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2 장

불타는 성

4

(1)

 

성은 방어준비로 들끓었다. 모든 의병들이 방어구역을 차지하고 그에 익숙하며 무기에 정통하는것이 급선무였다.

그와 함께 성안의 모든 주민들이 군사를 배우고 싸움에 나설수 있도록 하는것도 중요했다.

이에 린석은 이미전부터 구상하고있던 군중시에 대한 내용을 적어 성안에 반포하였다.

…우리 나라가 왜 흉악한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였는가.

력사적으로 조선은 언제한번 왜놈들에게 짓밟힌적 없고 싸워서 이기지 못한적이 없다. 다만 최근에 일본이 개명을 하여 일시 강해졌을뿐인데 그렇다고 강한자가 언제나 강한것은 아니고 약한자가 언제나 약한것도 아니다. 또 강자라고 하여 언제나 이기는것이 아니며 약자라고 하여 언제나 지는것도 아니다.…

린석은 이것을 세계사속에서 분석고찰하면서 일본이 서양놈들과 교섭하면서 일시 강해졌는데 결코 오래가지 못할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놈들을 물리치자면 반드시 힘을 키워야 한다. 힘을 키워서 오직 내가 강해야 적을 이길수 있으며 강하지 못하면 정신적허탈에 빠져 자신부터 없어지는것이다. 이 정신적허탈을 이겨내야만 승리를 이룩할수 있다.

그러자면 온 나라에 상무숭병기풍을 세워 상시적으로 무력을 중시하고 군사를 숭상하는 제도를 세워야 한다.

방도는 있다. 나라안의 모든 사람들은 사농공상의 네가지 업종에 종사하는데 그들모두에게 15살만 되면 의무적으로 군사를 배우게 하는것이다. 즉 필복병어사라고 하여 글하는 사람도 군사를 배우게 하고 필복병어농이라고 하여 농사짓는 사람도 군사를 배우게 하고 필복병어공이라고 하여 쟁인바치에 종사하는 사람도 군사를 배우게 하고 필복병어상이라고 하여 장사를 하는 사람도 반드시 군사를 배우게 하는것이다. 이렇게 사람마다 군사를 배워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면 천하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며 우리 나라가 세상 누구보다 강한 나라로 될것이다.

다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하나로 통합하는것이다. 그것인즉 모두가 한마음으로 사랑하는것인데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몸을 사랑하고 법과 도덕을 사랑하며 사람들을 사랑하는것이다. 이 모든 사랑을 하나로 관통하고 만사람의 마음을 합치는것을 관일약이라고 하며 이렇게 뜻이 하나로 뭉치면 쇠도 끊고 돌에도 구멍을 뚫을수 있다.…

후에 린석은 이 글을 보다 체계화하고 론리적으로 완성하여 《의암집》에 싣게 될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면한 성의 방어에 치중하여 주민들을 단합시키는 방향에서 집필을 완성하였다.

그것이 은을 내여 성안의 곳곳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에게 읽어달라고 해서 들었다.

이렇게 성안이 들끓고있는 며칠어간 적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마 저들도 어지간히 혼이 날만큼 준비가 잘 안되는 모양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서울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그중 한사람은 리강년이였다. 전번에 김복한이와 함께 왕의 《애통소》를 가지고왔다가 자기도 의병을 조직한다며 령남으로 내려갔더니 다시 서울로 올라갔던 모양이다.

그가 같이 온 사람을 소개했다.

《랑청(궁중의 하급벼슬)을 지내던 민룡호입니다. 이번에 선생의 격문을 받고 단연 의병에 나설것을 결심하고 나선 길입니다.》

린석은 그와 흔연히 인사를 나누었다. 명색이 궁중관리였다니 반가왔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괴롭고 분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자기가 격문에서 그렇게도 고위관리들이 싸움에 나설것을 호소했건만 겨우 찾아온다는것이 랑청벼슬 한사람뿐인가 하는때문이였다. 그래서 이 한사람이 더 반갑기도 하였다.

《고맙소, 온 나라가 이렇게 모두 떨쳐나선다면 얼마나 대단하겠소.》

그러는데 문득 그들 두사람이 나란히 서서 린석에게 말하였다.

