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제 2 장

불타는 성

7

(2)

 

리춘영도 그에 공감이라는듯 함께 머리를 조아렸다. 그것이 린석을 더욱 격하게 하였다. 물론 린석이 자신도 량반인 이상 그들의 심정을 리해하지 못하는것이 아니다. 그만큼 그도 백산을 무반으로 만들자는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그만큼 그사이에는 또 피치 못할 간극이 있다. 그런데 저들은 지금 그것도 양보하지 않겠다는것이다.

거기에는 그들로서의 타산이 있다. 미영을 백산에게서 떼내자는것이다. 하다면 린석이 이것마저도 양보해야 하겠는가. 나라를 지키느냐 마느냐 하는 이 중대한 시기에 저부터 한몸바쳐 싸우겠다고 나선 사람이 딸 하나의 문제를 놓고 이렇듯 바재이며 타산을 앞세워야 옳단 말인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그러쥐였다. 그리고 무슨 불호령을 내릴것인가를 생각하며 부릅뜬 눈으로 쏘아보고있는데 닫겼던 대문이 벌컥 열리며 사기가 등등하고 활기에 넘친 몇사람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린석은 급히 자리를 차고 대뜰우로 나섰다. 들어선 사람이 뜻밖에도 홍정식과 늘 그곁에 묻어다니는 서울패거리였던것이다. 지금 린석이 놀라는것은 그들의 어깨우에 신식보총들이 주런이 메워져있는때문이였다.

《대장님, 가져왔습니다. 다섯정입니다.》

홍정식이 그것들을 장한듯이 마루우에 올려놓았다. 그옆에 전번에 보았던 야마무라가 연신 고개를 까딱이며 안경알을 번뜩이고있었다.

《그예 오고야말았군. 수고가 많았네.》

《총이란 다른 물건과 달라서 구하기가 힘들고 구해놓으면 또 나르기가 헐치 않아서 기간이 오래 갔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야마무라씨가 이번에 큰 수고를 했습니다. 그가 아니면 총도 총이려니와 여기까지 오기도 힘들었을겁니다.

이 고리짝안에다 총을 감춰가지고 오는것도 다 저 야마무라씨가 고안해낸겁니다. 장사물계에 도통한 야마무라씨가 역시 다르긴 다릅니다.》

홍정식이 버들가지로 특별히 길고 크게 만든 고리짝을 가리키며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그안에는 아직도 비단필을 비롯한 진귀한 물건들이 그대로 있는데 야마무라는 그것마저도 의병대에 다 무상으로 기증한다고 하였다.

안승우가 그것들을 번져가며 값을 타산해보았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천쪼박이 아니라 총에 가있었다. 그만큼 생각도 깊었던것이다.

《나머지 총은 어떻게 한다는건가. 탄알은 또 어떻게 하구?》

그가 야마무라에게 물었다. 그때까지 제자랑에만 열중했던 야마무라가 갑자기 저자세를 취하며 얼굴에 살웃음을 띠였다.

《예, 다 준비되고있습니다. 경성(서울)에도 사람이 있으니까요. 나는 다만 여기에 당장 무엇이 얼마나 필요하겠는지를 알아보자고 왔습니다.》

《그야 그대가 이미 다 알고 가지 않았었나?》

《그렇긴 하지만 총 하나하나, 탄알 하나하나가 얼마나 힘들게 나오는지 모릅니다. 단꺼번에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바로 그래서 필요한 값을 지불하는게 아닌가.》

이번에는 옆에서 지켜보던 류린석이 엄한 소리로 한마디 했다. 급기야 야마무라의 얼굴이 시꺼멓게 굳어졌다. 어딘가 급소를 찔리웠든가 아니면 반대로 불만이 솟구친 모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홍정식이 다시 나섰다.

《대장님, 그럴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총 한자루한자루가 어떻게 얻어지는지 알지 못하기때문에 그런 말이 쉽게 나오는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사지판에 목숨을 내놓지 않고서는 할수 없는 일입니다. 자꾸들 이러시면 누가 이 위험천만한 일을 맡아하겠습니까.》

《가서 김백산선봉장을 불러오게.》

린석이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불시에 누군가를 향해 소리쳤다. 홍정식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지금 린석의 귀에는 그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과 같이 급한 때에 얼마 되지도 않는 총을 갖다놓고 아무리 귀맛좋은 말을 많이 한댔자 소용이 있는가. 자연히 머리가 백산이쪽으로 돌게 된것이다.

