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제 2 장

불타는 성

11

(1)

 

선화당 넓은 안방은 무거운 침묵에 잠겨있었다.

리춘영을 장례지내고 처음으로 의병장들이 모여앉은 자리다.

류린석 역시 교의에 앉아 고개를 깊이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었다.춘영을 떠나보내고난 지금 자기 한쪽팔이 떨어져나간듯 헛헛하고 괴로운 감정을 도저히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벌써 얼마나 많은 아까운 사람들이 그의 곁에서 떨어져나갔는가. 김복한이, 주용규, 리춘영… 그에게는 너무도 가깝고 친근하던 귀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아까운 사람들이 떠나갔다 하더라도 싸움은 싸움이다. 싸우자 하면 사람이 있어야 한다. 춘영을 대신할 새 중군이 나와야 한다.

《나는 새 중군장으로 하사 안승우를 임명하오. 이의가 있으면 말들 해보시오.》

마침내 린석이 입을 열었다.

조용하다. 숨소리조차 꺼진듯 누구 하나 까딱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 그것이 옳고 응당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던것이다.

그러나 당자인 승우만이 놀라움에 머리를 번쩍 들고 린석을 쳐다보았다.

《대장님, 그게 무슨… 제가 어떻게 그 직무를 수행하라는것입니까?》

그가 중얼거렸다. 너무 뜻밖의 일인때문이였다.

그러나 린석은 여전히 한자세로 앉아 그 말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의가 없으면 그대로 하겠소. 모든 의병장들과 창의소성원들은 새 중군장의 명령에 절대복종할것이며 그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할것이요.…》

그것으로 모임은 끝났다. 다른 사람들은 다 흩어져갔으나 승우만은 그 자리에 남았다.

《대장님은 어찌하여 아무 의논도 없이 저를 중군의 지위에 올려놓는것입니까?》

승우가 물었다.

린석은 오래동안 말이 없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네말고 할만 한 사람이 있으면 내놓아보게. 누굴 시킬텐가, 리필희? 김백산이를 시킬가? 필희는 이제 새로 군사장의 직무를 맡았으니 안되고 백산이를 시키면 자네가 반대할것이지?》

하고 바라보는데 과연 승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역시 그를 좋게 보지 않는 내심이 드러난것이다.

린석이 참작을 한것은 바로 그것이였다. 많은 면에서 백산이 중군으로서 적합하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 없다. 이미 론의되였던바대로 량반이 아닌 그가 유생의병장들을 호령할수 없기때문이다. 우선 늘 코를 맞대고 살아야 할 안승우가 반대할것이다. 보다는 본인이 싫다고 할것이다.

반대로 승우는 군사를 기본으로 하는 의병대의 부대장급으로는 적합치 않다. 사실 그는 어느모로 보아도 무사다운데가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린석이 그를 중군으로 앉힌것은 오직 그가 자기와 가까운 사이이기때문이다. 이제는 주위에 그만큼 가까운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자기에게 누구보다 충실할수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린석은 바로 그것을 믿었다. 그를 더 가까이에 두고 의사소통을 깊이있게 할수 있지 않겠는가.

누구도 다 그러했지만 군사는 이제라도 배우면 될것이다.

이렇게 승우를 중군의 지위에 올려놓고 군수장의 자리에는 다른 사람을 채워넣었다.

그러는 사이에 성안으로 불리한 소식들이 날아들었다. 문경고개를 지키던 리린영이 놈들에게 견디지 못하고 왜놈에게 쫓기여 소백산 깊은 골안으로 들어가 종적을 감추었다는것이였다. 유격장으로 한때 이름을 날리던 리강년도 부상을 당하고 어느 산절에 들어가 치료를 받고있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이렇다할 소식이 없다. 전례에 따르면 응당 소식이 와닿아야 한다. 최익현의 편지가 왜놈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하다면 응당한 반응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린석이 답답한 마음으로 몇사람과 함께 선화당 대뜰에 앉아있는데 뜻밖에도 홍정식이 나타났다. 바로 며칠전에 이 마당에서 쫓아냈던 그가 다시 나타난것이다.

