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2 장
불타는 성
6
(2)
병력을 더 많이 들이미는 한편 관군을 먼저 돌격대로 내몰고 저들은 멀리에서 엄호사격만 하는것이였다.
성우에서 놈들을 살펴보던 백산은 속이 탔다. 관군은 부진부진 다가오는데 의병들은 성가퀴밖으로 머리도 내밀수 없는것이다. 그나마 화승총을 쏠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조선사람들을 죽이는 놀음이 되고만다. 왜놈들은 저 멀리에 두고 제사람끼리 싸워야 한다.
총, 총이 있어야 한다. 다문 몇정의 보총이라도 있어서 저 멀리에서 짖어대는 기관총을 어떻게나 박산내야 한다. 바로 이 성을 점령할 때 서상렬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그의 부대에도 몇정의 보총이 있기는 하지만 총탄이 없다. 이미 다 써버린것이다.
그때 오째가 다가왔다. 일전에 홍정식이네 론하던 총과 총탄이 도착했는지 알아보자는것이였다. 그의 말대로 되였으면 벌써 그것이 도착했어야 했다.
백산은 믿지 않았다. 하면서도 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창의소로 달려갔다. 마침 대문칸에서 밖으로 나오던 안승우와 마주쳤다.
백산은 무춤 멈춰섰다가 자세를 바로했다.
《군수장님, 서울에서 소식이 없습니까? 저, 총이 안되면 총탄만이라도…》
그가 말끝을 흐렸다. 그가 누구앞에서든 이렇게 주저해보기는 처음이다.
《왜, 믿지 않는다더니 이제와선 생각나나?》승우가 그를 차겁게 바라보고나서 말했다. 하고는 무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대답을 못하는 백산을 동정하듯 다음말을 이었다.
《소식이 왔소. 하루이틀사이에 도착할것이요.》
백산은 무겁게 몸을 돌렸다. 따지고들면 그가 승우앞에 그렇듯 무안하고 죄스럽게 서있을 근거가 없다. 어쨌든 방어전이 진행되는 이날까지 아직 한정의 총도, 한알의 탄알도 도착하지 않지 않았는가. 그에 대하여 백산이 큰소리로 대답할수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아니, 할수 없었다. 그가 곧 자기 상관이며 량반인 까닭이다.
보다 더 중요한 리유가 있다. 그것인즉 승우가 바로 미영의 아버지이기때문이다. 그야말로 자기를 미영과 다시 만나지 못하게 하고 총을 거래하는 일에서조차 완전히 손을 떼게 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을 하며 성에 돌아오니 벌써 관군들은 성벽에 붙었다. 다행히도 사격명령이 없어서 서로 총질들은 하지 않았는데 대신 심한 욕설들만 주고받고있었다.
《이 폭도놈들아, 너희들이 누구의 밥을 먹고 살았기에 함부로 손에 무기를 잡고 나라를 배반하느냐. 당장 성문을 열고 나와 투항하라.》
이런 소리가 올라오면 보다 더 험한 소리가 성벽에 몰켜선 관군들의 머리우로 쏟아진다.
《이 산수털벙거지녀석들아, 네놈들의 그 벙거지를 나라를 지키라고 씌워주었지 왜놈의 개노릇이나 하라고 씌워준줄 아느냐. 제사람의 손에 죽지 않겠으면 돌아서서 왜놈들에게 총탄을 날려라. 그때엔 살려주겠다.》
놀라운 일이다. 총부리를 맞대고 저렇듯 쌍욕을 퍼부으면서도 서로 총질은 하나도 하지 않으니 여기에 반드시 원인이 있다. 분명히 한겨레끼리 싸우며 피를 흘리기 싫다는 공통된 감정일것이다.
그것이 백산의 힘을 돋구었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할 사이없이 성가퀴사이로 불쑥 나섰다.
《관군형제들, 여러분! 우리는 한겨레요. 싸우지 맙시다. 우리는 왜놈과 싸우자고 일어났지 우리 사람끼리 싸우자고 일어난 의병이 아니요. 이제 우리가 들고일어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영원히 오랑캐의 나라로 되든가 오랑캐의 족속에 짓밟혀 개노릇을 하는수밖에 다른 길이 없소.
형제들, 대답해보시오. 어느 길을 택하는것이 옳겠는가. 왜놈의 총알받이로 동족을 겨누겠는가 아니면 돌아서 총부리를 왜놈에게 돌리겠는가.…》
그러자 기관총탄이 성벽을 후두둑 때리며 무수히 날아왔다. 관군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이고 땅에 엎드렸다. 그뒤로 왜군들의 《도쯔께끼》가 시작되였다. 순간에 왜군과 관군이 뒤섞여 혼잡탕이 되고 그것이 곧 성벽에 대한 공격에로 이어졌다.
길다란 사다리들이 여기저기 솟아오르며 왜군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일단 싸움에 붙으면 이기고야만다는 제놈들식의 악착성, 야수성이 발현된것이다.
그러나 놈들은 오산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단병접전이야말로 의병들의 장점이요 바라던 싸움이였던것이다. 먼저 기다란 창대로 기여오르는 놈들을 찌르고 칼로 베고 활로 쏘았다. 순간에 성벽은 놈들의 비명과 아우성으로 변했다.
약이 오른 놈들은 일단 성에서 물러갔다가 다시 공격을 해왔다. 그럴수록 의병들은 더 용기를 내여 놈들을 요정내군 하였다.
