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제 2 장
불타는 성
7
(1)
류린석은 방 한구석으로 밀어놓았던 교의를 가져다 앉고 여러 의병장들을 둘러보았다.
선화당 넓은 방안에는 창의소성원들과 함께 성안의 의병장들전원이 모여앉았다.
며칠사이에 형세가 급변하였다. 아무리 공격을 해도 성을 빼앗을수 없다는것을 타산한 이다찌가 봉쇄작전으로 넘어갔던것이다. 성문과 함께 일체 외부로 통하는 길들이 차단되고 련계도 가질수 없게 되였다. 이렇듯 급변한 형세가 어떤 후과를 미치게 되리라는것은 불보듯 뻔했다. 그만큼 류린석이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긴장되여있었다.
무엇보다 식량난이 들이닥칠것이다. 좁은 성안에 본래의 주민보다 더 많은 의병들이 장기주둔을 하고있는 조건에서 조만간 식량이 떨어지리라는것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는 일이였다. 성안에 있던 남창, 북창의 식량은 이미 의병대와 주민들에게 다 나누어주어 남은것이 없다. 있다면 성에서 삼십리 떨어진 가흥창에 수만석의 쌀이 있는데 거기에는 왜놈수비대가 철통같은 방어를 하고있어 바라볼것이 못된다.
식량 못지 않은 또 다른 난관이 다가오고있다.
화약과 화살이 떨어져가고 다른 병쟁기들도 점점 못쓰게 되여가고 있는것이다.
특히 화약이 모자란다. 그래도 지금까지 적들과 얼마간 떨어진 거리에서 접전을 할수 있었던것은 전수 조총의 힘이였다. 그런데 화약이 떨어져 조총마저 쏠수 없게 되면 순수 도창무기로만 적과 맞서야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병접전에 한한것이지 대포나 기관총에 맞설것은 못된다. 이제 창이나 칼마저 못쓰게 되면 그때에는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말하자고 하는것은 이러한 형편에서 우리가 성을 끝까지 지켜낼수 있겠는가 하는것이요. 난관으로 말하면 그밖에도 얼마든지 있을수 있소. 말들을 해보시오, 이제부터 성을 어떻게 지키며 또 얼마를 견지할수 있을것인지?》
류린석이 여느때없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사람들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린석이 이런 투로 말하기는 이것이 처음이였던것이다.
아닌게아니라 방 한구석에서 누군가의 불만기어린 소리가 툭 튀여나왔다.
《성을 끝까지 지킬수 있겠는가 하는것은 무슨 말입니까. 성을 어떻게 지키구 얼마를 견지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은 또 무슨 말이구요?》
평시에는 이름도 없고 얼굴도 잘 나타나지 않던 의병장이다. 부대의 의병도 얼마 되지 않는다.
《형편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말했소. 문제는 앞으로 보다 험해질수 있다는데 있소. 이를테면 성이 무너진다든가 우리 내부에 나약한 사람이 나서 싸움을 두려워한다면 그때는…》
《창의대장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것이 진정 우리를 념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성을 점령할 때 이렇게 며칠 타고앉아 형세나 보자고 피를 흘렸습니까? 안됩니다.》
《지금 전국의 의병들이 우리를 지켜보며 싸움을 벌리고있습니다. 우리가 충주를 버리고 물러나거나 놈들에게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그들이 실망하고 역시 물러날수 있습니다. 끝까지 타고앉아 전국을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린석의 말 한마디에 여러 의병장들이 벅적 떠들며 들고일어났다.
린석은 지긋이 입을 다물었다. 눈에는 기쁨과 만족이 가득차있었다. 바로 그것이였다. 그들이 이렇게 나오기를 바라서 한 말이였다.
