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제 2 장

불타는 성

6

(1)

 

그날 아침 주용규는 수저를 들다가 갑자기 터지는 포탄소리에 밖으로 뛰여나갔다. 해가 방금 동산머리에 솟아 성안을 들이비칠 때였다.

그것은 너무도 일찍 시작된 싸움이였다. 첫날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물러갔던 놈들이 며칠사이에 력량을 보충해가지고 새로 걸어오는 싸움이였다. 역시 이다찌가 작전하고 지휘하고있었다.

그전까지만 하여도 그는 몇문의 포만 가지고도 충주성쯤은 문제가 없다고 타산하였다. 조선의 장삼리사들이 그것도 의병이라고 하는 하잘나위조차 없는것들이 언제 포탄맛을 보았겠는가 하고 제딴에는 있는 힘껏 포화력을 들씌웠는데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완전한 한개 포중대의 화력을 요구하여 증강배치하였던것이다.

한순간 포소리를 가늠하며 방향을 판정하던 주용규는 제가 앞장서 사람들이 놀라지 않게 사태를 수습하려 하였다. 그러나 벌써 의병들은 서로 찾고부르며 성쪽으로 달려가고있었다.

용규도 달렸다. 군사장으로서의 그는 싸움의 승패가 많이 자기에게 달려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만큼 누구보다 싸움에 앞장서며 용감할것을 요구하고있다. 옛날에는 량군이 접전에 앞서 장수들의 서전이라는것이 있어서 그것이 그날 싸움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에는 그 서전이라는것이 없는 대신 장수들의 용감성이 기본으로 되고있다. 즉 돌격전의 맨 앞장에 서야 하는것이다.

주용규가 이런 생각을 하며 성에 도착했는데 바로 그때에 포탄들이 면바로 성벽들을 때리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용규가 몰랐던것이였다. 첫날 싸움때는 포탄들이 주로 성안의 건물들에 날아들었는데 오늘은 성벽을 향해 날아드는것이였다.

모르는것은 그것뿐이 아니였다. 첫날에는 겨우 몇문밖에 안되던 포가 오늘은 그 몇배로 늘어났으며 그것도 주로 성벽을 노리고 집중사격을 퍼붓는다는것을 몰랐다. 그뿐만아니라 류린석이하 대부분의 의병장들이 그것을 모르고있었다.

보다 치명적인것은 놈들의 포탄이 성벽을 목표로 날아올 때 벌써 그 의도를 포착하고 대책을 해야 하겠으나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한것이다.

그리하여 련속 날아오는 포탄들이 성벽을 흔들고 무거운 성돌과 흙먼지를 들씌울 때까지 의병들은 꿈쩍도 않고 그 자리에 엎드려있었다.

그렇게 할것을 요구했던것이다.

얼마 못 가서 포탄의 작렬에 의병들이 통채로 하늘에 날아올랐다가 떨어지면서 허리가 끊어지고 다리가 부러지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어떤데서는 직탄에 맞아 사람의 형체마저도 없어졌다. 그럼에도 용규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이전과 같이 웨쳤다.

《꼼짝말고 엎드려있어. 포탄이 터질 때는 뛰지 말고 엎드려있어야 한다는걸 모르는가.…》

한참만에야 그는 포탄들이 갈지자모양을 하면서도 일자식으로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이동한다는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머리속에 린석의 생각이 피뜩 떠올랐다. 그가 지금 포탄들이 이동하는 방향에 나가있다는것이였다.

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나 포탄들은 그보다 더 빨리 앞서나갔다. 하다가도 급진적으로 멈춰서 바로 그의 발치가까이에 떨어지기도 하였다.

그는 몇번이나 포탄의 폭풍에 날려 몇자씩 나가곤두박히기도 하였다. 하다가 눈을 떠보니 린석이 몇십걸음밖에서 의병들에게 뭐라고 소리치는것이 보였다. 포탄이 이제 저 곳, 린석의 바로 옆에 떨어질것이다. 그때에는 저 성가퀴가 날아날것이고 그 자리에는 큰 함지박만한 구뎅이가 생겨날것이다. 그때에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용규는 이것저것 바재일 사이도 없이 비호처럼 몸을 날렸다.

《창의대장님, 위험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하늘에서 쉬―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때를 같이하여 용규는 몸을 미처 가누지 못하고 우뚝 서있는 린석을 향해 비호처럼 날아가 성안쪽 경사지로 떠밀었다.

그때 그는 무엇인가가 둔탁하게 뒤잔등을 때리는 아픔을 느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영문인가 했다. 그렇게 생각했을뿐 다음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하늘땅이 자꾸 딩굴고 어디론가 흘러가는듯한 느낌뿐이였다.

그가 정신을 차린것은 사람들이 자꾸만 흔들어깨우는 속에서였다.