《창의대장님, 사변입니다. 임금님께서 로씨야공사관으로 자리를 옮기셨답니다. 지금 온 서울장안이 그 소문으로 떠들썩합니다.》

정식이 뜰아래에 서서 더러 흥분도 하고 주저도 하면서 이야기하였다.

《무엇이 어떻게 되였다구? 임금께서 거기는 왜?… 너는 그따위 소식이나 전하자고 여기 다시 나타났느냐?》

《정말입니다. 이것은 큰 사변입니다. 나라의 임금님이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피난을 가셨는데 이것을 놓고 〈아관파천〉이라고 한다던지. 하여튼 그에 대한 비난이 비발치듯 합니다.》

《피난이라구? 그것은 왜…》

《정확히는 알수 없습니다만 아마 왜놈들이 이번에는 임금님을 노리는 모양인지 신변상안전이 위태로운때문이라고들 합니다.》

《너 그게 정확한 소리냐? 누구한테 그따위 소리를 듣구 예까지 날라왔어? 저런 고현 놈 같으니라구.》

마침내 린석이 격하였다. 저런 주대없는 놈이니 왜놈장사군한테까지 녹아난다는 속심이 깔린 소리였다. 하물며 나라님에 대한 사건임에랴. 하다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임금을 모독중상한것으로 참수죄에 걸릴수 있다. 아니, 그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사실이 아니길 바라서였다.

아닌게아니라 정식이 대답을 못했다. 린석의 성난 모습을 보고서야 눈을 껌벅거리며 자기가 그만 격한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서다나니 알아볼것을 정확히 알아보지 못했노라고 구구히 설명했다.

《네가 최대감어른을 만나봤느냐? 그의 편지를 잃었으니 응당 그부터 만나봤어야지?》

하는데 정식은 또 대답을 못했다. 역시 아관파천에 대한 소식만 듣고 급급히 떠나다나니 미처 생각을 못했던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린석은 지필묵을 갖추어 최익현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정식의 말만 듣고서는 사실을 똑바로 알수 없었고 안다고 해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혼자 결심할수 없었던것이다.

《너 이길로 다시 서울로 올라가거라. 편지를 최대감님께 전하고 답을 받아와. 네가 말한 임금님의 아관파천도 그렇고 전번 편지에 대한 사실도 정확히 알아야 하겠다. 들었느냐?》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로 소리쳐묻고 손에 편지를 쥐여주었다.

그런데 정식은 편지를 받아들고 무엇을 주저하듯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린석이 웬일인가 해서 지켜보는데 정식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창의대장님, 선봉장님을 좀 불러주십시오.》

《선봉장? 그는 왜…》

《할말이 있습니다.》

《그럴것 같으면 가는 길에 들릴것이지 여기에 꼭 불러오랄것은 무엇이냐?》

《창의대장님앞에서 보여드리고싶은것이 있습니다.》

린석은 영문을 알수 없었다. 그러나 방금 그에게 무리한 요구도 한데다 무엇을 보여주자는것인지 호기심도 없지 않아서 백산을 데려오게 하였다.

과연 조금 지나서 백산이 나타났다. 그가 뜰아래로 다가서자 정식은 백산의 팔을 잡아 자기옆에 세워놓고 린석에게 돌아섰다.

《창의대장님, 제가 언제부터 생각하고있으면서 실행을 못했는데 이제 하자고 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선봉장님을 저의 형님으로 삼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백산은 물론 린석이까지 깜짝 놀랐다. 량반자가 평민을 형님으로 섬기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너무도 뜻밖의 일에 두사람이 다 말을 못하고 입만 벌리고있는데 방금 허락을 해달라고 하던 정식이 그것도 잊은듯 그대로 백산의 앞에 넙적 엎드렸다.

