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회)
제 7 장
3
(2)
《주보중동지, 놈들을 치기에는 여기가 그중 맞춤한 장소일것 같군요.》
문득
《예, 내게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놈들은 분명 얼음을 타고 이리로 올것인데… 기슭에 쉽게 붙을만한곳이 여기밖에 없지요. 이 방상구의 지형을 내가 조금 압니다.》
《아마 여기서 좌우로 한 십리안팎엔 이런 버덩이 없지요?》
《없습니다. 우로 올라가면 점점 높은 절벽이고 아래로도…》
《아래쪽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설사 아래에 붙을만한곳이 있다 해도 그리로는 놈들이 붙으려 하지 않을겁니다. 놈들의 타산이라는게 앞뒤에서 우리를 공격하자는것인데 북호두수비대가 아래쪽에 붙는다면 뒤에놈들과 합류하게 될것이므로 원정대의 앞길을 차단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필경 이앞으로 나와서 상륙지점을 고르지 않을수 없지요.》
주보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 지휘관들을 다시한번 둘러보았다.
주보중은 알릴락말락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것은 자기 지휘관들에 대한 신뢰의 표시였다. 동시에 안정되고 누그러워진 그의 심중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주보중은 입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참모장을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
《어떻소. 내 생각에는 이 웃쪽으로 한 두어마장정도까지는 호반기슭이 절벽으로 둘러막힌것 같았는데 좀더 확신있는 대답을 해보오.》
《주보중동지의 생각이 맞습니다. 이 방상구땅이 저의 고향입니다.》
주보중은 두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참모장의 얼굴을 이윽히 지켜보았다.
《내가 참모장동무의 고향땅에 와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군. 고맙소. 우리가 원정부대를 도울수 있는것이란 실상 이것이 전부인거요.
놈들은 분명 기동이 빠른 기마대를 배합하여 공격해올터인데 우리 동무들은 기마대와의 싸움을 못해보았지. 어떻소?》
《예, 대부분 동무들이 그렇습니다. 갑자기 적기마대를 앞에 대하게 되면 어지간히 당황해할것 같습니다.》
얼음강판에 들어서시여 얼음의 두께를 가늠해보시던
《만약 적기마대와 접전하게 된다면 생소할수는 있겠지만 그대신 전투는 한결 쉬우리라고 생각됩니다.》
《그전에 우리가 유격대를 처음 조직해가지고 전투에 나갈 때 적기마병놈들과 자주 맞다들었습니다. 그때 어떤 동무들은 위혁적인 속도로 달려드는 기마대에 질겁하여 진지를 버리고 도망치는 현상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겁들을 먹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앉아 목표가 큰 말부터 쏴제끼라고 타일러주었습니다. 유격대원들은 일제사격으로 질풍같이 달려오는 말들을 쏴제꼈습니다. 말들이 여기저기 나딩굴기 시작하자 기마병놈들이 안장우에서 조약돌처럼 날아떨어졌습니다. 이때 일제돌격으로 나가 땅에서 엉금엉금 기고있는놈들을 요정내고말았습니다. 아주 통쾌한 싸움이 아닙니까. 나는 지금 그때 일을 생각하고있습니다. 이런놈들을 치기란 식은죽먹기입니다. 생각들을 해보시오. 안그렇겠습니까?》
주보중부대의 참모장이
《
《옳습니다. 싸움은 다 이겨놓은 싸움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기슭의 저쪽 언덕너머에 매복해있다가 놈들이 기슭에 이르면 기관총과 보총의 일제사격으로 갈겨야 합니다. 놈들이 정신을 차리기전에, 말하자면 집중된 사격목표가 흩어지기전에 폭풍같은 사격을 안겨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적들은 그 수가 얼마이건 관계없이 완전자멸을 당하는 운명을 면치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전투에서 전술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적이 전혀 예상할수 없는 그런곳에 불쑥 나타나 불의의 기습으로 타격한다는데 있습니다. 유격전에서는 언제나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해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많지 않은 유격대원을 가지고도 수십배의 적을 손쉽게 칠수 있으며 전투에서 항상 주도권을 장악할수 있습니다. 의견을 말할 동무들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지휘관들은 부르쥔 주먹을 바지혼솔에 꽉 다가붙이며 열기띤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하였다.
《그럼 날이 밝기전에 중대들은 저쪽 언덕너머에 진지를 차지하시오. 전투서렬의 중심에는 녕안유격부대, 우측에는 왕청충대, 좌측으로는 연길중대와 훈춘중대가 각각 차지하며 기관총은 중대 전투서렬의 좌우익측에 배치하여 놈들을 동시에 사격할수 있게 사계를 넓히시오.》
전투명령을 받은 지휘관들은 절도있게 돌아서서 중대들을 향해 달려갔다.
기슭에는
단추를 채우지 않은 외투의 앞자락은 바람에 불려 너펄거리고 한쪽이마를 가리운 검은 머리칼은 깊은 명상에 잠겨있는 그의 눈언저리를 휘저으며 간단없이 흔들렸다.
《주보중동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흑시 오늘의 싸움이 예상외로 간고해질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아닙니까?》
주보중은 조용히 알릴듯말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였다.
