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 회)
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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녕안현과 목릉현을 가르고 지나간 천교령은 로야령산줄기에서 북으로 뻗어간 큰 지맥중의 하나로서 높은 산들과 빙설의 고원으로 뒤덮여있었다.
녕안읍에서 동으로 가로누운 천교령일대의 산들을 바라보면 마치 로야령의 험산줄기를 굽어보듯이 하늘우에 아득히 솟아있는 험산들을 대하게 되는것이다.
녕안촌을 떠나 스무날가까이 천교령을 바라고 행군을 다그치고있는 원정대는 어느덧 해발 팔백메터의 고원에 올라섰다. 유리알처럼 얼어 번들거리는 눈바다는 희다못해 시퍼렇게 펼쳐져있었다. 발을 옮기면 눈가루들은 얼음의 알갱이가 부딪치는듯한 챙챙한 소리를 내면서 흩어졌다. 얼음에 스치지 않고 눈가루를 헤가르는데도 행전은 칼끝에 닿은듯이 찢어져나갔다.
추위는 령하 삼십도를 오르내렸다. 사람들의 온몸은 흰 성에로 한벌 뒤덮여있었다.
게다가 고원의 등판우에서는 때없이 세찬 눈보라가 일어났다.
소년나팔수 김청해는
전령병 조왈남은 열발자국에 한번씩은 눈속에 딩굴었다.
한흥권이조차도 금시 쓰러질듯이 휘청거리며 걸었다. 이무렵에
눈에 비치는 모든 물체들이 어릿어릿해지시였다. 게다가 때없이 환각속에 빠져드시였다. 불현듯
어제는 걸으시면서 리호검로인의 야장간에서 풀무질을 해주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시는 꿈을 꾸시였다. 아마 꿈속에서 소리를 내였던지 조왈남이가
팔을 흔들어 깨워드리였다. 정신을 차리고나니 커다란 회오리기둥이 눈앞에서 일어나고있는 등판이였다. 얼마나 맹랑한 일인가?… 그러나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또다시
차일진이가 부락앞의 보초막에 들어가 재봉대와 련결된 통신줄을 잡아당기면서 성숙이에게 무어라고 소리치는가 하면 놈들에게 귀순했다던 송혜정이가 막 달려와서 무수평일대의 공작정형을 보고하겠다고 설레는것을 한흥권중대장이 등을 떠밀어 어딘가 내보내고있었다.
또다시 전령병이 팔을 마구 흔들어대면서 무어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차일진동무가 용쿠만. 정말 용해.》
《
차일진은 비록 얼굴의 살이 깎여 가뜩이나 기다란 하관이 더욱 길어보이고 울대뼈가 툭 삐여진 목이 솜저고리목깃우로 성큼 솟아올라 탐탁하게 힘을 쓸데라고는 어디 한곳 없었으나 추위와 피곤에 지쳐 벌겋게 피가 진 두눈에는 금시라도 유쾌한 장광설이 터져나올것 같은 밝은 영채가 떠돌았다.
《나는 뭐니뭐니해도 이번 원정기간에 차일진이같은 신입대원들이 어엿한 혁명가로 꿋꿋이 자라난게 무엇보다 기쁘오. 사람은 고생도 해보고 시련도 겪어봐야 참사람이 되는거요. 혁명가가 겪은 고초와 시련은 혁명가의 재산이요. 참 성숙동무가 고생이 많았지. 총을 메다주느라 배낭을 메다주느라 녀성동무가 얼마나 수고가 컸는가.》
《예,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 없는 이야기지만 성숙동무는 잠자는 사람의 보초도 서주면서 숱한 시중을 들어주었습니다. 아마 동만땅에 이 소문이 퍼지면 아동단원들까지 차일진의 구경을 오자고 할겁니다.》
《뭐, 그렇다고 부끄럽게 생각할게 있소. 문제는 동무들의 방조를 받아서라도 굳센 혁명가로 준비하겠다는 결심이 있으면 되는거요.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것은 자기의 성장에 바쳐진 동지들의 수고를 잊지 말아야 하는것이고…》
《제가 어떻게 그걸 잊기야 하겠습니까. 저는 성숙동무를 포함해서 저를 도와준 혁명전우들의 수고를 자나깨나 잊을수 없습니다.》
몇걸음 천천히 내짚으시며 숨을 태우시고나서야 말씀하시였다.
《내가 알건대도 차일진동무는 착한 사람이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있는데 들려오는 말은 죄다 그렇지가 않거든. 한흥권동무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차일진동무는 성숙동무와 의좋게 헤여지지 못하고 그를 랭대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어디 좀 말해보오.》
《
《리유가 있겠지. 그렇지만 아주 잘못했소. 아무리 자립적으로 일어서려는 결심이 강하다 할지라도 성숙이를 그렇게 섭섭하게는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거요. 동무에게 바쳐진 성숙이의 힘과 열성과 노력을 생각해보오. 가슴이 얼얼해 견딜수가 없거든.》
차일진은 망설였다. 실은 성숙이를 조용히 만나려고 찾아갔다가 한흥권을 띠여보고 그의 머리에 진옥의 생각을 불러일으킬것 같아 그만두고
온것이지만 그 이야기를 하면
그래서 차일진은 몇번이나 말을 갑자르다가 자초지종 설명하였다.
《그게 사실인가, 응?》
《예, 사실입니다.》
차일진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괴로운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다면 됐소. 아주 다행한 일이요.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댔소. 북만땅의 엄혹한 시련이 차일진동무의 가슴에 너무도 준엄한 인상을 남겼는가, 어제는 한흥권동무가 그러더니 오늘은 차일진동무가 또 이러하지 않는가, 시련이 겹쌓이면 사람들의 신경도 날카로와지기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혁명가의 심장속에서 인간의 아름다운 감정까지 훼손되여서야 되겠는가 하고 생각했단말이요.
혁명의 승리는 곧 공산주의자들의 승리이고
공산주의자들의 승리는 인간의 모든 아름다움의 승리로 되여야 하는거요. 혁명투쟁이 아무리 간고하다 해도 그속에서 사람들의 감정이 거칠어져서는
안되오. 쉽사리 그렇게 될수 있는 문제에까지 우리가 깊이 류의하여
차일진은 문득 숨가쁨을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 바람에 토막토막 끊기여 날아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