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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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들은 적들이 행길로 밀려들어 사방에 대고 총질을 하면서 집들의 처마에 불을 지르기 시작해서야 문을 밀고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리유천이도 이통에 감옥에서 뛰쳐나왔다. 그랬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그는 남들이 가는대로 무작정 산으로 피했다.

어느덧 날이 훤히 밝아왔다. 산꼭대기에는 부락사람들이 하얗게 올라와 적이 강점한 부락을 내려다보고있었다.

리유천이도 황망히 허둥거려지는 눈으로 부락의 이곳저곳을 더듬어보았다. 불타고있는 집들이 수십채나 되였다. 미처 빠지지 못한 사람들이 부락의 뒤골목에서 아우성을 치고있었다. 그는 정신없이 아래로 내달아갔다. 누군지 알수 없는 어떤 아낙네의 머리에서 보따리를 끌어잡고 등에 업힌 아이를 뽑아안은채 빨리 따라오라고 소리치며 앞서 내달렸다. 콩볶듯하는 총알은 귀뿌리를 스치며 옆으로 지나갔다. 앞뒤에서 나무가지들이 후둑후둑 꺾어져 떨어지고 총알을 맞아 튀여난 돌쪼각들이 핑핑 소리를 내며 공중을 나돌았다.

보따리와 아이를 아낙네에게 맡기고난 리유천은 다시금 비살처럼 날아오는 적탄을 헤가르고 사람들이 아우성치는곳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총알을 맞고 길가에 쓰러져 신음하는 청년을 들춰업고 뛰였다. 청년을 안전한곳에 옮기고는 다시 뛰여내려가 맨발바람으로 눈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늙은이를 업어날랐다. 이렇게 하기를 그는 수십번을 거듭하였다.

몸은 녹초가 되였다.

그는 어떤 부상당한 농민을 등에 업고 산중턱으로 오르다가 그만 지쳐 눈속에 꼬꾸라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찬눈속에 얼굴을 박고 두손을 앞으로 내던진채 죽은듯이 쓰러져있었다. 등에 업힌 부상자가 벌렁벌렁 기여 산으로 오를 때까지도 리유천은 자기 몸을 추세울수 없었다.

누군가 어깨를 잡아흔들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아저씨, 아저씨, 정신을 차려요. 나 혜옥이예요.》

혜옥이라는 목소리가 분명히 귀에 닿는 순간 리유천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는 팔을 끌어당기며 머리를 쳐들었다. 등에 커다란 배낭을 지고 옆에 보따리 하나를 내려놓은 혜옥이가 리유천의 어깨를 안아일으키려고 안깐힘을 쓰고있었다.

《아저씨!》

리유천은 너무도 기쁘고 감격하여 혜옥의 머리를 가슴에 부둥켜안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아저씨, 숙반감옥에서 풀려났어요?》

《풀려났을게 뭐냐. 왜놈들이 밀려들고 숙반보초가 도망쳐버렸기에 문을 짓부시고 뛰여나왔다.》

《그럼 도망쳤단말예요?》

《모르겠다. 도망인지 뭔지.》

《아저씨, 도망을 쳤다면 사람들 있는곳으로 가지 말아요. 그러다 숙반사람들이 잡아묶으면 어쩌겠어요.》

《혜옥아, 그런건 생각해본적도 없다. 지금도 생각할수가 없구. 놈들이 어떻게 부락에까지 달려들었느냐? 최춘국동지는 어디 있느냐?》

리유천은 정말이지 자기 한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최춘국동지는 적구로 나갔어요. 아저씨가 데리고갔던 소부대를 데리고말예요.》

《뭐, 소부대를 데리고 적구로?》

리유천은 눈뿌리가 아찔해졌다. 기어이 최춘국은 적구로 가고만것이다.

현당서기와 백하일이가 그렇게 반대하고 적들이 골목마다 눈에 불을 켜고 서있는 그 길을… 자기 역시 함부로 그 길에 나서지 말라고 얼마나 간절히 애원했던가? 그러나 최춘국은 모든 장애와 저항을 물리치고 기어이 적구로 떠나고말았디, .

(아,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리유천은 두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몸부림쳤다.

결국 자기가 소부대를 데리고 똑바로 싸우지 못했기때문에 최춘국이가 적구로 떠나갔고 최춘국이가 없음으로 하여 요영구땅에 적들이 밀려든것이다.