《고맙소, 이젠 나부터도 힘이 나오. 모두 그러리라고 믿었소. 나는 지난 며칠어간에 주용규군사장의 장한 죽음이나 김백산선봉장의 용감한 싸움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마음만 굳게 먹으면 반드시 이길수 있다는 신심을 더 굳히였소. 반드시 이길것이요.》
《옳습니다, 반드시 이깁니다.》
《이겨야 합니다. 성을 내줘선 안됩니다.》
이번에도 또 여럿이 합창을 했다.
린석은 교의에서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가까이에 마주앉은 안승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보다싶이 의병들의 사기는 이렇소. 문제는 식량과 무기인데 두가지 일이 군수장에게 많이 달려있소. 무슨 방법이 없겠소?》
묻고는 여전히 시선을 떼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는것이였다.
그것은 린석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의도적인 목적이라고도 할수 있다. 말하자면 조성된 정황에 맞게 승우네가 더 힘껏 노력해야 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자는것이였다.
결코 그동안 군수장인 그가 일을 잘못했다고 해서 하는것은 아니였다. 그렇지 않아도 승우는 수천명 의병은 물론 성안의 주민들을 먹고 살리는 일에 밤낮이 따로 없었다. 그럼에도 아직 일을 크게 펴지 못하여 줌안에 쥐고있는 쌀 얼마, 몇푼 안되는 돈을 나누는데만 급급해 있는것 같아서 하는 말이였다.
한동안 말이 없던 승우가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식량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집니다.》
《그래? 군수장한테 무슨 방도라도 있소?》
린석이 크게 놀라며 반문했다. 그것은 기대를 하면서도 바라지는 않았던 대답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밤낮 일에 몰리여 피골이 상접한 자세로 린석의 앞에 나서군 하던 승우였던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도 천연스레 같은 대답을 했다.
《책임집니다. 우리가 성에서 싸우는 한에는 먹도록 해야지요.》
역시 드물게 하는 말이 값이 있다고 린석은 그 말을 믿었다. 그만큼 지금까지 일을 착실히 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은 승우의 욕망뿐이지 끝까지 그렇게 담보할수 있겠는지는 그
다음 병기에 대한 의논이 벌어졌을 때는 사석이 나섰다. 그가 철덕을 새로 쌓고 쇠를 녹여 창과 칼을 만들어내거나 수리하여 화승총의 철알을 만들겠다는것이였다. 역시 중요하며 필요한 일이였다.
그러나 조총을 쏘는데는 철알만 있어서는 안된다. 화약이 있어야 하는데 쇠부리공들은 그것을 만들지 못한다.
자연히 시선이 백산에게 돌아갔다. 거기에 갑오란리때는 물론 강원도의 사냥군들이 자체로 화약을 만들어쓰던 경험자들이 많기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조차 그것을 만드는 원료가 보다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즉 쇠를 녹이려면 파쇠가 있어야 하고 화약을 만들려면 오랜 집들에 쌓인 먼지나 변소, 오물장, 집주변의 묵은 흙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그것들이란 곧 망초의 원료인데 망초가 화약의 원료인것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했고 그만큼 누구도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김백산이 나섰다.
《그것도 할수 있습니다. 큰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의 시선이 백산에게 돌아갔다. 그렇지 않아도 싸움의 중하가 그에게 많이 실려있는 지금이다. 그런데 제가 또 어떻게 하겠다는것인가?
《녀자들과 로인분들을 동원하면 됩니다. 집들에서 파쇠와 함께 흙먼지, 오래된 흙들을 모으는 일인데 이것은 로인들과 아녀자들도 할수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그들을 선동하여 맡아할만 한 적임자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내처 말을 뱉어놓은 백산은 문득 자기를 후회하였다. 자기를 향해 피끗 고개를 돌리는 승우를 보았던것이다.
그것은 절대 그렇게 할것이 아니였다. 해서는 안될 말이였다. 방금 안승우가 가장 어려운 과업을 맡아안았는데 그의 딸에게까지 그것도 본인이 아닌 자기가 나서 책임을 씌우려 하지 않았는가.