과연 잠시후에 백산이 도착했다. 그는 들어서자바람으로 뜰안의 광경을 짐작하고는 곧바로 마루우에 놓인 총부터 집어들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어 격발기도 분해하고 방아쇠도 당겨보고 하더니 그대로 마루우에 던져놓았다.

《탄알은 가져온것이 없습니까?》

그가 린석에게 물었다.

자연히 시선이 야마무라에게 돌아갔다. 지금까지 누구도 그에 대해 물은것이 없고 야마무라역시 똑바로 대답한것이 없었던것이다.

야마무라의 자세가 급전직하의 저자세로 변하였다. 방금까지 안경알을 번뜩이며 고자세를 취하던 그가 허리를 굽히고 해죽거리기 시작하였다.

《예, 그에 대해선 이미 말씀드린바 지금도 수소문을 하고있습니다.

역시 위험한 물건이라 손에 넣기가… 헤헤, 그러나 문제없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다 되였을것입니다. 이제라도 경성에 가면…》

하다가 그는 입을 딱 벌린채 그대로 굳어지고말았다. 김백산이 불시에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거머쥐였던것이다.

《요 쥐새끼같은 놈, 뭐가 어떻게 되였다구? 똑바로 말해, 네놈이 여길 왜 나타났어?》

《이거 왜 이러는겁니까. 하, 이러면 이거…》

야마무라가 멱살을 잡힌채 공중에 매달려 허우적거렸다. 그러자 홍정식이네 패들과 안승우네들이 달려들어 백산을 겨우 뜯어말렸다. 거기에 더 화가 돋힌듯 백산은 야마무라를 다시 허궁 들어 마당 한복판에 집어던졌다.

《대장님, 총은 하나도 쓸것이 없습니다. 두개는 격침이 부러지고 두개는 격발기가 고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성, 조문이 맞지 않아 조준사격을 전혀 할수 없는것입니다. 나는 저놈이 성안에 자주 드나드는것부터가 의심스럽습니다.》

홍정식이네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무엇이라구? 네가 또 우리를 의심하는거야. 총을 알면 얼마나 알아서?》

《쓰지 못하는건 사실이요.》

그가 대답하고 주머니에서 총알을 한알 꺼내여 보총에 장탄하며 대답했다. 그가 최후에 쓰려고 건사했던 몇알 안되는 총탄들중의 하나였다.

그가 총신을 하늘로 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하는 격발기소리뿐 총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홍정식이네들의 입이 굳어졌다. 그중 하나가 다른 총을 집어주며 쏴보라고 했으나 백산은 랭랭하게 도리머리를 했다.

《이미 말한바와 같습니다. 하나도 쓸게 없습니다.》

《그러니 우릴 믿지 못하겠다는거야. 이거야말로 랭수에 뼈뜯기울 노릇이군. 저 야마무라씨도 총내속이 저런줄은 몰랐단 말이야. 상놈이 뭘 좀 알면 알았지 감히 어디서 야료야.》

《거기선 왜놈을 얼만침이나 알아서 그리 역성이요.》

홍정식이네들이 왁작 떠들었다.

한편 땅에 넘어졌던 야마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승우에게 달려들며 야단을 부렸다.

《나를 이렇게 하자고 무기계약에 끌어들였는가.

당신네 조선사람들은 다 이렇게 무지한가. 저놈이 당장 사죄를 하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무기거래에서 손을 뗄뿐아니라 그 값도 돌려주지 않겠다. 저놈이 내앞에서 사죄를 하고 선봉장자리에서 물러나게 해…》

제법 큰소리까지 나왔다. 거기에 홍정식이네들까지 합쳐서 기세가 사뭇 등등해졌다. 안승우가 당황한것은 물론 리춘영이마저도 어쩔줄을 몰라 량쪽의 눈치만 살피게 되였다.

《저들을 다 감영밖으로 내보내게.》

그때까지 말이 없던 류린석이 한마디 하고 대뜰우로 올라섰다. 교의에 앉아서 그때까지 움직이지 않고있는 뜰아래사람들에게 다시한번 웨쳤다.

