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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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영구방어계선은 가야하 기슭으로 밀려들고있었다. 소북구와 대북구에 나가있던 유격대원들과 청년의용군들은 요영구부락으로 넘어오는 마지막 고개마루에 전호를 파고 행길에는 돌과 나무로 차단물을 만들어 쌓아놓고있었다.
벌써 며칠째 행길로는 일체 통행이 금지되여있었다. 적의 군용자동차는 물론 발구 한대도 나타날수 없이 차단물로 허리를 끊기운 행길은 마치 눈덮인 강바닥처럼 골짜기아래로 구불구불 뻗어있었다.
소북구와 대북구 뒤산에 바쁜 손질로 귀틀막을 몇채 지어놓고 전투원들의 뒤바라지를 하던 보장성원들은 이제는 리호검로인의 야장간으로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 너렁청한 야장간의 한쪽에서는 가마를 걸고 하루 세끼 밥을 짓고 더운물을 끓여 고지에 나르느라고 종일 분주하였다. 뜬김이 자욱하게 서려 사람을 알아볼수 없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풍구가 펄떡펄떡 숯불을 피워올리고 웃동을 벗어젖힌 청년들이 모루앞에서 힘차게 마치를 휘둘러대고있었다.
총이 없는 사람들은 날창이나 농쟁기를 벼려들고라도 근거지땅을 지켜야 하였다.
요영구부락에서 아무리 날래게 돌아가는 사람도 리호검로인처럼 바쁘지는 않았다.
밤에는 청년들을 데리고 날창과 농쟁기를 벼리는 한편으로 소와 말들의 발통에 신을 신기느라고 야장간안팎을 들락날락하였으며 낮에는 쌍대배기를 들고나가 고지에 기여오르는 《토벌대》놈들을 단발 명중사격으로 쓸어눕히군하였다.
부락사람들은 밤과 낮의 구별이 없이 종주먹을 부르쥐고 뛰여다니며 근거지를 보위하느라고 전력을 다해 싸웠다.
유격구의 운명은 시시각각 위험에 봉착하고있었다.
이럴즈음에 최춘국은 한때 리유천이 지휘하던 소부대를 데리고 적구로 들어갔다. 적구에 들어간 사흘째날에 벌써 쌍하진의 놈들이 유격대의 불의의 기습을 받고 혼비백산해 돌아쳤다는 소문이 근거지땅에까지 날아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요영구의 남쪽골짜기에 진을 치고있던 쌍하진의 《토벌대》놈들이 부랴부랴 제 소굴로 밀려갔다.
놈들의 진영에서 불안에 떠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부락사람들은 최춘국지도원이 소부대를 데리고 적후방으로 공격해들어간것은 아주 잘한 일이며
이것은 지난 동기방어전투때
최춘국의 소부대가 쌍하진에 대한 공격에 뒤이어 대두천시가의 자위단본부를 대담하게 습격하여 수명의 자위단을 죽이고 기관총 한문을 빼앗아간 사건이 다시 벌어져 놈들속에서는 요영구에 대한 공격작전을 그만둘것인가 그냥 밀고나갈것인가 하는 문제로 의견이 분분해졌다. 이런 때 반《민생단》투쟁실정료해차로 훈춘현에 나갔던 백하일이와 종치훈이 출장기일을 훨씬 앞당겨 부랴부랴 요영구로 돌아왔다.
그때에는 벌써 마을의 곳곳에 적의 박격포탄이 떨어져 집들도 몇채 주저앉았고 현정부의 식량창고와 숙반의 《감옥》하나가 포탄바람에 이영을 날리운 뒤였다. 요영구골안에 있는 숙반공작위원회와 현당일군들은 요영구골안의 막바지로 자리를 옮기고 방어지대에서부터 20리남짓한 그곳으로 말을 타고다녔다. 다만 숙반사무실만이 백하일을 기다리며 요영구의 어귀에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그나마 창문종이가 찢어지고 간살들이 부러져 가야하 기슭의 먼지와 눈가루를 뒤집어쓰고있었다. 게다가 숙반대원 한사람은 방어전연에 나가 유격대원을 묶어오다가 적탄에 맞아 숨을 거두고 또 한사람은 부상을 입고 병원에 들려갔다.
