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 회)

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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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밤이 다가왔다. 놈들의 숙영지에서는 밤하늘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불무지들이 타올랐다. 골짜기가 나무타는 소리로 소란하고 말이 발통을 구르는 소리며 군견들이 으르렁대는 소리가 간단없이 일어났다.

원정부대는 산마루에 보초를 세워놓고 오랜만에 후끈후끈한 방에서 더운밥을 지어 식사들을 하였다. 진정 며칠만에 맛보는 온기며 따끈따끈한 음식인가. 사람들은 김택근소대장이 떠서 돌려주는 군용밥통을 받아들고 너무도 희한하여 문문 피여오르는 김속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온기도 쏘여보고 밥냄새도 맡아보고 그러다가는 뺨에 비비기도 하면서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차일진은 인간이 처음으로 불을 발견하여 그것으로 몸을 덥히고 구운 짐승의 고기를 맛보았을 때 지금과 같은 감격을 체험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동무들, 식기전에 어서들 듭시다. 더운밥으로 속에 들어앉은 얼음을 녹이고 뜨뜻한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한잠 푹 자고나서 단숨에 동만땅으로 내달아봅시다.》

장군님의 말씀에 대원들은 흥성흥성 설레면서 숟갈을 들었다. 사람들은 입술이며 입천정이 데는줄도 모르고 밥을 욱여넣었다.

아무리 더운밥이라 하지만 살속깊이 박여든 얼음을 녹이기에는 아직 부족한것 같았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땀인지 얼음녹은 물인지 알수 없는 물기가 축축하게 내배여 번들거렸다.

사람들은 지금 밥맛조차 느끼지 못할 지경이였다. 입으로 더운 온기가 들어가고 그것이 목구멍을 통해 가슴언저리를 후끈후끈하게 덥히면서 추위에 남의 살같이 되여버린 복부며 허리어방까지를 점차로 부드럽게 녹여주는 그 쾌감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솜저고리를 벗기 시작하였다. 이쯤되여서야 대원들은 밥맛을 알았다. 보리쌀과 통강냉이를 넣어 삶다가 좁쌀을 조금 섞어 익힌 잡곡밥이 이렇게도 별미인가.

전령병 조왈남이와 나팔수 김청해는 군용밥통을 가슴에 껴안고 밥을 떠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을 보자 장군님께서는 문득 요영구유격구사람들과 멀리 국내와 남만 백두산지구에 떠나보내신 대원들이 생각키우시였다.

그들은 지금 이 추운 한겨울에 어디서 어떠한 고생을 치르고있을가? 백두산지구에 나간 송명준네는 지금쯤 어디서 이 겨울을 맞고있을가?

이곳 원정대원들이 오랜만에 만난 산전막에서 오랜만에 더운밥을 지어먹고 언몸을 녹이며 지친 몸을 쉬우는 이런 짤막한 휴식의 밤도 없이 생쌀을 씹고 모닥불에 한둔을 하면서 끝없는 행군길을 이어갈지 모른다.

장군님께서는 식사를 하시려고 숟갈을 드시였으나 차마 밥을 뜨실수 없었다. 뭉실뭉실 피여오르는 밥김속에서 송명준의 얼굴이 그냥 떠오르고 아득한 수림의 저쪽 끝으로 멀어져가는 짤막한 행군대오가 눈에 삼삼하시였다.

여러해동안 국내와 두만강지구에 나가 지하공작을 하느라 자주 근거지를 떠나있었고 가족들과도 오래 헤여져있은 송명준이가 지방공작을 마치고 돌아온 혜정이를 만나보고 떠났을가?…

장군님께서는 요영구유격구를 떠나오실 때 송명준이더러 며칠 더 묵으면서 무수평일대의 공작을 마치고 돌아오게 될 송혜정이도 만나보고 대북구쪽에 나가있는 리유천이랑 다 불러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한끼 식사라도 나누고 헤여지라 하셨던것이다.