그가운데 겨우 린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용규, 군사장, 이 어찌된 일이냐. 정신차려라.…》

목소리가 째진듯 갈리였다. 흐릿한 영상속에도 린석의 모습이 안겨왔다.

《창의대장님, 무사했군요. 성을 꼭… 저놈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말을 끝맺지 못한채 목이 옆으로 떨어졌다. 바로 린석의 무릎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믿지 않고 거듭거듭 그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 두번다시 눈을 뜨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린석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적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미 적진만 바라보고있을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여기저기 성들이 무너지고 의병들이 쓰러진것이였다. 포탄에 맞아 희생되였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성안으로 실려가고있다.

(이게 웬일인가. 왜 이런 경우를 예견하지 못하였는가.…)

그는 가슴을 치며 통탄했다. 응당 예견을 하고 대책을 취했어야 할것인데 하지 못했다.

원인을 따지면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다. 그러나 근본은 새시대의 싸움에 대비할 준비가 되지 못한데 있다. 주용규가 그랬고 자기가 그랬다.

그는 전장에서의 리탈은 곧 패전을 의미한다는 기존의 리론에만 매달려 그토록 포탄이 터지는 속에서도 누구도 성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이것을 군률에 대한 엄격한 요구와 강의성만으로 평가해야 하겠는가.

《남쪽을 맡았던 의병의 삼분의 하나가 희생되거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배비변경을 하지 않으면 방어가 곤난합니다.》

리춘영이 보고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번의 포사격에 그만한 사상자를 내다니 이런 실책이 어디 있는가.

가슴이 터지는듯 아팠다. 주용규의 죽음은 피할수 없는것이였다. 자기도 죽어야 했다. 그가 비록 나대신 죽기는 했으나 어쩔수 없는 죽음이였다.

생각을 하니 자연 기대가 김백산에게 돌아갔다.

즉시 사람을 띄워 부대가 도착하도록 명령했다.

잠간사이에 선봉대가 도착하였다. 아직 한명도 피해를 입지 않은 그의 부대를 바라보니 마음부터 든든해졌다.

《이 시각부터 남쪽방어를 선봉장이 책임지고 맡아야 하겠네. 주용규군사장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를 바라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부대가 성에 전개되였다.

백산이 즉시 초(100명단위)와 기(30명단위), 대(10명단위), 오(5명단위)로 나누어 각기 분담구역을 배정하였던것이다.

급한것은 성벽을 빨리 보수하는것이였다. 각기 자기 구역의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게 하면서 저부터 제일 심하게 파괴된 구역에 붙어 돌들을 쌓아나갔다. 그를 따라 모든 의병들이 성밖으로 뛰여내려 무너진 돌들을 하나하나 다시 쌓았다.

그리하여 놈들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까지 무너진 성벽들은 기본적으로 다시 쌓을수 있었다. 비록 놈들의 포사격이 집요하긴 했지만 명중률이 높지 못하고 성자체가 견고하여 파괴된 구간이 얼마 많지 않았던것이다.

마침내 놈들의 공격이 시작되였다. 그때에도 백산은 미리 준비를 잘하고있다가 먼저 화승총으로 집중사격을 안겼다. 백여정의 화승총들이 먼저 일선에서 한방씩 날리면 뒤따라 이선에 섰던 총수들이 앞에 나서 연방 갈기였다. 그들이 한번씩 나서 총을 쏠 때면 말그대로 하늘에서 철의 소나기가 쏟아지듯 하였다. 이번에도 관군을 앞세우고 뒤에서 따라오던 왜놈들속에서 대혼란이 일었다.

수십, 수백발의 철환들이 몸을 피할수 없게 무리로 쏟아져내리는데 그것도 신통히 저들만을 골라쏘기때문이였다.

그날 이다찌나 와다나베는 보다 강력한 포사격으로 성이 적지 않게 파괴되고 희생자도 많은만큼 어제보다 저항도 약하리라고 타산하였다. 그러나 생각과 달랐다. 저들이 가까이에 다가갔을 때 성은 이미 다 보수되고 예견치 않았던 화승총의 일제사격이 진행되였다. 단번에 수십명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뜻밖의 영문에 어리둥절해있는데 또다시 철의 우박이 쏟아져내렸다.

깜짝 놀란 와다나베는 급히 퇴각명령을 내렸다.

그뒤를 따라 또다시 철환들이 날아왔다.

약이 오른 이다찌놈은 화승총사거리에서 벗어나 성에 대한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기관총과 보총탄들이 성벽을 향해 미친듯이 짖어댔다. 그러나 그때에는 의병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넓은 구간의 성벽에 머리 하나 내미는자가 없었다. 그것이 더 악에 받쳐 맹렬한 사격을 들이댔으나 그럴수록 성은 쥐죽은듯 조용하기만 하였다.

이렇게 온종일 공격을 했으나 헛물만 켜고 돌아섰다. 다음날도 결과는 같았다.

악이 오른 놈들은 다음부터 전술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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