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2 장

불타는 성

4

(3)

 

휘영청 달밝은 밤이다. 쟁반같은 커다란 달이 높다란 나무가지에 걸려 어스름숲속을 내려다보고있다. 충주교외의 달천강가이다.

나무그림자속에서 백산이 나왔다.

《이젠 일어나오. 그만하면 됐소.》

강녘의 밋밋한 잔디밭우에 미영이 엎드려있다. 무거운 짐에 눌리웠는지 아니면 쏟아지는 달빛에 시달렸는지 한동안 옴짝을 안했다. 백산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서야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백산은 그가 아니라 옆에 던진듯 놓여있는 총을 잡았다. 그것을 본 미영이 발끈하여 일어섰다.

《좀 일으켜주면 안돼요, 온몸을 땀으로 적셔놓구선?》

《제힘으로 일어나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총도 쏠수 없소.》

《언제쯤 쏘게 돼요? 한번 쏴보자요.》

《아직 안되오. 훈련을 더 해야 하오. 조준훈련이랑… 그건 낮에 해야 하는거요.》

《낮에요? 그럼 하자요.》

백산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먼저 걸었다.

이렇게 저녁마다 총을 배우는 미영이다. 오늘은 달이 밝아서 오래동안 더 힘들게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낮에까지 하자고 한다. 그것은 백산에게 불가능한노릇이다. 가뜩이나 일감이 많아 콩튀듯 해야 하는 대낮에 그만 붙들고있을수 없지 않는가.

《그건 안되오. 난 그렇게 할수 없소.》

《그럼 난 할수 있어요? 어느 녀자도 나처럼은 하지 않잖아요?》

백산은 말문이 막혔다. 아닌게아니라 지금 어느 녀자도 그처럼 신식총을 배우겠다고 나선 녀자는 없는것이다. 하지만 백산은 그를 도와줄수 없다. 혹 다른 녀자라면 몰라도 미영에게만은 그렇게 할수 없다. 글쎄 밤에라면 몰라도…

《선봉장님, 뒤를 돌아보세요. 달이 우릴 따라와요.》

미영이 그의 생각을 흔들어깨웠다.

《그건 그렇게 보일뿐 따라오는게 아니요.》

《뭐라고 하지 않아요?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지꿎게 다그어대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달도 말을 하나?… 이젠 그만해도 미영의 심정을 알만 하오. 내 인차 쏘게 해주지. 그렇지 않아도 미영아가씬 총을 쏴보지 않았소, 갑오년의 그 여름날에. 그때문에 난 량반집 규수를 놀려댄 망종으로 지금까지 지탄받는 사람이 되였소.》

《들어보라요, 저 달이 뭐라고 하나.

〈아가씨도 고루한 량반님네들의 틀박힌 계률이나 도덕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 뜻대로 사는 녀성이 되십시오. 바로 저 월궁속의 옥토끼처럼 자기 뜻대로 산것으로 이름을 빛내이고 영원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신선이 되십시오.…〉

뭐 월궁선녀가 그리 간단히 되는것은 아니겠지요. 그렇게 되라고 충동한 사람에게는 책임이 없나요?》

순간 백산은 그 자리에 굳어지고말았다. 그제서야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명백히 리해되였던것이다. 그야말로 이 세상 어느 녀자도 생각 못한 전설속의 선녀, 저 월궁의 옥토끼가 되려고 하는것이 아닌가. 사실 그 말은 백산이 우연히 그가 왜놈을 반대하는 싸움에 나서기를 바라서 한 말이였다. 한것을 그 이상 새겨듣고 지금세월에서는 누구도 하지 못하는 상상밖의 일을 하자고 한다.

그러나 백산에게는 그 이상 그를 도와줄수 없다.

《미영아가씨, 실은 내가 그때 해보았던 말이요. 아가씨도 이런 말을 알지. 〈산골아이거든 풋공을 차라.〉 세상이 이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었소.》

《속에 없는 말을 하면 죄가 되여요. 선봉장님은 자기의 옳은것을 제가 몰라줄가 속이 답답한 모양이지요?》

백산은 다시금 굳어졌다. 그때에 했던 말로 다시금 자기를 걸고드는것이다.

하다면 내가 옳은것을 그가 몰라줄가 저어라도 했단 말인가.…

하는데 미영이 앞장서며 계속하였다.

《요즘 저는 선봉장님이 아버지때문에 고심이 많다는걸 알아요. 저의 아버진 천성이 소심하고 조심하는게 많아요. 선봉장님이 리해해주세요.》

《나에게도 잘못이 있소. 고집스럽고 례의범절도 지킬줄 모르거던.》

《그럼 됐군요. 그 이상은 론하지 말자요.》

미영이 유쾌한 소리로 웃으며 백산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선봉장님은 제가 왜 다른 녀자들이 하지 않는 의병대를 따라다니는 일을 하는지 아세요?》

《그야 미영이 말하지 않았소, 월궁선녀가 되려 한다구. 싸움에서 이름만 떨치면 될수 있소.》

《그것이 근본이라고 할수도 있어요. 하지만 다른 원인도 있어요. 모르시겠어요?》

미영은 남바위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유쾌히 웃었다. 백산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덤덤히 웃으며 생각을 굴리였다.