현대전과 구식싸움방법이 뒤섞였다고 할수 있는 충주성싸움은 량측이 다 자기의 특기를 살린 싸움이라고 할수 있다. 그럼에도 왜군이 극도의 피동에 빠지고 많은 살상자가 나게 된것은 의병들의 전술에 걸려든때문이였다. 즉 어차피 성벽에 붙지 않을수 없었는데 그때에는 어떤 현대전의 방법도 통하지 않는것이다.
다른 리유도 있다. 선봉대가 새로 투입된데다가 그를 책임진 김백산이 싸움에 앞장설뿐아니라 림기응변의 전술로 능숙한 지휘를 보장했다는것이다. 대부분 의병장들이 간고했던 그날 원시적인 도창무기로 대포와 기관총에 맞서 그토록 당당하게 성을 지켜낼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의 하나를 김백산이 있었기때문이라고 한결같이 인정하였다.
여기에는 그의 용감성이나 능란한 지휘와 함께 평민으로서 그가 늘 의병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과 고난과 시련을 함께 했다는 의미가 중요하게 포함된다.
이렇게 하여 그날 싸움은 여느때없이 간고하고 치렬했지만 전과는 그만큼 컸다.
다음날 이다찌는 더 많은 병력을 들이밀었다. 다음날 또 다음날에도 치렬한 공방전은 계속되였다. 이러는 속에 성안에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였다. 화약과 화살이 떨어져가는것이였다. 창과 칼도 무한정 오래 쓸수 없고 그것만으로 싸울수도 없는것이다. 이 난관을 어떻게 이겨낼것인가…
백산은 요즘 자주 이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한창 생각에 잠겨있을 때 마을쪽에서 한무리의 녀성들이 나타났다. 머리와 치마폭에 돌을 이고 싸안은 녀성들이였다.
《이 돌을 가지고 왜놈들을 쳐주세요. 뒤에는 녀자들과 아이들이 있어요. 놈들을 절대 성안에 들여놓지 마세요.》
녀인들이 떠들며 웨치며 하는 소리였다. 의병들이 그것을 성아래로 힘껏 던졌다. 악을 쓰며 성우로 대가리를 들이밀던 놈들이 우지끈 돌탕에 맞고 아래로 곤두박질을 했다.
《자요, 이것도 받아요!》
문득 들리는 소리에 백산은 고개를 돌렸다. 미영이 돌을 담은 치마폭을 싸잡고 자기를 쳐다보고있었다.
《미영씨도 왔소? 여긴 위험하오.》
미소가 어렸던 얼굴이 한순간 굳어지며 홱 돌아섰다. 자기를 몰라준다는데 대한 힐책인것이다. 하기야 백산이 왜 그것을 모른단 말인가. 알면서도 모른체 하는것은 그렇게 해야만 되기때문이다. 즉 군수장 안승우와의 상하관계가 무난히 유지될수 있는것이다.
그러거나말거나 미영은 요즘 성수가 났다. 의병들을 위한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 뛰고있는것이다.
때로는 밥짓는 일에, 때로는 쌀과 부식물을 끌어들이는 일에 그리고 또 어떤 때는 부상자들을 돌보는 일에 간단없이 뛰고돌면서 참견을 하고있는것이다. 어느새 그는 녀자들이 하는 일을 모두 맡아 주관하는 총책으로 되였다. 매사를 그가 그러쥐고 움직이게 된것이다.
그렇게 뛰고 또 뛰는 머리속에는 언제나 선봉장 백산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지금 싸움의 가장 어려운 남쪽을 맡고있는 그가 매일매일 거두고있는 전과는 그대로 의병대의 전과로 되고있다.…
미영은 오늘도 화살마저 떨어진 전장으로 녀성들을 추동하여갔다. 전장에서 피흘리며 싸우는 그의 모습을 보고싶었던것이다.
미영은 그것을 믿고있다. 눈으로 보고있다. 이쪽저쪽 싸움의 가장 어려운 곳으로 비호처럼 날아다니는 날랜 동작, 사자의 울음소리와 같은 힘찬 군령, 새된 휘파람소리로 하늘을 가르는 번개같은 칼부림, 그때마다 목이 째지게 터져나오는 왜놈의 비명…
《선봉장님, 장해요. 더 힘껏 싸워주세요!》
어느새 그는 또 백산에게 끌리여갔다. 그리고 자기를 몰라주는것 같은 야속함에 이를 옹다물고 섰다. 쏘아보듯 까딱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
포탄구뎅이를 뛰여넘어 저쪽전장으로 달려가던 백산이 문득 그앞에 멈춰섰다. 그대로 스쳐지날수 없는 눈길이 그를 붙잡았던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말을 할수 있단 말인가. 무엇이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이마에 검댕이가 묻었소. 어서 닦소.》
백산이 피묻은 칼을 뒤로 가져가며 겨우 한마디 했다. 그밖에 무슨 말도 할수 없었다.
《그게 그렇게 걱정스러워요?》
역시 예견치 않았던 대답이였다.
왜 그랬는지는 미영도 알수 없었다. 곧 후회가 되였다. 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한참 그를 쳐다보았다. 그때에야 생각이 났다. 언제부터 하고싶던 말이다.
《부디 군공을 세우세요, 끝까지 몸성해서…》
정작 맞대놓고 말하자니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끝을 못 맺고 《호》하고 긴 한숨을 내쉬던 미영은 다시 홱 돌아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