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 회)

제 7 장

5

 

장군님과 헤여져야 할 마지막밤이 닥쳐왔다. 장군님께서는 이미 초저녁에 주보중의 유격부대 지휘관, 병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중요지휘관들과 다시금 마주앉으시여 지난일을 회억하시며 담소도 하시고 고무의 말씀도 해주셨지만 주보중은 이렇게 소박하게는 헤여질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주보중은 부대의 지휘관들을 모아놓고 거창한 작별행사를 준비하였다. 그는 우선 북만지구의 혁명을 위해 불철주야 심혈을 기울여오신 장군님을 우러러 전체 부대의 병사들이 올리는 인사의 말씀을 자기가 해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였으며 왕이산이를 비롯하여 몇몇 지휘관들과 병사들을 잘 준비시켜 작별연설도 하게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고 부대가 앞으로의 활동에서 지침으로 삼을 귀중한 연설을 해달라고 장군님께 부탁을 드리기도 할 생각이였다.

주보중의 이러한 구상을 모든 지휘관들이 찬성하였다.

이날밤 주보중부대의 사람들은 잠을 이룰수 없었다.

작식대에서는 있는 솜씨들을 다 발휘하여 특식준비를 하였다. 부대에서 갖추는 준비만으로도 부족하여 부락농민들까지 동원하여 별식을 차렸다. 병사들은 부락의 넓은 공지에서 밤새 눈을 쳐내고 행사마당을 닦았으며 통나무를 다듬어 주석단과 연탁을 만들고 간소한 연예대까지 준비하였다.

녕안촌의 소학교선생들은 연예대에 자진하여 참가하였다. 부락의 조선녀인들은 행사에 입고 갈 치마저고리를 손질하느라 온밤 이집저집으로 들락날락하였다. 깊은 밤중임에도 아랑곳않고 이따금 까르르 터져나오는 녀인들의 웃음소리는 가뜩이나 행사준비로 들썽거리는 부락의 명절기분을 한층 돋구었다.

주보중의 유격부대에서 밤을 밝혀가며 행사준비를 하고있을 때 장군님께서는 소문없이 조용히 떠날 차비를 갖추고계시였다. 장군님을 모시고 갈 원정부대 대원들은 부락에서 아침밥들을 짓기전에 떠나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대원들의 행군준비상태들을 보살피시면서 우리가 왜 이렇게 일찍 부락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설명해주고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공산주의자들은 언제나 소박하게 살고 소박하게 행동하는데 습관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어떤 행사를 벌린다는것은 반드시 의의있는 목적을 추구할 때에만 가능한것이며 또 필요하기도 할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혁명가가 이런 일에 습관되기 시작하면 그는 혁명가의 자격을 잃어버리기 시작하는 사람이며 우리는 동지들과 인민들의 지극한 정성을 가슴에 뜨겁게 새기고 떠나면 그것으로 행복한것이라고 다시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이렇게 대원들을 가르치고계실 때 주보중은 행사준비정형을 일일이 살펴보고나서 장군님께서 계신 농가로 찾아갔다. 작대기를 받쳐놓은 바라지사이로는 아직도 등디에서 그을음을 피워올리며 타고있는 솔광불이 들여다보였다. 지게문은 약간 빗서진대로 있었다.

주보중은 문기척소리를 내고 조심히 지게문을 열었다. 방은 비여있었다. 장군님께서 잠간 새벽바람을 쏘이시러 밖에 나가신 모양이였다. 주보중은 마당에서 기다릴가 하다가 그래도 안에 들어가 기다리는것이 여러모로 편리할것 같아 방안으로 들어갔다.

장군님께서 밤새 한잠도 주무시지 않고 내처 일하셨다는것이 여러모에서 알렸다. 주인집에서 장군님의 사무상으로 놓아드린 조그마한 소반에는 밤새 집필하신 두툼한 원고가 쌓여있고 뚜껑을 맞추지 않은 만년필이 그우에 비스듬히 얹혀있었다. 등디에는 밤새 타다남은 솔광그루터기가 수북하였다. 그리고 방 한쪽 구석에는 종이를 덮어놓은 물대접이 놓여있었다.

