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 회)

제 2 장

불타는 성

11

(3)

 

호위군사들에 둘러싸여가던 무리속에서 갑자기 쉬쉬하는 소리가 났다. 일본공사관이 나타났던것이다. 분주한 눈빛들이 오고갔다. 그안으로 뛰여들기만 하면 살수 있는것이다. 무리의 앞장에 섰던 홍집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아닌게아니라 잠시후 갑자기 와와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치고 받고 하는 소동이 일었다. 그러는 속에 여라문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본공사관안으로 뛰여들었다.

그러나 홍집은 태연히 걸었다. 죽어도 친일분자가 되여 왜놈의 품으로는 기여들지 않겠다는 자세였다. 그러나 세력권쟁탈을 노린 싸움은 용서를 몰랐다. 새 정부의 친로파세력들은 이미 짜진 각본에 따라 어느 한 길목에 괴한들을 매복시켰다가 김홍집을 철퇴로 쳐서 까죽이는 악행을 감행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아관파천》이라고 하는 사건의 진상이였다. 이러한 기이한 현상은 명백히 조선을 쟁탈하기 위한 로일간의 각축전의 직접적산물로서 왜적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로씨야세력에 의존하여 무엇인가를 해결해보려는 조선정부의 사대망상증과 부패무능의 발로였다.

그날 김홍집의 사망에 대한 소식까지 듣고난 익현은 너무도 터무니가 없고 억이 막히여 온 하루를 허겁지겁 걸었다. 어디 가서 똑바로 물을 사람도 없고 대답을 찾을데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사건의 전말에 대하여 말은 했지만 홍정식에게 그이상 할말은 없다. 뭐라고 하겠는가. 한 나라의 임금이란 사람이 저모양을 하고 돌아가는데 린석이 너는 계속 싸우라고 하겠는가. 그렇다고 지금 한창 나래를 편 싸움을 그만두라고 하겠는가. 거기에 일전에 했던 임금의 약속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다가 정식이 다음날 다시 충주로 떠난다고 할 때에야 불시에 그를 붙잡고 말했다.

《의암더러 싸움을 중단하지 말라게. 조만간에는 나도 내려가겠네. 이런 판에 서울에 앉아 한탄만 하고있느라니 차라리 나도 한명의 의병이 되여 적진을 향해 화살 한첩이라도 날리는것이 나으리.…》

그렇게 정식은 떠났다. 너무도 자주 다닌 길이여서 이제는 먼길도 아니지만 오늘은 별스레 마음이 무거웠다. 반갑지 않은 소식을 가지고간다는 불쾌감에서 오는것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의병대에 빚진 몸인 그가 이따위 소식이나 들고가야 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말을 때려모는데 오솔길 깊은 숲속에서 사람들 몇이 불쑥 앞을 막아섰다.

두사람인데 어깨에는 제법 신식총까지 멨다.

《어델 가? 너 서울사는 량반자가 분명하지?》

제법 호령인데 서울량반쯤은 우습게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정식은 무섭지 않았다. 얼핏 보아도 그들이 강도가 아니라 의병이라는것을 알았던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요즘 어느 누가 대낮에 뻐젓이 저런 총을 메고 길거리에 나선단 말인가.

《길비켜라. 난 바쁜 사람이다. 이길로 충주성까지 가야 한단 말이야.》

《충주성? 거긴 왜…》

《내가 바로 류린석창의대장의 부하인데 서울에 파발왔다 가는 길이다. 너희들 왕이 아라사공사관으로 피난간것 알아?》

했으나 그들은 거기에 관계없이 다시 물었다.

《충주에서 왔으면 너 서대장을 아니? 서상렬대장님 말이다. 우리가 바로 그한테서 왔다.》

이번에는 정식이 놀랐다. 서상렬이라면 그도 모르지 않거니와 한번 만나고싶은 생각까지 드는것이다. 제천에서 백산과 싸움이 났을 때 자기를 군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바로 그였던것이다. 한것이 벌써 오래전일처럼 생각되며 가까이에 있다면 인사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것이다. 하여 말에서 내리자고 하는데 한사람이 그의 엉뎅이를 툭툭 치며 그냥 가자고 하였다.

마침 자기들도 충주로 가는 길이라며 같이 가자는것이였다. 이를테면 자기들도 서상렬이 파견한 파발이라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길동무가 되여 충주까지 몇백리길을 어렵지 않게 갈수 있게 되였다.…

최익현이 보낸 왕의 아관파천에 대한 소식은 실로 린석에게서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것은 린석이 지금껏 왕을 향해 다져온 모든 충군충의심을 한꺼번에 뒤집게 하는것이였다.

린석이 알기에 임금은 하늘이고 곧 나라이다.

임금이 나라를 세우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다스리지 않는가. 그래서 나라를 말할 때 그것은 곧 임금의 나라라고 하는것이다.

반대로 임금은 곧 백성의 어버이고 백성이 없으면 임금도 없다고 한다.

린석은 그 두가지가 다 맞는다고 생각해왔다.

요컨대 임금은 머리이고 신하와 백성은 팔다리로서 신체에 비하면 한몸인것이다. 참으로 신통한 비유이다. 그런데 지금 머리가 신체를 버리고 홀로 달아났다. 그러니 머리는 무엇이 되고 신체는 무엇이 되겠는가.

