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2 장

불타는 성

3

(1)

 

류린석은 선화당의 높은 대뜰에 좌기했다. 방금전까지만 하여도 관찰사가 호령하고 《토벌》대장놈이 총질을 해대던 곳이다.

역시 그가 바랐던것은 아니지만 지어진 정황이 그로 하여금 도안의 첫번째 장관으로 되게 한것이다.

《의병장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렇게 애써 벼르며 기다려오던 충주성을 차지하게 되였소. 우제 김복한의 원한으로 되였던 김규식이도 처단함으로써 우리가 그에 대한 의리를 어느 정도나마 지킬수 있게 되였소.》

린석이 좌우에 주런이 앉아있는 의병장들을 향하여 말하였다. 지금 그들은 충주성점령에 대한 목적을 실천한 기쁨과 락관에 넘쳐 린석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다.

《우리가 이만한 성과를 거둘수 있게 된것은 전적으로 여러 의병장들과 매 의병들 한사람한사람이 원쑤 왜놈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을 가지고 목숨을 서슴없이 바쳐가며 싸웠기때문이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비록 공적은 없더라도 적들의 첫 사격에 정신까지 잃고서도 놈들의 총구를 맞받아나가며 쪽발이들을 전률케 한 수많은 유명무명의 의병들을 잊을수 없소.》

《잊을수 없습니다. 잊어선 안되지요.》

《후세에 남을수 있게 비문이라도 바로세워주어야 합니다. 집에다 소식도 똑바로 전해주구요.》

린석의 말에 모든 의병장들이 동의해나섰다. 그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린석이 계속했다.

《아울러 한마디 겸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선봉장 김백산의 장거요. 그는 오늘 남먼저 성우에 올라 대문을 열었고 달아나는 김규식이놈을 기어코 쫓아가 붙잡고야말았소. 한마디로 그는 오늘싸움에서 남다른 군공을 세웠는바 오늘의 승리는 그의 공적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소. 이를 놓고 우리가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할수 없지만 앞으로 나라가 안정되면 김백산선봉장을 무반계렬에 세우고 나라의 당당한 장수로 되게 하자는것을 제의하오.》

여러 사람들이 일시에 찬성을 표시하였다. 앞으로 응당 그렇게 되여야 할뿐아니라 지금도 당당히 무반계렬에 서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것은 나라가 인정해야 하지만 지금 그럴 형편이 못된다. 더구나 그들은 자기네가 나라밖에 있는만큼 자기네 식으로 법을 정하여 지금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저녁에 그는 싸움의 성과를 축하하여 차린 연회석상에 백산과 상렬을 자기 좌우에 나란히 앉혔다. 그렇게 하는데는 그들의 군공에 대한 평가도 있었지만 보다 중요한 원인은 백산을 적극 내세우자는데 있었다.

그가 보건대 지금 백산과 미영은 남다른 사이가 되였다. 그러나 량반과 평백성이라는 계선이 둘사이를 더이상 접근할수 없게 하고있다.

특히는 둘가운데 아버지 승우가 끼여있다. 그가 둘이 좋아하는것을 극구 반대하고있는것이다.

바로 이것이 린석으로 하여금 백산을 더 내세우면서 적어도 서반의 계렬에는 세우고싶은 욕망을 금할수 없게 하는것이다. 백산이야말로 제천의병대의 선봉장으로서 앞으로도 얼마나 큰 기대를 가지게 하는것인가.

하면서도 린석은 아직 그 모든것을 터놓지 않고 누구에게 말도 하지 않으면서 보다 큰 목적을 향하여 꿋꿋이 나가고있는것이다.

린석이 선화당에 틀고앉으면서 종전과는 다른 많은 새 시책들을 실시하였다.

그 첫시작이 김규식을 처단하고 그의 시체를 성문밖에 매다는것이였다. 그것은 김복한과 그 동료들에 대한 복수이면서 동시에 왜놈들과 통하는자들은 다 이렇게 된다는 일종의 시위요, 통고인것이였다. 아닌게아니라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왜놈들과 한동아리가 되여 나라와 겨레를 배반한 역적을 두고 치를 떨며 자신들을 새롭게 가다듬었다.

다음은 고을안의 여러 량반들과 유지들, 각종 아전들, 부자들을 만나보거나 취조를 하는것이였다. 그들의 뜻을 참작하여 도의 정사는 어떻게 펴며 병기와 식량은 어떻게 해결하며 앞으로 싸움은 어떻게 할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로 하여 선화당주변은 물론 온 성안이 밤낮으로 설레였다. 각 군현으로도 도의 정사를 알리는 파발들이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여기에서 그는 전봉준이 전주성을 점령하고 하삼도 각지에 실시했던 형식을 많이 따랐다. 물론 그때의 집강소같은것을 설치하지 않았지만 많은것을 백성들의 편의에 복종하려고 하였던만큼 그 비슷한것이 많았다.

