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 회)

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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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만원정의 간고한 나날 원정대의 크고작은 모든 일을 한가슴에 안으시고 말할수 없는 긴장한 투쟁을 이어오신 장군님께서는 그 막심한 로고의 후과로 촉한에 드시여 몸져누우시게 되였다.

장군님께서 의식을 잃으시자 누구보다 당황해한 사람은 한흥권이였다. 지금까지 대렬의 후위에서 믿음직하게 원정대를 호위하였으며 일정한 곳에서 불의의 기습으로 적을 답새기고 식량과 탄약도 해결하고 짧은 휴식이나마 마련하여 대원들의 원기를 돋구기도 하였던 한흥권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져 아무 일도 똑똑히 해낼수 없었다.

그는 촉한에 드신 장군님의 몸을 녹여드려야 하겠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골짝바닥에 내려가 크게 우등불무지를 만들라고 대원들에게 지시하였을뿐 뒤따르는 적을 어떻게 견제하고 원정대의 행군을 보장할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지금까지의 그의 명민한 지혜와 날파람있는 기지들은 죄다 장군님의 빛발속에서만 생명이 있었다. 장군님께서 몸져누우신 지금에는 그의 모든 장점들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해가 지면 대지우의 모든 현란한 아름다운 색조들과 형상들이 일시에 암흑속에 잠겨들어 숨을 죽이고마는것과도 흡사하였다. 유격대원들은 누구나없이 그것을 체험하였다.

장군님께서 건재하시여 부대를 이끄시고 만난을 헤쳐가실 때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그 장엄하고 위대한 빛의 세계를 이 순간에 속속들이 사무치도록 느껴보는것이였다.

팔도하자를 떠나 남호두밀영으로 행군을 하다가 로상에서 만난 적의 큰 부대를 통과시키고 작은 수송대를 하나 들이치고 뒤따라오는 적의 기본부대를 답새길 구상을 가지고있었을 때에도 장군님께서는 그 생각을 크게 지지해주시고 노루목촌에 놈들을 끌어다 전멸을 시키고는 그 성과를 알쭌히 이 한흥권의 성과로 만들어주시지 않았던가.

한흥권은 장군님의 보살피심과 장군님의 사랑속에서만 자기들에게 지혜가 있고 투지가 있고 용맹이 있고 기개가 있었던것을 새삼스레 생각하였다.

원정부대는 엄중한 위기에 봉착하고있었다.

모두들 뜬눈으로 밤을 밝히며 앞으로 자기들이 겪어야 할 가지가지 암담한 사태들을 생각하였다.

원정부대는 새벽녘에 《정안군》놈들의 불의의 습격을 받았다.

사위는 아직도 어둑시그레한데 방향을 가늠할수 없이 사면에서 총알이 날아오고있었다. 대원들은 변변히 의지할곳도 없는 눈속에 엎드려 대응사격을 하면서 한흥권의 명령을 기다리고있었다.

한흥권은 원정부대가 헤치고나갈 등성이쪽을 지켜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적의 산병선이 늘어져있고 기관총이 짖어대고있었다. 골짜기아래 뉘엿한 버덩을 내려다보니 거기서도 적이 우글우글 돌아가며 미친듯이 총을 쏘아대고있었다.

원정부대는 매우 불리한 장소에서 적의 포위에 들어있었다. 순전히 바람가림만을 위해 골짝바닥에 내려와 우등불을 피우게 했던 한흥권은 이런 경우에 반드시 취해져야 할 면밀한 경계조치며 비상전투시에 행동할 사전구상들을 가지고있지 않았던 까닭에 도저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한흥권은 얼결에 불무지옆에서 담가를 들고 언덕밑의 은페지로 달려가던 김택근이 쏟아지는 적탄을 피해 눈우에 담가를 내려놓고 자기 몸으로 장군님을 덮고있는것을 보았다.

《기관총, 기관총이 어디 있는가?》

콩볶듯하는 총성속에서 김택근은 눈우에 전신을 완전히 드러내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 있습니다.》

기관총수가 이쪽저쪽으로 사격을 하면서 김택근의 옆으로 다가갔다.