《하기에 서상렬대장님은 그런 임금이 필요없다고 하면서 차라리 임금까지 반대해서 싸우자고 했습니다. 전번에 주장하던 서울공격의 계속인것입니다.》

파발온 사람이 설명했다. 왕의 아관파천소식을 먼저 알고 보내온것이다.

지금 남한산성에는 만단의 준비가 되여있다. 다만 그들의 힘만으로는 서울공격을 단행하기 힘들기때문에 최대한 힘을 합치자는것일뿐이다. 거기에서 참모의 역할을 하는 서상렬의 주장이다. 그것은 자기가 아직도 제창하고있는 제천반일의병대라는 의미에서 무랍없이 토론을 붙인데도 있지만 무엇보다 류린석이 제일 힘있고 이름있는 의병대를 이끌고있기때문이다. 그가 서울공격에 참가하는것과 함께 다시한번 격문을 날리기만 하면 과연 서울공격이 용이하게 되리라는 타산을 세운것이다.

그 말을 듣고나니 린석은 또다시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임금은 백성을 버리고 달아나고 백성은 임금을 반대하여 칼을 빼여들겠다니 이것이 무슨 일인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아서라, 안된다, 절대 안된다, 설사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나만은 그렇게 할수 없다.

《서대장한테 가서 이르게, 나는 절대 그렇게 할수 없다구… 내가 주장하는것은 왜놈과 싸우자 하는것일뿐이지 제 임금을 반대하자는것이 아닐세. 서대장도 그렇게 해서는 안되네, 절대…》

린석이 진저리를 치듯 두손을 내흔들었다. 그러한 립장은 안승우나 리필희들도 다를바 없었다.

그때 옆에 앉았던 김백산이 한마디 끼여들었다.

《대장님, 서대장의 요구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가요. 그도 근본은 왜놈을 목적한것이지 임금을 목적한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가 전에도 했던 말입니다.》

그것은 예상치 않던 일이였다. 물론 상렬이 떠날 때 그런 주장을 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날자도 많이 흘렀다. 그사이 피어린 싸움도 함께 겪었다. 그런데 이제 그 주장을 다시 되풀이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선봉장, 서대장이 여기 편지에도 그렇게 썼고 파발도 분명히 발설을 했는데 그들이 왕을 노리지 않았다는것은 무슨 말인가.》

안승우였다. 새로 중군이 되여 일을 시작하는데 그 마디마디가 서리발처럼 찼다.

그에 못지 않게 백산의 대답도 차거웠다.

《지금 나라에 임금이 없다고 하는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백성들은 저들과 운명을 같이할 임금을 요구하지 저만 살겠다고 백성을 저바리고 도망가는 임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고현 놈 봤나. 나라에 임금님이 안계신다구? 그래, 이 나라에 다른 임금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

《백성이 따르지 않으면 그는 벌써 임금이 아니며 그런 임금은 열, 백이 나와도 소용없습니다.》

《무엄하다. 너같은 상놈이 감히 국사를 론하고 나라님을 걸고들다니. 어디에 대고 감히… 싸움이나 좀 한다고 얼러추어줬더니 바로 이렇게 오만해졌소. 무거불측하고 불학무식한 이놈…》

《나는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으로 이미 국사에 참여하고있습니다. 나는 내가 죽어서 나라가 편히 될수 있다면 이제라도 죽겠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그렇게 해도 되지 않겠기때문에 안타까워 하는 소리입니다.》

《우국충정에도 엄연히 구별이 있고 차이가 있거늘 푼수넘친 소린 매미울음소리 한가지야.》

《그러니 중군장님은 나라위한 마음까지도 반상의 차이로 그 크고 작음이 규제된다는것입니까?》

무릎우에 놓인 주먹에서 우드득소리가 났다.

꾹 다문 입에 량볼이 터져나갈듯 움씰움씰하기도 했다. 당장 무슨 벼락이라도 일어날듯 한 그 순간 린석이 갑자기 서안을 탕 내리쳤다.

《이게 무슨짓들이냐. 당장 입들을 다물지 못할가? …》

하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해서 입들은 다물게 했지만 그 이상은 자기도 어쩔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앞으로는 이보다 더한 싸움도 일수 있다는 예감이 가뜩이나 복잡한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쓸데없는 입씨름을 말라구. 우리야 왜놈들과 싸워야지 우리끼리 싸우자고 모여왔나.》

하고는 가장 대범한체 웃었다. 마음의 상처에 바르는 약이야 웃음이상 있는가.

그러나 그에 응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 하나 따라웃지 않는다.

그것을 보는 린석의 가슴에 눈물이 솟았다. 아니, 피가 고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순히 승우나 백산이 다툼을 해서가 아니다. 왕의 아관파천으로 하여 도저히 풀수 없는 응어리가 진때문이다.

바로 그 일로 하여 최익현대감이 모지름을 쓰고있고 서상렬은 분개하고있으며 자기는 갈피를 잡지 못해 안달아하고있다. 승우와 백산의 충돌도 그래서 시작이 된것이다.

아아, 상감마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진정 상감의 아관파천은 무엇을 뜻한것이며 언제까지나 계속될것입니까, 빨리 환궁을 하셔서 이 나라의 신민을 돌보시며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그날 밤 린석은 한잠도 들지 못하고 초가락을 주무르며 지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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