장지연으로부터 이러한 보고를 받은 종치훈은 말채찍으로 장화목다리를 세차게 후려치며 백하일을 흘겨보았다.
《백하일동무, 이게 어찌된 일이요. 근거지의 방어를 담당한 최춘국은 무엇때문에 적구로 들어갔소. 근거지가 도대체 무슨 꼴이 되였는가? 내가 근거지사수를 중시한다고 어떤 사람들은 날더러 〈근거지사수론자〉라고 규탄하고있지만 오늘의 형편이 어떻게 번져가고있는가 보오. 똑똑히 보란말이요!》
마상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먼길을 달려온 종치훈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여있었는데 내심의 격한 흥분까지 합쳐져 흡사 숯불마냥 이글거렸다.
《종치훈동지, 정말이지 근거지의 운명이 경각에 다달았습니다. 이건 전적으로 최춘국동무가 방어력량을 허물어가지고 적구로 들어간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만보니까 그 사람들에게는 근거지의 문제같은건 안중에 없는것 같습니다.》
《안중에 있을게 뭐요. 요영구근거지가 함락된다 해도 가슴아플게 없단말이요. 그들은 장차 백두산쪽에 나가 근거지를 꾸리고 혁명을 하겠다는 사람들인데 뭐가 아플게 있소. 백하일동무같은 충실한 국제주의전사가 우리에게는 정말 많지 못해. 슬픈 일이 아니요.》
《종치훈동지, 믿어주시는 말씀은 진정 고마우나 저는 조선사람으로서 량심의 가책때문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조선혁명가들속에서 발생하고있는 민족주의구호는 두말할것없이 중조인민의 혈연적단결에 장애를 놀며 참다운 국제주의정신에 그늘을 던져주는 비당적, 비혁명적 경향이며 반맑스주의적이고 반레닌적인 사상조류로서 이 동만땅에서 철저히 일소되여야 할뿐만아니라 국제당에도 제소되여 마땅한 타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걱정마오. 걱정말란말이요. 그러지 않아도 벌써 수차에 걸쳐 국제당 원동지국에 통신을 띄워 동만땅의 엄중한 사태를 통보했소. 국제당이 가만있을것 같은가? 가만있지 않아. 국제당의 1국1당원칙을 무시하고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가 지난 5월 31일에 조직되여 이 동만땅의 매개 현당과 군대에 일관한 당령도체제를 수립하고있소. 그러니 우리가 조선혁명가들의 오유를 충고할라치면 그것이 곧 남의 나라, 남의 당에 대한 무엄한 간섭으로 인정되여 사태가 자못 험악해지군한단말이요.》
종치훈은 솜을 두텁게 놓고 성글게 누벼지은 청색솜외투를 팽팽히 껴입은 비대한 몸을 이쪽저쪽으로 돌리면서 기염을 뿜어대고있었다. 그들은 지금 숙반의 출입문밖에서 찬바람을 그대로 맞아가며 주거니받거니하였다. 방안에 들어간댔자 로상에서 꽁꽁 언몸을 녹일 재주가 없었다. 화독에는 이미 불이 꺼진지 오래였다. 장지연이가 숙반대원을 데리고 불을 피우느라 집안팎을 들락날락하고 열어젖힌 창문으로는 시꺼먼 연기가 쏟아져나왔다.
종치훈은 백하일을 눈앞에 보기만하면 여느때 못하던 말도 망탕하게 되고 정치지도원 최춘국이나 구당비서 김학림이같은 사람앞에서는 감히 할수 없는 무엄한 행동도 꺼리낌없이 하게 되는것이였다. 백하일이나 현당서기 강시중이같은 사람들은 아무때나 자기의 기분을 척척 잘 맞춰준다.
