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제 2 장

불타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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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악이 오른 그는 오후부터 군사들을 풀어 돌격에로 내몰았다. 포사격으로 그만큼 놀래웠으니 총격전만 벌리면 쉽게 성을 탈환하리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앞장에는 공주격전때부터 줄곧 자기와 동행한 와다나베대위를 내세웠다. 그 역시 출병당시부터 조선에서 군공을 세워 군부에로의 출세를 크게 노리는자였다. 그는 충주성을 탈환하고 류린석만 잡으면 당장 좌급으로 승진시켜줄것을 약속받았다.

류린석으로 말하면 두해전에도 의병을 조직했던적이 있었던바 특히 명성황후가 죽은 후에는 전국적으로 제일먼저 의병을 일으킨 무시할수 없는 인물이였다. 지금 그의 호소와 제천에 이은 충주성점령으로 온 조선땅이 터진 벌둥지처럼 들끓고있다. 이제 그들이 린석을 중심으로 뭉치기만 하면 그때에는 일본군 몇만이 아니라 몇십만이 출동하여도 조선점령의 꿈은 실현할수가 없다.

바로 이것을 알기에 일본공사나 조선주둔군 사령관은 물론 본국에서까지 조선의 반일의병들을 《폭도》라고 락인하고 무자비하게 탄압할것을 명령했고 그 주모자를 잡는데 신경을 썼다.

바로 그 행운이 와다나베에게 차례졌다.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조선출병을 커다란 영광으로, 저들의 출세의 길을 닦는 발판으로 여기고 저마다 출병의 열망에 떠있는 수많은 일본남아들을 타고누를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와다나베가 좀더 일찌기 출세할수 있는 기회는 그전에도 있었다. 갑오년란리때 전봉준을 추격하여 론산까지 갔을 때이다. 그때 그는 전조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록두장군을 자기 손으로 꼭 잡는다고 생각했다. 한것을 갑자기 나타난 어떤 총각놈의 유인에 걸려 놓치고말았다.

충주성을 빼앗기고 달아날 때 그 총각을 다시 보았다. 말을 타고 자기를 지꿎게 따라오던 놈이 바로 그 총각이였다. 기관총을 쏘아대며 그때 못한 분풀이를 하려고 하였으나 하지 못했다. 어째서인지 그를 다시 마주서니 겁이 앞서고 손이 떨리였던것이다.

지금 그 총각놈이 저 성안에 있을것이다. 생각을 하니 호기심도 나고 두렵기도 하였다. 사나이의 기상으로는 맞서고도 싶으나 이기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심이 따른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기지 못했다는 그뿐만아니라 너같은 놈은 아무리 믿어도 구실을 못하는 쓸모없는 놈으로 규정될것이 두려운것이다. 그것은 곧 조선전선에서 무훈을 세우고 출세의 길에 올라 대본영의 장성급벼슬자리를 넘보는 그에게 치명적타격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오늘도 여느때 없는 악심과 지꿎은 야심을 가지고 병졸들을 《도쯔께끼》에로 내몰았다.

공격전의 앞선에는 조선군사들이 구식총통을 퉁퉁거리며 나아갔다. 그뒤로 왜군들이 신식보총과 기관총을 휘두르며 유유히 따라섰다.

그때 의병들은 이미전에 벌써 안정을 하고 성벽에 바싹 붙어 놈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둥그렇게 굽어간 성벽을 따라 무수한 기발들이 펄럭이고 창검들이 번쩍이고있었다.

린석은 남풍루에서 놈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격명령을 준비하고있었다. 옆에서는 주용규가 화승총 한바탕, 활 한바탕거리를 계산하며 때를 기다리고있다.

생각을 하면 속이 탄다. 놈들이 쏘아대는 총탄이 성벽을 때리고 귀전을 아츠럽게 스치며 날아가는데 자기들은 아무것도 쏠수가 없는것이다.

의병들은 성우에 납작 엎드리거나 성가퀴에 숨어 머리조차 내밀지 못하고있다. 바라는것은 오직 놈들이 바싹 다가들기를 기다리는것뿐이다. 그때 화승총으로 일제히 한방씩 쏘고 물러나면 뒤에서 대기하던 화승총수들이 나와 쏘고 하는 방법으로 응전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도 다가드는 놈들은 활로 쏘고 그래도 성벽에 붙는 놈들은 창칼로 해대야 한다.