바로 오늘의 이런 사태가 있을것을 념려하시여 장군님께서는 방어부대를 둘로 나누어 한부대는 리유천이 데리고 적구에 들어가 놈들의 후방을 교란하고 고지에서는 최춘국이가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방어전투를 하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는 적을 답새길 생각도 못하고 백하일이가 부른다고 하여 숙반대원을 따라 제발로 덜렁덜렁 근거지에 들어왔다. 이 얼마나 떨떨하고 무책임하며 무기력한 인간인가? 이것은 반혁명이나 다름이 없다. 누가 나더러 반혁명을 했다고 규탄해도 내 입에서는 할말이 없다. 백하일이 들씌우는식의 그런것이 죄로 되는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 죄로 되는것이다. 내가 소부대를 데리고 적구로 들어간것이 어째서 죄로 된단말인가? 적구에서 똑똑히 싸우지 못한것이 죄로 되는것이다.

리유천은 요영구땅이 이렇듯 무서운 수난을 들쓰고나서야 자기가 과연 무엇을 잘못했고 어떠한 내용의 과오를 범했으며 그 과오의 엄중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똑똑히 깨달았다.

그의 가슴은 아픔으로 갈기갈기 찢어지는듯하였다.

《혜옥아, 아무리 최춘국동지가 없기로서니 요영구땅이 갑자기 이렇게 될수가 있느냐. 내가 대북구와 소북구 방어계선에서 오래 싸워보아 알지만 우리 동무들이 이렇게 호락호락 요영구를 내줄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최춘국동지가 적구에 들어가면서 이곳의 방어력량을 타산하지 못했을수도 없는것이고… 분명 최춘국동지는 유격구의 방어를 최대로 강화하면서 적구부대를 데리고 떠났을거다. 나는 분명 그랬으리라고 생각해. 분명 그랬으리라구.》

리유천은 안타까와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이 비극의 사태를 자기에 대한 뼈저린 원망 하나만으로는 눌러앉힐수가 없었다.

《아저씨, 그 말이 옳아요. 부락에서는 정말 심상치 않은 소문이 떠돌고있어요. 최춘국정치지도원동지가 적구로 떠나가면서 놈들을 물리치기 유리한곳으로 자리를 옳기느라고 십리안쪽으로 들어와 지세가 험한 쌍룡고개에 진을 치게 했어요. 거기다 전호를 파고 돌산무더기를 만들고 차단물로 길들을 막고 놈들이 몰려드는 몇십리어간에는 습격조를 내보내여 여기저기서 놈들의 뒤통수를 때려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작전을 해놓았더랬는데 글쎄 훈춘현에 나갔던 백하일이가 들어오더니 최춘국이가 유격구땅을 내주고 퇴각했다고 고아대면서 총공격에로 내몰았다고 해요. 그래서 싸움을 하자마자 부대들이 서로 갈라지구 약한 고리가 무너지면서 부락에 놈들이 쓸어들었다는거예요.》

리유천은 금시라도 달려나가 백하일을 찢어발길듯이 두손을 쳐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게 사실이냐, 모든 일이 그렇게 되였다는게?》

리유천은 말소리조차 떨려 입안에서 감돌았다. 입에서는 이발이 떡떡 마주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추워서가 아니라 분노와 격분에 사무쳐 자기를 다잡을수 없었다.

《사실이예요. 나두 고지에 달려나가 돌산무더기를 만들구 더운물이랑 이어나르면서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요. 싸움은 한달도 두달도 끄떡없이 치를판이였는데 백하일이가 뛰여올라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구당비서 김학림아저씨를 최춘국이 놀아나는대로 놀아나는 허깨비라고 욕설까지 퍼부으면서 총공격을 하라, 총공격해서 최춘국이 내준 땅을 도로 뺏어야 해, 우리는 혁명의 원칙을 무시하구 못살아, 반혁명을 똑바로 갈라보고… 이러면서 야단을 쳤어요. 그러더니 벌써 총공격명령이 떨어지더군요. 그다음은 모든게 뒤죽박죽이 되였어요.》

리유천은 기가 막혀 끙끙 신음소리를 내였다. 방어지대를 쌍룡고개에 옮기게 한것은 전적으로 옳은 대책이다. 넓은 지대에 부대들을 헤쳐놓고는 사면으로 적의 타격을 받을수 있으므로 유격대는 최대로 유리한 지형을 리용해서 적을 때려야 하는것이다.

최춘국동지가 없는사이에 백하일이가 그것을 무찔러버리다니? …

리유천은 이 순간에야 비로소 백하일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게 어떤 심보를 가진 사나이기에 장군님께서 주신 명령도,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유격전법도 안중에 없이 무식한 대갈통으로 사람들을 함부로 공격에로 내몰면서 이 피자박이비극을 연출하고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러자 그의 눈은 무섭게 확대되였다.

