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 회)

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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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지난 여름에 한 녀성혁명가가 적구에서 나를 찾아온 일이 있었소. 그 녀성에게는 돌이 차지 않는 어린것이 있었는데 내앞에는 홀몸으로 나타났더란말이요. 그래서 내가 그 녀성에게 아이는 어찌하고 홀몸으로 왔느냐고 다우쳐 물었소. 그 녀성은 그때 친정에 두고왔노라고 흔연히 대답했소. 나는 그저 곧이곧대로 믿었소. 그럴수밖에 없었지. 적구에서 지하투쟁을 하던 그의 남편이 한해전에 희생되고 그의 슬하에 남은것이란 남편의 피를 받은 어린것밖에 없는데 그 애를 남한테 두고왔다고밖에는 믿을수 없었소. 게다가 그의 태도가 너무나도 흔연하기에 나는 아무 의심도 못했더랬소. 나는 그가 먼길에 무척 시장했으리라 생각하고 무엇이건 좀 요기를 시키자고 했었소. 그때 그 녀성은 고개를 넘다가 국수당에 산제떡으로 해 바친 꼬장떡이 보이기에 몇개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품속에서 꺼내 놓았소. 그런데 그게 꼬장떡이 아니라 납작하게 생긴 돌멩이더란말이요. 돌멩이를 꼬장떡으로 헛보고 예까지 넋없이 달려온 이 녀인이 과연 어린것을 친정에 맡기고 왔다는것이 사실이란말인가?

〈다시 말해보오. 애는 어디다 두고 홀몸으로 왔소. 어린것을 친정에 맡기고 왔다면 돌멩이를 꼬장떡으로 잘못 보았겠는가?〉

그러자 그 녀성은 풍덩 땅바닥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소.

장군님, 기어이 혁명을 해야겠기에 아들애를 남의 집 울바자밑에 놓아두고 왔습니다. 이 모진 어머니를 용서해주십시오.〉 땅을 치며 설분하는 그 녀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뿌리며 세상을 향해 웨치고싶었소. 〈우리 혁명가들이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보라. 이런 녀성을, 이런 어머니를 사랑하고 따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단말인가?〉

내 가슴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꿈을 가진 사람은 우리 혁명가들이라는 생각이 뿌리깊이 박혀있소. 어떤 힘으로도 심장속에 뿌리내린 이 감정을 뽑아버리지는 못하오. 수년세월 혁명의 길에 나서 숱한 고초를 겪고 가슴아픈 희생을 당하면서 스스로 마음속에 형성된 이 감정을 나는 소중히 생각하오. 차일진동무, 혁명의 길이 비록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 시련이 혁명가들을 거칠게 만들지는 못하오. 오히려 시련이 겹쌓이면 겹쌓일수록 혁명가들은 아름답고 고상해지는거요. 혁명가들에 대한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나는 동무들을 데리고 이 어려운 북만원정을 떠나올 생각조차 못했을거요. 나는 우리 혁명가들에 대한 이런 믿음을 량식으로 삼고 조국으로 가려오. 조국으로!…》

장군님의 목소리는 격동적인 목메임에 막힌듯 문득 끊어졌다. 그렇게 하늘땅을 진감하며 불어오던 눈보라도 금시 잠잠해졌다. 고원의 등판우에는 서켠으로 기울어져가는 설핀 해볕이나마 부드럽게 비쳤다. 이런 정적속에서는 차겁게 얼어붙은 눈길을 헤가르고 한발한발 옮겨가는 원정대원들의 발자국소리가 마치 천년묵은 땅에 보습을 박고 수만가닥으로 얽힌 나무뿌리와 드덜기를 끊고 자빠뜨리며 풍요한 땅의 살진 가슴을 헤쳐가는 장엄한 로동과도 같이 차일진에게는 생각되였다.

그래, 이 힘들고 간고한 원정행군이 세상앞에 의무로 지닌 혁명가의 성스러운 로동이 아니고 무엇이랴. 차일진은 자기같은 평범한 보통인간이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굳센 믿음속에서 혁명가로 자라나 그이를 모시고 인류앞에 의무로 지닌 성스러운 로동을 이어가고있다고 생각하였다.