머나먼 행군을 앞두신 장군님께서 한잠 주무시지 않고 밤을 밝혀 일하셨다는것을 생각하자 주보중은 못내 걱정이 들었다.

이때 한흥권중대장이 들어왔다.

《주보중동지, 장군님께서 이제 곧 떠나시겠다고 합니다.》

《아니, 어디로 떠나가신단말이요?》

주보중은 미처 말귀를 알아채지 못하였다.

《제가 들어오니 벌써 행군준비들을 끝냈더군요. 저로서는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하긴 이렇게 요란한 행사들이 유격대생활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혁명가들에게도 장중한 례식이 있는거요. 그것을 감히 부르죠아의 잔재라고 일소하려는건가. 혁명가들도 악대를 울리고 노래를 부를줄도 알며 분렬행진이나 사열식도 할줄 알고 응당한 법도로서 귀중한 동지를 맞이하고 보낼줄도 안단말이요. 한흥권동무, 동무야 나를 지지해주어야지, 이런 때 내 어디 가서 누구의 지원을 요청한단말이요.》

문득 장군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지원이야 내가 해드리지요, 주보중동지.》

장군님께서는 성큼 방안으로 들어서시며 새벽인사로 주보중의 손을 다정히 잡으시였다.

《우리는 평범하고 인민적인것에 습관된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러한 례식이 혁명에 부디 유익할것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연한 시간을 랑비하면서 공지에 늘어서서 박수를 치고 환호를 올리고 하다니… 습관되지 않은 일에 불시에 자신을 순응시킨다는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김일성동지, 원정부대와 헤여지기 어려운 우리의 마음을 생각해주셔야지요.

우리 동무들이 김일성동지를 그렇게는 조용히 보내드리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느 한 사람의 욕망이나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지요.》

주보중은 장군님의 손을 놓지 않고 그냥 부둥켜잡은채 간청하였다.

《알만합니다. 알만합니다. 그러나 헤여지기 어려운 사람들과는 조용히 헤여지는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나는 그들을 위로할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나자신부터 위로할길이 없기때문입니다. 두달동안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지들과 헤여진다는것이 수월한 일이 아닙니다. 이 괴로움은 묵새기기가 어렵습니다. 혈연적인 추억으로 깊이 얽혀진 동무들이 한두사람도 아닌데 그들과 일일이 가슴아픈 작별을 하고나면 내 심장이 견디여낼것 같지 못합니다.》

장군님의 얼굴에는 진실로 련련한 그리움과 작별의 고통으로부터 오는 어찌할수 없는 아픈 표정이 떠올랐다.

주보중은 벌써 일이 글러지고있다는것을 명백히 깨달았다. 그것이 아무리 크고 비싼 상실이라 하여도 성사시킬수 없는 일에 매달려 헛수고만 하는것을 주보중은 허용하지 않았다. 그랬건만 이 순간에는 일이 거의다 찌부러졌다는것을 명백히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그것을 포기할수가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 정 이러시면 우리는 그지없이 섭섭할수밖에 없습니다.

떠나시는 이 마당에서 귀중한 연설이라도 한번 해줄수 없단말입니까? 그것이 혁명에 유익한 일이라면 백만명의 군중을 모여놓고도 연설할수 있는것이지요. 엥겔스는 자기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한 계몽합창단의 출연은 막았지만 대회와 집회들에서는 자진해서 연설을 했습니다. 사회민주당 윈나대회에서도, 베를린대회에서도, 제1국제당 제2차대회에서도 연설을 하지 않았습니까? 맑스는 자기 생애의 마지막시기에 늘 병에 시달리면서도 로동자계몽협회에서 조직하는 강의에는 빠짐없이 나갔지요.》

장군님께서는 그지없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너무 어마어마하게 사태를 묘사하지는 마십시오. 나는 그사이에 해야 할 말들은 대체로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유격대생활에 정통하지 못한 왕이산동무를 위해 따로 남길 말들을 여기에 썼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소반우에 놓여있는 두개의 원고뭉테기중에서 하나를 들어 주보중에게 내미시였다. 주보중은 얼결에 받아 차례를 번졌다.