정말 그 누가 장군님의 사상을 목숨걸고 지키느냐? …

다시한번 이 질문을 던지며 지나간 나날의 일들을 하나하나 더듬고 지금 벌어지고있는 이 유격구의 사태를 똑똑히 주시하자 리유천의 온몸은 화들화들 떨리기 시작하였다. 무수한 좀벌레들이 이 근거지땅에서 소리없이 번식하며 혁명이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는 이런 순간에 혁명의 대들보를 건드려보자고 하지 않는가? 저 강시중이라는 사람은 유격대가 적구에 들어가 놈들의 《토벌》본거지들을 답새긴다는것은 결국 근거지를 내버리고 백두산쪽에 나가 조선혁명이나 해보자는 민족주의라고 떠들었지. 내가 왜 그때 그자의 아가리를 이 드센 주먹으로 짓모아버리지 못했던가? 그리고 그자들은 유격대병실에 걸어놓은 《조선혁명승리 만세》구호까지를 뜯어버리며 이 모든것이 다 민족주의라고 소란을 떨지 않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장군님께서 조선의 혁명가들은 조선을 알아야 하며 진정한 조선의 애국자가 되여야 진정한 국제주의전사로 될수 있다고 가르치시는 말씀을 항상 들어왔다.

도대체 그것들은 이떤 족속들인가?

그처럼 조선사람의 의식을 질시하고 조선혁명을 증오하는 이자들을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

리유천은 누구보다 첨예한 비극의 첨단에서 시달리고 모대긴 사람이였으므로 그 의식의 장성에도 비약이 일어났다. 숙반의 수감자들을 향해 지껄이는 그들의 모든 말, 기괴한 모든 행동, 그것은 절대로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그런것이 아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지금까지 청맹과니처럼 살아오지 않았는가? 정말 딱정벌레보다 못한 그들의 이발에 물려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번민을 쌓아가면서 종당에는 근거지땅을 이모양으로까지 만든 무서운 소동에 휘말려들었다.

리유천은 자기만이라도 장군님께서 주신 명령을 똑똑히 집행하고 적후투쟁을 잘해나갔더라면 근거지의 이 처참한 비극이 있을수 없었다고 다시다시 생각하였다. 가슴속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그는 혜옥이를 향해서도 사심없이 머리를 숙이고 빌고싶었다.

빌어야 한다. 이 근거지땅에서 네발걸음을 하는 애들앞에서까지도 빌어야 하리라. 리유천은 남들처럼 이 근거지땅의 맑은 물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수 없다는 자책이 너무나 강하였다. 총이 있다면 즉시라도 자기의 머리를 쏘아갈길것 같은 그런 번열이 일어났다.

(아, 내가 정말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그는 백번도 더 자기를 뉘우치고 타매하고 저주하였다.

진정 자기의 과오가 이토록 크고 엄중한것이였기에 최춘국은 장군님께서 주신 적구투쟁임무를 망각하고 숙반감옥에 들어와있는 자기를 찾아와 가슴을 두드리며 부르짖었던것이다.

《동무는 어째서 소부대를 데리고 적의 배후를 들이칠 생각을 안하고 숙반대원을 따라 제발로 덜렁덜렁 근거지에 들어왔소. 동무가 적구에 들어가 〈토벌〉본거지들을 답새기지 않았기때문에 유격구의 방위는 나날이 어려워지고있소. 이렇게도 떨떨하고 맥빠진 전투원이 어디 있는가? 유격대원들은 언제 어디서나 장군님의 명령을 법으로 알았소.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기전에는 죽을 권리도 없다는것이 유격대원들의 신조로 되여있었소.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군사적인 행동으로 리해하기전에 혁명전사의 의리와 량심과 신념으로 받아들이군했었소. 우리는 장군님앞에 자신을 그렇게 가꿔세웠단말이요. 그런데 동무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되였는가?…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느라면 잘한 일도 못한 일도 있기마련이요. 그러니 과오라는것도 따르기마련인거요. 그러나 열가지 백가지 과오를 범한다 해도 단 한가지 과오만은 범하지 말아야 할것이 있소. 그것이 뭔지 알겠는가?》

비록 지나간 날의 일이지만 최춘국의 격노한 목소리가 귀전에서 쟁쟁히 일어난다. 그리고 그 분노한 부르짖음은 지금도 자기에게 속일수 없는 량심의 대답을 요구하며 완강히 육박하고있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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