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 회)
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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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만원정의 간고한 나날 원정대의 크고작은 모든 일을 한가슴에 안으시고 말할수 없는 긴장한 투쟁을 이어오신
그는 촉한에 드신
지금까지의 그의 명민한 지혜와 날파람있는 기지들은 죄다
팔도하자를 떠나 남호두밀영으로 행군을 하다가 로상에서 만난 적의 큰 부대를 통과시키고 작은 수송대를 하나 들이치고 뒤따라오는 적의
기본부대를 답새길 구상을 가지고있었을 때에도
한흥권은
원정부대는 엄중한 위기에 봉착하고있었다.
모두들 뜬눈으로 밤을 밝히며 앞으로 자기들이 겪어야 할 가지가지 암담한 사태들을 생각하였다.
원정부대는 새벽녘에 《정안군》놈들의 불의의 습격을 받았다.
사위는 아직도 어둑시그레한데 방향을 가늠할수 없이 사면에서 총알이 날아오고있었다. 대원들은 변변히 의지할곳도 없는 눈속에 엎드려 대응사격을 하면서 한흥권의 명령을 기다리고있었다.
한흥권은 원정부대가 헤치고나갈 등성이쪽을 지켜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적의 산병선이 늘어져있고 기관총이 짖어대고있었다. 골짜기아래 뉘엿한 버덩을 내려다보니 거기서도 적이 우글우글 돌아가며 미친듯이 총을 쏘아대고있었다.
원정부대는 매우 불리한 장소에서 적의 포위에 들어있었다. 순전히 바람가림만을 위해 골짝바닥에 내려와 우등불을 피우게 했던 한흥권은 이런 경우에 반드시 취해져야 할 면밀한 경계조치며 비상전투시에 행동할 사전구상들을 가지고있지 않았던 까닭에 도저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한흥권은 얼결에 불무지옆에서 담가를 들고 언덕밑의 은페지로 달려가던 김택근이 쏟아지는 적탄을 피해 눈우에 담가를 내려놓고 자기 몸으로
《기관총, 기관총이 어디 있는가?》
콩볶듯하는 총성속에서 김택근은 눈우에 전신을 완전히 드러내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 있습니다.》
기관총수가 이쪽저쪽으로 사격을 하면서 김택근의 옆으로 다가갔다.
김택근은 기관총을 받아들자 골짝바닥에 산병선을 치고있는 적들에게 련발사격을 들이대면서 정면으로 맞받아나갔다. 몇사람이 그의 뒤를 따라 결사전에 나섰다. 적들에게는 이렇게 갑작스런 공격이 실로 뜻밖이였다. 게다가 유격대의 변화무쌍한 유격전법에 걸려 가는 곳마다 무리죽음을 쌓군하였던 적들은 이렇게 갑자기 정면돌격으로 내달아오는 사람들을 보자 그 수가 얼마인지 가늠해볼사이도 없이 여기저기로 냅다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돌파구는 열렸다. 그리하여 원정부대는 수림속으로 무사히 빠져들어갈수가 있었다. 아슬아슬한 순간의 위기는 지나갔다. 그러나 적들은 유격대의 발자취를 찾아가지고 추격해오기 시작하였다.
한흥권은
적들은 걸음걸음 시체를 뿌려가면서 끈덕지게 추격하였다.
원정대원들은 걸으면서 통강냉이로 요기를 하고 앞뒤에서 달려드는 적들과 백열전을 벌리면서 끝없는 행군을 이어나갔다.
대오에는 총탄과 식량이 떨어져가고있었다. 한흥권은 기관총을 가지고도 단발사격으로밖에 적을 때릴수 없었다. 대원들에게는 이미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총을 쏘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사격이 뜸해지자 적의 추격속도는 배로 빨라져 시간마다 가슴을 압박하며 다가들었다.
