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제 2 장

불타는 성

10

(2)

 

의병대는 순간에 기대했던 이상의 전과를 거두었다. 이것이 의병들의 사기를 몇배로 올려주었다.

춘영은 첫 싸움에서 거둔 전과를 즉시 린석에게 보고하는 전령을 띄워보내고 그길로 놈들의 기지에 대한 련속적인 공격에로 나아갔다.

달천에서 20리 떨어진 곳에 있는 왜놈의 군사기지는 새로 꾸린 보루가 있고 무기고와 탄약창고까지 있는 중요거점이다.

그만큼 그곳을 차지하는 문제는 적아의 세력을 변경시키는데 중요한 작용을 하는것이다.

하기에 춘영은 전부대에 급보로 달릴것을 명령하였으며 목적지에 다달아서는 즉시 포위를 형성하고 곧바로 공격에로 넘어갔다.

그때까지 놈들은 가시철조망을 둘러친 안에서 찍소리 않고있었다. 그에 반하여 의병대는 사방에서 취타악기를 울리고 기발을 날리며 보루가까이로 접근해갔다.

바로 그 시각 이다찌중좌는 보루의 높은 루대우에서 의병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있었다. 이미 전화련락으로 저들이 녹아난 정형을 보고받고 증원부대가 돌격하고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다찌는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대기하고있는것이다.

그것을 알리 없는 리춘영은 놈들이 영문을 알아차리기 전에 선손을 써야 한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무작정 돌격명령을 내린것이다. 무한정 고요한 적정이 계속되는 가운데 문득 가시철조망이 앞에 길게 가로막혔다. 그때까지 가시철조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의병들이 그 시끄럽고 보잘것없는 가시들에 걸리여 옷이 찢기고 살갗이 벗겨져 허둥거렸다.

이다찌의 사격명령은 바로 그때 떨어졌다. 귀청을 째는 기관총, 보총들의 일제사격소리가 갑자기 산야를 울리였다. 이미 철조망을 넘어갔거나 가시철조망에 걸려 허우적거리던 의병들 수십명이 단꺼번에 쓰러졌다. 총탄들은 바로 머리우에 보이는 높은 보루의 시꺼먼 총구들과 번뜩이는 유리창마다에서 비오듯 쏟아져내리고있었다.

당황해난 의병들이 뒤로 돌아섰다. 그것을 보고 달려오던 춘영이 소리쳤다.

《물러서지 말라. 원쑤에게 짓밟힌 사랑하는 강토가 보이지 않는가. 의기를 잃지 말고 용감하게 나가자.》

도망치던 사람들이 주춤했다. 바로 그때 바늘로 누비듯 기관총탄이 땅을 훑으며 날아왔다. 또 몇명이 쓰러졌다. 저쪽에서 몇명의 의병들이 일어서 다시 공격을 시도했으나 역시 철조망에 막혀 전진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춘영은 속이 탔다. 바로 눈에 빤히 보이는 저 건물안에 왜놈이 있고 그속에 이다찌놈이 있다.

한것을 몇십걸음 앞에 두고 이게 무슨 일인가.

《앞으로! 모두 일어나 앞으로… 머리를 들라!》

그는 계속 소리쳤다. 그러나 많은 의병들이 이미 쓰러졌거나 뒤선에서 어물거리고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징소리가 울렸다. 퇴각을 알리는 소리다.

이것은 또 무엇인가, 누가 징을 치는가, 누가 후퇴하라는 명령을 주었는가.

그러는 사이에 징소리를 들은 의병들이 무리를 지어 아래로 달려가고있었다. 춘영도 뒤를 따랐다.

숲이 무성한 골짜기에 의병들이 모여있었다. 춘영이 그 한가운데로 뛰여들었다.

《누가 징을 때렸는가, 누가?》

누군가 둥그런 징을 번쩍이며 앞에 나섰다. 대번에 선봉부대사람이라는것이 알렸다.