《정히 말을 듣지 않을텐가. 여봐라!》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때까지 쓰지 않고있던 설렁줄을 찾았다. 설렁줄 한번 흔드는 소리에는 대뜰우의 량반들도 솜털이 오싹하고 상투끝이 쭈빗해진다고 할만큼 감사의 불호령이 떨어지는것이 상례이다. 그만큼 군노사령들이 쓸어들어 이놈저놈 가릴새없이 마구 짓부시는 판인것이다. 홍정식이네는 물론 김백산이까지 대문밖으로 몰려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렇게 하고도 린석이 교의에 앉아 눈을 꾹 감고 옴짝없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리춘영과 안승우들도 밖으로 나가고말았다.

그때로부터 얼마간 지나서 다시 들어왔을 때에야 린석이 겨우 입을 열었다.

《야마무라인가 하는 놈이 뭐라던가?》

리춘영과 안승우가 무릎을 꿇고앉아 한동안 대답을 못하고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대장님,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백산이 무조건 사죄를 하고 선봉장직에서 떼지 않으면 물러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때에도 린석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춘영이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야마무라가 한마디 더 보탠것이 있습니다. 아까는 말할 겨를이 없어 하지 못했는데 이제 관군과 왜군이 힘을 합쳐 대공격해올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군부대신과 내부대신들이 왜군과 합의를 본것이라고 합니다. 조만간 큰 싸움이 벌어질것인데… 야마무라는 자기가 이다찌중좌와 잘 아는 사이라고 하면서 만약 우리가 원한다면 제가 나서 사전합의를 보아주겠답니다. 저, 싸움을 어렵지 않게 친다든지 아니면 손실이라도…》

《중군장, 가서 김백산이를 불러오게. 내 그 사람을 군사장으로 임명하자고 하네. 우리들가운데 그만한 사람이 다시 없네, 그만한 사람이…》

오래동안 말이 없던 린석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때까지도 자기생각들에만 빠져있던 춘영과 승우들은 아연했다. 지금처럼 문제가 복잡해진 때 그것도 당장 큰 싸움을 앞두고 새 작전을 펼쳐야 할 때 김백산이를 굳이 군사장으로 임명하자고 다시 들고나오는것이다. 그러나 아까보다 더 엄격해진 린석의 모습을 보고는 말을 하지 못했다.

백산이 다시 그앞에 나타났다.

《이리 올라오게.》

그가 뜰아래 선것을 보고 린석이 불렀다.

백산이 주저하며 대뜰우에 올라와 무릎을 꿇고앉자 린석이 말했다.

《자네가 오늘 잘하였네. 왜놈의 종자앞에서는 다 그만큼 해야 해. 설사 그놈이 진심이든 가짜이든 무기를 가져오지 않은 이상에는 용서할수가 없네. 그런즉 이제부터 자네를 우리 의병대의 군사장으로 임명하니 즉시 임무에 착수하기 바라네.》

리춘영과 안승우는 여전히 침묵으로 저들의 주장을 고집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머리를 숙이고있던 백산이 번쩍 상반신을 일으켰다.

《대장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절대 그럴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되고 안되고 하는것이야 내가 알아서 할바이고 지금 당장은 군사장이 없으니 누구든 맡아서 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시키는대로 하게.》

역시 막무가내였다. 그만큼 린석으로서는 생각이 많았고 결심도 확고했다.

그러나 백산은 그보다 더 완고하게 나왔다. 그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뜰아래로 내려서더니 처음의 그 자세로 허리를 굽혔다.

《창의대장님, 제가 할수 없다는것은 그 일이 마음에 없거나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일단 맡아서 시작을 하면 그때부터 일을 망칠것이기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몸에 닿는 푼수가 있는것입니다. 푼수에 닿지 않는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은 반드시 망치게 되는것입니다. 제가 대부분의 량반선비의병장들에게 호령할수 없다는것이야 불보듯 명백하지 않습니까. 또 호령한들 그들이 저의 뜻대로 받아물기 어렵다는것도 당연한 사실이 아닙니까. 력대로 이 나라에는 상놈들이 량반을 호령한적이 없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금은 시국이 란시가 아닌가. 란시에는 란시의 시국에 따르는것이야.》

《대장님, 아무리 시국이 그렇다 해도 혼자서 하는 일이 따로 있고 여럿이 하는 일이 따로 있습니다. 기필코 망치고말 일을 순간의 명예나 직분을 바라고 맡아나서는것은 그자체가 벌써 시국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결심을 굳이 변경시켜 매사에 일이 되도록 조처하여주시길 바랍니다. 이만 물러가렵니다.》

백산은 이렇게 말하고 그대로 돌아서 문밖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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