그때 린석이 무릎을 치며 큰소리로 웃었다.
《그참 명안이군. 미영이 그 일을 할수 있지. 그한테 맡기세.》
린석이 여전히 웃음을 금치 못하며 승우를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백산을 못마땅히 쳐다보던 승우가 고개를 숙였다. 대장의 요구가 그러니 할수 없다는 자세였다.
모임이 끝나자 린석이 춘영과 승우만 따로 남게 하였다. 방금전과는 전혀 다른 심중한 자세였다.
《한가지 더 긴하게 론할것이 있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군사장이 없는 문제일세. 주용규를 떠나보낸 우리 가슴이 아픈것은 말할것 없지만 그 자리를 메꾸어야 하는것도 어쩔수 없는 일이네.
내가 그를 대신할 사람을 내정하고는 있지만 그대들도 생각이 없지 않을터이니 안을 내놓아보게.》
두사람은 대답이 없이 덤덤히 앉아있기만 했다. 좀 뜻밖의 일이기도 한데다 그런 일에는 대장의 결심이면 된다는 믿음에서였다.
그것을 짐작한 린석이 곧바로 생각을 터쳤다.
《나는 군사장의 후임으로 선봉장 김백산이를 제기하네.》
순간 두사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얼결에 마주보고는 약속이나 한것처럼 린석의 앞에 엎드렸다.
《대장님, 이것은 심중한 문제입니다. 다시한번 생각해주십시오.》
둘이가 거의 같은 소리로 대답했다. 방금 린석에게 대하던 태도와는 딴판이였다.
린석이 그러는 그들을 못마땅히 바라보며 턱을 매만졌다.
《말을 해보게, 리유가 무엇인가?》
《대장님, 김백산이는 저희들하고 같지 않습니다. 사람마다에게는 저에게 맡는 푼수가 있습니다. 함부로 일을 맡기면 교만방자해져서 쓰지 못합니다.
그가 지금도 아래웃사람을 몰라보고 마음대로 놀아나는데 군사장까지 시켰다가 무슨 일을 칠지 알수 없습니다.》
리춘영은 그보다 폭넓은 의미에서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군령이란 대쪽같이 쭉쭉 내려먹어야 하는것인데 그가 군사장이 되면 우선 그부터 량반선비의 병장들한테 호령하기 어렵고 다른 사람들은 받아물기 힘듭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글러서도 아니고 군령이 엄하지 못해서도 아니며 오직 굳어진 법이 그렇기때문입니다.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옛법이 그렇다 하기로써니 그에게는 군공이 있고 또 그만큼 호령할만 한 능력이 있지 않는가. 지금에는 그를 대신할만 한 사람이 우리 부대에 없네.》
《옛 성현들도 군공에 따라 벼슬을 줄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설사 오늘날에는 그 말이 통하지 않을지라도 줄기와 가지에는 순서가 있는것입니다. 가지가 줄기를 좌우지할수 없듯 상민이 량반을 호령할수 없습니다. 란시라고 하여 내려오는 옛법을 무시하고 상하의 격차도 안중에 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로 세상을 떠받드는 기틀을 허물어버리는것과 같습니다.》
《그렇다 하면 자네들이 용규를 대신할 사람을 내놓게. 그렇지 않아도 애초에 내가 자네들이 먼저 안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린석도 어느 정도 격해졌다. 그들의 뜻하는바를 몰라서가 아니였다. 아울러
그러는데 승우가 또 머리를 숙여 엎드렸다.
《대장님은 선봉장을 너무 믿고 그만 내세우려 하고있습니다. 옛말에도 있듯이 한쪽 말만 들으면 편견이 생기고 한사람에게만 일을 맡기면 반란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김백산으로 말하면 선봉장만으로도 족합니다. 그 이상 책임을 맡기면 실책을 범하기 쉽고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꼭 참작해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