놈들의 공격을 의미하는것이였다. 그것은 짧은 시간이였다. 아닌게아니라 벌써 멀리에 놈들의 공격서렬이 나타났다.

이미 지휘처를 잃은 린석은 자주 백산의 선봉대에 나와 그들과 함께 돌을 나르고 흙도 팠다.

그런데 백산이 어느새 남풍루가 있던 그 자리에 돌로 작은 성을 쌓아 지휘처로 정했다. 안승우가 그보다 좀 떨어진 뒤쪽에 새로 정했다고 가자고 했으나 린석은 듣지 않았다.

마침내 싸움이 터졌다. 왜놈들은 이번에도 조선인관군을 앞세우고 뒤에서 보총과 기관총을 휘두르며 돌진해왔다. 그에 대비하여 의병들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성가퀴와 포탄구뎅이 그리고 새로 올려쌓은 성돌들에 의지하여 놈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아직은 어느쪽에서도 사격을 하지 않았다. 의병대에서는 활 한바탕 거리까지라도 바싹 끌어당기자는것이고 왜놈들켠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성가까이 접근하자고 하는것이 목적인것이다.

통나무처럼 뭉툭한 총통과 보총을 뒤섞어든 관군과 지방군, 그뒤에 싯누런 군복에 신식보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왜군들이 무리를 지어 부득부득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의병들의 눈에는 불이 일고 몸에는 피가 솟았다. 어쩌면 저리도 악착하고 가증스러운가.

남의 나라를 제땅처럼 짓밟고 남의 사람을 제놈들의 총알받이로 앞세우고도 뻔뻔스럽게 큰소리로 호령하는 저놈들…

무조건 이겨야 한다, 내가 먼저 죽이지 않으면 저놈이 나를 죽인다, 내뒤에 있는 부모처자, 형제자매들까지 모두 죽일것이다, 피로써 온몸을 다 바쳐 기어코 이겨야 한다.

마침내 놈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누군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번에처럼 조선사람끼리 싸우지 말고 총부리를 돌려대라는것이다. 그러나 대오는 그냥 전진하고있다. 돌아서기만 하면 시꺼먼 총구가 겨누고있는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확연해진 그 공포에 질린 낯짝과 서로 희떱게 수작들을 주고받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의병들의 몸에는 진땀이 흘렀다. 여전히 사격구령이 내리지 않는것이다.

그렇게 이제나저제나 기다릴 때 마침내 사격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린석이 직접 높이 달아맨 북에 대고 방망이를 휘둘러댔다.

그러자 남쪽의 전 성벽면에서 일제히 화살이 날아가고 조총에 불이 달렸다. 핑, 핑 하는 화살에 이어 땅, 땅 하는 조총탄알들이 비발치듯 성아래로 쏟아져내렸다. 삽시에 놈들속에서 혼란이 일고 공격서렬은 수라장이 되였다. 더구나 뒤에서 오만하게 놀아대던 왜군들이 무리져쓰러지며 갈팡질팡 헤맸다. 공격의 화살이 왜놈들에게 집중되였던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못 가서 수습되였다. 뒤에다 기관총을 걸어놓고 사격을 가하기 시작한것이다. 다수의 보총수들도 그렇게 했다. 기타 대부분 왜병들은 조선인관군속에 뒤섞여 《도쯔께끼》를 부르며 돌격해왔다.

린석은 속이 탔다. 그렇게 되는 경우 사격을 마음대로 할수 없는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웨치는 소리가 들렸다.

《활로 왜놈들만 겨누고 쏘라―》

김백산이였다. 그가 성우에 우뚝 서서 앞을 가리키며 웨치고있는것이였다.

다음부터 화살이 왜놈들만 향해 날아갔다. 몇정 안되는 보총수들은 멀리에서 짖어대는 기관총을 향해 집중사격을 가했다. 그로 하여 기관총은 자주 멎고 왜군들은 사기가 저락되였다. 거기에 맥이 빠진 놈들은 그대로 물러가고말았다.

그것은 아직 싸움의 시작일뿐이였다. 다음부터 놈들은 더 집요하게 포사격을 가하고 력량도 곱절 강화하여 련속 공격을 가해왔다. 그통에 이제는 성벽도 형체만 남고 많은 인명손실도 났다. 그러나 의병들은 성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놈들은 여느때없이 증강된 무력으로 성을 공격해왔다. 성의 전면에 걸쳐 새까맣게 산개대형을 지어 일시에 달려들었다. 그에 대처하여 의병대측에서도 모든 력량을 총동원하였다. 녀성들과 아이들, 로인들까지 싸움에 투입하였다. 이제는 사다리가 없이도 오를수 있는 성벽을 타고 놈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의병들이 다 찢어진 의복에 맨살을 드러내고 부러진 창과 칼을 들고 놈들과 맞섰다.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총이며 사다리며 칼이며 머리며 하는것을 가리지 않고 내려찍고 찔렀다. 거기에 녀성들과 아이들이 날라오는 돌이며 철편이며 뜨거운 물이며 하는것을 마구 퍼부었다. 그속에서 린석은 미영과 리씨도 보았다. 미영이 함지에다 돌을 하나가득 이어다주면서 뭐라고 하면 백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서 그것을 의병들에게 넘겨주군 하는것이다.

리씨도 미영과 함께 붙어다니다가 이따금 자기를 살펴보군 한다.

그러나 린석은 그를 못 본체 했다. 아니, 할새가 없었다. 이제는 그도 일개의 병졸이 되여 싸움에 나선것이다. 전장을 굽어보다가 형세가 급한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처음에는 어쩔줄 몰라 당황하다가 성우로 기여오르는 놈을 향해 칼을 힘껏 내리쳤다. 면바로 놈을 내리쳤다는 쾌감과 함께 자기도 한몫 했다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누가 알아봐주었으면 하는 기대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눈길을 두지 못했다. 아니, 그럴 경황조차 없었다.

저저마다 악악 하며 성아래로 정신을 파는것이다.

가까이에서는 김백산이 량손에 검을 거머쥐고 청산의 호랑이처럼 서슬푸른 기상을 펼치고있다. 그가 한번 검을 쳐들고 공중에 빛발을 날릴 때마다 악악 하는 왜놈의 비명이 터져오르고야만다.

남풍루가 있던 저쪽너머에서는 리필희가 싸우고있다. 그옆에는 안승우가 붙어있는데 그는 지금 장창으로 왜놈 하나를 찔러메치고 그것을 뽑지 못해 안깐힘을 쓰고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린석의 몸에 또 한번 힘이 솟구쳤다. 다시 검을 틀어쥐고 성아래로 향했다.

어느새 갓이 벗어지고 망건이 달아났다. 언제나 몸에 길게 늘어져 흐느적거리며 위풍을 자랑하던 도포의 팔소매도 떨어져나가고 옷매무시를 갖추어주던 술띠도 간곳이 없다.

그렇게 싸웠다. 모두가 한마음 왜놈을 족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슴들을 불태웠다. 결국 그날도 왜놈들은 성을 빼앗지 못한채 물러나고말았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결과는 같았다.

그러나 그때에 이르러 린석의 생각은 달라졌다.

성안에 병기와 식량이 다되여간다는 무거운 중압감이 엄습해오고있는것이였다. 물론 그사이 더러 싸움으로 보충도 하고 자체로 만들기도 하였지만 지금처럼 하루소요량이 엄청나고서는 도저히 당할 길이 없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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