차일진은 이것이 곧 력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 순간에 자기가 자라온 한생을 더듬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동네젖을 얻어먹으며 불쌍히 자라나 어른이 된 다음에도 남달리 허약한 팔다리를 가지고 성숙이를 고생시켰던 자기…

그러나 이 순간에 차일진의 눈앞에 보이는 자신은 근시안에 안경낀 약골의 《야학선생》이 아니라 학창시절에 리순신장군의 역을 맡아 력사극에 나섰던 갑옷 입은 장수의 어엿한 모습이였다. 그것을 차일진이라 믿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튼 그 시절에 리순신장군이 되여 수백관중의 면전에 나서 의기를 뽑았던것은 사실이였다.

장군님, 제 한가지 우스운 회상담을 하겠습니다. 학생시절에말입니다. 저의 모교에서 리순신장군에 대한 력사극을 만들어 공연한 일이 있었는데 제가 글쎄 그 극의 주역인물로 나서지 않았겠습니까?》

《리순신장군의 역을 수행했단말이요?》

《그렇습니다. 한번 리순신장군이 되여보았지요. 갑옷 입고 투구 쓰고 긴칼 차고말입니다. 그 옛날 장군의 의상을 걸치고 무대에 나서니 별로 나라잃은 젊은이의 쓸쓸한 심경이 사무쳐 저는 그만 눈물을 쏟뜨리고말았습니다. 수백관중이 통곡을 하며 울었지요. 제가 지금에 와서 아쉽게 추억하는것은 차일진이가 오늘의 혁명가가 되리라는것을 알았더면 그날의 연기를 울음바다로만 만들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이제 다시한번 그 연기를 해보았으면… 생각할수록 쓰릿한 향수가 가슴을 어루만집니다. 그런데 제가 한번 한흥권중대장동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허, 일진이가 또 대포를 쏘는군.〉하지 않겠습니까? 김택근소대장동지도 〈차일진동무가 리순신장군이 되여 하기방학때 촌부락들을 돌아다니며 수수지짐이랑 얻어먹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아.〉이러는판입니다.》

《거 안됐구만. 나는 믿소. 차일진동무가 리순신장군이 되였으리라는걸 나는 믿는단말아요.》

장군님, 정말 고맙습니다. 아무러면 제가 세상없이 거짓말을 할 사람입니까. 저는 지금도 리순신장군이 큰칼을 떼여 앞에 짚고서서 기우는 달을 바라보며 처량하게 읊조리던 시를 기억합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쓸쓸히 비오고

바람부는 밤

내 나라 근심에

잠 이루지 못하다니

 

가슴에 아픔지녀

간장이 쪼개지는듯

마음이 괴로워

살점을 어이는듯하여라》

 

차일진은 자못 흥분하였지만 장군님께서는 아무 응대가 없으시였다. 한편으로는 섭섭하고 한편으로는 이상하게도 생각되여 고개를 돌렸다.

장군님께서 한팔을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약간 아래로 떨구신채 눈우에 쓰러져계시였다. 차일진은 정신없이 장군님의 상반신을 받들어올렸다. 조용히 눈을 감으시고 알릴락말락 숨을 톺아올리시는 장군님의 안색은 희다 못해 푸르끼레하였다. 입술은 말라 조갈이 들고 희슥희슥 살가시가 돋아있었다.

장군님, 장군님!》

차일진은 황망히 장군님의 몸을 흔들어드렸다. 몸은 흔드는대로 흔들리우고 팔은 허공에 맥없이 드리워있었다. 한손에서는 장갑마저 벗어져 눈우에 떨어졌다. 차일진은 장군님의 온몸을 눈속에서 받들어올리며 눈물에 잠겨든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장군님께서 의식을 잃으셨소. 장군님께서 의식을 잃으셨소!》

막을수 없는 처절한 슬픔과 초초히 불안에 떠는 차일진의 웨침소리가 원정대의 머리우로 세차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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