그는 이렇게 손발을 맞춰주는 백하일의 작간질에 부쩍 기분이 들떠나 무엄하게도 조선혁명의 신성한 권위를 허물어내리는 소리를 마구 쏟아놓고있었다.
《백하일동무, 내가 동무들에게 한두번만 강조한 말이 아닌데 어째서 아직도 유격대 병실마다에 〈조선혁명승리 만세〉구호가 버젓이 나붙어있소? 유격대병실만 그런가? 청년의용군병실에 가봐도 그렇고 반일자위대나 병원, 무기수리소 같은데 가봐도 〈조선혁명승리 만세〉구호가 대문짝처럼 걸려있단말이요. 이게 중국사람들과 손을 잡고 혁명을 하려는 사람들의 태돈가?》
백하일의 목덜미는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종치훈동지, 사실말로 몇번 구호판을 철거하는 운동을 벌렸는데 유격대원들과 현당산하의 당원들이 호락호락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백하일동무의 권위를 가지고도 못한단말이요? 현당서기는 뭘하고있소. 숙반은 뭘하고있고?》
《숙반도 힘쓰고있지만 최춘국정치지도원과 구당비서 김학림이 버티고있습니다. 하긴 이 사람들의 힘이라는것도 한계점이 있습니다. 유격근거지를 놈들에게 내주고 적구에 들어간 최춘국이를 숙반에 불러들여 죄상을 따지면서 조선공산주의자들속에 발생하고있는 민족주의사상을 뿌리채 뽑아던지겠습니다.》
종치훈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최춘국의 과오는 숙반공작위원회가 전면적으로 검토할테요. 적들에게 빼앗긴 근거지땅을 기어이 우리 손으로 탈환해야 하오. 누가 뭐라든 나는 철저히 유격근거지사수론을 주장하오. 어떠한 피와 땀의 대가를 치르고 건설한 근거지기에 이걸 소홀히 한단말이요. 그 누구건 유격근거지방어를 홀시하는 사람은 〈민생단〉으로 몰아 숙반에 가두어야 하오.》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전장에 나가보고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백하일은 즉시에 말을 달려 방어전연으로 나갔다. 비록 적의 공격에 밀리워 가야하앞산에다 전호를 파고 싸움을 벌리고있었으나 유격대원들과 청년의용군들의 기세는 대단하였으며 고지에 밥과 더운물을 이어나르는 아낙네들도 날파람있게 씽씽 돌아갔다.
백하일은 요영구로 들어오는 행길을 좌측으로 압박하며 내려간 쌍룡고개에 돌산무지들을 쌓아놓고 날창과 농쟁기와 수류탄으로 격렬한 싸움을 벌리고있는 자위대의 방어구역으로 뛰여나갔다. 오늘의 싸움에서는 여기가 그중 가렬한 격전장이라고 하였다.
놈들의 공격서렬을 고지중턱까지 가까이 접근시켰다가 돌산무지들을 터쳐 짓모아버리고 그뒤로 날창과 농쟁기를 꼬나든 사람들이 구름처럼 달려내려가 살아남은놈들과 육박전을 벌리는판이였다.
가파로운 산경사면을 따라 하늘땅을 뒤흔드는 진동소리를 울리며 눈을 파뒤집고 잡관목을 쳐갈기면서 광포한 힘으로 밀려내리는 돌사태의 뒤로 번쩍거리는 연장들을 치켜든 시커먼 사람들의 무리가 세찬 고함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내릴 때면 아무리 현대적무장을 갖추고있는놈들이라 하여도 혼비백산하지 않을수 없었다.
육박전에는 적의 총창보다 반일자위대원들과 인민들의 연장들이 더 재빠르게 번쩍거리며 전장의 무시무시한 공간속을 날아돌았다. 그것은 사람들의 손에 너무나 익숙되여 몸의 한부분처럼 되여버린 로동도구였고 무서운 증오와 반발의식으로 더욱 굳세여진 날카로운 무기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