김택근은 기관총을 받아들자 골짝바닥에 산병선을 치고있는 적들에게 련발사격을 들이대면서 정면으로 맞받아나갔다. 몇사람이 그의 뒤를 따라 결사전에 나섰다. 적들에게는 이렇게 갑작스런 공격이 실로 뜻밖이였다. 게다가 유격대의 변화무쌍한 유격전법에 걸려 가는 곳마다 무리죽음을 쌓군하였던 적들은 이렇게 갑자기 정면돌격으로 내달아오는 사람들을 보자 그 수가 얼마인지 가늠해볼사이도 없이 여기저기로 냅다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돌파구는 열렸다. 그리하여 원정부대는 수림속으로 무사히 빠져들어갈수가 있었다. 아슬아슬한 순간의 위기는 지나갔다. 그러나 적들은 유격대의 발자취를 찾아가지고 추격해오기 시작하였다.

한흥권은 장군님을 모신 담가조를 대렬의 중간에 세우고 앞뒤에 전방 척후조와 후위를 배치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기관총수와 함께 후위에서 적을 견제하였다.

적들은 걸음걸음 시체를 뿌려가면서 끈덕지게 추격하였다.

원정대원들은 걸으면서 통강냉이로 요기를 하고 앞뒤에서 달려드는 적들과 백열전을 벌리면서 끝없는 행군을 이어나갔다.

대오에는 총탄과 식량이 떨어져가고있었다. 한흥권은 기관총을 가지고도 단발사격으로밖에 적을 때릴수 없었다. 대원들에게는 이미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총을 쏘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사격이 뜸해지자 적의 추격속도는 배로 빨라져 시간마다 가슴을 압박하며 다가들었다.

한흥권은 벌써 원정대가 피할수 없는 험지에 빠졌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솟아날수 없는 낭떠러지에 굴러난 사람에게는 위선이나 가식이 있을수 없었다. 그는 솔직하고도 눈물겨운 심정으로 원정대의 처지를 생각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럴수록 암담해지는 자기를 더욱 똑똑히 의식하였다. 그때마다 한흥권은 이리도 나약해진 자신에 대해 진저리를 치면서 이미 몸에 밴 지휘관의 습관으로 자기를 다잡으려 하였으나 그럴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순진하고 솔직한 눈으로 바라보며 머리를 젓는 또 한사람의 자신이 보이는것이였다.

이제라도 장군님께서 의식을 차리시고 부닥친 난관을 물리쳐주시지 못한다면 원정대는 부득불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리라는 무서운 생각이 이미 백번도 더 떠올랐다.

새날의 태양이 짙은 안개가 피여오른 수림의 상공을 연한 장미빛 광채로 어루더듬고있을무렵 장군님께서는 어쩌다 의식을 차리시였다.

장군님께서 의식을 차리셨다는 보고를 받은 한흥권은 헐레벌떡 그이의 담가곁으로 다가왔다.

장군님께서는 한흥권이더러 정황이 어떠냐고 물으시였다.

장군님, 형편이 여간만 간고하지 않습니다. 지금 〈정안군〉놈들이 검질기게 꼬리를 따르고있습니다. 그것들은 유격대의 전술을 잘 알고있는터이여서 쉽게 떼여버릴수 없습니다. 게다가 식량도 통강냉이가 얼마 남아있을뿐이고 탄알도 큰 전투를 한번 치르면 동강이 날것 같습니다.》

한흥권은 목이 잠겨 더 말을 잇대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눈망울에는 어느덧 눈물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물끄러미 한흥권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알릴락말락 고개를 저으시였다.

《중대장동무, 정황이 어려울수록 침착해야 하오. 뒤따르는놈들을 한대 단단히 족쳐 무리죽음을 시키고 식량과 탄약을 해결해야 하오. 그냥 쫓기기만 해서는 안된단말이요. 지금 우리가 와닿은 지형이 어떻소?》

《원정부대는 천교령방향으로 뻗어나간 두가닥의 산마루 갈림목에 와있는데 두 산마루중의 한가닥은 큰 물줄기가 중둥이를 자르고나가 길이 막히였고 다른 한가닥은 천교령을 바라고 뉘엿이 뻗어나갔습니다.》

그 순간 장군님께서는 손을 뻗치시고 좀 부축해달라고 말씀하시였다. 한흥권의 부축을 받아 상반신을 일으키신 장군님께서는 담가채로 앞으로 나가 친히 지형을 바라보시였다.