거기에는 유격대전술, 유격대동작, 지하사업, 군중공작, 적군와해를 비롯하여 통일전선문제, 근거지문제 등 중요한 정치강의가 들어있었다.

주보중은 무어라 표현 못할 감격에 입술만 떨었다.

김일성동지의 이 사심없는 노력이야말로 곤경에 처한 벗들을 도와주고 혁명의 재부를 전취하기 위한 위대한 교과서가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소반우에 놓여있는 다른 하나의 원고를 가리키시며 말씀하시였다.

《여기에는 북만지구의 혁명을 도와주면서 우리가 생각하고있는 몇가지 문제들을 서술해보았습니다. 북만지구의 투쟁경험은 우리가 근거지문제에 대해서 좀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연구할 가치를 제공하고있습니다. 북만땅에서 우리는 몇개의 고정된 유격근거지에 의거하여 혁명을 발전시키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광범한 지역에서 유격활동을 벌려 넓은 세계에서 혁명지대를 개척하는 방법으로 투쟁을 벌렸습니다.

경험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이제는 우리가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근거지에 의거하지 않고도 광범한 지역으로 넘나들며 투쟁을 벌려나갈수 있는 력량이 있고 수완이 있으며 한곳에서 적을 맞받아싸우는것이 오히려 불리하고 불편할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게 합니다.

그렇다면 주보중동지가 한때 그렇게도 부러워했던 동만지구의 고정된 유겨근거지들은 장차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의 견해에 의하면 고정된 유격근거지는 점차적으로 그리고 발전적으로 해산되여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조그마한 미련이나 협애한 고집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들이 근거지〈토벌〉을 획책하고 유격지구를 완전히 없애려고 광분하는 환경에서 이러한 문제는 가급적으로 시급히 해결을 요하는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 유격대와 혁명군중을 보존할수 있고 보다 광범하고 넓은 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혁명운동을 앙양시켜나갈수 있습니다.

우리는 유격근거지에 들어앉아 공격해오는 적들과 대항한다는것이 소극적이고 진공적이 못된다는 견해를 이미전에 제기하고 대담히 적구에 뚫고들어가 광범한 지역에서 유격활동을 벌림으로써 적의 〈위공〉작전을 파탄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북만땅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유격전법으로 싸워 적을 타승하였으며 혁명지대를 광범히 개척하였습니다. 고난속에서 가꾸어진 경험은 귀중한것입니다. 경험, 이것은 새로운 혁명리론을 빚어내는 토양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넓은 토양우에 서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피로 얼룩진 길을 걸으며 한치한치 개척한 혁명의 토양이며 래일에는 곧 보습을 박아 갈아번지고 알찬 종자를 박아 새로운 보다 풍요한 수확을 거두어들여야 할 기름진 우리 땅입니다.

주보중동지, 북만지구에서의 우리 투쟁은 우리 혁명의 전반적인 앙양을 위해서도 귀중한 의의를 가집니다. 헤여지는 이 마당에서 신심을 가지고 이 말을 할수 있게 된것을 나는 긍지로, 자랑으로, 행복으로 생각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김일성동지, 우리는 몇달전까지만 해도 해방지구형태의 고정된 유격근거지가 처처에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있었는데 이제는 광활한 지대로 나아가 투쟁을 벌려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미래의 우리 혁명을 위해 하나의 획기적인 사변이 아닐수 없습니다.》

주보중은 말하고나자 새로이 가슴이 쓸쓸해졌다. 이것으로 결국 작별의 인사가 나누어지는 셈이다.