《아니지요. 위험은 벌써 물러간지 오랩니다. 닥쳐올 싸움에 대해서는 락관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그 길에는 위험이 있었지요. 나는 그것을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래요?…》
《처음은 북호두의 수비대가 경박호를 건너 원정부대의 앞길을 차단한다는 말이 있었을 때 이 위험이 실지로 날아들었던겝니다. 앞뒤에 수천명의
적을 달고 어떻게 하시려나?… 하는것이 그때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의 한결같은 의문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의문은 산정에서 숱한 모닥불을 피우고
대원들을 편히 휴식시키고나서 불무지들을 그대로 남겨둔채 이 경박호기슭으로 빠져나온 후에야 석연히 풀렸습니다. 뒤따르는 〈토벌대〉놈들은 결국 산정에서 타오르는 수백개의 불무지를 보고 겁을 먹고 도중에 주저앉아있을것입니다. 그놈들이 유격대의 전술에
속았다고 개탄하며 이 기슭에 달려올 때는 북호두수비대의 시체가 이 물가에 새까맣게 널려있을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유격전입니다.
《주보중동지, 이러지 마십시오. 년세도 우이신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면구해질수밖에 없습니다. 소박한 보통말로 그리고 평범한 보통사실로 지내보내도 무방한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주보중동지의 이야기를 가까운 혁명전우에 대한 고무의 뜻으로 사심없는 성원의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주보중동지와 같은 중국의 진정한 혁명가들이 가까운 벗으로 인연을 맺고있다는것을 행복으로 자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주보중동지, 이제는 우리도 전투서렬에 들어설 때가 된것 같습니다. 날이 밝아오는군요. 위장을 철저히 하고… 숨가쁘게 기다렸다가 일제사격의 선풍을 들씌워야 할텐데요.》
날은 차츰차츰 밝아왔다. 안개가 낀듯이 뿌옇던 하늘이 조금씩 높아지고 잡관목들이 빽빽이 서있는 호반의 눈덮인 흰 기슭과 검스레한 얼음판이 확연히 경계를 이루면서 눈앞이 희슥희슥 트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전투서렬에서 일체 사담을 금지하며 적들이 나타날 호반에만 눈길을 주어야 한다고 주보중이 한두번만 강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무슨 말인가를 줄곧 하고있었으며 눈길은 모두
문득 조용한 호반으로부터 나지막한 어떤 소음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주의, 전투준비!》
주보중의 구령소리에 따라 전투서렬은 숨을 죽이고 앞을 내다보았다.
눈보라가 희슥희슥 꼬리를 휘저으며 날아가고있는 호반으로부터는 바람소리와 별로 구분되지 않는 어떤 미묘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차츰차츰 명료해져 이제는 뚜거덕거리는 말발굽소리며 산만하게 공기를 휘저어대는 투레질소리, 장구류들이 부딪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전투원들은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언땅에 지그시 누르고 한초한초 안타깝게 기다렸다. 소음은 시각을 따라 가까와졌다. 이제는 말의 투레질소리와 성급히 자갈을 씹어대는 소리가 엇갈려 일어나고 병졸들을 몰아대는 장교놈들의 욕질소리가 똑똑하게 들려왔다.
문득 뿌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호반의 회색빛 안개속에서 시커먼 물체가 불쑥 나타났다. 그것은 각일각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기병들과 보병들로 뒤엉킨 행군종대였다. 네줄로 줄을 맞추어 기다랗게 늘어선 보병종대옆으로 기병들이 끼여있었다. 기병들은 일제히 안장우에서 내려 말고삐를 끌고있었는데 장교놈들만 마상에 높직이 앉아있었다.
보병과 기병이 혼성대렬을 이루고 다가들고있는 첫 대오의 뒤로 십여메터의 간격을 두고 두개의 큰 보병집단이 기슭으로부터 약간 대각을 이루고 다가오고있었다.
적들은 기슭에서 불과 수십메터를 사이두고 전진하고있었다. 기슭이 가까와지자 뒤에 섰던 보병대렬은 속도를 놓아 평행을 유지하면서 산병선을 짓기 시작하였다. 대렬의 앞과 뒤, 중간에 말을 탄 장교놈들이 끼여있었다.
《주보중동지, 이제는 사격할 때가 된것 같습니다. 주보중동지는 어느놈을 쏴제끼겠습니까?》
《나는 두번째 마상에 있는놈을 제낄가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첫번째 장교놈을 제껴보지요.》
그것을 신호로 유격대의 전투서렬에서 기관총과 보총의 일제사격이 터져올랐다. 놈들의 산병선에서는 아우성소리가 일어났다. 장교놈들이 무어라고 악악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벌집같이 소란해진 병졸들의 무리를 다루어낼수가 없었다. 혼비백산한놈들은 앞에서 뒤로 몰렸다가 더러는 얼음우에 엎드리기도 하고 어떤놈들은 정신없는 걸음으로 기슭으로 달려나오기도 하였다. 아무 거칠매없는 얼음우로 행군해오던 적들은 일제사격의 세찬 폭풍을 들쓰고나자 첫 타격에서 벌써 반수이상을 잃고 갈팡거리기 시작하였다.
혼비백산한 말들이 보병들을 무찌르고 여기저기로 달려다니다가 몇놈씩을 깔고 미끄러졌다. 살아남은 말들의 일부는 기슭으로 뛰여오르고 일부는 호반 저쪽으로 달려나가다가 얼음강판우에 무거운 몸뚱이를 내치며 너부러졌으며 보병들은 죽어넘어진 시체를 총알막이로 얼음우에 납작 달라붙어있었다.
총격전은 짤막한 시간에 벌어졌다. 이미 최후를 각오한 마지막놈들이 단말마의 기세로 기슭으로 뛰여올라와 돌격을 시도하였다.
그 순간 유격대의 전투서렬에서 류랑한 돌격나팔소리가 호반우의 눅눅한 대기를 가르며 자랑차게 울려퍼졌다.
전혀 예견할수 없었던 뜻밖의 장소에서 유격대의 불의의 기습을 받은 적들은 변변히 응전도 못해보고 무리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