《왜 쳤는가, 누가 치라고 했는가? 겁쟁이자식…》

《중군장님, 이런 때 적의 총탄을 맞받아나가는것은 자살행위입니다. 중군장님께서 명령을 내리지 않기때문에 의논끝에 제가 때렸습니다.》

《의논이라구? 군사에서는 의논이 아니라 명령제야. 대장의 명령없이 저들끼리 마음대로 하는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싸움에서 이기자면 이제라도 적정부터 잘 료해하고 그에 맞게 대응책을 세워야 필승을 기대할수 있습니다.》

《그렇게 훈시를 하자고 날 따라왔는가. 너희 선봉장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싸움에서는 용감성이 첫째이며 죽음도 두렴없이 맞받아나가는 바위같은 의지만이 필승을 담보할수 있다.…》

소리를 지르고 이미 맨 앞선에서 전사한 몇몇 의병들의 용감성을 지적하였다. 모두가 그들처럼만 앞으로 나갔더라면 이미 보루는 점령되였을것이라는것이였다.

그것이 그들에게 재공격에 대한 의욕에로 떠밀었다. 그것은 방법상 첫번째와 별반 차이가 없는 그대로의 반복이였다. 다만 수적우세를 믿고 사방에서 일시에 공격을 하는것이였다.

왜군들은 이번에도 든든히 둘러친 철조망과 세멘트로 다져진 보루안에서 기관총과 보총으로 여유작작히 맞섰다. 결국 두번째 공격도 몇명의 사망자만 더 냈을뿐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제서야 교훈을 찾은 춘영은 밤도와 의병들과 의논을 벌렸다. 일면적인 포위공격만 할것이 아니라 집중공격과 유인전술의 배합 그리고 의병들이 가지고있는 보총과 조총, 창칼의 능동적인 활용과 같은것이였다. 하면서도 춘영이 주장하고있는 용감성에 대한 문제만은 첫자리에서 내놓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해도 뜨기 전에 또다시 공격이 시작되였다. 의병들은 처음 동쪽에서 공격할듯 북을 치며 소란을 피우다가 갑자기 서쪽으로부터 공격을 단행하였다. 급해난 놈들이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공격을 집중하자 이번에는 동쪽에서 총탄과 화살이 날아들어갔다.

이렇게 놈들을 혼란에 빠뜨린 의병들은 마침내 한쪽으로 돌파구를 열었다. 철조망마저 다 끊어놓고 보루에로 육박해들어간것이다.

춘영도 뒤따랐다. 보루가 눈앞에 있다. 바로 몇십걸음 아니, 그보다 더 가까운 거리일수 있다.

그안에 지금 이다찌놈이 갈팡질팡하며 졸병들에게 사격을 독촉하고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몇순간 이제 저 문짝을 들부시고 몇층계 계단만 뛰여오르면…

하는데 갑자기 뒤쪽 어디에서 총탄이 날아오며 벽체를 때렸다. 한알, 두알… 뿅뿅 귀뿌리를 울리며 날아온 총알이 바로 눈앞에서 콩크리트벽체를 허비여내는 앙칼진 소리를 내며 하얀 돌가루먼지를 휘뿌린다. 도탄된 탄알이 바로 춘영의 앞에서 달리던 의병의 아래도리를 후려쳤다. 그가 피를 쏟으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춘영은 돌아섰다. 바로 의병들이 돌입하고있는 저쪽등성이우에 왜군들이 새까맣게 몰켜서 이쪽으로 달려오고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저놈들이 어디서, 어떻게 알고 이 아침에 나타났을가.…)

그러나 그 이상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영문을 알아차리기 전에 무엇인가 가슴을 탁 때리는 둔중하고 불쾌한 느낌을 받았던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 없었다. 다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나쁘며 뭐가 뭔지 알수 없는 몽롱한 의식뿐이였다. 이다찌가 들어있을 보루의 둥그런 탑이 빙그르 돌더니 새까만 모습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생각할수 없었다. 얼마간 지나서야 그는 누군가 자꾸 흔들어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여전히 하늘땅이 빙글빙글 도는 가운데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하나 나타났다. 어제 징을 치던 선봉대원이 눈물이 그렁해서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누가 날 쐈는가. 어느 놈이…》

춘영이 가까스로 물었다.

《왜놈들이… 뒤에 나타난 증원부대놈들이였습니다.》

《증원? 그놈들이 어디서… 새벽에 나타났는가?》

《놈들은 전화로 련락을 주고받으며… 새로 대책을 취하고있었습니다.》

《전화? 그래, 선봉장이 그런게 있다고 했었지?》

묻기는 했으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것을 알 힘도 시간도 없었다. 머리속에는 이다찌놈을 잡지 못했다는 분하고 죄스러운 생각만 집요하게 되풀이되였다.