리유천동무는 지금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있을가? 원정부대가 떠나면 소부대를 데리고 대두천과 쌍하진, 백초구와 천교령 삼차구일대에 나가 적후방에 대한 교란작전을 벌려 놈들이 유격구에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그 일이 모두 어떻게 집행되고있는지?…

혹시 이전처럼 유격구의 웃자리를 가로타고앉아 《유격구사수론》을 운운하던 사람들이 그들의 활동을 방해하고나서지나 않았을가? 만약 유격대가 적후방에 대한 대대적인 교란작전을 벌리지 않는다면 유격구방위는 어쩔수 없이 위험한 고비에 빠져들게 될것이라고 장군님께서는 걱정하시였다. 이런 때 장군님의 눈앞에는 유격구의 방위를 책임진 최춘국의 얼굴이 언제나 미덥게 떠오르는것이였다. 최춘국이만 있으면 근거지일이 아주 찌부러지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장군님의 가슴속에는 묵직하게 자리잡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다소 안심하고 대원들과 함께 밥을 몇숟갈 뜨시였다. 밥맛은 통 모르겠고 더운 온기가 속을 덥히는 따뜻한 느낌만이 좋으시였다. 그런대로 몇숟갈 더 뜨시려니 속에서 밥을 받아주지 않는다. 별로 속이 메슥메슥해지고 밥냄새가 싫어지시였다.

이상한 일이다…

장군님께서는 숟갈을 드신채 군용밥통을 뺨에 가져다 천천히 대시였다. 축축한 김이 눈언저리로 기여오르고 따뜻한 밥통의 온기가 언 뺨을 스르르 녹이더니 금시 온몸에서 맥이 빠지고 졸음이 몰려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얼핏 감겨진 눈을 급히 떠올리시며 대원들을 지켜보시였다. 지금은 노곤해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더운밥에 배를 불리고 뜨뜻이 몸을 녹인 기분에 전에없이 혈색조차 좋아보였다.

차일진은 벌써 보초교대를 해주려고 신들메를 조이고있었다. 그는 장군님께서 뚜껑을 덮어 내려놓은 밥통을 눈여겨 살피더니 전령병에게 무엇인가 소근소근 속삭였다.

조왈남이와 김청해가 깜짝 놀라 장군님을 쳐다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시며 전령병과 나팔수더러 떠들지 말라고 눌러놓으시고 차일진이도 어서 보초교대를 해주라고 고개짓을 하시였다. 그리고 대원들을 향해 말씀하시였다.

《이젠 식사가 끝났으니 시간을 랑비하지 말고 뜨뜻한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우시오. 동만땅에 나가기전에야 다시 이런 산전막을 어디서 만나겠소. 한흥권동무와 김택근동무도 한잠 푹 쉬여야겠소. 행군종대의 척후와 후위에서 적을 견제하느라고 곱으로 힘을 빼운 동무들인데 원기를 회복하지 않고는 래일의 행군을 이어나가지 못하오.》

장군님께서는 대원들을 모두 자리에 눕히고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부엌봉당으로 내려오시였다. 아궁에서는 불이 사위여가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소리없이 나무를 지피시고 대원들의 벗어놓은 신발들을 아궁앞에 가져다놓으시였다. 젖은 신발들에서는 김이 피여올랐다.

장군님께서는 말라가는 신발과 젖은 신발들을 바꾸어놓노라 부지런히 손을 놀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말라가는 신발들을 하나하나 헤여보시였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일기 시작하였다. 허름한 산전막안으로는 바람이 마구 날아들어왔다. 부엌봉당, 가마목, 구들 할것없이 온통 눈가루가 뿌옇게 떠돌았다. 잠자는 대원들의 모자와 군복우에 허옇게 눈가루가 내려앉았다.

장군님께서는 부뚜막을 짚고 일어서시여 산전막을 허양 떠날구어 버릴듯이 기승을 부리는 눈보라소리에도 아랑곳없이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대원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어떻게 하면 이 동무들을 무사히 데리고 동만땅에 들어설수 있을가.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고 예견할수 없는 난관이 첩첩히 가로놓여있는데… 그때까지 내 몸이 견디여낼수 있을가?)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스스로도 걷잡을수 없는 어떤 불안한 예감에 깊이깊이 빠져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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