《최익현대감님의 말씀을 전달하겠습니다. 우리가 떠나기 며칠전 대감께서는 임금님을 만나뵈셨답니다. 그때 전하께서는 류린석대장님의 충주성점거소식을 듣고 못내 감동하면서 〈류린석이란 사람이 왜군을 쫓고 충주를 점령했단 말이지. 그러고보면 과연 나라에 인재가 있구나.〉라고 하셨답니다.》

《무엇이라구? 임금께서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시였단 말입니까?》

《최대감께서도 몹시 기뻐하시며 싸움을 더 잘하라고, 그렇게 해서 왜놈들을 충청도나 강원도지방에서 내쫓게 되면 임금께서 더 크게 알아볼 때가 있을거라고 말하였습니다.》

순간 린석의 가슴이 뭉클 저려났다. 왕이 자기를 알아보고 나라에 인재가 있다고까지 평가해주시였으니 신하로서 그보다 큰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고맙네, 고마워. 소식을 전해주어서… 이렇게 달려온것만 해도 고마운데… 나는 더 바랄게 없네. 그저 죽기로 싸울 생각뿐이네.》

그가 새로 온 사람들을 힘껏 그러안으며 말했다. 리강년이나 민룡호들도 린석을 뜨겁게 포옹하며 그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였다.

다음날 그들은 떠나갔다.

리강년은 전번에 내려갔던 령남지방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명칭만은 제천반일의병대의 유격부대로 달기로 하였다.

민룡호의 경우는 좀 달랐다. 강릉지방에 나가 독자적인 부대를 따로 조직하기로 한것이다. 한것은 그곳이 거리가 멀고 태백산 험한 산줄기가 가로막혀있어 서로 련계를 맺기가 불리했기때문이였다.

이렇게 그들이 떠나간 다음날이였다. 린석이 선화당에서 창의소성원들과 함께 병기문제를 론하고있는데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몇사람이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누구인가 눈여겨보던 린석은 깜짝 놀랐다. 들어선 사람이 홍정식을 비롯한 그 서울패였던것이다.

그들은 김복한이 살해된 후 종적없이 사라졌던 사람들이였다. 린석이 춘천에 갔다와서 복한의 죽음을 따질 때 마땅히 처음 김규식의 편지를 가지고온 그들의 죄과부터 론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미 부대에서 없어진 그들을 두고 죄과를 론할수 없어 그대로 넘겼던것인데 이렇게 제발로 찾아온것이다.

《선생님, 전번의 일을 깊이 사죄합니다. 그 죄를 씻자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린석이 분개한 눈으로 쏘아보는데 정식이하 너덧명이 일제히 머리를 땅에 대고 일어설줄 몰랐다. 격분하기는 했으나 다른 방법은 없었다.

《무슨 일이냐. 그동안 어디에 가있었지?》

《우제선생님의 사고는 분명 저희들이 잘못해서 빚어진 일입니다. 한편 저희들은 생각하기를 편지를 우리가 가져왔던것은 사실이지만 놈들에게 속았을뿐 작당은 하지 않았으며 또 감영을 찾아간것은 우제선생자신이였지 우리가 보낸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거론이 우리에게 죄가 있다고 하는것 같아서 일시 서울로 몸을 피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왜놈과 싸우겠다고 결의해나섰던 뜻을 저버릴수 없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 담보로 약간의 군량과 면포를 먼저 바칩니다. 그리고 이것은 대장님과 창의소성원들에게… 그저 성의로 마련한것입니다.》

린석은 여전히 이마를 찌프리고있었다. 분명히 죄가 있어 도망갔던것들인데 제발로 찾아왔으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그때 옆에 앉았던 안승우가 장죽을 마루끝에 털며 한걸음 나앉았다.

《군량과 면포를 가져왔다는것은 어디 있나?》

《지금 저 마당에 있습니다. 호남쌀 몇바리하구 고등어, 청어 십여두름 그리구 면직이 열동에 마포가 서른동가량 됩니다.》

《으흠? 그 괜찮군. 그렇잖아두 창의소식사를 대이는 일이 쉽잖았는데 마침이군.》

승우가 대번에 흡족하여 웃음을 터쳤다. 그로 하여 긴장했던 분위기가 대번에 활기를 띠였다.

《그리구 또 그건 뭐라구? 이리 가져와보게!》

역시 군수장으로서 자기만이 상관할 일이라는것이다.

홍정식과 같이 온 사람들이 즉시 달려와 마루우에 물건들을 펼쳐놓았다. 매 사람에게 차례지도록 마련한 비단옷감들이였다. 그중 하나는 정식이 승우의 앞으로 따로 밀어놓았다.

《따님의것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전장에 뛰여들었는데 긴하게 써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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