한흥권은 벌써 원정대가 피할수 없는 험지에 빠졌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솟아날수 없는 낭떠러지에 굴러난 사람에게는 위선이나 가식이 있을수
없었다. 그는 솔직하고도 눈물겨운 심정으로 원정대의 처지를 생각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럴수록 암담해지는 자기를 더욱 똑똑히 의식하였다. 그때마다
한흥권은 이리도 나약해진
이제라도
새날의
《
한흥권은 목이 잠겨 더 말을 잇대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눈망울에는 어느덧 눈물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물끄러미 한흥권을 바라보시던
《중대장동무, 정황이 어려울수록 침착해야 하오. 뒤따르는놈들을 한대 단단히 족쳐 무리죽음을 시키고 식량과 탄약을 해결해야 하오. 그냥 쫓기기만 해서는 안된단말이요. 지금 우리가 와닿은 지형이 어떻소?》
《원정부대는 천교령방향으로 뻗어나간 두가닥의 산마루 갈림목에 와있는데 두 산마루중의 한가닥은 큰 물줄기가 중둥이를 자르고나가 길이 막히였고 다른 한가닥은 천교령을 바라고 뉘엿이 뻗어나갔습니다.》
그 순간
《한흥권동무, 적을 치기는 여기가 맞춤한 자리요. 대석두하의 물줄기에 중둥이를 잘리운 이쪽 산마루에 발자국을 내고 우리 동무들을 은페시키오. 그리고 천교령방향으로 뻗은 산마루쪽에다는 발자국의 흔적을 알릴락말락하게 내놓소.》
《
《아니요. 그래서는 안되오. 적은 유격대의 전법을 알고있는놈들이요. 우리가 발자국을 내놓고 옆으로 빠진다고 순순히 그리로 따라갈놈들이 아니요. 차라리 발자국을 내놓은쪽에 우리가 숨어있는게 났소. 더구나 놈들은 물줄기에 중둥이를 잘리워 길이 막힌 산마루로 유격대가 행군해갔다고는 생각하지 못할거요. 그러니 천교령방향의 지워버린 발자국을 찾아가지고 우리를 추격하려 할거란말이요. 그놈들이 제 꾀에 넘어가도록 일을 펼치는게 안전하오.》
《알겠습니다.
한흥권은 원정대원들을 두조로 나누어 한쪽에서는 천교령방향에 일정한 거리로 발자국을 내놓았다가 알릴락말락 지워버리는 작업을 시키고 물줄기에 잘리운 산마루에 부대가 지나간 발자국을 크게 내고 그옆에 은페지들을 만들게 하였다.
한낮때가 되자 뒤따라온 《정안군》놈들이 갈림목에 당도하여 벅작 떠들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처음에 원정부대의 발자국을 따라 무작정 들어서려다가 그 산마루가 물줄기에 잘리운것을 보자 유격대가 이쪽에 발자국을 내놓고 천교령쪽으로 빠졌다고 하면서 발자국을 찾아보라고 고아댔다.
잠시후 놈들은 알릴락말락 지워버린 발자국의 흔적을 발견하고 기고만장하여 천교령쪽으로 헐떡거리며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몇백명 잘되였는데 대렬중간에는 기관총소대가 끼여있었다.
천교령쪽으로 오리길나마 다그쳐가던놈들은 자기들이 헤쳐가고있는 길이 전혀 생눈길임을 간파하고 드디여 유격대의 유인전술에 빠졌다는것을 알아챘다. 놈들은 물줄기에 허리를 잘리운 산마루를 타고 유격대가 강기슭으로 빠져나가는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가던 길을 되돌아선 적들은 속도를 높이라고 고아대는 지도관놈의 서슬에 있는 힘을 다 짜내여 원정대원들의 매복구역에 들어섰을 즈음에는 길을 축내기는 고사하고 눈속에서 허우적거리고있는 형편이였다.
그사이에 눈속에서나마 몸들을 쉬우고 원기를 회복한 원정대원들은 적의 기관총소대가 기진맥진한 자세로 눈앞을 지나가자 불의의 기습으로 달려나가 눈깜박할 사이에 족쳐버렸다. 그리고 기관총을 빼앗아 앞뒤에 길다랗게 늘어선 적을 련발사격으로 냅다 갈겼다.
지도관이하 장교들은 모두 죽어넘어지고 병졸들도 태반이 눈속에 쓰러졌으며 살아남은 놈들은 엉금엉금 눈속을 기여 골짜기로 굴러내렸다.
원정대원들은 무기와 탄약과 식량을 거두어가지고 전장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곧 행군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원정대원들의 가슴을 후끈후끈하게 달구었던 통쾌한 전투마당의 흥분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하루가 지나자 또다시 적들이 달려들었으며 예전처럼 그렇게 간고한 행군과 비장한 싸움이 계속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