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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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12월, 이 계절의 녕안땅은 어디에서나 유격부대의 활무대로 되여있었다. 핫또리의 지휘소에서 복닥바람을 일쿠며 사방에서 《토벌대》를 끌어다 녕안중심부의 부락들과 산판들에 배치하고 기동이 편리한 도로연변과 강류역, 산전막과 포수막들에 경찰대와 밀정들을 밀어넣음으로써 물샐틈없는 수비와 방어를 취하고있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경박호전투 이후 곧바로 녕안의 중심부로 진격해들어간 유격대는 12월초순에 벌써 유수림자, 삼도하자, 마창, 함마하자에서 적들을 무리로 답새기고 중순경에는 녕안읍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녕안촌에 대한 공격작전을 승리적으로 진행하였다.
이 전투에는 원정부대와 주보중의 유격부대는 물론
녕안촌공격전투의 승리로써 적의 깊은 종심은 완전히 와해되고 핫또리의 지휘소는 전투지휘능력을 상실하고말았다.
유격대는 적들의 본거지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녕안촌에서 며칠 묵으면서 전투승리를 크게 기념하였다.
녕안촌전투 승리후 주보중유격부대의 편성도 새롭게 달라졌다.
두개 중대의 무력으로
주보중이 그렇게 념원하고 바라마지 않았던 북만지구에서의 반일무장력의 집결은 결속을 본셈이였다. 주보중의 유격부대는 웬만한 력량의 적들은 감히 맞서지도 못할 정도로 큰 부대로 자라났으며 유격대원들은 전투속에서 단련되고 승리의 신심이 확고해졌으며 지휘관들의 유격전술과 지휘능력도 높아졌다.
이리하여
북만의 혹한속을 헤치고 두달동안 간고한 원정행군을 이어온 중대들도 일시나마 서로 갈라지게 되였다. 사람들은 그새 사귀여온 정과 만단사연으로 얽혀진 눈물겨운 감정을 붙안고 서로의 리별을 고통스러워하였다.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싸웠고
비록 당분간 헤여져있게 된다고는 하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수 없는 리별이였기때문이였다. 그들은 이제 서로마다 헤아릴수 없는 고난과 시련이 겹쌓인 어려운 길을 다시 가야 하고 생사를 판가리하는 싸움속에 휘말려들게 될것이였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 그들은 잘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쓰러져 다시 대오에 돌아오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고생도 단순한 고생이 아니고 슬픔이며 번민이며 회오며 우울이며 하는 인간이 느끼고 감수할수 있는 온갖 시련의 감정도 단순한 그것으로 해석할수 없을만치 눈물겹고 절절하게 체험한 사람들이기에 앞에 부닥치게 될 시련이 무엇인지 잘 알고있으며 그속에서 감수하게 될 인간의 처절한 감정들도 속속들이 느끼고있었던것이다.
동만으로 먼저 나가게 되는 중대들은 적의 《토벌》집단을 뒤에 달고 천교령의 험지로 행군해가야 할 왕청중대를 심심히 걱정하였으며 왕청중대는
그들대로
더구나 주보중부대에 아주 남게 된 하연성소대원들은
원정부대와 떨어져 왕이산이를 도와주느라고 누구보다 고생도 많이 했고 공로도 활약도 컸던 하연성을 떼놓으시는 장군님의 심정은 몹시
허전하시였다. 그리하여 하연성을 설복시키고
차일진이와 오성숙이도 자기들의 리별을 두고 못내 괴로와하였다. 왕청중대에 배속된 녀대원들이 연길중대와 함께 먼저 동만땅으로 나가게 된것이다.
그들은 원정부대 대원들이 서로 그렇듯 안타깝게 받아들이고있는 리별의 아픈 감정외에 서로 깊이 사랑하며 한시도 잊지 못해하는 눈물겨운 애착심을 느끼고있었으며 그것은 어쩔수없이 쉽사리 헤여지지 못할 온갖 괴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있었다.
그들은 진옥이가 대오를 떠나간 다음에는 예전처럼 다정하게 사귀지 못하였다. 그렇게 한다는것은 한흥권의 앞에서도 미안하고 자기들의 량심에도 괴로운 일이였다. 게다가 이전처럼 성숙이의 도움이 없이 제발로 땅을 딛고 일어서려는 차일진의 각오가 높았던만큼 의식적으로도 성숙이를 피했다. 그러나 서로 갈라지는 이 마당에서 차일진의 존엄이며 자존심은 순식간에 물러갔다.