나는 고을 현감이였고 지금은 제천반일의병대의 중군이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있다, 내가 비겁하면 온 나라 의병들이 다 겁쟁이가 된다, 그런데 나는 그때 비겁하게도 포소리에 놀라 넘어졌댔다, 분명 본 사람이 있을것이다, 나 모르게 손가락질도 했을것이다, 그리고 이제 또…

생각을 하다가 깜박 흐려지는 의식속에 선봉대원의 손을 잡았다.

《그놈을, 이다찌놈을 꼭 잡아바쳐야 하네. 창의대장님께 그놈을…》

그다음은 무엇인가 더 말하고싶었으나 생각이 나지 않았고 힘도 없었다. 끝내는 누구인가, 무엇인가를 찾는듯 안타깝게 몸을 뒤채이다가 그대로 굳어지고말았다. 의병들이 목메여 소리쳐부르고 흔들어 깨웠으나 모든것이 허사였다.

시신이 그대로 린석의 앞에 가닿았다.

그것은 린석에게 너무도 큰 충격이였다. 어제 달천전투소식을 듣고 그리도 기뻐했던 린석이였다. 그 기세로만 나가면 다음전투도 문제없으리라고 믿었던 그였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시체로 돌아왔다.

《우삼아, 네가 웬일이냐. 어제방금 심신이 펄펄해서 떠나가던 네가 이렇게 졸지에 죽어서 나타난단 말이냐, 녀석아…》

린석은 그를 붙잡고 목놓아울었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부터 전장으로 절대 보내지 않으려 했던 린석이였다. 끝까지 보내지 말았어야 했을것이였다.

한것을 그 마음이 하도 기특하고 끼끗하여 허락했었다. 누구도 몰래 가졌던 마음속의 비겁성을 씻겠다고, 이다찌놈을 잡아바치는것으로 량심에 꺼렸던 잘못을 보상하겠다는 진정에 감동하여 떠나보냈었다.

그는 한개 고을의 사또로서 서울의 웬만한 고관 못지 않게 호의호식할수 있었다. 하지만 왜놈들이 제땅에 쳐들어온것을 보고 참을수 없어서 그리고 함께 공부를 했고 배워준 선생과 학우들의 의리를 잊을수 없어 단연 현감의 벼슬을 박차고 의병에 뛰여들었다. 그 싸움에서 죽을수도 있다는것을 그가 몰랐던가. 알면서도 굳이 고행길을 택한것은 오직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때문이였다. 나라가 없으면 부모처자는 물론 친구와 사제지간의 의리도 관직도 필요없다는것을 선견지명으로 깨달았기때문이였다.

바로 그것을 놓고 린석은 목놓아울었다. 승우도 울었다. 그들뿐아니라 그를 알고있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그의 죽음이 부대에 준 충격이 컸던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린석이하 많은 사람들은 춘영의 죽음을 놓고 깊은 교훈을 찾지 못하고있었다.

무엇보다 시대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세월은 바야흐로 문명개화라는 새시대를 맞이하고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그들은 구태의연한 유교성리학에 매달리면서 마치 옛것에 새것이 있는것처럼 법고창신의 정신만을 절대시하고있었다. 그러다나니 자기와 싸우고있는 적수가 어떤 놈인지조차 잘 몰랐고 그에 대응할 방책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있었다. 하기에 춘영은 해밝은 대낮에 기발을 날리고 북과 나팔을 울리며 적진으로 돌진해가는것이 이미 지나간 낡은 싸움방법이라는것을 몰랐다. 상대가 신식무기로 무장한 적이라면 그에 따른 보다 기동적인 통신수단도 가지고있으리라고 타산해야 하겠으나 그런걸 생각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거기에 춘영이 나는 무관이 아니며 싸움방법을 잘 몰랐기때문에 할수 없었노라고 변명을 하겠는가. 아니, 반대로 몰랐기때문에 군사를 더 깊이 연구하고 싸움방법도 더 터득했어야 했다.

그런데 하지 못했다. 그것이 기필코 그를 죽음에로 몰아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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