집들은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구불구불 뻗어가고있었다. 그것들은 밝은 저녁달빛에 거무틱틱하면서도 희끄무레한 륜곽을 선명히 드러내고있었다. 대부분이 동기와와 조선기와 초이영을 얹었는데 그에 따라 집들의 크기와 높이가 서로 달랐다. 그아래 오른켠으로는 방금 그들이 건너선 개울이 아직도 얼어붙은 얼음과 녹지 않는 눈, 번뜩이는 물로 하여 한결 훤한 자태를 드러내고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눈여겨볼 때뿐 조금만 시야에서 벗어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왜냐 하면요… 정말 모르겠어요?》

그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달빛그림자속에서 그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백산은 보았다. 그앞에서는 늘 웃었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 입고있는 남복도 밤에만 남몰래 입군 하는것인데 어째서인지 백산에게는 매양 입고다니던것처럼 생각되였다. 그처럼 몸에 잘 어울렸다. 요컨대 미영의 모든것은 그에게 잘 어울렸고 늘 그랬던것처럼 생각되였다.

《글쎄, 아까두 말했지만 왜놈과 싸우자는것이겠지…》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개가 컹컹 짖어댔다. 깜짝 놀란 미영이 백산의 반대쪽으로 몸을 숨겼다.

《역시 몰라요. 저는 신녀성이 되자는거예요.》

《신녀성! 그건 어떻게 하는거요?》

《음? 그것도 거기서 튕겨주구선?》

《말해주오. 나도 모르겠소.》

《바로 저와 같은 못난이죠. 남들이 안하는 총을 배우고 밤도와 산보도 하고. 그러자니 생각도 많아야죠. 아버지의 부족점을 대신하여 용감하고 적극적이고 속도 커야 하고…》 하다가 얼핏 백산을 바라보았다. 그를 선망하는것인지 타매하는것인지 류달리 큰 눈동자가 그를 한동안 응시했다.

《요즘 신녀성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시집을 가서 양장을 하고 양료리점에 드나드는것으로 알고있지요, 그러다가 어떤 안경쟁이한테 시집을 가고. 그런데 어때요, 저의 생각과는 판판 다르지요?》

이제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것인지 리해가 갔다. 그가 말하는 개화나 신녀성이란 순전히 양놈들이나 본따고 그들이 하는대로 하는것이 아니라 시대의 한가운데 뛰여들어 시대를 이끌어가는 선각자가 되겠다는것이다. 이를테면 그가 의병에 뛰여든것이나 거기에서 남들이 안하는 군사훈련을 하는것자체가 모두 거기에 기인되는것이다.

그것이 백산의 가슴을 뜨겁게 해주었다. 얼마나 사려깊고 행동 또한 대담한가. 모든 녀성들이 다 이만큼만 된다면 나라가 얼마나 빨리 개명하고 왜놈 또한 얼마나 빨리 내쫓게 될것인가.

갑자기 뒤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웬 사람들이 따라오고있었다.

그들은 멈춰섰다. 공연히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피할 곳도 없었다. 한쪽은 담장들이 잇대이고 한쪽은 개울이였다.

《음. 좋았군, 좋았어. 이게 개명이라는겐가…》

마침내 그들이 따라왔다. 모두 취한 모양들이다.

백산은 그들이 정식의 서울패들이라는것을 대뜸 알아보았다.

《음, 이게 누구야. 선봉장 아니야? 이건 또 미영아가씨구. 이럴수가 있나. …》

《깨가 맞지 않는다. 둥그런 단지에 세모난 뚜껑처럼… 그야 안되지.》

《비켜요. 술을 마셨으면 조용히 물러가라요!》

미영이 앞에 나섰다. 조금전 개를 보고 놀라던 그답지 않게 백산을 막아선것이다.

《알겠소. 우린 물러가겠소. 하지만 이거야 용서할수 없지, 하면 안되지 않구…》

그들은 물러갔다. 그들 두사람만 어둠속에 멍청히 서있었다.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든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영이 당돌하게 나섰다.

《가자요. 그들이 아무런댔자 소용없어요. 제가 다 막아서겠어요.》

했으나 일은 예상외로 번져갔다. 승우의 주장으로 그들이 다시 만나지 못하게 한것과 백산을 무기거래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한것이였다.

그리하여 부대가 아끼며 힘들게 모았던 수많은 군자금이 야마무라의 손에 쥐여져 서울로 올라가게 되였다. 바로 그날에 서울에서는 대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왜병 세개 중대가 수많은 관군을 앞세우고 충주로 떠났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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