그때까지도 전라도농민봉기군의 전주성점령에 대해서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었다. 그러나 같은 도소재지로서 류린석의병대의 충주성점령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고 나라에서도 극비에 붙이고있었다.

그러나 린석을 비롯한 의병장들과 모든 의병들은 그들대로의 자부와 긍지에 넘쳐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자기들의 힘으로 왜놈들을 내쫓고 성을 차지했다는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이였다. 그것은 또한 앞으로 보다 더 큰 싸움을 벌릴수 있다는 신심을 안겨주는것으로써 의병들의 사기를 한층 높여주는것이였다.

이것을 아는 린석은 오히려 여느때보다 더 바빴다. 이제 그 기세를 빨리 온 나라에 확대해나가야 했던것이다. 도소재지의 점령이라는 큰 사변을 겪고나서 어떻게 끓어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그는 다시 붓을 잡았다. 이 거창한 소식을 전국에 알리고 그들모두가 일제를 반대하는 싸움에 일어나도록 호소해야 한다.

낮에는 짬이 없고 사색도 집중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남들이 다 잠든 밤에야 서안을 마주앉았다.…

《아, 통분하도다. 변란이 끝이 없구나. 이와 같은 변란이 천만년 과거에 일찌기 있었겠으며 억만년 미래에 또다시 있겠는가.

나라의 형세가 오늘과 같이 위급한 이때에 원쑤를 쳐부시고 나라의 권위를 회복하여 오랑캐들을 몰아내는것으로써 대의를 밝히는것이 옳은가, 그렇지 않은것이 옳은가.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가리켜 선대의 임금과 나라에 죄를 짓는 관적이니, 폭도니 하고 욕을 하고있다.

나는 시골의 한 미천한 선비로서 용렬하기 짝이 없으나 나라의 은혜와 덕택을 입고 례의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스승과 벗들로부터 옛 전통을 배웠으며 성현들의 교훈에 복종하여왔다. 또 천부의 성품으로 서툴게나마 강개한 성질을 가지고있어 충의와 반역을 크게 가르며 오랑캐들을 물리치는데서는 일찍부터 눈이 밝아서 수수방관하거나 간과해두지 못한다.

그런데 너희 서울의 명문거족들, 고굉지신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나라가 이 지경이 되였는데도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으니 이 웬일인가. 당신들의 충의는 응당 남보다 두텁고 권력도 역시 강개할터인데 하필 이 보잘것없는 힘을 가진 사람만 피를 흘리며 애써야 하는가. 나라가 망하는것을 뻔히 바라보면서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선수를 써야 하겠기에 보잘것없는 힘이나마 먼저 일으켜 충주성을 점거하고 이 격문을 보낸다.

내가 이미전에도 여러차례 격문을 썼으나 크게 응하는자가 없었다. 다만 이름없는 선비들, 시골량반들, 지방과 군현의 장부들 몇천이 나섰을뿐이다.

오늘 그들과 대사를 도모하고 거듭 쓴다.

서울과 지방의 여러 선비들, 구중궁궐의 권문대신들, 문무백관들, 공농상병에 종사하는 모든 백성들은 수천년 내려오는 우리 선렬들의 뜻을 받들어 8도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그 위력을 확장함으로써 흉악한 왜적들을 쓸어버리고 역적들을 처단하자. 그리하여 우리 강토를 보위하고 나라의 수치를 씻으며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례의와 문화를 지켜나가자. 비록 그 모든것을 다 하지는 못하더라도 왜놈들의 한 근거지를 소탕하고 그놈의 무리 몇놈씩만 격살한다고 하여도 오랑캐들은 죽음을 면할수 없고 반역자들은 갈곳이 없다는것을 알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것은 또한 하늘의 리치를 밝히며 민심을 바로잡는것으로 되니 후세에도 우리의 면목이 서게 될것이다. 그런즉 성공과 실패, 리해의 득실을 가리지 말고 요컨대 대의를 따라 한결같이 싸워나가자는것이 바로 린석의 확고한 신념이다.

오늘의 거사는 비록 력량이 약하고 크게 보잘것은 없다고 하겠으나 천지간에 정의를 따르고 기강의 힘에 의거하여 왜적을 격멸함과 동시에 반역자를 규탄하여 사람과 짐승을 갈라놓고저 함에서 한 일이다. 그런즉 김규식이 죽은것은 하늘의 벌을 입은것이지 그 누가 죽인것이 아니다. 왜적들이 조선땅전체를 오랑캐의 나라로 되게 하고 온 나라 백성을 저들의 개로 만들려고 하는데 그 충견 한두마리가 먼저 죽는것이야 응당하지 않는가.…

나는 우선 조정에 있는 대신들, 삼공륙경으로 불리우는 고굉지신들에게 먼저 통고한다.