마침내 놈들이 사거리안에 들어섰다. 린석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북소리가 터지고 취타악기들이 진동을 했다. 그와 함께 화승총들이 일제히 불을 토했다. 순간에 성벽우에는 젖빛의 화약연기가 자욱히 서리였다.

놈들이 무리로 쓰러졌다. 그러나 아무리 쏘고 또 쏘아도 대부분 무리는 죽지 않을뿐아니라 성밑으로 바싹바싹 다가왔다.

리춘영은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중군으로서 지금 그는 성의 기본방어구역인 남쪽을 맡고있는것이다.

그는 평생 싸움이라는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수백수천의 흉적들이 성밑으로 달려들고있다. 바로 자기를 죽이자고 하는것이다.

팔다리가 떨렸다. 가슴이 옥죄였다. 그런데 그는 의병들을 호령하고 명령하며 앞장에 서야 한다.

그런데 몸을 움직일수 없다. 입을 열면 목소리부터 떨렸다. 평시에는 만사람앞에 나서도 장히 거드름스러웠고 위풍이 있었다. 문을 나서기만 하면 전후배 사령을 수십명씩 단 교군이 따르고 길라장이들이 륙모방망이를 휘두르며 앞에 섰다. 가는 곳마다에서 문무관리들이 엎드려 머리를 숙였고 산해진미와 주지육림으로 맞이했다.

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후두둑 하는 기관총의 련발사격이 성가퀴를 때리며 돌가루를 하얗게 날리고 도탄된 탄알이 아래도리를 맴돌았다. 동시에 귀부리를 스치는 탄알이 팽 소리를 치며 어디론가로 날아갔다.

춘영은 정신이 아찔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기가 분명 총탄에 맞은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바로 그 순간 누구인가 자기를 욕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일어서라구, 그렇게 겁이 나면 집구석에서 녀편네 엉치나 두드릴노릇이지.》

그는 깜짝 놀라 일어섰다. 그런데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반대로 저쪽 성우에서 누군가를 욕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 활은 뭣하는것이야. 저놈들을 겨냥하구 자꾸 쏘란 말이야. 네가 죽이지 못하면 그놈이 널 죽여…》

그제서야 목소리의 임자가 주용규라는것을 알았다. 그가 성우에 우뚝 서서 의병들사이를 오가고있는데 겁도 없는 모양이다. 저 시뻘겋고 거무틱틱한 융복차림이 그에게 용감성을 부여해주었는가.

춘영은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끈이 끊어진 갓이 저아래로 굴러가있었다. 그는 누가 자기를 지켜보고있다는 불안에 쫓기며 급히 달려가 갓모를 썼다. 누가 또 그것마저 지켜본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공포심에서 온것이였다. 그때에는 누구도 그에게 낯을 돌리지 않고 모두가 싸움에만 집중하고있었다.

《앞렬 조총수들, 심지에 불, 목표 조준… 쐇!》

누군가 힘차게 소리쳤다. 여기저기서 부시깃이 번쩍거리고 쑥심지 타는 냄새가 풍겼다. 이어서 땅땅 하는 조총들의 울부짖음, 짙은 화약내…

그래도 놈들은 계속 다가왔다. 이제는 궁노수들이 앞장섰다. 활줄을 힘껏 당긴다. 놈들이 무리로 쓰러진다. 뒤로 도망친다.

그때 성우에서 하늘을 가르는 소령소리가 들렸다.

《왜놈들을 겨누고 쏘라. 조총수, 궁노수모두 뒤에 선 왜놈들을 향하여 일제사격!》

류린석이였다. 그가 지금 성가퀴사이로 몸을 우뚝 세우고 가까이에 다가든 왜놈들을 굽어보며 소리치고있었다.

그제서야 의도를 알아차린 의병들이 관군의 뒤에서 고함만 지르며 어물거리고있는 왜병들을 향하여 일제히 조총탄과 화살을 날렸다. 그러자 왜병들속에서 혼란이 일었다. 신통히 저들만 향해 철알과 화살들이 쏟아져내리는데 질겁하여 내빼기 시작한것이다. 거기에 대고 더 맹렬한 사격이 가해졌다.