그는 예전처럼 처녀를 따뜻이 대하고 그동안 터놓지 못한 가슴속 생각이며 이전보다 몇배 강해진 자기의 애정이며를 모두 그에게 헤쳐보이고싶었다. 그것 없이는 성숙이를 자기곁에서 떼여놓을수 없었으며 그 먼길에 순순히 떠나보낼수 없었다. 그리고 자기 역시 일시나마 헤여지는 이 시각에 성숙이의 애무와 고무가 무척 그리웠다.
차일진은 녀대원들이 들어있는 농가로 찾아갔다. 원정부대의 식당 겸 녀대원들의 숙소로 쓰고있는 귀틀집은 사람들이 한시도 쉬임없이 들락날락하였다. 더구나 이제 중대와 헤여져 동만으로 나가게 되는 녀대원들이 있는지라 그들을 찾아보고 저저마다 무엇을 꾸려주기도 하고 근거지에 있는 가족이나 동무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부탁의 말들을 남기느라고 그렇듯 분주했던것이다.
농가마당에 들어선 차일진은 녀자들이 있는 부엌간쪽으로 대뜸 찾아가지 못하고 공연히 웃방쪽을 기웃거리면서 먼저 와있는 동무들과 롱지거리를 하였다.
이것은 자기가 와있다는 신호로 성숙이에게 알리는것이며 그가 얼른 눈치채고 약삭바르게 나와주면 아주 다행일판이였다. 그러면 성숙이를 데리고 이 농가마당을 나가 저쪽 키높이 가려놓은 나무동가리뒤에 숨어 그새 말할수없이 그립고 할 이야기도 많던 지난날의 회포를 풀어놓을것이다.
그런데 부엌쪽에서는 아무 기미가 없었다. 차일진의 목소리를 들은 한 녀대원이 지게문을 방시시 열고 한눈을 찔끔하며 야학선생님이 오셨는가고 롱말까지 건늬는데 성숙이는 통 깜깜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차일진은 기다리기가 갑갑하여 몇발자국 부엌쪽으로 내려가 동정을 살폈다. 안에서는 여러 사람이 떠들어대는 목소리가 들리고 반쯤 지쳐놓은 바라지로는 허연 김이 뭉실뭉실 솟아나왔다. 중대에서 떡을 한다 국수를 누른다 하는 소식이 들리더니 무슨 역사를 하는 모양이다.
이러고보면 일없이 못사는 성숙이가 곱게 손을 포개고앉아 이야기판에 끼여들어 시간을 보낼수 없다. 분명 부엌봉당에 내려가 땀을 철철 흘리면서 바쁜 일손을 붙잡고 돌아갈것이다.
차일진은 성숙이에게 자기가 왔다는것을 좀더 똑똑하게 알게 하려고 부엌문앞에 다가가 발자국소리를 내고 처마끝에서 떨어진 고드름을 툭툭 차던지기도 하였다.
그러자 방금전의 그 녀대원이 다시 지게문을 조금 열고 얼굴을 내밀면서 해쭉 웃어보이는것이였다.
《차동무, 들어오시라요. 왜 남의 집에 온 사람처럼 서성거리며 그러구 섰어요. 참 별나게도 노시네.》
차일진은 목덜미가 뜨끔하는것을 느꼈으나 아닌보살하고 돌아서서 저쪽 외양간모퉁이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뒤에서 쿵 하고 지게문 닫는 소리가 울렸다.
《옳지, 이제는 성숙이가 나와주겠구나. 그새 서름서름해진 사이를 무슨 말로 슬쩍 메꾸어버린다?》
차일진은 신통한 생각을 골라내느라고 머리를 썼다. 그러나 별로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궁냥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건 미리사리 생각해두어야 하는건데…)
차일진은 너무 준비없이 서두르기만 했던 자기를 후회하였다. 나중에 얼핏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자기가 성숙이를 대할 때 아주 상냥해져서도 안되고 무뚝뚝해져서도 안되며 좋기는 대단히 큰 걱정거리가 있어 그것을 도움 받으러 온 사람모양으로 인상이며 거동을 그렇게 가지는것이 좋으리라는것이였다.
그래야 무엇을 돕지 못해 애쓰는 성숙이가 금시 도울 일이 생긴것에 기쁨을 느끼고 설레며 돌아갈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차일진은 대단히 흡족해졌다. 벌써 성숙이가 기쁨을 참지 못해 어쩔줄 몰라하는 광경이 눈앞에 선히 떠오르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