당신들은 누구보다 나라의 은혜를 두텁게 입고 높은 작위를 지니였으니 나라가 사변을 당한 지금 마땅히 통분이 넘치는 심정에서 심신을 다 바쳐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오랑캐들이 나라를 강점하고있는 이상 차라리 죽을지언정 이를 악물고서라도 싸워 그들을 내쫓아야 된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벼슬이 귀하고 목숨이 아깝겠지만 어찌겠는가.

제 나라, 제 강토가 놈들에게 짓밟히고 수천년 내려온 문화유물이 파괴되는것을 그냥 보고 참기만 하겠는가. 만약 적을 치는 처사를 조금이라도 늦춘다면 그자는 적을 도와주는 반역자와 조금도 다를바가 없다. 병기가 없다면 홀(고위관리들이 왕앞에서 조회를 받을 때 오른손에 들던 패쪽.)이라도 들고 나서라. 군사가 없다면 당신들의 노복이라도 데리고 나서라. 모든 관리들, 친척친우들이 서로 짜고 힘을 합쳐 위력을 떨치자. 관리로서는 우로부터 맨 아래까지, 지역으로서는 중앙으로부터 지방의 마지막끝까지 한덩어리를 이루어 깨뜨릴수 없는 견고한 힘으로 뭉친다면 아무리 흉악한 왜적이라 해도 어쩌겠는가.

조정의 대신들에게 특별히 할말이 있다.

당신들이 우리 의병을 보고 역적패당이라고 함부로 말하고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왜놈들이 하는 말과 뭐가 다른가.

그놈들의 말을 그대로 외워가며 우리를 적으로 대하니 이것이 애초부터 적이였던 왜놈과 무엇이 다른가. 오늘과 같은 변고를 당하고서도 의병투쟁을 벌리지 않는다면 례의바른 나라로서 그대로 수치요, 후세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게 하겠는가. 외적이 쳐들어와도 총 한방, 화살 한첩 던져보지 않고 나라를 내주었다고 비난할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놓아두자는것인가. 당신들의 생각을 알수 없다. 의병들에 대해서는 못된 병이나 몸에 난 혹처럼 생각하면서 오랑캐의 벼슬자리를 탐내고 놈들이 시행하는 규례를 쫓아 앞을 다투어 따르며 화친을 부르짖고 계책을 토론한다. 역적들의 매국행위에 대해서는 불화를 조성한다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의병들에 대해서는 구태여 그 흠집을 찾아내여 못된 놈이라 꾸짖고 기어코 박멸하려 하고있다.…

슬프다. 이제 의병들마저 맥을 놓고 흩어지고말면 나라의 5백년 왕조가 망하고 수천년 겨레의 혈통이 끊어질것이다. 왕조가 망한다는것은 우리 나라가 오랑캐의 나라로 된다는것이며 혈통이 끊어진다는것은 우리 겨레가 다름아닌 짐승으로 되고만다는것을 말하는것이다. 나라가 오랑캐의것으로 되고 사람이 짐승으로 된 다음에 누가 우리를 알아줄것이며 우리는 누구와 겨레에 대하여 말할수 있겠는가.

이제 그 모든것을 생각하니 비통함을 금할수 없다. 피눈물을 뿌리며 전국에 다시 알리노니 각자는 내 몸보다 조국을 먼저 생각하고 내 집보다 겨레를 먼저 생각하며 오랑캐를 쳐부시고 역적들을 처단하라. 그리하여 저놈들을 이 땅에서 내쫓고 천지의 도리가 바로잡히도록 하며 나라의 제도를 회복하자.

이와 같이 할수 있다면 지난날의 잘못을 누가 다시 론하겠는가. 그때에는 하늘도 노함을 그만두고 선렬들도 화를 거둘것이다. 나라에서 그 충정을 알아줄것이고 후대들도 우리를 기쁘게 추억할것이다. 여러분들이 오직 여기에 힘껏 노력하기를 바란다.》

쓰기를 다했을 때에는 벌써 날이 밝아오고있었다. 그는 일어섰다.

그러다가 그대로 서안우에 쓰러졌다. 풍증으로 손맥이 빠지고 밤새 쭈그리고앉았던 다리에 신경마비가 왔던것이다.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쓰러졌는데 초불마저 자빠지며 방금까지 써놓은 격문에 불이 달렸다. 넓다란 도포자락에도 불길이 번져갔다.

그것도 느끼지 못하고 쓰러져있는데 매캐한 연기냄새에 옆에서 자고있던 춘영이 놀라서 깨여났다. 벌써 몇장이나 불에 타 없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 썼다. 그만이 쓸수 있고 그만이 대표할수 있는 이름이기에 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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