마침내 적들은 쫓겨갔다. 성에는 붙어보지도 못하고 무리죽음만 남긴채 물러간것이다.

오후에 놈들은 다시한번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멀리에서부터 쫓겨가고말았다.

해가 질무렵 황혼이 깃든 성우를 바라보는 린석의 마음은 흐뭇했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어렵고 힘들게 생각되던 싸움이 승리로 끝난것이다.

싸우면 이긴다는 신심이 넘쳤다. 그 기세를 안고 의병들이 서로 붙안으며 만세를 부른다.

남풍루에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리춘영, 주용규, 안승우, 김백산, 사석이들과 그리고 세상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여러 의병장들과 그 부하들이였다. 그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린석은 붓과 종이를 가져오라고 하여 즉석에서 시 한수를 썼다.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고 할 사이도 없었지만 붓은 종이에 닿자마자 일필휘지로 달렸다.

 

사나이 칼잡고 성우에 올라서니

이 몸의 고귀함이 비로소 알리누나

한초리 붓끝으로 세상을 론할적엔

나라의 태평함이 저절론가 했더니

 

나서라 싸움에 왜적이 쳐온다

국운의 흥망이 이 몸에 달렸거니

풍월의 귀함도 그다음에 론할 일

나라가 없고서야 세상은 무엇하리

 

내 비록 력전끝에 피를 묻고 쓰러져도

나라위한 싸움에 공을 남겨 전하리라

 

한사람한사람 차례로 돌아가다가 춘영의 앞으로 왔다. 그는 시를 붙잡고 읊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들어볼 소리가 있겠나?》

린석이 묻자 춘영이 놀란듯 눈을 떴다.

《꼭 저를 두고 쓴것 같습니다.》

《중군을 두고 쓰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아니 그저…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영문을 몰랐다. 그러나 춘영만은 싸움중에 비굴했던 자기를 두고 깊은 자책에 잠겼다. 다시는 전장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그날 저녁 성안으로 다른 기쁜 소식이 전해왔다. 령남과 관동, 충청도 각지에 나간 사람들한테서 파발이 도착했던것이다. 그에 의하면 리강년, 리직신, 리범직들은 나라의 운명에는 안중이 없이 일신의 향락만을 추구하던 역적의 무리들을 처단하고 각기 고을들을 차지하였다. 한편 리린영은 문경고을을 들이쳤는데 이기지 못한 대신 리화령(문경고개)을 차지하고 령남지방에로의 모든 통행을 장악하게 되였다.

그밖에 제천반일의병대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강원도와 전라도, 경기도 각 지방들에서 의병들이 크게 들고일어나 제천반일의병대의 활동에 적극 호응하였다.

소식을 들은 린석은 더욱 기쁨을 금할수 없어 의병장들앞에서 말했다.

사람이 자수자강해야 잘살수 있고 립신양명도 할수 있다는것은 세상에 통하는 자명한 리치이다.

나라도 같다. 스스로 힘을 키우고 자체로 강해지지 않으면 어느 누가 도와주지 않을뿐아니라 오늘과 같이 왜적의 침입을 당하는 수치와 곤욕의 길밖에 없다.

그런데 나라의 힘을 키우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들 매 사람, 여기에 앉은 각자들이다.

우리가 들고일어나니 강원도, 경상도가 호응하고 경기, 황해, 전라, 평안도가 뒤따라 일어났다. 나자신 평생 싸움이라고는 해보지 않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전장에 나서니 새 뜻이 용솟고 감회도 새롭다. 자신을 알게 되고 왜적을 알게 되고 싸움도 알게 되니 이 얼마나 좋은가.

제장들, 모든 의병들은 어제까지는 비록 붓대를 잡은 선비였거나 보탑을 잡은 농부였거나를 막론하고 자수자강의 립장에서 싸움에 더욱 전력하자, 정의의 싸움에 립각하여 일신의 안전과 리익만 생각하고 몸을 내대지 않는것은 자신을 죽이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것이다.

모두가 오늘의 성전에 한몸바치는것으로 후손만대에 이름을 날리고 뒤세대들에게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게 하자.…

그의 힘있는 호소에 여러 의병장들이 일제히 머리숙여 화답하였다.

《예잇, 잘 알았습니다. 기어이 대장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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