《한흥권동무, 적을 치기는 여기가 맞춤한 자리요. 대석두하의 물줄기에 중둥이를 잘리운 이쪽 산마루에 발자국을 내고 우리 동무들을 은페시키오. 그리고 천교령방향으로 뻗은 산마루쪽에다는 발자국의 흔적을 알릴락말락하게 내놓소.》

장군님의 말씀을 듣고있던 한흥권은 심중히 의문되는 점이 있어 조심히 한마디 비쳤다.

사령관동지, 우리 동무들을 은페시킬 산마루쪽에다 발자국을 내놓았다가 적들이 우리에게 곧추 달려들면 어떻게 합니까. 차라리 천교령방향에다 발자국을 내놓고 이쪽에 숨어있다가 적의 대렬이 우리의 눈앞으로 길게 뻗어나갈무렵 중간을 자르고나가 앞뒤의 적을 족친다면 효과가 있을것 같습니다.》

《아니요. 그래서는 안되오. 적은 유격대의 전법을 알고있는놈들이요. 우리가 발자국을 내놓고 옆으로 빠진다고 순순히 그리로 따라갈놈들이 아니요. 차라리 발자국을 내놓은쪽에 우리가 숨어있는게 났소. 더구나 놈들은 물줄기에 중둥이를 잘리워 길이 막힌 산마루로 유격대가 행군해갔다고는 생각하지 못할거요. 그러니 천교령방향의 지워버린 발자국을 찾아가지고 우리를 추격하려 할거란말이요. 그놈들이 제 꾀에 넘어가도록 일을 펼치는게 안전하오.》

《알겠습니다. 사령관동지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한흥권은 원정대원들을 두조로 나누어 한쪽에서는 천교령방향에 일정한 거리로 발자국을 내놓았다가 알릴락말락 지워버리는 작업을 시키고 물줄기에 잘리운 산마루에 부대가 지나간 발자국을 크게 내고 그옆에 은페지들을 만들게 하였다.

한낮때가 되자 뒤따라온 《정안군》놈들이 갈림목에 당도하여 벅작 떠들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처음에 원정부대의 발자국을 따라 무작정 들어서려다가 그 산마루가 물줄기에 잘리운것을 보자 유격대가 이쪽에 발자국을 내놓고 천교령쪽으로 빠졌다고 하면서 발자국을 찾아보라고 고아댔다.

잠시후 놈들은 알릴락말락 지워버린 발자국의 흔적을 발견하고 기고만장하여 천교령쪽으로 헐떡거리며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몇백명 잘되였는데 대렬중간에는 기관총소대가 끼여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놈들의 마지막 대렬이 눈앞으로 지나가자 한흥권이더러 원정대원들을 데리고 적이 지나간 자리를 뒤쫓아나가다가 좌우에 매복시키고 되돌아오는 적들을 불의의 기습으로 족치되 기관총소대를 먼저 타격하여 놈들의 기관총을 빼앗아 앞뒤의 적을 소멸하라고 이르시였다.

천교령쪽으로 오리길나마 다그쳐가던놈들은 자기들이 헤쳐가고있는 길이 전혀 생눈길임을 간파하고 드디여 유격대의 유인전술에 빠졌다는것을 알아챘다. 놈들은 물줄기에 허리를 잘리운 산마루를 타고 유격대가 강기슭으로 빠져나가는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가던 길을 되돌아선 적들은 속도를 높이라고 고아대는 지도관놈의 서슬에 있는 힘을 다 짜내여 원정대원들의 매복구역에 들어섰을 즈음에는 길을 축내기는 고사하고 눈속에서 허우적거리고있는 형편이였다.

그사이에 눈속에서나마 몸들을 쉬우고 원기를 회복한 원정대원들은 적의 기관총소대가 기진맥진한 자세로 눈앞을 지나가자 불의의 기습으로 달려나가 눈깜박할 사이에 족쳐버렸다. 그리고 기관총을 빼앗아 앞뒤에 길다랗게 늘어선 적을 련발사격으로 냅다 갈겼다.

지도관이하 장교들은 모두 죽어넘어지고 병졸들도 태반이 눈속에 쓰러졌으며 살아남은 놈들은 엉금엉금 눈속을 기여 골짜기로 굴러내렸다.

원정대원들은 무기와 탄약과 식량을 거두어가지고 전장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곧 행군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원정대원들의 가슴을 후끈후끈하게 달구었던 통쾌한 전투마당의 흥분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하루가 지나자 또다시 적들이 달려들었으며 예전처럼 그렇게 간고한 행군과 비장한 싸움이 계속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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