김일성동지, 기어이 이렇게 떠나시겠습니까?》

주보중은 다시금 목메이는 목소리로 측은하게 말하였다.

《어찌겠습니까. 정해진 걸음이야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시적인 리별은 오히려 유익할는지도 모릅니다. 상시적인 접촉은 사물과 사물간의 차이를 지워버리는 단조로움을 느끼게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도하자에서 멀리 바라보는 로야령이야 얼마나 높고 장엄합니까. 그러나 우리가 로야령 등판을 밟고 지나면서 행군도 하고 숙영도 하고 모닥불도 피우고 할 때는 누구도 그 로야령이 그렇게 높고 장엄하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사물과 사물간의 거리란 이런것입니다.

사람의 감정도 이럴수밖에 없습니다. 사랑과 그리움의 절정은 상봉에 있는것이 아니라 리별에 있는것이며 떨어져있는 그 공간속에 존재하는것입니다.》

《원, 그렇게도 리별을 합리화하시다니…》

주보중은 한모양으로 섭섭해하면서 어떻게 이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탱해나갈지 막막해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주보중의 손을 힘껏 잡으시였다.

《우리는 동만과 북만이 그것으로 갈라진 높은 로야령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있게 됩니다. 이 공간은 아마 수천리를 헤아리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갈라놓은 이 공간은 시간과 더불어 오히려 우리의 우정에 뜨겁게 복무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이 공간과 시간속에 녹아흐르는 나의 사랑에는 나의 정신적인 모든 힘과 나의 감정의 모든 힘이 집중될것입니다.》

김일성동지, 나는 김일성동지의 우정이 얼마나 자기 희생적인가를 잘 알고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떨어지지 못하는것은…》

주보중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답답하신듯 후― 더운 숨을 내쉬였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진실로 걸출한 사람은 그가 지향하는 세계가 하도 위대하고 그가 관계하는 대상이 너무도 방대하기때문에 웬만한 자극에는 심장이 끄떡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는 이런 걸출한 사람의 계렬에는 속하지 못하는가봅니다.》

장군님의 눈가에는 핑그르 이슬이 고이였다. 주보중은 물결치듯 어깨를 떨었다.

그는 황황히 목도리를 풀어 장군님의 목에 걸쳐드리였다.

《받아주십시오. 주보중의 몸은 떨어지지만 주보중의 온기는 한점 묻어간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온전했더라면 북만이 끝나는 그 경계점에라도 모시고 갈터인데…》

《주보중동지의 뜻이 그러하니 사양을 못하고 받겠습니다. 그대신 나의 부탁을 들어주시오. 주보중동지는 건강에 류의하여야 합니다. 혁명가에게는 두가지 귀중한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상이고 하나는 건강입니다. 나는 혁명가에게 적어도 역마와 같은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불행은 혁명가들의 신체가 허약한것입니다. 하긴 혁명가란 자기의 육체를 연소시켜 혁명의 기관차를 몰아가는 사람들이니 그럴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되도록 그 비싼 연료를 함부로 연소시킬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혁명전우의 부탁이라고 언제나 생각해주시오.》

장군님께서는 억세게 포옹을 하시고 밖으로 걸어나가시였다. 장군님을 모시고 가는 유격대원들은 서른명도 되나마나하였다.

장군님을 모시고 가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대오, 그 대오의 중간에 장군님께서 평범한 대원처럼 한자리를 잡고 서계시였다. 주보중은 그것조차 가슴이 아파 모질게 한숨을 내쉬였다.

주보중밖에는 장군님을 바래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별로 큰 구령소리도 없이 대오는 떠났다. 삽짝밖을 나가 행길을 잠간 더듬어나가자 대오는 새벽의 미명속에 녹아들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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