《선봉장님, 저를 동생으로 받아주십시오. 이제부터 저는 선봉장님을 친형님으로 섬기겠습니다.》

백산이 당황하여 정식과 린석을 번갈아바라보며 어쩔줄 몰라하였다.

《이 사람, 밑도 끝도 없이 이게 무슨 일인가. 어서 일어나게.》

《허락해주십시오. 형님은 저를 몇번이나 죽음에서 구원해준 생명의 은인입니다. 제가 이것을 어떻게 잊을수 있겠습니까. 전번에는 창황중에 제가 도망가듯 물러갔댔지만 오늘은 그냥 갈수 없습니다.》

《어서 일어나라구. 대장님앞에서 이러면 어쩌자구…》

백산이 여전히 어쩔줄 몰라하는데 대뜰우에서 린석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영문을 알아차리고 즉시 공감을 표시한것이다.

《정식이, 생각을 잘했다. 이제야 너도 사람이 되여가는가부다.》

린석이 호방스럽게 말하며 수염을 내리쓸었다.

곧 사람을 불러 주안상을 내오게 하고는 두사람을 대뜰로 불러올렸다.

《형제를 맺으려면 맨입으로야 되나. 주고받는 약조가 있어야지.》
하면서 정식이더러 술을 따르게 했다. 그가 잔에 술을 가득 부어 백산에게 내밀었다. 백산이 그것을 받을수 없어 린석에게 떠밀었으나 그는 힘껏 도리질을 하였다. 동생이 주는 술이니 먼저 받으라는것이였다.

이로써 형제가 맺어진셈이였다. 그러고나니 백산도 가슴이 뜨끔했다. 전혀 예기치도 짐작도 못했던 일이 꿈같이 맺어졌던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백산은 잊지 않고 자기 할 말을 정확히 찾아했다.

《형제가 되고말고하는것은 그 어떤 약조나 의무감으로 되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네. 지금으로서는 나라가 위급한 때이니만큼 나라를 지키는 일에 서로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자연히 형제간의 우의가 맺어지리라고 생각하네.》

거기에 정식이 또 한번 엎드려 절을 하는것으로 화답을 했다.

그 모습을 보는 린석은 다시한번 큰소리로 웃었다. 비록 그가 웃기는 했지만 마음속깊이에서는 뜨거운것이 소용돌이치고있었다.

그것은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상상도 할수 없던 일이였다. 이 세상 그 어느때 어디에서 량반자가 상놈을 형님으로 개여올리며 큰절까지 올린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여느 사람들이 보았다면 깜짝 놀라기 전에 애초에 믿지부터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세상이 두사람을 그토록 가깝게 만들어주었던것이다. 과연 반상의 차이이니, 상하의 등급이니 하는따위의 계률이 깨질 때가 되였다.

린석이 그것을 보면서 한편으로 놀랍고 기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괴로운것은 자기가 그들을 꽤 이끌수 있을가 하는때문이였다. 그가 매번 체험하고 느끼는바이지만 그는 언제나 백산이와 같이 평범하고 수수한 보통사람들에게서 충격을 받아안군 했다. 이렇다할 이름도 없고 뛰여난 경력도 없으며 그렇다고 남다른 지위조차 가지고있지 못한 사람들이다.

바로 이러한 생각들이 지금 린석의 가슴을 울리며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하고있는것이다. 분발하자. 보다 더 근검하게, 성실하게 싸움에 헌신하자.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고있었다. …

이렇게 충주를 떠난 정식은 다음날로 서울에 가닿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떨어진 체면과 지위를 다시 찾자고 해서였다. 도착하는 즉시 최익현과 마주섰을 때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전번에 그가 보냈던 편지를 왜놈들의 손에 들어가게 한 책임을 물을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런데 린석의 편지를 받고 읽어보던 익현은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뿐아니라 편지를 몇번은 읽고도 남을 정도로 오래동안 시선을 거기에 못박고 움직이지 않았다.

대감께서 왜 저러는가, 편지에 뭐라고 썼는가, 그 잃어진 편지때문에 노해서 저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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